"직접 음악 트실래요?"라는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튜디오에 스웨그 넘치는 음악이 가득 찼다. 귀가 터질 것 같은 볼륨으로. 누가 말할 것도 없이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춤을 추셔도 돼요"라고 말하려고 그의 아내에게 "춤을…"이라고 운을 떼려는 찰나, 그녀는 이미 춤을 추고 있었다. 최근 MBC 예능 프로그램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 출연해 부러움과 놀라움을 동시에 자아낸 댄서 부부 제이블랙과 마리의 이야기다.
외국인 같은 개성 넘치는 비주얼의 제이블랙과 마리는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 그간 볼 수 없던 캐릭터였다. 시부모와 고부 갈등을 그리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그 누구보다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을 보여준 것. 언제나 아내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남편과 보편적이라 불리는 것들을 과감하게 깨는 아내의 모습에 대한민국의 며느리들은 환호했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모습이 화제를 모았죠. 주변 반응은 어떤가요?
마리 방송 출연 전이나 후나 저희 부부는 변함없는데 주변에서 좋게 봐주시니까 감사해요. 요즘엔 식당에 가면 사인을 해달라고 하시고 서비스도 주세요. 저희 부부를 예쁘게 봐주시고 잘 살고 있다고 칭찬해주시기도 하고요. 참, 이번 기회에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매력도 알게 됐어요. 정말 재미있더군요.
제이블랙(이하 블랙) 좋게 봐주시니까 감사한 마음이 크지만 한편으론 쑥스러워요. 마리보다 제가 더 많이 방송에 출연했어요. 사실 저 혼자 방송을 하니까 방송 분야에 대해선 마리와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웠어요. 방송을 하고 집에 왔을 때 마리가 "어땠어?"라고 물으면 짤막한 대답밖에 할 수 없었죠. 제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도 마리가 공감하지 못하면 재미없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함께 방송을 하면서 방송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어요. 저희끼리 서로 잘했냐고 묻기도 하고 다음엔 어떻게 해보자고 이야기하곤 해요.
시부모님과 함께 방송에 출연하는 건 어때요?
마리 하하. 사실 초반에 섭외가 왔을 때 고민이 많았어요. 일단 시부모님께 여쭤봤는데 처음엔 어머님이 반대하셨어요. 쑥스럽지만 시아버님이 저를 많이 아껴주세요. 아버님이 어머님에게 "이렇게라도 작은며느리를 도와주자"고 설득하셨죠. 당시 어머님이 삐치셔서 혼자 나가서 산책하시고 그랬대요. 그렇지만 결국 어머님도 "작은며느리를 위해서"라면서 허락해주셨어요.
블랙 어머님이 처음엔 싫다고 하셨지만 막상 촬영을 시작하고선 제일 행복해하셨어요. 아마도 저희 넷 중에 가장 방송을 즐기셨던 것 같아요. 마리가 저희 부모님을 살뜰하게 챙겨줘서 그럴 수 있었겠죠.
다음엔 '이상한 나라의 사위'를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블랙 맞아요. 저 정말 하고 싶어요. 실제로 촬영 중에 사위 편을 만들면 출연하고 싶다고 이야기한 적도 있어요.
마리 블랙님(마리는 실제로 '블랙님'이라고 불렀다)은 며느리 같은 사위예요. 저희 엄마가 "블랙은 며느리 같다"고 자주 이야기하세요. 블랙님이 '제이핑크'로도 활동하고 있어서 그럴까요? 옆에서 지켜보면 저보다 더 섬세하게 어머니를 챙겨요.
블랙 저보다 마리가 양가 부모님께 잘하는 편이에요. 저는 어른들에게 잘 못해요. 머리론 알면서 실천하지 못하죠. 그런데 마리는 양가 부모님께 안부를 물으며 딸로서, 며느리로서 도리를 해요. 저는 마리가 연락을 드리고 나면 "아, 맞다!"라면서 연락을 드리곤 해요. 마리의 그런 모습을 보면 좋아요. 하지만 늘 적당한 때를 파악하려고 해요. 사실 아무리 어른들이 나한테 잘해줘도 어른을 대하는 건 어렵잖아요. 마리가 어려워할 것을 알고 있으니까, 마리가 힘들어 보이면 이제 집에 가자고 이야기해요.
마리 블랙님이 눈치가 빠르거든요.(웃음)
블랙은 며느리 같은 사위예요.
저희 엄마가 "블랙은 며느리 같다"고 자주 이야기하세요.
옆에서 지켜보면 저보다 더 섬세하게 어머니를 챙겨요.
두 사람을 두고 '이상적인 부부'라고 하는 분들이 많아요.
마리 솔직히 말해도 될까요? 저희 부부가 특별한 건지 몰랐어요. 그런데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조금씩 알겠더군요. 우리처럼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블랙님을 만난 게 선물 받은 것 같아요. 6년 동안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면서 안정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블랙 저도 마찬가지예요. 마리를 만나고 결혼하면서 모든 일이 잘 풀렸어요. 안정적인 상태가 됐고요. 연애할 땐 아무래도 남자니까 경제력에 대한 고민이 있어서 돈을 모아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더 이상 결혼을 늦추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무리해서 결혼을 진행했는데, 막상 하고 나니 별것 아니더라고요. 결혼하고 나서 행복해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결혼을 적극 추천하고 있어요.
결혼 5년 차죠? 신혼 땐 가사 분담을 하다가 '기 싸움'을 한다던데 블랙과 마리 씨는 어땠나요?
마리 블랙님이 도맡았어요. 제가 물이 많이 닿으면 습진이 생기거든요. 어머니가 잘 낳아주셨죠.(웃음)
블랙 제가 설거지하고 빨래를 하긴 하지만 일부분이에요. 조금씩 쌓여 있는 게 눈에 띄면 하는 거죠. 마리는 한번 청소를 하면 완벽하게 해요. 사실 제가 아무리 깨끗하게 해도 마리 눈에 찰 것 같지 않아요.(웃음) 그저 청소할 때 수고를 덜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뿐이죠.
세상에 이런 부부가 있다는 게 놀라워요. 다툰 적은 있나요?
마리 없어요. 싸운 게 아니라 대화를 했죠.
블랙 저희 둘 다 화를 내는 편이 아니에요. 당연히 저희도 모든 순간이 행복한 건 아니에요. 어떤 때는 '이건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그럴 땐 대화를 해요. 나는 이렇게 생각하니까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길 원한다고 이야기하면 마리가 수긍해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연애 땐 지금과 달랐을 것 같아요.
블랙 마리와 저는 6살 차이가 나요. 그래서 연애 초반엔 제가 훈계를 많이 했어요. 연애 초기, 그러니까 한 4년 차 때까지 제가 잔소리를 엄청나게 많이 했어요. 가끔은 혼내기도 했어요. "이건 아니에요"라는 말을 많이 했었죠. 마리는 "오빠는 여자친구한테 잔소리를 많이 한다"고 했었고요. 그 시기를 거치면서 마리가 성숙해졌어요. 제가 잔소리해서가 아니라, 마리가 잘못된 것은 고치고 스스로 변화하려는 노력을 했기 때문이에요.
마리 제가 많은 것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어요. 저 멋있지 않나요?
블랙 맞아요. 마리는 굉장히 멋있는 사람이에요. 그래서인지 지금은 제가 마리에게 의지를 많이 해요.
마리 덕분에 '제이핑크'로 활동하게 됐어요.
제가 걸리시 댄스를 추는 걸 보고 마리가 "할 거면
진짜 여자처럼 제대로 해봐"라고 해서 여장을 하게 됐어요.
마리의 어떤 부분이 멋있어요?
블랙 좀 전에 한 이야기를 예로 들면, 보통 사람들은 "넌 내가 만들어서 멋있어졌어"라고 말한 것으로 받아들여요. 그런데 마리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요. 이미 멋있는 사람이니까요. 만약 멋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니야"라면서 받아들이지 않았겠죠. 그런 부분이 멋있어요. 마리는 수긍하고 인정할 줄 알아요. 사실 제가 고집이 센데, 인정할 건 인정하는 마리를 보고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고 배웠어요. 6살이나 어리지만 존중하고 존경한다고 이야기해요.
존댓말을 하는 것도 존중하는 방식 중 하나인가요?
블랙 사실 존댓말은 저희도 모르게 한 거예요. 존댓말을 하기로 약속한 게 아니라, 처음에 마리가 귀여우니까 "뭐 했어요?" "밥 먹었어요?"라면서 장난으로 시작했어요. 그게 습관이 됐어요.
마리 블랙님이 요즘엔 "식사하셨습니까?"라면서 극존칭을 써요. 장난으로 하곤 하는데 재미있어요. 장난이 심할 땐 "야" "너" 등의 말을 쓰긴 하는데 평소엔 하지 않아요.
존댓말이 부부 생활을 잘하는 노하우일까요?
블랙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무엇보다 남자, 여자의 특성이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해요. 여자는 공통적으로 사소한 것을 좋아해요. 주변에서 "여자는 왜 그래?" "남자는 왜 그래?"라고 하는 걸 들으면 진짜 몰라서 그러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남자와 여자의 특성이 다르니까 다르게 행동하는 거잖아요. 이건 이해할 게 아니라 인정할 부분이에요. 서로 특성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면 싸울 일이 반으로 줄어요.
마리의 특성이라고 인정한 것이 있나요?
블랙 마리가 화장품을 좋아해서 제이핑크할 때 사용해보라면서 추천해주곤 했어요. 마리의 관심사니까 저도 관심을 가졌는데 그러다 보니 화장품이 좋아졌고 이젠 함께 쇼핑을 하고 정보를 공유해요. "네일아트를 할 때 글리터를 해봐라. 예쁘더라" 하면서요. 서로 관심 분야가 같으니까 이야기할 것도 많아요.
마리 제이핑크를 하면서 공감대가 많이 생겼어요. 블랙님은 제가 왜 화장품이 있는데 또 사는지 알아요. "왜 또 사냐?"라고 할 법도 한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화장품을 사고 싶으면 사라고 해요. 여자가 좋아하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거죠.
마리는 블랙의 어떤 것을 인정했나요?
블랙 제가 게임을 좋아하고 낚시를 좋아해요. 친구 만나서 술 마시는 것도 좋아하고요. 과거에 연애를 했던 분들은 모두 저를 인정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마리는 달랐어요. "오빠가 좋아하니까 이해해볼게"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참고 이해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됐죠.
마리 사실 블랙님을 많이 사랑해서 이해하고 싶었어요. 물론 그런 모습들이 밉기도 했죠. 그런데 밉고 화나는 게 아니라, '왜 이해를 하지 못할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이해가 됐고 받아들여졌어요. 저는 누군가를 이해하려면 제대로 마음먹고 해야 되는 것 같아요. 어설프게 이해하려고 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겨요. 이해할 자신이 없으면 정면 돌파해야죠. 싸워서 불만을 해소할 수도 있고 대화를 하면서 서로 양보할 수도 있으니까요.
결국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쌓는 데는 대화가 중요한 것 같아요.
마리 대화할 때 상대의 말을 끊지 않는 게 중요해요. 저희 부부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고, 다른 한 사람이 이야기를 시작해요. 듣기를 정성스럽게 하는 시간이 굉장히 중요해요.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차분하게 대화할 수 있죠.
블랙 마리는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하면 온 마음을 다해서 들어요. 그래서 처음엔 '나보다 어린 동생이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듣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또 내 말이 맞으면 빠르게 인정해요. 마리의 그런 태도가 저희 부부 관계를 형성하는 데 일조했어요.
블랙과 마리는 직업이 같아요. 촬영 중간중간에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마리 같은 직업군의 사람과 부부로 산다는 것, 꽤 괜찮아요. 교류할 수 있는 게 많으니까요. 제가 힘든 부분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안다는 것도 좋고요.
블랙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 좋아요. 만약 남편이 회사원이었다면, 제가 공연을 하고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 이야기해도 공감하지 못했을 거예요. 저희는 같은 분야에 종사하고 있으니 서로 공감할 수 있어요. 이게 큰 즐거움이랍니다.
서로 응원하고 조언을 하기도 하죠?
블랙 마리 덕분에 제이핑크로 활동하게 됐어요. 제가 걸리시 댄스를 추는 걸 보고 마리가 "할 거면 진짜 여자처럼 제대로 해봐"라고 해서 여장을 하게 됐어요. 그 말을 듣는데 부끄럽더군요. 사실 대학교 장기자랑에 나가는 것도 아니고 여장을 한다는 게 웃기잖아요. 그래서 제가 하는 일을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았어요. 마리의 이야기를 들은 후 진지하게 메이크업을 하고 의상을 찾았어요.
마리 저는 블랙님이 춤추는 것을 보고 제대로 하면 멋있겠다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여장을 한다고 웃길 것 같다는 생각은 한 적 없었어요. 어떤 느낌으로 섹시하게 춤을 추면 모두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서 적극적으로 추천했죠.
블랙 마리 말을 듣지 않았으면 다른 인생을 살고 있겠죠? 마리의 말을 들으면서 제 인생이 바뀌었어요. 그래서 이젠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꼭 마리에게 의견을 물어요.
직업도, 가정생활도 모든 것이 완벽한 두 사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마리 지금보다 더 유명해질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멋진 작업을 많이 하고요.
블랙 건강하게 늙고 싶어요. 무엇보다 마리가 건강하길 원해요. 건강하게 늙어서 80~90살에도 춤을 추고 싶어요. 덤으로 유명해지면 좋고요.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후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단어 하나까지도 상대를 배려하며 선택하는 블랙과 마리, 그들이 이상적인 부부로 평가받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