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을 하기 위해 마트로 들어선다. 지하철 개찰구와 비슷하게 생긴 입구에 스마트폰의 QR코드를 스캔한 후 매장으로 입장한다. 매장 곳곳에 구비된 에코백에 필요한 물품을 집어넣는다. 부피가 큰 생필품은 에코백에, 작은 사이즈의 껌은 핸드백에 넣었다. 주변 사람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필요한 물품을 전부 챙겨 그대로 매장 밖으로 나온다. 계산을 위해 신용카드나 마일리지 카드를 꺼낼 필요도 없고 줄을 설 필요도 없다. 매장 밖으로 나와 조금 걷다 보면 곧 방금 전에 산 물품들의 영수증이 스마트폰으로 전송된다. 에코백에 넣은 물품과 핸드백에 넣은 껌까지 영수증 내역에 전부 찍혀 있다. 결제는 스마트폰 앱과 연동돼 있는 신용카드를 통해 진행됐다. 공상 과학 영화의 한 장면이냐고? 올해 1월 22일(현지 시간) 아마존이 미국 시애틀 본사 1층에 오픈한 인공지능 매장 ‘아마존 고(Amazon Go)’에 적용된 ‘저스트 워크 아웃(Just Walk Out)’ 기술이 사용되는 모습이다.
쇼핑의 미래, 아마존 고
저스트 워크 아웃 기술은 매장 천장에 부착된 인공지능 센서가 이용객의 이동 경로를 추적해 구매 제품을 인식하는 최첨단 기술로 컴퓨터 비전, 딥 러닝 알고리즘, 센서 퓨전(Sensor Fusion) 등 자율주행 차량에 활용되는 것과 유사한 기술이다. 매장 천장에 부착된 센서가 고객의 모습을 감지해 자동 결제가 가능하게 한 것이다. 아마존 고는 오픈 이후 유통의 미래로 평가받으며 현재 시애틀에만 3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고 지난 9월 8일(현지 시간) 뉴욕으로 진출할 예정이라고 공식 보도했다.
물론 아직 보완해야 할 점은 많다. 천장의 센서가 고객의 동작을 제대로 판독하기 위해서는 매장 내 인원이 50~60명 정도여야 하고 제품의 교환이나 환불은 매장이 아닌 앱을 통해 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아마존 고는 아직 미래 기술을 체험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경험삼아 찾는 단계이지만 아마존은 최근 뉴욕 증시에서 시가 총액 1조 달러를 돌파했을 정도로 그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중국도 이에 뒤지지 않게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중국 알리바바에서 운영하는 신선식품 매장 ‘허마셴셩’에서는 쇼핑 물품을 가방에 넣을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 앱을 다운로드해 제품의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알리페이(중국 온라인 결제 서비스)’로 결제된 제품들이 실시간으로 포장돼 3km 이내의 장소라면 30분 이내로 배달된다. 매장 안에서 쇼핑, 물류, 배송이 동시에 수행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국내 유통업계에 부는 변화
아이티 강국이란 별명에 걸맞게 국내 기업들도 쇼핑, 특히 식품·생필품 부문에서 많은 시도를 하고 있다. 이마트의 경우 지난 8월 29일부터 매장에서 쇼핑을 도와주는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를 성수점에서 시범 운영했다. 매장 안에서 고객이 서성이고 있으면 페퍼가 다가와 두 팔을 펼치며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묻는다. 페퍼는 일본의 소프트뱅크 로보틱스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한국 버전으로 자율주행과 한국어 대화 기능이 추가됐다. 페퍼는 가슴에 달린 태블릿 PC를 통해 추천 상품을 소개하고 고객이 찾는 제품이 있는 곳까지 안내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마트는 지난 4월 트레이더스 하남점에서 3일 동안 자율주행 카트 ‘일라이(eli)’를 공개했다. 사람을 인식하는 센서와 음성 인식 기능, 상품 무게 인식 센서가 달린 자율주행 카트 등이 달려 있어 고객과 일정 거리를 두고 따라다니며 상품이 있는 자리로 고객을 안내하는 기능이 탑재돼 있다. 쇼핑을 마치면 카트를 통해 즉시 결제도 가능해 고객이 계산대에서 줄 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고 카트 반납 장소로 스스로 찾아가기 때문에 반납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다.
롯데백화점은 인공지능 채팅봇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카카오톡, 스마트 스피커 등을 통해 음성이나 문자로 고객과 소통할 수 있는 인공지능 채팅봇 ‘로사(LO.S.A)’를 발표한 롯데백화점은 올 9월부터 ‘KT 기가지니’를 통해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지난 6월부터 97만여 명의 회원이 등록한 롯데백화점 공식 카카오톡 계정을 통해 입점 브랜드, 영업시간, 휴무일 등 롯데백화점 35개 점포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전달 중인 로사의 서비스 범위가 넓어지는 것이다. 로사는 딥 러닝(심층 학습) 기술로 고객과 대화를 나누며 자체적으로 데이터를 쌓아 분석해 고객의 구매·행동·관심·선호 정보 등을 토대로 맞춤형 제품을 추천한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로사의 기능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하고 채널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편의점업계에서도 인공지능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세븐일레븐은 고객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다양한 결제 서비스 기능을 갖춘 인공지능 결제 로봇 ‘브니(VENY)’를 공개했다. 북극곰을 형상화해 친근한 이미지를 지닌 브니는 안면 인식, 이미지·모션 센싱, 스마트 결제 솔루션 등 7가지 핵심 기술을 접목해 서비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여기에 바이오 페이의 일종인 4세대 결제 서비스 핸드페이(Hand-pay)를 메인으로 신용카드, 교통카드, 엘페이(L.Pay)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한 셀프 결제가 가능케 했다.
국내 기업 중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은 바로 현대백화점이다. 현대백화점은 미래형 ‘유통매장’ 연구를 위해 아마존과 손을 잡았다. 현대백화점은 이를 위해 ‘아마존웹서비스’와 ‘미래형 유통매장 구현을 위한 전략적 협력 협약(SCA)’을 체결했다. 아마존웹서비스는 아마존의 자회사로 클라우드(가상 저장 공간) 서비스 분야의 세계 1위 기업이다. 현대백화점은 오는 2020년 하반기 대형 복합 시설 ‘파크원(Parc1)’에 들어설 현대백화점 여의도점에 아마존의 첨단 기술을 적용해 고객에게 새로운 쇼핑 경험을 제공할 계획이다. 현대백화점 여의도점의 슈퍼마켓엔 아마존 고의 저스트 워크 아웃 기술을 활용한 무인 슈퍼마켓이 들어서고 드론을 활용한 야외 매장 내 식음료 배달, 아마존의 인공지능을 활용한 무인 안내 시스템 등을 활용할 전망이다.
유통업계에서 인공지능 로봇의 상용화를 예고하면서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기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이에 대해 허나래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한 인터뷰에서 “현 단계에서는 계산을 위해 줄을 선다는 개념을 타파하기 위한 실험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분석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매장 구성부터 서비스까지 백화점과 아울렛 등 오프라인 매장 운영 전반에 첨단 기술을 접목해 ‘미래형 유통매장 모델’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아마존과 협약을 맺었다”라며 “2020년 하반기 서울 여의도 파크원 부지에 오픈하는 현대백화점 여의도점에서는 단순히 백화점에서 쇼핑을 즐기는 것을 넘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인공지능 로봇이 제공하는 것은 편의이지 서비스가 아니라는 것이 업계의 의견이다.
4차 산업혁명은 유통업계에도 찾아왔다. 인공지능 서비스는 침체된 오프라인 유통업계에 새로운 시발점이 되고 고객의 일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많은 기업이 쇼핑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지만 아직은 상용화되기까지 오랜 시간과 기술 개발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인공지능에게 일자리를 빼앗기는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기술로 인해 일어나는 변화를 관망하는 것도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즐거움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