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아 대표의 집안은 그야말로 연극 명가다. 그녀는 '한국 연극의 아버지'라 불리는 극작가 유치진의 손녀이며, 1970년대 미국 뉴욕에서 주목받은 연출가이자 한국 실험연극의 개척자인 연출가 유덕형(현 서울예대 총장)의 딸이다. 할아버지 유치진과 아버지 유덕형뿐 아니라 그녀의 할머니이자 유치진의 부인인 심재순 여사 역시 <조선일보> 신춘문예(1935년)에 희곡이 당선됐고, 고모인 유인형은 미국 트리니티 대학에서 수학하고 달라스 연극센터와 유럽 무대에서 활동했다.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원장과 서울예대 학장을 역임한 고모부 안민수도 한국 실험극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 남편 빌리 클락도 배우이자 연출가이니 그녀는 그야말로 연극 명가의 일원이다. 공연예술의 DNA를 3대째 이어오고 있는 그녀. 그녀와 아버지의 특별한 이야기를 전화와 이메일 인터뷰로 들어보았다.
먼저 토니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라마마 E.T.C.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주세요.
라마마 E.T.C.(La MaMa Experimental Theatre Club, 이하 '라마마')는 미국 현대 연극사에 큰 자취를 남긴 연출가 엘런 스튜어트가 1961년에 설립했어요. 이름에 'Experimental Theatre Club'이라고 되어 있는 것처럼, '실험적 예술 창작'을 추구합니다. 예술가들이 전에는 시도해보지 못했던 작업을 실험할 수 있죠. '극장'으로서 연극뿐 아니라 디지털 아트, 영화, 전시 등 장르 경계를 허물고 융합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또 라마마는 '클럽'으로서 전 세계 예술가들이 모이는 공간입니다. 76개국의 예술가와 함께 5,000편 이상의 실험적 작품을 제작했어요. 수많은 배우와 연출가가 라마마를 거쳐 갔는데 영화 <대부>의 알파치노, <택시 드라이버>의 로버트 드 니로, <언페이스풀>의 다이안 레인 등의 배우와 연출가 줄리 테이머(<라이언 킹>), 피터 브룩(로열 오페라 하우스 예술감독), 안드레이 서번(<트로이의 연인들>), 톰 호건(<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공연 그룹 블루맨 등이 라마마 출신입니다.
라마마는 한국의 서울예대와도 깊은 인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라마마 설립자인 엘런 스튜어트와 유덕형 총장의 인연으로 1970년대부터 50년 가까이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어요. 라마마와 서울예대가 공동 창작 공연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서울예대 학생들이 이탈리아 스폴레토의 '라마마 움브리아'에서 머물며 현장실습을 하고 '2018 유럽 젊은 연극제'에 나가 특별상을 받았죠. 뉴욕 라마마도 매년 서울예대의 사진, 디자인 등을 전공하는 학생 20여 명을 초청해 현장실습을 돕고 있어요. 인터넷 화상 공연 시스템(컬처 허브)을 개발해 뉴욕 라마마와 서울예대 예술공학센터의 두 무대에서 서로 떨어져 공연해도 관객은 하나의 무대 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끼는 실험적인 공연도 많이 해왔습니다.
연극계의 대선배인 아버지, 유덕형 총장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아버지는 미국 유학 시절 달라스 연극센터에서 1966년 <라생문>을 연출해 당시 미국 언론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습니다. 1971년에는 필리핀에서 열린 제3세계 연극제에 <알라망>을 출품해 40여 편의 작품 가운데 베스트로 선정됐어요. 이 작품을 본 엘런 스튜어트가 아버지에게 협업을 제안해 두 분의 인연이 시작됐다고 해요. 아버지가 1970년대에 미국 라마마 극장에서 연출한 작품을 영상으로 보고 있자면, 화질이 좋지 않음에도 아버지의 전위적인 시도와 생각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도 아버지와 연극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전화기를 손에서 내려놓기 싫을 정도입니다. 아버지는 연극 무대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봄이 올 때>라는 작품을 보면 무대 위 두 명의 배우가 10~15분의 긴 시간을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아요. 하지만 관객은 마치 영원처럼 느껴지는 이 긴 시간의 침묵을 보면서 두 사람 간의 관계의 깊이를 이해하게 됩니다. 시간의 연출이 무엇인지 그것이 무대의 공기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알게 해주었어요.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 위에 아름다움을 덧붙이는 것이 제 작업의 특징입니다. 예술은 아름다움이기 때문이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에 대한 열정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늘 행복해요.
아버지의 지도와 관련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 연극에서 작은 배역을 맡은 적이 있어요. 아버지는 전화 통화로, 내가 단지 몇 줄의 대사로 연기할 이 작은 배역의 캐릭터를 진정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 하셨죠. 몇 줄의 대사로도 그 장면의 중심이 될 수 있고, 관객을 휘어잡는 게 가능하다고 하셨어요. 그때는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그 캐릭터를 정말 열심히 연습했어요. 마침내 진정으로 즐기면서 연기할 수 있게 되었고 연극 평론가로부터 뛰어난 연기라는 평가를 받았어요. 작은 역할이었지만, 역시 아버지가 옳았던 거죠.
유 대표는 처음에 어떻게 연극을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늘 연극 리허설, 무대 뒤, 연극과 관련된 일들 옆에 있었어요. 아주 어렸을 때는 극장 바로 아래 살았죠. 서울에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 연극 오디션을 보던 친구를 기다릴 때였어요. 귀가가 늦을 거라고 아버지한테 전화를 했는데, 아버지가 왜 너는 오디션을 보지 않느냐고 물으셨고, 단지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오디션을 봐서 배역을 맡게 됐죠. 무대에 서는 것을 사랑하게 되었지만 직업이 될 거라고는 믿지 않았어요. 예술의 길이 눈앞에 있었고, 내 영혼이 그 방향으로 끌렸어요.
남편 빌리 클락도 배우이자 연출가로 활동 중이죠?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게 어떤 면에서는 도움이 되지만 힘들 때도 있죠. 공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말 여러 시간에 걸쳐 계속되는 리허설이 필요한데 작품이 우리의 감성과 육체, 두뇌 등 모든 것을 감싸고 있어서 작품과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요. 남편과 저 모두 가정을 보금자리로 삼아 안정감을 느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우리는 가정을 매우 소중하게 여깁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주부로서의 대표님은 어떤 모습인가요?
제 생활은 일과 가정이라는 공을 공중으로 던지는 곡예(저글링) 같아요. 때로 힘들고 어렵지만 이 도전을 즐기는 것 같아요. 가족과의 저녁 시간을 소중하게 여겨요. 이 시간이 저의 관점과 시야를 새롭게 한다고 믿어요. 아홉 살 된 딸은 세계를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주죠. 딸이 태어나면서 처음으로 저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딸을 갖게 된 후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아이들이 사는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딸을 통해 이 사회의 시민으로서, 예술가로서 제 역할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요즘도 아버지와 자주 통화하나요?
물론이죠. 예전이나 지금이나 전화로 아버지와 토론을 많이 합니다. 공연 작품 제작과 예술 작품, 예술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서 말이죠. 제 예술 세계에 대한 인식과 감수성이 수많은 아버지와의 전화 통화로 인해 형성됐다고 믿어요. 아버지와 나누는 대화가 하나의 학교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항상 끊임없이 예술과 세계에 대해 탐구합니다. 저는 정말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유미아 대표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브라운대, 콤롬비아대 대학원 예술학 석사(MFA)를 마친 뒤 배우와 연출가로 활동했다. 영국 명문 극단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피터 홀이 연출한 <탄탈로스>에서 여주인공을 맡아 아시아인으로는 드물게 영국 왕립극장 무대에 섰다.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매년 열리는 '셰익스피어 연극제'에 미국 최고 배우들과 함께 출연했고, 안드레이 서반 연출의 <심벌린> 등 뉴욕에서 공연된 연극들에서 주요 배역을 맡았다. 일본의 대표적인 감독 마사히로 시노다의 영화 <스파이 솔지>에 주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현재 라마마 극장의 대표(예술감독)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