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한옥마을에서 창덕궁 방향 샛길 한편에 위치한 협동조합 ‘누군가의 집’은 소담한 옛 멋을 간직하고 있다. 지난 7월 5일에서 7일까지 이곳에서 가죽 공예가 이소희의 첫 번째 전시가 열렸다. 전시 첫날 그를 만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특유의 밝은 에너지를 내뿜으며 그녀가 반겨주었다.
“외교관이었던 남편을 따라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생활했어요. 3년 전 남편이 은퇴해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때 지인의 가방 브랜드 일을 도와주며 가죽을 처음 접하게 됐어요.”
가죽 공예 덕에 처음으로 표현하는 기쁨을 알게 됐다는 이소희가 주로 작업하는 대상은 꽃이다.
“어머니가 조경 사업을 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꽃과 함께하는 환경에서 자랐죠. 그래서인지 가죽이란 소재를 접하고 무언가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꽃이었어요.”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이소희는 영어 외에도 중국어,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다. 중국어는 최고 레벨의 자격증을 딴 적도 있다고.
“한번 무엇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에요. 제가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소위 ‘피나는 노력’을 했다고 할 수 있죠. 남편을 따라 폴란드, 미국, 중국, 일본 등지에서 생활할 때 현지 영화나 드라마를 틀어놓고 모르는 단어가 들릴 때면 사전을 뒤졌어요. 그렇게 수십 번씩 반복했죠. 그랬더니 중국어의 경우 독학으로 최고 레벨의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어요.”
그녀의 독한 성격은 가죽 공예를 할 때도 그대로 드러났다. 전시 준비를 하면서 만들어두었던 작품보다 새로운 작품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이소희는 한 달 동안 거의 밤을 지새우며 작업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무척 행복했다고. 전시 당일, 3일 밤을 꼬박 새웠다는 이소희의 얼굴은 피곤에 지친 기색 하나 없이 그저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의로 가득했다.
“가죽 공예도 정식으로 배우진 않았어요. 그저 제 열정과 노력이 선생님이었죠. 독학으로 치열하게 연구했어요. 어제의 실력과 오늘의 실력이 다르다는 걸 몸소 느끼며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제 인생이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요.”
이소희의 원동력은 바로 SNS로 소통하는 친구들이다.
“처음엔 주로 지인들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작업했어요. SNS에 올린 작품에 응원의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에게서 큰 힘을 얻어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었죠. 그분들의 댓글 하나하나가 채찍과 당근이 되기도 해요. 그저 혼자 작업만 했다면 이 정도로 못 했을 거예요.”
이소희는 자신의 작품이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전시를 준비하는데 귀여운 모자가 함께 왔어요. 아들이 쌈짓돈을 꺼내 엄마에게 선물을 사주더라고요. 마음이 정말 포근해졌어요. 제 전시 소식을 듣고 지방에서 오신다는 SNS 친구들도 있는데, 그분들이 오셔서 빈손으로 돌아가시면 아쉬울 것 같아서 가볍게 선물로 줄 수 있는 작품 수를 늘렸죠.”
그녀의 손엔 여기저기 염료가 묻어 있었다.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했다.
“작품에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바로 색이에요. 작업의 첫 단계도 바로 가죽에 색을 입히는 거죠. 덕분에 제 손엔 항상 염료가 묻어 있어요. 그리고 꽃을 주제로 작업하지만 사실 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바로 잎사귀예요. 옆에서 받쳐주는 잎사귀로 인해 꽃의 아름다움이 완성되는 거니까요.”
작품 하나를 만드는 데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한 달까지 걸린다는 이소희는 자신의 작품이 평생 숨 쉬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초기 작품을 구매한 고객을 만나면 작품을 새롭게 리폼해주기도 한다고.
“제가 성숙한 만큼 제 작품도 성숙해지길 바라요.”
그녀는 자신이 재능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말한다. 단지 하고자 하는 마음이 노력으로 이어진 것뿐이라고. 열정이라는 가장 큰 재능을 지닌 이소희는 현재를 만끽하는 중이다.
“남편이 은퇴해서 지금은 제 조수 역할을 하고 있어요. 결혼 후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모든 걸 바쳤는데, 이제 아이들도 다 독립해 지금은 온전히 저를 위해 살고 있어요. 정말 신이 나요.”
이소희는 최근 ‘2018 인사미술대전’에 1차 합격해 7월 25일부터 31일까지 갤러리 라메르에서 작품을 전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