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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도 될까요

떡볶이는 3일 내내 먹어도 질리지 않고 소주는 즐기면서 먹을 줄 안다. 고성희는 그렇게 누구보다 솔직하고 자유롭게 ‘고성희’를 이야기했다.

On August 2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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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말미에 고성희는 말했다. “여태까지 힘들었는데, 이상하게 이번 인터뷰에서는 에너지를 받은 것 같아요.” 인터뷰에서 인터뷰이의 역할은 생각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인터뷰이의 성향에 따라 현장 분위기는 천차만별이다. tvN 드라마 <마더>에 이어 KBS2 드라마 <슈츠>를 막 끝내고 만난 그녀는 ‘예쁘게’ 솔직했다. 입꼬리를 예쁘게 말아 올리며 저녁 시간이 다가와서인지 배가 고프다고 했다.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고성희라는 사람에게 빠져들었다.

전작인 <마더>에서 딸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해 학대하고 버리기까지 하는 매정한 엄마 ‘자영’으로 출연했던 고성희는 <슈츠>에서 180도 변신을 감행했다. 아름답고 품위 있는 외모에 해박한 법 지식을 갖춘 패러리 걸(법적 전문 기술을 토대로 변호사 감독 아래 활동하는 사람) ‘김지나’ 역을 맡은 것. 이번엔 ‘케미’를 자랑하는 커플 연기도 보여줬다.

“<슈츠>가 종영했다니 실감 나지 않아요. 아직도 드라마가 현재진행형 같아요. 현장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는데, 다행히 캐릭터가 밝아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어요. 그동안 항상 고뇌하는 캐릭터만 맡아서 현장에서 어울리지 못했거든요. <마더>에서도 자영이는 ‘설악(손석구 분)’이나 ‘혜나(허율 분)’와 있다가 후반부엔 홀로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사람들과 함께 있단 사실이 굉장히 즐거웠어요.”

듣는 사람의 기분이 좋아지는 목소리다. 흥과 웃음이 밴 목소리로 고성희는 박형식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극 중 한 번 보고 이해하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천재적인 기억력으로 변호사 면허증 없이 변호사가 된 ‘고연우’ 역을 맡은 박형식은 고성희와 로맨스를 펼치는 상대이기도 했다.

“형식이는 굉장히 에너제틱해요. 다른 사람에게 힘을 주는 배우랄까요? 사실 ‘케미의 신’으로 알려진 형식이와 호흡을 맞추기 전엔 걱정이 앞섰어요. 그동안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배우와 호흡을 맞췄던데 제 이미지는 로맨스와 어울리지 않으니까요. 첫 키스신을 앞두고 “나보다 경험이 풍부하니 리드해줘”라고 했더니 “누나는 현실에서 많이 하지 않느냐”면서 장난스러운 답변을 하더군요. 동생이지만 이 친구가 그토록 많은 인기를 얻은 데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했죠.”

시즌8까지 이어진 동명의 인기 미국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슈츠>에서 고성희가 연기한 ‘지나’는 원작에서 매건 마클이 연기한 ‘레이첼’과 같은 인물이다. 매건 마클은 레이첼 역으로 남심을 사로잡았고, 영국의 해리 왕자와 결혼에 골인했다. 그만큼 레이첼이란 캐릭터가 매력적이었다. 고성희는 매건 마클의 연기를 참고했지만 ‘한국판 레이첼’이 더 매력적이라고 자신했다.

“작품에 들어갈 때 원작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매건 마클이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로 사랑받아선지 지나에 대한 기대가 높더군요. 하지만 대본을 읽고 머릿속에서 그 생각을 지웠어요. 레이첼이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이라면 지나는 통통 튀는 매력이 있었거든요. 그런 지나를 재치 있게 그리고 싶었어요.”

고성희는 드라마에 법률 용어가 많아 내용이 어려울 수 있기에 지나가 극을 환기시키는 역할이길 바랐단다. 시청자들이 지나가 나오길 기다리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대본을 보니 연기적으로 노력할 것이 없었다. 지나가 자신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지나는 제가 맡았던 역할 중에 ‘고성희’와 가장 비슷한 캐릭터예요. 대표님이 처음 대본을 주실 때 이 캐릭터는 “딱 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감독님은 대본을 많이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요구하시며 연기가 아닌 고성희 자체로 촬영장에 놀러 오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대본을 천천히 읽어 보니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감정에 솔직한 지나의 모습이 저와 닮았더군요. 까칠하고 술을 좋아하는 것까지 저와 비슷했어요. 그래서 <마더>가 끝나고 곧바로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죠. 그나마 다행인 건 종영을 2회 남기고 하차해 일주일의 시간을 벌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영이를 떨쳐내고 고성희로서 좋은 에너지를 지닌 채 현장에 복귀하는 데 시간을 쏟을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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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보면 쉬지 않고 일했지만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해도 될까요? 이젠 편안해졌어요. 배우라서 감추고 포장했던 것을 내려놨거든요. 사실 전 털털하고 빈틈이 많은 사람이에요. 이런 변화가 연기를 더 자유롭게 만들어줬어요.

밝고 명랑한 고성희 연기를 본 시청자들은 ‘고성희의 로코를 기다린다’는 반응이다. 그녀 역시 다음 작품에선 로맨틱 코미디에 더 집중하고 싶다며 하루빨리 좋은 작품을 만나게 기도해달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현재 어떤 장르의 작품이 차기작이 될지 모른단다. 소속사의 시나리오 팀을 거쳐 매니저와 대표의 검토 후 그녀의 손에 시나리오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소속사 대표를 무한 신뢰한다는 그녀는 <마더> 종영 후 곧바로 <슈츠>에 출연한 것도 대표의 제안이었다고 설명했다.

“대표님께서 제게 환기가 필요한 것 같다면서 제안하셨어요. 물론 제가 곧바로 작품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인지 섬세하게 살펴주셨어요. 대표님의 의견에 동의해 출연했는데,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현장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거든요. 작품 자체가 어렵지 않았고 모든 배우가 하나같이 밝고 에너지가 넘쳤어요. 감독님이나 스태프분들과 장난치다 보니 밤을 새워서 촬영해도 지치지 않았어요.”

그녀의 소속사(사람엔터테인먼트)엔 대표뿐만 아니라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함께하고 있다. 조진웅을 비롯해 이하늬, 윤계상, 변요한, 이제훈, 한예리 등 연기 고민을 나눌 선배가 상당하다. 선배들에게 연기 조언을 구할 법도 하지만 고성희는 혼자 고민하는 편이란다.

“일상적인 이야기나 근황을 나누긴 하지만 연기 이야기는 하지 않아요. 신인 때는 선생님을 찾아가서 리딩도 하고 이야기도 나눴는데 저한텐 그 방식이 맞지 않더군요.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해야 힘을 얻어요. 연기는 한 글자마다 어떤 감정으로, 어떤 톤으로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데 여러 조언을 듣다 보면 헷갈리더라고요.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어진달까요? 그래서 제 대본엔 메모가 많아요. 형광펜으로 줄을 긋고 일일이 설명을 쓰면서 대본을 공부해요.”

그러나 아무리 대본을 연구해도 캐릭터에 대한 불안감이 있기 마련이다. 고성희 역시 불안하지만 자신을 믿고 두려움을 떨치려고 한단다. 그런 태도가 그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신인 땐 저 자신을 의심했어요. 제가 부족한 데 비해 큰 기회를 빠르게 얻었다는 생각 때문에 확고하지 못했거든요. 욕심으로 똘똘 뭉쳤지만 욕심을 채울 것이 부족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 저 자신이 저의 캐릭터를 잘 만들었을 거라고 믿어요. 보통 드라마 리딩을 시작하고 4회쯤 촬영하면 캐릭터가 형성돼요. 만약 제가 틀렸다면 그 전에 감독님이 캐릭터를 수정하기 위해 디렉션을 주셨을 거예요. 그땐 저도 유연하게 캐릭터를 수정할 수 있는 시기고요. 4회 이후엔 배우의 몫이죠. 저는 스스로 의문을 품고 이에 맞는지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아가는 ‘고성희’의 방식을 믿어요.”

주관을 뚜렷하게 표현하는 고성희이지만 데뷔 초엔 여느 청춘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흔들렸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멀리 바라보자는 마음으로 연기를 했지만 쉽게 조급해졌다. 비슷한 때에 데뷔한 또래 배우들이 그녀보다 먼저 주목받는 것을 보며 부러워했고 그 생각이 자신을 갉아먹었다.

“20대 후반이 되니 제가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더>를 선택할 때 확고해졌죠. 제가 출연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걱정과 우려가 많았어요. 감독님마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자영이란 캐릭터를 맡기는 게 미안하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전 확신이 있었어요. 결과적으로 기존 이미지를 깰 수 있는 기회가 됐죠.”

<당신이 잠든 사이에> <마더> <슈츠>까지 쉴 틈 없이 달리는 고성희에게 브레이크가 필요해 보였다. 뜨거운 열기보다 은은한 열기가 오래가듯이 힘 조절 없이 달리다 보면 방전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미 고성희는 한차례 방전된 바 있다. 영화 <분노의 윤리학>(2013)으로 데뷔해 영화 <롤러코스터>(2013), 드라마 <미스코리아>(2013), <야경꾼 일지>(2014), <스파이>(2015), <아름다운 나의 신부)(2015)까지 2년 6개월 동안 쉬지 않고 연기하다 휴식기를 가졌는데 그것이 공백으로 이어진 것.

“당시 휴식이 필요해 쉬었는데 캐스팅됐던 작품이 무산되면서 공백기가 길어졌어요. 그러다 보니 고성희란 존재가 잊히더라고요. 공백이 길어지면서 죄송한 마음 때문에 부모님을 마주하는 게 힘들어서 1년 동안 친구가 있는 나라, 친척이 있는 나라로 옮겨 다니며 배낭여행을 했어요. 처음엔 모든 상황에 화가 났어요. 그래서 남 탓을 하고 내 탓도 하다 보니 1년 6개월이 지났더군요. 그제야 상황이 받아들여지고 저의 문제점이 보였어요. 감사하게 데뷔해 좋은 작품에서 좋은 역할을 맡았는데 피드백을 받지 못한 이유는 제가 부족했기 때문이에요. 되돌아보면 쉬지 않고 일했지만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부족함을 느끼고 위축됐고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이지 않았던 것같아요. 제가 철이 없기도 했고요. 나이는 어린데 솔직하고 거침없었으니 사람들이 저에 대한 선입견을 가졌던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해도 될까요? 이젠 자유로워졌어요. 배우라서 감추고 포장했던 것을 내려놨거든요. 사실 전 털털하고 빈틈이 많은 사람이에요. 이런 변화가 연기를 더 자유롭게 만들어줬어요. 그 시간을 이겨내지 않았다면 <마더>에 출연하지 않았을 거예요.”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 단단해질 때쯤 기회가 왔다. 지난 2016년 방영된 화제의 드라마 <질투의 화신> 카메오였다. 데뷔작 <미스코리아>의 서숙향 작가가 고성희를 불러들인 것. ‘이화신(조정석 분)’과 ‘고정원(고경표 분)’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친 여자 ‘홍수영’ 역이었는데 카메오지만 작품 흐름에 의미가 있는 역할이었다.

“1년 정도 쉬고 배우 인생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할 때였어요. 부모님이 1년만 더 기다려보자고 권유하셔서 기다리는데 기적처럼 <질투의 화신> 대본이 왔어요. 그것을 계기로 <당신이 잠든 사이에>에 출연했죠. 요즘 육체적으론 고되지만 정신이나 마음은 행복해요. 삶의 낙이 일로 인한 성취감에서 오거든요. 경험해서인지 이제 조금은 힘을 분배하는 법도 배웠어요. 정신과 마음을 온전히 소모하지 않으려고 하죠. 요즘엔 오히려 연기를 하면서 에너지를 받는 것 같달까요? 참 다행이에요.”

이토록 연기에 집중한 그녀이지만 예능 프로그램 출연도 고대하고 있다. 얼마 전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했던 그녀는 토크형 예능보다 관찰형 예능에 출연하고 싶단다. MBC <나 혼자 산다>나 SBS <미운 우리 새끼> 출연을 꿈꿔 부모님의 집에서 독립해볼까 하는 고민도 했다고.

“예능 출연은 재미있어요. 뭐랄까, 예능에서 모든 걸 쏟아내고 나면 힐링돼요. 방송에서 유일하게 ‘고성희’일 수 있는 순간이니까요. 그래서 시간이 주어진다면 예능에 고정 출연하고 싶어요. 또 하고 싶은 거요?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취득해 바닷속을 탐험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사실 촬영 끝나고 3일 동안 집에서 TV를 보면서 떡볶이만 먹었어요. 오늘은 축구를 보면서 술이나 한잔하려고요. 며칠 뒤 모든 일정이 끝나면 이탈리아로 떠날 거예요. 구글 맵에 갈 곳을 표시하고 배낭을 메고 돌아다니려고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미술관에 다니는 거예요. 아, 간간이 인스타그램으로 소식을 전할게요.”

먹는 것을 좋아한다며 스스로를 ‘맛성희’라 부르는 그녀는 이탈리아의 어느 레스토랑에서 어떤 음식을 먹고 있을까? 그리고 어떤 감성을 담아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까? 고성희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지은
사진제공
사람엔터테인먼트
2018년 08월호
2018년 08월호
에디터
김지은
사진제공
사람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