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까체' 사용, 두발과 복장 제한, 음주 강요, 모바일 메신저 관련 제재, 얼차려, 성희롱…. 언뜻 군대 내 서열 문화로 보이는 이것은 사실 대학교 내 군기잡기, 일명 '똥군기' 유형이다. 지난 3월 알바천국이 전국 20대 대학생 회원 1,02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학생 군기 문화'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똥군기' 유형은 '인사 강요'(34%)였다. 그 뒤로 '음주 강요'(18.4%), '화장과 헤어스타일 등 복장 제한 강요'(10.7%), '메신저 이용과 관련한 제재'(10.4%) 등이 뒤따랐다.
지난 3월 페이스북 페이지 '홍익대학교 대신 전해드립니다'에는 홍익대 응원단 '아사달'의 잘못된 선후배 관행을 폭로하는 글이 올라왔다. 응원단의 17학번 회원들이 올린 글에는 "선배들의 지시는 무조건 따라야 하고 이의를 제기하면 전체 학생이 집합해 기합을 받아야 했다"고 적혀 있다. 문제는 단순히 군기를 잡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는 것. 이들은 까맣게 멍이 든 무릎 사진을 공개했다. 연습 중 무릎 보호대를 차지 못하게 해 무릎을 바닥에 찧어 멍이 든 것이다. 또한 '부모님뻘'인 까마득한 85학번 선배를 언니, 오빠라 부르도록 강요하거나 "선배에게 아양, 앙탈 좀 부려라"라는 등 인격 모독적인 강요와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20대 초반인 이들 사이의 상명하복 체계는 군대의 서열 문화보다 더 뿌리 깊었다. 이들을 일컬어 '젊은 꼰대', 줄임말로 '젊꼰'이라고 부른다.
'꼰대'는 사전적 의미로 '늙은이'를 가리키거나 학생들이 '선생님'을 이르는 은어다. 흔히 영남 지방에서 번데기를 뜻하는 '꼰데기'나 프랑스의 백작을 뜻하는 '콩테'에서 비롯됐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엔 사전적 의미에서 벗어나 '조직 내 권위를 이용해 자기주장을 밀어붙이는 사람이나, 자기 경험을 일반화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낡은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사람'을 뜻한다.
너도 나만큼 당해 봐
2015년 인터넷 독립 언론사 <뉴스타파>의 칼럼에는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 남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 이런 걸 속된 말로 '꼰대질'이라고 한다. 그렇게 보면 꼰대는 꼭 나이가 많아야 하는 건 아니다. 정치 성향과 이념 성향이 특정한 쪽에만 꼰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하루하루 버텨내기 어려운 20대들에게 선배가 돼줄 자신이 없으면 꼰대질은 하지 않는 게, 현재 20대가 겪는 불안감 가득한 세상을 만든 선배 세대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다"라는 글이 실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꼰대질'은 부모 세대가 자식 세대에게 훈수를 두는 것으로 인식됐다. 젊은 세대에게 자신의 성공을 보고 배우라는 유명 정치인의 말이나 '아프니까 청춘이다' 식의 설교가 꼰대질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최근 뉴스를 보면 20대가 더 이상 꼰대질의 피해자가 아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집단에서 꼰대질을 하는 주체가 됐다.
20대 꼰대, 일명 '젊은 꼰대'는 기성세대 꼰대와는 결이 다르다. 기성세대가 "왕년에~" "나 젊은 시절엔~"처럼 자신의 젊은 시절 경험과 노력을 마치 성공 신화 스토리인 양 말하며 젊은 세대를 가르치려는 것과 달리, 젊은 꼰대의 꼰대질은 "나만 당할 수는 없지. 너도 한번 당해봐"와 같은 보상 심리에서 비롯되는 경향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대학 내 꼰대 문화의 원인이 한국 사회 특유의 위계질서와 서열 중심의 권위적인 조직 분위기에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한국 사회 기저에 흐르는 군대 문화 탓에 꼰대 문화가 더 심각해졌다는 의견도 있다. '글 쓰는 판사'로 알려진 문유석 작가는 자신의 저서에서 "가정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군대를 모델로 조직돼 있다. 이런 집단주의 문화에서 자연스럽게 상하 관계를 중시하는 서열 문화가 생겼고 '꼰대' '갑질' 같은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직장 내 젊은 꼰대 주의보
청년 세대의 경제적 불안, 사회적 자존감 저하, 불확실한 미래 등도 젊은 꼰대가 늘어나는 이유이다. "나 젊은 시절엔 힘든 시대였지만 열심히 노력해 이런 성공을 이루었어. 그러니 너도 내 말대로 해"로 마무리되는 기성세대의 훈수와 달리 젊은 꼰대는 "내가 네 나이 땐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어. 그러니 너도 나만큼 당해 봐!"로 마무리된다. 경제 침체로 인한 취업난, 극심한 경쟁 등으로 쌓여온 분노가 잘못된 방향으로 분출되는 것이다. 젊은 꼰대는 대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 온라인상에서는 '직장 내 꼰대 보존의 법칙' '직장 내 젊은 꼰대 주의보' 등 직장 내 20~30대 꼰대에 대한 뉴스나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유행과 발달하는 기술은 2~3세의 나이 차이도 다른 문화를 형성하게 한다. 더 뛰어난 감각과 업무 능력을 장착하고 나타나는 신입 사원들은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선임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다가온다. 이들은 사내 경쟁에서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선임이라는 권력을 이용해 후임을 견제하는 것이다. 같은 세대이면서도 "내가 막내 때는~" "요즘 애들은~" 식의 설교를 하며 심하게는 복장을 단속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들은 이러한 꼰대질을 사회생활이라고 합리화한다. 조직 생활을 위해 어느 정도의 복종은 필수라는 논리다. 최근 논란이 된 간호사 사이의 '태움' 문화도 이러한 문화와 무관하다 할 수 없다.
최근 이러한 현상을 보면 꼰대를 단순히 서열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386 꼰대' 'X세대 꼰대' '젊은 꼰대' '어린 꼰대' 등 다양한 인터넷 은어가 사용되는 것은 꼰대가 어떤 세대에든 존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tvN <어쩌다 어른>이 '꼰대 방지 5계명'을 제시한 적이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말하지 말고 들어라, 답하지 말고 물어라.' '존경은 권리가 아니라 성취다.'
위 5계명을 들여다보면 꼰대 마인드란 편협한 시각과 공감 능력 부재에서 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꼰대 이야기가 뉴스 속 이야기이거나 온라인상에 퍼진 '도시 전설'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꼰대 질량 보존의 법칙'이란 말이 의미하는 바대로 누구든 꼰대이거나, 꼰대가 될지도 모른다.
꼰대 자가 진단법
□ "내가 누군지 알아?"
□ "나 때는 말이야…."
□ "어디서 감히!"
□ "네가 뭘 알아?"
□ "어떻게 나한테!"
□ "내가 그걸 왜?"
▲위 문장을 사용한 적이 있는지? 당신은 꼰대 육하원칙을 사용한 것이다.
□ "요즘 젊은 애들은(후배들은)…."
□ "내가 ~했을 때는…."
□ "그래도 옛날에 비하면 나아졌다."
□ "야!"
□ "젊을 때 그런 고생도 해봐야지."
▲위 문장을 사용한 적이 있는지? 당신은 트렌드모니터 엠브레인이 진행한 '꼰대들이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의 설문 조사 중 상위 5가지에 해당하는 행동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