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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공포증에 대하여

전화 통화 대신 문자 메시지·모바일 메신저·이메일로 소통하는 것을 선호하는 콜포비아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왜 전화를 두려워하게 됐을까?

On May 2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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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포비아(call phobia, 전화 통화를 기피하는 현상) 증상을 앓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사무실에서 전화하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됐다. 전화가 오면 조용히 사무실을 나가 계단에서 받거나 주변에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통화하다 이내 밖으로 나선다. 전화를 걸 경우엔 만반의 준비를 한다. 통화해야 할 사람들의 리스트를 작성해 용건을 정리한 후 전화를 든다. 비슷한 일은 집에서도 일어난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면 받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자주 봐서 익숙해진 택배 기사의 전화번호가 화면에 뜨지만 통화 대신 '택배는 집 앞에 둬주세요'라는 문자 메시지로 답변한다.

사소한 전화 통화조차 기피하는 콜포비아 증상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한 세대에게 주로 발생하는 현상으로, 전화보다 문자 메시지나 모바일 메신저, 이메일로 소통하는 것을 선호하고 때로는 전화 통화 자체를 두려워한다. 어쩔 수 없는 통화라면 질문할 내용을 생각해 시나리오를 미리 만든다.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고 이후 전화를 못 본 척하며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콜포비아 증상 중 하나다. 이런 행동을 보이는 이들은 대다수가 '급한 전화면 또 오겠지' 혹은 '문자 메시지나 메신저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데 갑자기 전화하면 큰일이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고.

우리 주변에서 콜포비아를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예는 배달 앱을 통한 주문이다. 통화가 번거로워서, 혹은 통화 중 상담원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할까봐 두려워 배달 앱으로 주문하는 것. 콜택시 앱 '카카오택시', 대리운전 앱 '버튼대리', 부동산 앱 '직방', 숙박 앱 '여기 어때' 등을 이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화벨이 무서운 직장인·청소년

직장인들에게 물어보면 콜포비아를 더욱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취업 전문 사이트 잡코리아가 2017년 상반기 신입사원 325명을 대상으로 '직장 생활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순간'에 대해 조사한 결과 '전화벨이 울릴 때'가 39.4%로 2위에 올랐다. 응답자는 대부분 '전화를 할 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또는 '메신저에 비해 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는 느낌이다'라는 이유를 들었다.

청소년의 경우 증상은 더욱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지난 2월 발표한 '2017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 조사(만 3세부터 69세의 스마트폰 이용자 29,712명 조사)'에 따르면 스마트폰에 과의존하는 경향을 보이는 청소년 중 98.3%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스마트폰 콘텐츠로 메신저를 꼽았다. 메신저가 휴대폰의 본래 목적인 음성 영상 통화를 앞지른 수치로, 통화보다 메신저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SK텔레콤에 따르면 지난 2010년 1인당 휴대폰 통화량은 200분이었지만 2012년 175분으로 감소했다.

전화가 두려워진 이유

그렇다면 왜 이런 두려움이 생겼을까? 그 시작엔 스마트폰이 있다. 지난 2009년 스마트폰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손가락만 움직이면 원하는 때에 대화를 할 수 있게 됐고 점차 직접 대면이 감소하면서 상호작용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미국의 온라인 상담치료센터 '조이어블(Joyable)'의 CEO 질 아이센슈타트는 한 인터뷰에서 "콜포비아는 상호작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발생한다. 메시지는 생각하면서 답장을 보낼 수 있는데 전화는 생각할 틈 없이 곧바로 반응을 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개인주의의 확산을 원인으로 보기도 한다. 한두 자녀를 둔 세대가 많다 보니 대인 관계 기술이 부족하고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개인주의가 통화를 하면서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

대안으로 떠오른 스피치 학원·이모티콘

콜포비아 현상이 증가하자 각종 산업에서 대안책이 등장했다. 스피치 학원에서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전화 잘하는 법, 전화 매너, 전화를 겁내지 않는 법을 가르친다. KT에서는 '통화매니저 오피스' 서비스를 내놨다. PC를 통해 유선전화를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로, 사무실에 전화가 걸려오는 순간 발신자 전화번호는 물론 그동안 통화 일자와 저장해놓은 간단한 메모까지 PC 창에 자동으로 띄워 상대방을 알고 통화할 수 있게 했다.

백 마디 말보다 이모티콘 하나면 소통이 가능한 시대다 보니 이모티콘 산업의 발달로 이어졌다. 이모티콘이 풍부한 감정 표현을 돕는 것은 물론 가벼운 농담 기능을 하면서 소통에 활기를 불어넣기 때문. 마치 '신상' 옷을 사듯이 신상 이모티콘을 찾고 구매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국내에서는 카카오와 라인으로 양분화된 모바일 메신저 기업들이 이모티콘를 캐릭터 산업과 결합하면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모바일 기기를 내놓는 애플과 삼성도 이모티콘 산업에 합류했다. 모바일에 사용자의 얼굴을 기반으로 이모티콘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탑재한 것. 애플은 지난해 아이폰X에서 이용자 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분석해 판다 등 12가지 캐릭터에 입힌 애니모지 기능을 선보였다. 삼성은 지난 3월 출시된 갤럭시 S9에 셀피를 찍고 성별을 고르면 몇 초 만에 자신을 닮은 3D 캐릭터가 완성되는 AR이모지 기능을 더했다. 캐릭터는 웃거나 얼굴을 찡그리는 등 실제 이용자 표정을 따라 다양한 동작을 연출한다.

꼭 극복해야 할까?

콜포비아를 극복할 수 있는 여러 대안이 나오는 가운데, 콜포비아 극복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굳이 전화를 하지 않아도 어려움을 겪을 일이 없어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것. 하지만 콜포비아는 단순히 전화 받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점점 대화가 줄고 사람 간의 거리가 멀어지는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우리 삶이 한층 편리해졌지만 인간이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면 기술의 노예로 전락할지 모른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대체할 순 없기 때문이다. 서로 감정을 교류하면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대화가 사라진다면 그 미래는 밝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바일 시대에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극복 TIP

1 목소리를 밝게 하라
전화에서 목소리는 상대를 파악하는 수단이다. 웃음기가 가득한 목소리가 통화 분위기를 한결 부드럽게 만든다.

2 메모하라
모자라는 기억력을 채워준다. 대화를 자연스럽게 하려고 메모하지 않는 척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메모를 하겠다고 직접적으로 요청을 하면 상대가 또박또박 말해 통화 내용을 이해하기 한결 수월해진다.

3 예스맨이 돼라
전화에서도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는 공식이 통한다. 같은 말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진다. 부정적인 답변보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건넨 뒤 의견을 조율하면 화기애애한 통화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 만든 또 다른 포비아

방전포비아 배터리가 없다는 뜻의 '방전'과 공포를 뜻하는 '포비아(Phobia)'가 합해진 말이다. 스마트폰 배터리가 방전된 상황을 두려워하는 증상이다. 역사, 공항 등 공공장소 곳곳의 콘센트에서 배터리를 충전하는 '배터리 거지'들이 겪는 증상이다.

노모포비아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감을 느끼는 증상으로 '노 모바일폰 포비아(No Mobilephone Phobia)'의 줄임말이다. 강제로 스마트폰 사용을 제지당했을 때 폭력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 증상에 해당한다.

스마트폰 포비아 스마트폰 사용을 두려워하는 증상으로 스마트폰과 포비아라는 말이 결합됐다. 주로 노년층이 겪는데 대다수가 요금 폭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스마트폰이 있어도 잘 쓰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지은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2018년 05월호
2018년 05월호
에디터
김지은
사진
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