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의 여행
집을 꾸미는 것은 자신에게 필요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패션 디자이너인 이경민 씨는 세계 여러 나라로 출장을 가 현지인들이 자신의 집을 숙소로 제공하는 에어비앤비에 머물며 다양한 스타일의 인테리어 취향을 쌓았다. 신혼집 계약이 끝나 두 번째 집으로 이사를 계획한 그녀는 리조트 같은 집을 만들어보기로 결심했다. 신축 아파트의 전셋집인 탓에 구조 변경과 비용 제약 등의 한계가 있었지만 20년 지기 친구인 비주얼 디렉터 조미연 실장과 상의하며 집의 공간 하나하나를 그녀만의 취향으로 채색해갔다. 그간 살고 싶은 공간의 모습을 다양하게 사진으로 담은 공간 레퍼런스를 조미연 실장에게 전달한 그녀는 공간에 자신의 취향과 개성이 잘 드러나길 바랐다. 조미연 실장은 가장 먼저 어두운 대리석과 감청색 코팅으로 마감된 벽과 몰딩 등을 화이트 시트지로 바꾸는 일부터 시작했다. “공간을 새하얀 도화지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집주인의 취향이 잘 드러나요. 취향과 개성은 집주인이 고른 가구와 소품, 그림에 있기 때문이죠.” 조미연 실장은 공간을 화이트 베이스로 만든 뒤 거실 한 벽을 모두 나무로 바꾸어 휴양지 특유의 내추럴 무드를 완성했다.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이경민 씨와 조미연 실장은 공간을 채울 가구와 식물을 함께 골랐다. 자연 속에 머무는 듯 편안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샹들리에 대신 우드 실링 팬을 설치해 실내에서도 자연 바람을 느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푹신한 소파와 내추럴한 우드 소재의 디자인 체어, 열대식물 등을 집 안 곳곳에 배치해 유니크하고 이국적인 공간을 완성했다. “공간이 달라지자 모든 것이 새로워졌어요. 집이 단순히 먹고 자는 거주 공간이 아닌, 휴식을 취하고 남편과 여가를 즐기는 또 다른 쉼터로 바뀌었거든요.” 집을 나올 때는 아쉽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여행을 떠나듯 설레고 반갑게 됐다는 김형남·이경민 부부. 집이 바뀌자 평범한 일상이 호텔에서의 여유로운 한때처럼 특별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빵 굽는 남편, 디자인하는 아내
김형남 씨는 빵을 굽는다. 제빵을 하는 그는 집에서도 새로운 메뉴 개발에 열심이라 이전 집에서 빵을 만들 때 나는 의외의 소음에 놀랐던 이경민 씨는 이 집을 처음 본 날 복층 공간에 남편의 작업실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일반 복층보다 층고가 높고, 공간도 넓어 남편의 작업실로 사용하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볕이 잘 들고 테라스와 큰 창이 있어 환기가 중요한 빵 작업실로 제격이다 싶었죠.” 남편의 제빵 작업실과 마주 보는 공간에는 아내 이경민 씨를 위한 서재를 마련했다. 패션을 전공하고 옷을 디자인하는 그녀는 늘 다양한 책과 작품집을 보며 디자인의 영감을 얻는데, 20대 때부터 하나둘 모아온 책이 이제는 한 벽을 가득 메울 만큼 늘어나 친구인 조미연 실장의 권유로 우드 선반을 제작해 수납 인테리어를 실현했다. 책뿐만 아니라 디자인 소품과 보드게임, 요리 등에 관심이 많은 부부는 복층 공간을 놀이와 오락,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집에서만큼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하고 싶었어요. 빵을 구우면 행복해지는 남편에게는 작업실을, 책을 보며 힐링하는 저에게는 서재라는 공간을 선물하고 싶었죠.” 요즘처럼 볕이 좋은 계절에는 테라스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부부. 뜨거운 햇볕을 가리는 시원한 그늘막과 자연 그대로의 바람, 소담한 꽃을 피운 나무들까지. 휴양지의 여유로움이 가득한 테라스는 김형남·이경민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플레이그라운드다. 주말에는 갓 구운 크루아상과 제철 과일을 더해 브런치를 먹거나 그릴에 비어 치킨이나 스테이크 등을 구워 작은 바비큐 파티를 열기도 한다. 인근에 사는 친구나 가족을 초대해 여느 파티 못지않은 재미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밤이 되면 까만 밤하늘과 별을 보며 열심히 보낸 하루의 일상을 마무리한다는 부부. 집을 옮긴 후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함께하는 모든 순간을 추억으로 공유하게 됐다 말하는 이 부부의 일상이 좀 더 특별해진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