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에서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로
나는 도스토옙스키가 4년간 유형 생활을 했던 시베리아 옴스크에 있는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을 방문하기 위해 2017년 추석날인 10월 4일 인천공항에서 출발했다. 왕복 경로는 인천공항-노보시비르스크-옴스크-노보시비르스크-인천공항이었다. 노보시비르스크까지 비행기로 가서 그곳에서 서쪽으로 600km가량 떨어져 있는 옴스크까지는 왕복 모두 기차를 타기로 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구간의 일부다. 이 구간에서는 러시아 국내 비행기를 타는 것이 빠르고 요금도 비싸지 않았지만, 기차를 타기로 한 것은 광활한 서시베리아의 평원을 보기 위해서였다. 노보시비르스크는 인구 140만 명으로 시베리아에서 가장 큰 도시다. 그래서 시베리아의 중심 도시로 불린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곳을 오가는 우리 국적기는 없고 항공편은 시베리아항공뿐이다. 당시 일주일에 두 편이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오전 10시 40분에 출발, 6시간 걸려 노보시비르스크에 도착했다. 노보시비르스크와 서울의 시차는 2시간이다. 당일 인천공항에서 출발이 다소 지연됐는데 원래 노보시비르스크 공항 도착 시간은 현지 시간 오후 2시 35분이었다. 기온은 서울보다 많이 낮았지만 날씨는 쾌청했다.
노보시비르스크 공항은 말끔히 새로 지어져 있었다. 나는 노보시비르스크가 처음이 아니었다. 과거 방송사에 있을 때인 2007년과 2008년에 볼쇼이, 마린스키와 더불어 러시아 3대 오페라발레단의 하나인 노보시비르스크 국립 오페라발레단의 방한 공연 교섭을 위해 두 차례 드나든 적이 있다. 그러므로 이번은 9년 만의 방문이며 세 번째 방문이다. 그사이에 공항 청사가 새 청사로 바뀌어 우중충했던 과거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공항 로비로 나왔을 때 나는 잠시 당황했다. 옴스크까지 나를 안내하기로 했던 동포 김준길 교수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참 두리번거리다가 온갖 걱정을 하며 로비 의자에 앉아서 창밖을 보니 김 교수가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제야 안도를 하였다. 김 교수는 시내에 호텔방을 하나 잡아놨으니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저녁 식사를 하고 기차를 타자고 했다. 옴스크로 가는 열차는 밤 11시에 출발한다. 호텔은 노보시비르스크 국립 오페라 발레 극장 앞 골목에 있었다. 매우 오래된 건물이었고 방도 작았으나 잠시 쉬는데 아무러면 어떤가 하고 생각했다. 방값은 1,600루블로 그 무렵 환율로 우리 돈 약 32,000원이다. 오후 6시쯤 호텔 옆 건물에 붙어 있는 기온 전광판을 보니 영상 5℃였다. 내가 갖고 있던 날씨 정보로 10월 초였던 그 무렵 노보시비르스크의 최고/최저 기온은 +6℃/-1℃였다. 옴스크의 최고/최저 기온은 +4℃/-4℃로 노보시비르스크보다 2~3℃가량 낮았다. 러시아는 추운 곳이어서인지 어느 도시에나 기온을 알려주는 전광판이 자주 눈에 띈다. 노보시비르스크도 비슷했다.
처음부터 차질 빚은 열차 내 식사 주문
첫날 저녁은 ‘뿌하우스’라는 노보시비르스크 시내의 오래된 인형극장 식당에서 내가 김 교수 가족(김 교수, 부인 나탈리아 이남순 씨, 딸 나니)을 초청해 함께했다. 식사를 천천히 한 후 나탈리아의 차를 타고 노보시비르스크 역으로 갔다. 개찰구가 열리는 시간까지 구내 커피숍 비슷한 곳에서 잠시 기다렸다. 30분 전에 개찰구가 열려 김 교수와 함께 열차에 올랐다.
노보시비르스크와 옴스크 사이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구간이다. 횡단열차는 1·2·3등 칸으로 구분되어 있다. 비행기로 치면 퍼스트 클래스·비즈니스 클래스·이코노믹 클래스 같은 차이다. 나는 횡단열차를 몇 번 탔지만, 이전까지는 모두 4인 1실 2등 칸(쿠페)을 탔었다. 이번에는 구간이 길지 않았으므로 2인 1실의 1등 칸(룩스)을 예약했다. 값은 같은 구간의 비행기 일반석 삯(2,825루블: 48달러)보다 배 이상 비쌌다. 편도 6,490루블(112달러)에 식사 1회를 포함하면 7,467루블(129달러)이다. 식사비가 17달러인 것이다.
룩스 객실로 막상 들어가 보니 2층 침대가 없을 뿐 실내 크기는 쿠페나 다름없었다. 특실이었으므로 식사를 배달시켜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이라고 할까. 티켓을 예매할 때 식사 주문 여부도 묻는다고 했다. 나는 횡단열차에서 식사를 배달시켜 먹어본 적이 없었으므로 메일로 식사 주문 여부를 물어온 김 교수에게 그것도 한번 해보자고 했다.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밤중에 기차를 타고 이튿날 아침 옴스크에 내리게 되면 식사를 어디서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도착 전에 아침 식사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기차를 타자마자 승무원이 와서 식사를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지금은 밤중이니 아침에 먹겠다고 했더니 그렇게는 안 된단다. 준비가 다 되어 있기 때문에 당장 가져다주겠다고 하고는 얼마 후 쟁반에 음식을 날라 왔다.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식사를 가져다주니 먹어야 할지 어떨지 얼떨떨한 상황이 되었다. 열차 티켓을 예매하면서 식사를 주문한 김 교수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식사는 빵과 햄, 치즈, 방울토마토, 오렌지 주스, 홍차 등으로 간소했다. 아침으로 먹으면 딱 좋을 분량이다. 우리는 음식을 조금 입에 댄 뒤 아침에 기차에서 내리기 전에 마저 먹기로 하고 침대에 누웠다. 옴스크까지는 8시간 반이 걸렸다. 노보시비르스크와 옴스크는 1시간 시차가 있었으므로 옴스크 시간은 10월 5일 아침 6시 반이다. 옴스크 역에 도착했을 때 밖은 아직 어두웠고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남은 음식은 물론 다 먹고 기차에서 내렸다.
오후 4시에 배달된 점심
도스토옙스키 박물관 방문 등 만 하루의 옴스크 일정을 마치고 다음 날인 6일 오전 9시 30분 노보시비르스크로 출발하는 열차에 올랐다. 출발 직후 승무원이 와서 점심을 몇 시에 먹겠느냐고 물었다. 김준길 교수가 낮 12시에 갖다달라고 했다.
그런데 12시가 한참 넘어도 식사가 오질 않았다. 김 교수가 식사 주문을 받은 여승무원에게 “12시가 넘었는데 점심이 왜 안 오느냐?”고 물었다. 여승무원은 “12시에 갖다달라고 하지 않았느냐?”라고 반문했다. 열차 안에서는 모스크바 시간이 기준이므로 모스크바 시간 12시로 알아들었다는 것이다. 모스크바 시간 낮 12시면 옴스크 시간으로는 오후 3시, 노보시비르스크 시간으로는 오후 4시다. 김 교수는 “옴스크에서 9시 반에 열차를 탔으므로 옴스크 시간으로 12시라고 말한 것이었다”면서 “아무튼 지금 좀 갖다줄 수 없겠느냐?”라고 말했다. 승무원은 “알겠다”고 하고 돌아갔으나 또 한참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 김 교수가 한두 차례 채근했지만, “곧 올 것”이라는 대답뿐이었다.
그사이에 기차가 정차하는 역 플랫폼에서 현지인들이 들고 와서 파는 ‘베레니키’라는 작은 물만두 같은 것을 100루블(약 2,000원)에 한 그릇 사서 둘이 같이 먹었다. 기다리던 점심은 결국 오후 4시에 왔다. 정확하게 노보시비르스크 시간에 맞춰 온 것이다. 여승무원의 태도는 처음부터 융통성이 없어 보였다. 답답한 인상이었다. 우리에게 “모스크바 시간 12시를 말하는 것이냐”라고 물어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열차 안에서는 어디서나 모스크바 시간이 기준인 것을 몰라 확인하지 못했던 우리 탓도 있었으므로 “허허” 웃으며 늦은 점심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 바람에 이날 저녁은 생략됐다. 하긴 열차 안에서 식사를 객실로 주문해 먹는 일은 러시아인들도 보통은 별로 경험할 기회가 없다. 러시아인들은 대부분 먹을 것을 미리 준비해 기차를 탄다. 나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여러 번 타보았지만, 대개는 가지고 간 음식을 주로 먹었고 몇 차례만 식당 칸을 이용했을 뿐이다. 열차에서 호텔처럼 식사를 객실로 주문해 편하고 느긋하게 한번 먹어보려 했던 나의 야심 찬 계획은 이처럼 갈 때, 올 때, 모두 차질을 빚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