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는 이시언의 연기보다 그의 예능이 더 익숙하다.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보여주는 격 없는 사투리, 4차원 돌발 행동들, 당돌한(?) 어리바리함 같은 친근한 매력이 그에게 인기를 안겨주었다. 불과 3년 만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대세가 됐다는 말이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딜레마를 겪고 있다. OCN 주말 드라마 <플레이어>를 마친 후 그 고민은 더 깊어졌다.
<플레이어>가 5.8%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유쾌하게 마무리됐어요.
시청률이 전부는 아니지만 고생을 인정받은 기분이라 좋아요. 지난여름 폭염 속에서 힘들었거든요. 액션신이 많았던 (송)승헌이 형은 아마 더 힘들었을 거예요. 그리고 제가 맡은 '천재 해커'라는 캐릭터도 어려웠어요. 해킹하는 걸 본 적도 없는 제가 해커를 연기하려니 막막하고 걱정스러웠는데 결과적으로 잘 마무리한 것 같아요.
연기하기 어려운 캐릭터인데도 <플레이어>를 선택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겠죠?
주연배우가 송승헌이고, 내가 주인공이고, 하는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잘될 것 같다는 느낌보다 '어, 이 대본 재미있네' 하는 느낌이 강했죠. 영화 <오션스 일레븐> 같다고 생각했고 '이렇게 멋진 시나리오가 나한테 오다니!'라고 감격했어요. 그런데 시청률까지 좋았으니 배우에게 이렇게 완벽한 행운이 또 있을까요?
함께 연기한 송승헌 씨는 어떤 배우인가요?
감히 말하건대 지금까지 만난 배우 중 최고예요. 연기도 연기지만 배우로서 갖춰야 할 자질을 모두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배려심, 자제력 같은 거요. 제가 "사람들이 불쑥 다가온다"고 힘들어하자 "나는 안 그랬겠니?" 하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면서 조언을 해주었죠. 연예인이니까 웃어야 한대요. 그게 인기에 대한 대가라면서요. 그리고 조심해야 할 것, 오해를 살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알려주셨어요. 또 놀라운 것 하나는 매일 밥을 쏘셨어요. 스태프까지 챙기는 걸 보고 놀랐어요. 메뉴를 고르는 것부터 이동하는 것까지 신경 쓰세요. 저와는 그릇 자체가 다른 사람이죠.
이참에 <나 혼자 산다>에 섭외해보는 건 어때요?
안 그래도 열심히 섭외하고 있습니다. 근데 승헌이 형이 예전에 <남자 셋 여자 셋>에 출연하면서 MBC에 인맥이 많더라고요. 저보다 MBC 윗분들이 섭외하는 게 빠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죠.(웃음)
정수정(크리스탈) 씨는 어때요? 새침데기일 것 같은데.
전혀 아니에요. 낯을 조금 가리긴 하지만 친해지면 엄청 털털한 스타일이죠. 신원호 PD님이 "먼저 다가가면 친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팁을 줬는데 그게 먹혔어요.(웃음) 놀라운 건 승헌이 형이 초대한(?) 식사 자리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는 거예요. 여배우들은 대부분 조심스럽기도 하고 해서 으레 불참하거든요. 아무렇지 않게 늘 참석하고 편안하게 수다 떠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죠. '내가 상상하던 걸 그룹 출신 여배우가 아니구나' 하고요.
이시언 하면 <나 혼자 산다>를 빼놓을 수 없죠. 단도입적으로 물을게요. 이시언은 예능인인가요?
저도 고민 중이에요. <나 혼자 산다>에 출연 중이라는 건 자랑스러워요. 프로그램의 시작부터 함께했다는 것, 함께 출연하는 동료 연예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좋지만 한편으론 예능형 배우로 인식되는 게 걱정스럽죠. 시청자분들이 제 연기를 어색해할까 봐 우려스럽기도 하고요. 불과 4년 전만 하더라도 '나 배우야' 하는 식의 아티스트적인 마인드가 강했는데 말예요. 솔직히 뭐가 정답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인지도가 없으면 연기를 할 수 없는데, 그 인지도는 예능이 만들어주고, 근데 또 예능 캐릭터는 연기에 한계를 만들죠. 딜레마예요.
결론적으로 연기에 대한 욕심이 크다는 말이군요?
본업인 연기로 인정받고 싶다는 것만큼은 확실해요. '배우' 이시언의 대표작이 드라마나 영화였으면 좋겠어요. 비중과는 상관없어요. 작은 역할이라도 저를 대표할 만한 캐릭터나 작품이면 그게 뭐라도 좋아요. 이런 생각은 <나 혼자 산다>를 하면서 커졌어요. 전현무, 한혜진, 박나래, 기안84까지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도 최고인 사람들이잖아요. 반면에 저는 아직 배우로서 인정받지 못한 것 같아요. 속된 말로 어중이떠중이 같아요.
영화 <친구>나 드라마 <응답하라 1997> 같은 흥행작도 있잖아요.
작품이 좋아서 흥행한 거지, 제가 출연해서 흥행한 게 아니에요. '이시언 연기 좋았어!'라는 말은 없잖아요. 음, 잘 모르겠어요. 그동안은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대학 시절 방 보증금을 빼서 친구들과 극단을 꾸렸는데 결국 실패했거든요. 그 후 연기를 포기하려고 했을 때 <친구> 오디션에 합격해 다시 연기를 시작한 것부터 대학에 들어간 것, 지금 연기를 하고 있는 것, 최근 주택 청약에 당첨된 것, <나 혼자 산다> 멤버들을 만난 것까지. 다 운이었어요. 운이 좋으니 실력이 좋아 보이는 것 같기도 해요.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예능까지 대부분 인기작이었던 터라 작품을 고르는 눈이 좋은 건 줄 알았어요.
절대 아닙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전 <응답하라 1997>의 첫 시사회 때까지만 해도 '이건 망했구나'라고 생각한 놈이에요. 드럽게(?) 감 없는 배우죠.(웃음) 그만큼 작품을 고를 때 '이건 잘될 거야' 식의 기대를 하지 않아요. 오죽하면 감독님들이 "네가 경력이 몇 년인데 보는 눈이 그 정도도 없냐"라고 하겠어요. 저는 그냥 대본이 좋고, 함께 하는 연기자와 스태프가 좋고, 캐릭터가 좋으면 '고' 합니다. 흥행은 그다음 문제예요.
<나 혼자 산다>에 출연 중이라는 건 자랑스럽지만, 한편으론 예능형 배우로 인식되는 게 걱정스러워요. 인지도가 없으면 연기를 할 수 없는데, 그 인지도는 예능이 만들어주고, 근데 또 예능 캐릭터는 연기에 한계를 만들죠. 딜레마예요.
이시언에게 <나 혼자 산다>는 어떤 의미인가요?
로또죠. 우리 가문에 길이길이 남을 역사예요. 인터넷에서 우연히 드라마 <라이브>의 시나리오를 보고 푹 빠진 적이 있어요. 감독님과 작가님께 1초라도 좋으니 출연만 하게 해달라고 했죠. 그런데 노희경 작가님이 <나 혼자 산다>에서 제가 말없이 TV를 보는 모습을 보시곤 역할을 주셨어요. 평소 연기 스타일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예능 속 한 장면이 그 캐릭터와 닮았다고 생각하셨다지 뭐예요. 이러니 <나 혼자 산다>가 로또가 아니고 뭐겠어요.
<나 혼자 산다>에 애착이 많은 것 같아요. 다른 예능에 출연할 생각은 없나요?
솔직히 다른 예능은 자신 없어요. 최근 한혜진 씨와 함께 <아는 형님>에 출연했는데, 녹화 내내 10톤짜리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죠. 식은땀이 날 정도로 힘들고 부담스러웠어요. 제작진의 기대가 컸는데 그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해요. 그래서 생각한 게 <나 혼자 산다>만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웃음) 처음엔 <나 혼자 산다>도 정말 어려웠어요. 멤버들이 없었다면 도중에 하차했을 거예요. 만약에, 아주 만약에 다른 예능을 하게 된다면 <나 혼자 산다> 멤버들과 할 거예요.
<나 혼자 산다>를 통해선 '대배우'라는 별명도 얻었어요.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제가 생각하는 제 그릇은 요만 한데 사람들은 저를 엄청 높이 평가하는 것 같아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요. 그래서 요즘 제가 잘하고 있는 건지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오만하면 안 되고…. 중심을 잡는 게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결론은 잘 모르겠어요. 뭐가 정답인지 모르겠거든요. 아직은 배워야 할 게 많은 사람인데 말예요.
예전과 비교하면 삶이 많이 바뀌었죠? 달라진 삶은 어떤가요?
사람들이 '연예인병'에 걸렸대요. 전 아닌데….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다가와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면 순간 저도 모르게 피하게 돼요. 그런 반응이 익숙하지 않은 거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당황스러워서 그런 건데…. 싫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상황이 적응되지 않고 신기해서 그런 건데 사람들은 "이시언 뜨더니 변했네"라고 말해요. (송)승헌이 형이 "사진을 열심히 잘 찍어주는 것도 배우로서 할 일이다"라고 말하더라고요. 제가 바뀌어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아직도 적응이 안 됐다는 것도 놀라워요.
적응이 안 됐다기보다 사진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요. 예전에 부산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제 딴에는 열심히, 성심성의껏 찍어드렸죠. 나중에 온라인에 그 사진이 돌아다니는데, 사진에 대한 설명이 '이시언 변했네'였어요. 앞에선 웃으면서 사진 찍어놓고 뒤에선 아무렇지 않게 욕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상처받았죠. 그 후론 사진을 찍어주는 게 겁이 나요. '이 사람도 내 욕을 하겠지?' 하면서요.
데뷔 10년 차인데 아직도 대중의 반응이 어색해요?
신기해요. '아니 대체 사람들이 왜 나한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지?' 싶거든요. 댓글을 찾아보는 이유도 사람들이 제 이름을 언급하는 게 신기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나 혼자 산다> 출연 이후 연예인이 됐어요. 그 전에는 하고 싶은 연기를 하면서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었는데,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뒤 달라졌죠. 어느 날 자고 일어나 보니 연예인이 되어 있었어요. 하루아침에 환경이 바뀌었는데 쉽게 적응이 될 리가 있겠어요? 그걸 단번에 받아들이려고 하니 힘들었어요. 근데 결국 이 직업도 제가 선택한 거니까 감수해야죠.
생각보다 예민한 성격인 것 같아요.
제대로 보셨습니다. 저 되게 예민해요. 잠도 아무데서나 못 자고요. 안 먹어본 음식에는 도전하지 않죠. 사소한 댓글 하나에도 상처받고, 며칠 동안 그 말을 되뇌이며 생각할 정도로 예민합니다. 그리고 예능에서 보이는 것보다 차분하고 조용해요. 낯도 많이 가리고 수줍음도 많아요.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잘 못하는 성격인데 그래서 오해를 많이 받죠. 실제로 만나보면 "이시언 의외네"라는 반응이 많아요.
예전엔 서지승 씨와의 공개 연애가 편하고 좋다고 했는데, 아직도 유효한가요?
그 부분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원체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서 그런지 데이트가 불편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다만 상대방의 이름이 계속 거론되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 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결혼에 대해 생각은 많이 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정리되지도 않았고요. 공개 연애의 장단점은 확실한데 뭐가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제 10년 차 배우가 됐어요.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어떤가요?
그러고 보면 시간이 정말 빨라요. 뭐 하나 제대로 이뤄놓은 게 없는데…. 그동안 저도, 상황도, 주변도 많이 변했어요. 이렇게 인터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변한 것 중 하나죠.(웃음) 10년 전에는 이런 인터뷰… 상상도 못했거든요. 그땐 가진 게 너무 없어 밥 먹는 것도 힘들었는데, 그땐 그게 또 힘든 줄도 몰랐어요. 지금은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고, 갖고 싶은 걸 가질 수 있고, 입고 싶은 걸 입을 수 있을 정도는 돼요. 배우로서의 마인드도 변했어요. 예전에는 제가 잘하는 캐릭터만 잘하자는 생각이었다면 지금은 두루두루 경험해보자는 쪽으로 바뀌었죠.
마지막 질문이에요. 이시언은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나요?
이렇게 말하면 좀 거창한데, 배우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는 게 꿈이에요. 차근차근 하다 보면 언젠가 빛을 볼 날이 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