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L LENGTHS
밋밋한 긴 머리는 매력이 없다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라푼젤 헤어를 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안나수이와 구찌 쇼에서 배꼽을 거뜬히 넘는 길이의 치렁치렁한 롱 헤어가 시선을 강탈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길게 늘어뜨렸지만 웨이브가 더해져 생각만큼 부담스럽지 않다. 반면에 정직한 스트레이트 롱 헤어를 선보인 마이클 코어스와 캘빈클라인 컬렉션 속 모델들은 걸어 다닐 때마다 찰랑찰랑 바람에 흩날리는 긴 생머리로 청순함의 끝판왕을 보여줬다. 모던한 스타일인 만큼 캐주얼한 룩에도, 포멀한 룩에도 가리지 않고 잘 어울리는 것이 특징이다. 머리카락이 길어질수록 무겁고 달라붙게 되니 정수리의 볼륨감을 사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THE HAIR CLIP
실핀이 돌아왔다. 숨어서 묵묵히 머리를 고정해주던 조연이 아니라 어엿한 주연으로 말이다. JW 앤더슨 쇼에 소환된 실핀은 깻잎 머리의 끝을 야무지게 고정해 1990년대로 돌아간 듯한 복고풍 헤어를 완성했다. 샐리 라폰테 컬렉션에서는 좀 더 아티스틱한 무드로 한쪽 귀 뒤에 여러 개의 실핀을 차례대로 꽂았다. 블링블링한 장식을 더한 실핀도 눈에 띄었다. 시몬 로샤 쇼에 선 모델들의 풍성한 머리 위에서 진주를 올린 화려한 실핀이 빛난 것. 비슷하게 베르사체 런웨이에는 에스닉한 느낌의 실핀이 등장했다. 정갈하게 나눈 5:5 가르마의 양쪽 귀 위에 과감하게 찔러 넣어 우아하고 고급스럽게 연출했다.
CURLS
뽀글뽀글한 곱슬머리가 촌스럽다는 편견을 버리자. 번개에 맞은 듯 촘촘하고 리드미컬한 컬이 또다시 부상했다. 구찌 컬렉션에 선 모델은 황금빛 헤어 컬러에 어깨까지 오는 히피 펌으로 로마 신화 속 신비로운 이미지를 연상시켰다. 쇼트커트를 과감하게 볶은 오프화이트 쇼와 무거운 뱅 단발머리에 불규칙적인 웨이브를 넣은 겐조 쇼도 인상 깊다. 너무 파격적인 룩이라 시도하기 어렵다면 긴 머리에 컬을 넣어 모던하게 소화한 마이클 코어스 런웨이를 참고하자. 뽀글 머리가 지루해질 때쯤엔 토즈 쇼 속 모델처럼 잔머리 몇 가닥만 뺀 채로 묶어 사랑스럽고 청순하게 연출할 수도 있다.
WET HAIR
방금 샤워를 마친 듯 촉촉한 웨트 헤어가 여전히 핫하다. 물기가 살아 있는 반짝이는 텍스처와 빗자국이 포인트. 제이슨우 컬렉션에서는 선명하게 나눈 가르마를 기준으로 길게 늘어뜨린 웨트 헤어를 보여줬는데, 풍성한 광과 뭉친 뒷머리에서 시크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반면에 에트로와 마르니 쇼는 가르마를 없앤 채 두상을 약간 띄워 헝클어진 웨트 헤어를 시도했다. 프라발 구룽 쇼처럼 머리를 묶은 뒤 윗부분에만 윤기 있는 광을 더하면 포니테일에도 활용할 수 있다. 머리가 마르기 전 광택감 있는 포마드 왁스를 손에 묻혀 전체적으로 바르고, 간격이 넓은 빗으로 천천히 빗어주면 된다. 강력한 스프레이로 고정해 마무리하는 것도 필수다.
WIDE HAIRBAND
넓게 덮은 헤어밴드가 대세다. 겉보기엔 아침저녁으로 세수할 때 쓰는 세안 밴드나, 운동할 때 헝클어지는 머리를 고정하기 위해 사용하던 스포츠 밴드 같지만 컬렉션에 오르면 다르다. 미우미우, 몽클레르, 몰리 고다드 런웨이에서 기본적인 무채색 컬러의 헤어밴드가 단연 돋보였다. 높이 묶은 번 헤어 혹은 포니테일과 함께 매치해 깔끔하면서도 매력적인 레트로 무드를 뽐냈다. 원 컬러의 헤어밴드가 단조롭다면 데니스 바소와 안야 힌드마치 쇼를 눈여겨볼 것. 의상과 같은 패턴의 개성 있는 헤어밴드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깔맞춤했다. 난해한 디테일이 없어 가장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스타일링 중 하나다.
UNIQUE BRAID
뒷모습까지 아름다운 헤어스타일의 비법은 '땋기'다. 블링블링한 액세서리 없이 머리를 땋는 것만으로도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이번 시즌에는 기본적인 디스코 머리에서 벗어나 한층 유니크해진 브레이드 헤어가 떠오를 전망이다. 질샌더, 카르멘 마크 발보, 프린 쇼에 선 모델들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게 땋은 머리로 컬렉션을 장악했다. 부분적으로 땋거나 여러 갈래로 나눠 땋아 경쾌하면서 우아한 느낌이다. 질스튜어트와 스텔라 진 런웨이에서는 좀 더 촘촘한 매듭에 집중했다. 힐끗힐끗 보이는 옆머리와 이마 위 더듬이를 가늘게 땋은 것. 너무 인위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가닥가닥 빼주는 내추럴한 디테일도 잊지 않았다.
TOMBOY CUT
단발병보다 전염성 높은 것이 쇼트커트병이다. 처음에 용기 내기가 어렵지, 한번 시도하면 특유의 세련된 이미지 덕에 빠져나올 수가 없다. 이번 시즌 랑방, 발렌시아가, 안나수이 쇼에는 한층 과감해진 길이감의 톰보이 커트가 등장했다. 전부 민낯 같은 수수한 메이크업을 더했지만 매니시한 쇼트커트 덕에 화려한 차도녀 룩이 됐다. 오프화이트에 선 모델은 2:8 가르마에 앞머리를 깔끔히 올려 넘긴 포마드 스타일을 선보였는데, 시크함과 도도함이 적절히 섞여 매력적이다. 톰포드는 페미닌한 느낌을 살려 옆으로 흘러내리듯 부스스한 앞머리를 곁들였다. 이런 파격적인 쇼트커트를 스타일리시하게 연출하려면 헤어의 옆 라인과 목덜미 쪽이 뜨지 않게 드라이하는 것이 관건이다.
THE WRAPPED PONYTAIL
포니테일의 존재감이 폭발했다. 언제나처럼 메이크업과 의상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얌전히 연출했던 묶음머리가 아니라, 실타래처럼 여기저기 엉켜 있는 자유분방한 포니테일이다. 펜티×푸마 런웨이에서는 주렁주렁 매달듯이 단을 나눠 묶은 포니테일이 눈에 띄었다. 컬러풀한 네온 밴드로 엮듯이 감싸 더욱 캐주얼하다. 알베르타 페레티와 로샤스 쇼는 묶은 머리를 반으로 접은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줬고, 랑방과 샤넬이 연출한 포니테일도 유니크하다. 머리를 밑으로 내려 묶은 뒤 리본으로 칭칭 둘러 두껍게 감싼 것. 화려한 패턴 스카프와 머리카락이 비치는 투명한 액세서리로 고정해 낯설지만 멋스럽다. 도전해보고 싶다면 묶인 머리가 지나치게 타이트해지지 않도록 주의하자. 포니테일의 생명은 빵빵한 뒤통수의 볼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