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영수증을 받는다. 그런데 최근 친숙한 영수증에 변화가 생겼다. 검은색 잉크 대신 파란색 잉크가 쓰인 영수증이 늘어난 것. 여기저기서 낯선 영수증이 등장하자 네티즌은 파란색 영수증이 등장한 이유를 추측하기 시작했다. 파란색 영수증, 왜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 나오다'의 준말)' 했을까? 네티즌은 "영수증이 나오는 기계에 잉크가 부족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대형 업체 프린터의 인쇄 오류"라며 추측을 시작했다.
여러 추측 중 가장 신뢰를 얻은 것은 "파란색 잉크가 친환경 원료"라는 것이다. 영수증은 일반 종이와 달리 반들반들한 감열지를 쓰는데, 감열지는 열에 닿은 부분만 검은색 등으로 변색되는 특수한 종이다. 감열지의 발색 촉매제로 주로 사용되는 비스페놀A(BPA)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처럼 작용하면서 정자 수를 감소시키고 비만을 일으킨다고 알려졌다. 비스페놀A는 지갑에 영수증과 지폐를 함께 둘 경우 지폐마저도 오염시키며, 영수증을 만질 때 피부를 통해 흡수될 수 있어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이러한 유해성에 대한 우려 때문에 비스페놀A가 함유되지 않은 발색 촉매제인 친환경 잉크가 등장했고, 새로운 잉크를 사용한 친환경 영수증인 파란색 영수증이 탄생했다는 것.
그러나 이 그럴듯한 추측이 이유는 아니다. 우선 비스페놀A가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은 맞으나 파란 영수증 탄생의 이유는 아니다. 속사정은 이랬다. 검은 잉크의 비용이 상승한 것. 갑자기 검은 잉크값이 비싸진 이유는 중국 정부의 환경 규제 정책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환경 개선을 최우선 정책 과제로 설정하고 내놓은 '제13차 5개년 계획(2016~2020년)'을 따른 결과다. 즉 중국의 환경 정책 때문에 영수증에 쓰이는 검은색 잉크값이 올라 파란색 영수증이 등장한 것이다. 감열지에 쓰이는 검은색 잉크는 100% 중국에서 공급된다. 그런데 중국 정부가 환경 규제 정책을 내놓고, 제시한 일정 기준치를 채우지 못한 잉크 공장들의 문을 닫게 해 국내 감열지 생산 업체에 영향을 끼친 것이다. 검은색 잉크 제조 공장이 많지 않은 탓에 검은색 잉크 가격이 3배 정도 올랐고, 결국 감열지 생산 업체가 검은색 잉크 대신 물량이 풍부한 파란색 잉크를 사용해 파란색 영수증이 등장했다.
우리나라만 중국의 환경 정책에 영향 받았을까?
아니다. 우리나라 감열지 업체처럼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의 재활용 업체도 비상이 걸렸다. 쓰레기 수입 대국이었던 중국이 환경보호를 이유로 고체 폐기물 24종의 수입을 중단했기 때문. 전 세계 폐기물의 56%를 수입해온 것으로 알려진 중국이 지난 2016년 한 해 동안 수입한 폐기물은 730만t이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37억 달러(약 4조 1,647억원)다. 그랬던 중국이 고체 폐기물에 오염이나 위험성이 높은 물질이 혼입돼 있는 것이 많고, 중국의 환경을 오염시켰다고 지적하면서 돌연 폐기물 수입을 중단해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자국 내 쓰레기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왜 감열지로 영수증을 만들까?
감열지는 롤 형태의 종이에 염료와 현상제를 미세하게 부착한 것이다. 평상시에는 투명하지만 인쇄할 부분에 열을 가하는 헤드를 거치면 염료와 현상제가 합쳐져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즉 열을 가한 부분만 검은색 등으로 변색된다. 감열지 기술 덕분에 '찍찍' 소리를 내며 영수증을 인쇄했던 도트 인쇄기를 거의 찾을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