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내내 내린 눈으로 서울 시내가 '겨울 왕국'이 된 어느 날, 우도환은 눈을 흠뻑 맞은 기자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가방에 쌓인 눈을 툭툭 털어주었다. 그렇게 우도환은 옆집 동생처럼 친근하게 다가왔다. 순식간에 스타덤에 오른 그이기에 인기에 취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기자의 걱정은 기우였던 것이다.
요즘 주변에서 우도환에 '덕통사고'를 당했다는 여자들이 많다. '덕통사고'란 교통사고처럼 어떠한 이유로 인해 '덕후', 즉 팬이 되는 것을 이르는 신조어. 지난해 종영한 OCN 드라마 <구해줘>(2017)에서 우도환은 극 중 '임상미(서예지 분)'를 구하러 나선 정의의 사도이자 순정을 지닌 남자 '석동철'로 분했다. 6년 전인 2011년 MBN 드라마 <왔어 왔어 제대로 왔어>로 데뷔한 우도환은 5년간 오디션에 몰두했다. 이후 KBS <우리집에 사는 남자>(2016)에서 소름 끼치는 악역으로 눈도장을 찍더니 영화 <마스터>(2016)에서는 대사 한 마디 없이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했다. 이후 <구해줘>(2017)로 주연 자리를 꿰찼고 KBS2 <매드독>까지 쉬지 않고 달린 끝에 '슈퍼 루키'로 떠올랐다.
총기 있는 눈빛이 매력적이었다. 마치 류승완, 김우빈의 신인 시절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참 '뻔뻔하게' 주어진 배역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고 여기저기서 우도환을 찾았다. 첫 주연작인 <구해줘>는 그야말로 우도환을 구해줬다.
"생애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드라마라 떨렸어요. 그 어느 때보다 시청자와 관계자들의 반응이 궁금했죠. 극 중 '동철' 역할을 위해 어색하지 않은 사투리를 구사하려고 노력했어요. 연기력 논란이 일어나진 않을까 걱정됐거든요."
우도환은 '동철' 그 자체였다. '동철'은 '상미'를 위해 구선원에 들어가 온몸을 던져 그녀를 구하려 애쓴다. 안경이란 도구 하나만으로 그는 1인 2역을 소화했다. 제임스 딘 뺨치게 반항적인 매력을 뿜더니 안경을 쓰자 세상 순둥이로 변신했다. 이에 대해 "뻔뻔했다"라고 칭찬하자 우도환은 크게 기뻐하며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부끄럽네요.(웃음) 저도 '동철'이가 구선원에 들어갈지 몰랐어요. 하물며 16부까지 갈 거라고도 생각지 못했거든요. 감독님께서 '동철이가 변하면 시청자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라며 걱정하셨죠. 저도 걱정됐지만 최대한 뻔뻔하게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연기했어요. 안경을 썼을 때와 벗었을 때 달라지는 눈빛에 집중했습니다."
우도환은 김수현, 박서준 등이 소속된 키이스트에 몸담고 있다. 하지만 이곳이 첫 소속사는 아니다. 양현석이 수장으로 있는 YG 엔터테인먼트에 속해 있었고 영화 <가자, 장미여관으로>(2013)에선 베드신도 소화했다. 그는 그렇게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하며 오늘을 기다렸다.
"연기를 갈망했어요. 그렇지만 '저 힘들었어요'라고 말하지는 않을래요.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이왕 기다릴 거면 건강한 마음으로 잘 기다리고 싶었어요.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도 했어요. 기회를 만들고, 잡는 과정이 조금 길었지만, 그 정도의 시간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도환은 지나간 시간을 포장하지 않았다. 밝게 돌아보며 두 손을 꽉 쥐었다.
"한 분야에서 10년 이상은 일해야 '나 이 일 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배우도 마찬가지죠. 견디는 시간에도 나를 믿자고 수없이 다짐했어요. 배우는 건강한 나르시시즘이 있어야 하니까요. 자신을 믿으며 불안에 떨지 말자고 다짐했죠. 인생은 20대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인생 초반에 힘들어야 중반에 덜 힘든 거 아닐까요?"
인생의 청사진을 그리던 우도환은 중년의 자신을 바라봤다.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30대에는 정신적으로 안정됐으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과 잘 융화되고 싶어요. 좋은 작품을 만드는 배우로서 좋은 스태프, 배우들과 함께 작업해야 하니까요. 좀 더 온화해지길 바라고 결혼도 꼭 하고 싶어요. 저희 부모님 같은 삶을 살고 싶어요. 두 분을 보고 있으면 '인생은 단 한 사람만 곁에 있다면 행복한 거구나'라고 느끼거든요. 평생 함께 나이 들어가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에요. 무엇을 하든 내 편이 되고, 배우자가 무엇을 하든 내가 배우자 편이 된다는 것. 빨리 이루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결혼을 20대에 하고 싶었어요. 이제는 결혼한다고 해도 가정에 충실할 수 없을 것 같아 아쉽죠. 그래도 최대한 빨리 결혼하고 싶다는 꿈은 변치 않았어요."
한창 꿈을 키우고 야망을 불태울 나이지만 결혼을 꿈꾸고 있다니 의외였다. 우도환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배우 구혜선·안재현 부부가 떠올랐다.
"아름답게 살고 계시는 것 같아 부러워요. 부부가 손잡고 함께 살아가는 느낌이랄지. 저도 그렇게 아내와 아름답게 사는 게 꿈이에요."
상기된 우도환에게 이상형을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신중하게 대답했다.
"대화가 잘되는 분이 이상형이에요. 제 이야기를 귀담아들어주고 진심으로 받아주는 여자가 좋아요. 외모는 제가 사랑에 빠지는 여자가 이상형이죠. 정확한 기준은 모르겠지만 느낌은 오거든요. 돌아보면 지금까지 만났던 분들의 외모가 다 달라요.(웃음) 그렇기에 마음이 정말 중요해요. 제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죠."
외모에 현혹되지 않고 마음을 본다는 우도환은 이미 좋은 사람이었다. 인간을 그리는 배우는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연기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분위기가 무르익고 깊은 대화가 오갈 무렵 연기를 왜 하느냐는 원초적인 질문을 던졌다.
"배역을 통해 좋은 사람이 될 수도,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어요.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죠. 올해 들어 느끼는 것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관객, 시청자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에요. 특히 가족들이 저로 인해 행복해하는 것을 보면 저도 행복해져요. 일하면서 마냥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 많은 곳에서 힘을 얻고 있어요."
행복한 표정으로 답하는 우도환은 천생 배우였다. 하고 싶은 장르나 배역이 무엇인지 물으니 상기된 얼굴로 답변을 이어갔다.
"로맨스와 액션도 하고 싶어요. 다양한 장르에 대한 욕심은 늘 있지만, 액션 영화가 가장 도전하고 싶은 분야죠. 멋있고 남자다운 매력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액션 영화를 보면 항상 가슴이 뛰어요."
그의 탄탄한 몸매에 저절로 눈이 갔다. 몸매 관리 비결을 물으니 쉬는 날에는 무조건 운동을 한다고. 성인이 된 후 꾸준히 운동하고 있다며 기자에게도 운동을 권했다.
"시간이 나면 무조건 헬스장으로 달려가요. 혈액순환에 헬스가 좋더라고요. 일주일 내내 할 수 없으니 운동을 할 때는 특히 집중해서 해요. 나만의 시간이 좋아요. 운동하는 습관을 들인 지 6~7년쯤 됐는데, 야식을 안 먹고 꾸준히 운동하는 건 반드시 지켜요. 다행히 먹는 것을 자제하기 어렵지 않아서 일할 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아요.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으면 붓는 편이라서 힘들 땐 심호흡을 해요."
<구해줘> <매드독>까지 쉬지 않고 달린 우도환은 인터뷰 일정을 마지막으로 짧은 휴식을 취한다고. 최근 본가인 안양에서 서울로 독립했다는 그는 일을 잘하는 것만큼 잘 쉬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행을 가고 싶고 집에도 있고 싶어요. 여행은 유적을 보러 가고 싶어요. 인간의 힘으로 만든 유적, 유물을 보면 경이로워요. 그냥 해변에서 뜨거운 해를 받고 싶기도 하고요. 추운 걸 싫어해서 따뜻한 나라에 가고 싶어요. 또 집에서 보일러 틀어놓고 이불 덮고 귤을 까먹고 싶어요. 큰 행복이죠. 귤을 먹으면서 드라마 <추노>를 볼 거예요. 24부작을 다섯 번 넘게 봤을 만큼 좋아하는 '인생 드라마'예요. 마지막 장면에 '대길'이 '혜원'에게 좋은 세상을 만들러 가라며 보내주는 장면은 감동적이에요. 사랑을 그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올겨울도 <추노>와 함께 보낼 계획이에요."
우도환은 소박했다. 작품에서 보여주는 것만큼 거칠지 않았고 소박한 일에 행복을 느끼고 따뜻한 미소로 비전을 말했다. 마지막으로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라면 가게를 차리고 싶어요. 사업이 쉽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손님에게 라면을 끓여주는 일이 소소한 행복을 줄 것 같아요. 배우 우도환의 꿈은 관객들에게 좋은 배우로 기억되고 싶어요. 작품을 통해 교훈을 준다면 더없이 행복하겠죠. <추노> 속 장혁 선배님처럼 누군가의 인생에 영감을 준다면 배우로서 큰 보람이 아닐까요."
"오디션을 100번은 봐야지 했는데 지금까지 80번 정도 본 것 같아요. 오디션도 보기 힘든 상황이었기에 참여한다는 자체를 감사하게 생각했어요. 10년 기다려야 하는데 나머지 1년 참아서 포기하지 말라는 선배들의 말을 새기며 기다렸고 기회는 왔죠. 만약 부모님, 팬들이 실망한다면 슬플 것 같아요. 그러지 않기 위해 초심을 잊지 않겠습니다. '주목받는 신인'이라거나, '슈퍼루키'라는 수식어가 참 부끄러워요. 책임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하고요. 아직 신인인데 칭찬을 들으면 부끄러워서 얼굴이 뜨거워져요. 작품 안에서 누가 되지 않았다는 평가만으로도 감지덕지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 모습을 누군가도 좋아서 바라봐주는 것이 진정한 행복 아닐까요? 제게는 그 매개가 '연기'에요. 행복의 기준을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거예요. 물론 좋은 연기를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좋은 인간이 되는 게 먼저입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제 행복을 찾는 일이 옳은 일이라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좋은 일이 생기면 더 좋은 일을 찾으며 욕심을 내는 게 사람이지만, 누군가에게 상처주기는 싫어요. 그러기 위해 제가 먼저 좋은 사람이 돼야 할 것 같아요. 2017년은 운이 좋았던 한 해 였어요. 각각의 작품을 통해 많이 배웠어요. 올해도 새 작품으로 열심히 달릴 예정이에요. 부지런히 연기할테니 지켜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