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들 주안이는 패션에 관심이 많다. 나로선 정말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우선 나는 패션에 민감하다거나 센스가 넘치지 않는다. 나 자신의 이런 모습 때문일까? 주안이가 패션 쪽으로는 속 썩일 일이 없을 거라는 내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주안이의 배냇저고리는 내가 태어났을 때 입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나의 배냇저고리를 잘 보관하고 계신 덕이다. 그 후에도 한동안 큰 문제는 없었다. 주안이가 집안의 첫아이여서 옷 선물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스타일보다는 선물 받은 옷을 감사한 마음을 담아 입혔다.
주안이가 점점 자라면서 아내와 의견 차이가 생겼다. 나는 아이가 움직이기 편하고 자유롭도록 신축성 있고 허리 부분도 고무줄로 된 옷을 입히는 것을 좋아했다. 반면 아내는 예쁘고 귀여운 옷을 선호했다.
그때만 해도 주안이의 패션은 부모의 취향에 따라 결정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우리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여태까지 아이들이 흔히 하는 반찬 투정 한 번 없이 아빠와 엄마 말을 잘 따르던 주안이가 패션에서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시작은 신발이었다. 어느 날 주안이가 신발 때문에 발이 아프다는 투정을 부렸다. 아이가 크는 것을 고려해 넉넉한 사이즈로 골랐고 그동안 아무 문제 없이 잘 신었기에 의아했지만 정말 발이 불편한가 싶어 새 신발을 사러 갔다. 나와 아내는 색상과 사이즈, 무게, 착화감을 고려해 고른 신발을 주안이에게 신겨본 뒤 구매하려고 했다. 그런데 주안이의 투정이 다시 시작됐다. "발이 아파요. 불편해요"라며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참을 어르고 달래다 주안이에게 귓속말로 이유를 말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멋지지 않아"였다.
오 마이 갓! 디자인이 주안이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부터였다. 티셔츠와 바지, 모자는 물론이고 속옷까지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을 고르고, 입기 시작했다. 취향에 따라 옷을 고르고 싶은 주안이의 마음도 이해하지만 유치원이나 키즈 카페에 놀러 갈 때 좀 더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였으면 하는 마음 때문에 선뜻 주안이가 원하는 스타일로 옷을 입히기가 쉽지 않다. 주안이가 원하는 대로 옷을 입으면 '패션 테러리스트'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잔뜩 들어간 옷과 캐릭터들이 쓴 모자나 가면 을 착용하려는 주안이를 보면 너털웃음이 난다. 어느 지점에서 타협을 봐야 할지가 아주 큰 숙제다.
이런 변화와 함께 우리 가족의 새로운 쇼핑 스타일이 생겼다. 아내와 함께 스케줄 사이에 짬이 생길 때 주안이의 옷을 사곤 하는데, 이젠 우리 둘이 구매를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옷이나 모자, 신발을 고른 뒤 주안이를 돌봐주고 계신 부모님께 영상 통화를 걸어 주안이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꼼꼼하게 이곳저곳을 보여준 후 "마음에 들어?"라고 묻고 허락하면 쇼핑이 끝난다.
나는 내 아들이 편하게 입고 멋져 보였으면 한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고 자랑스럽게 걸어가는 주안이의 뒷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페라의 유령>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지난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1년 뒤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6살 주안이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