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에게는 오묘한 매력이 있다. Mnet <쇼미더머니5>에서 도통 몸을 움직이지 않는 래퍼 도끼를 춤추게 만들 정도로 '흥부자'인데, 이야기를 나눠보면 여유롭고 온화하면서 진중하다. 그의 스펙도 남다르다. 명문 대일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해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에 합격한 '엄친아'다. 하지만 면도는 입학을 포기하고 음악을 선택했다. 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이 판타스틱한 래퍼가 어디서 튀어나왔지?
"2015년에 조지워싱턴대학교에 합격했고, 2016년 9월까지 학교에 가지 않으면 입학이 취소되는 상황이었죠. 부모님은 일단 입학한 후 한 학기만 다니고 휴학을 하라고 하셨지만 당시 저는 음악에 미쳐 있었어요. 음악과 공부 사이에 어중간하게 있는 게 싫었죠."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아쉽지 않느냐고 묻자 특유의 '하회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혀요! 수의사가 되고 싶어 생물학과에 진학할 예정이었어요. 미국에서 수의대를 나오려면 최소 6년이 걸려요. 타이거JK 형이 입학금을 내주겠다며 학교를 다니라고 하셨는데도 거절했어요. 지금도 갈 생각이 없어요. 음악에 관련된 학과라도 잘 모르겠어요. 도움이 될 것 같긴 한데 또 필요성이 없는 것 같기도 해요. 대학의 술 문화를 즐기지 못한 건 아쉬워요."
타이거JK 형은 입학금을 내주겠다며 설득하기도 했지만 지금도 그 결정에 후회는 없어요.
단지 대학의 술 문화를 즐기지 못한 건 조금 아쉬워요."
공부에 전혀 흥미가 없어 보이는 면도, 외고는 어떻게 들어갔을까?
"저는 정석대로 공부하지 않았어요. 요령을 피우며 공부를 했다는 표현이 맞을 거예요. '괜찮은' 문제집을 한 권 사요. 문제 밑에 빨간 펜으로 답을 써놓고, 키워드만 외웠어요. '이런 단어가 나오면 저런 게 답'이라고 생각한 거죠."
하지만 그래도 영어만은 잘했다고 수줍게 덧붙였다. 영어를 잘해서 외고에 진학할 수 있었다는 것. 말은 쉽지만 사실 영어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수험생이 상당수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누나와 함께 캐나다로 유학을 갔어요. 함께 갔지만 따로 홈스테이를 해서 혼자 지냈어요. 국제전화 카드를 사면 보통 며칠 동안 쓰는데, 하루 만에 다 썼어요. 어머니한테 전화해서 집에 가고 싶다며 울었죠."
하지만 캐나다에서의 시간이 지금의 면도를 만들었다. 푸른 초원이 펼쳐진 시골 마을에서 사귄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관심을 두는 것들이 생긴 것.
"'카림'과 '데이빗'이란 친구와 친해졌어요. 초등생인데 '중2병'에 걸린 친구들이었어요.(웃음) 다른 아이들이 팝을 들을 때 힙합을 듣는 친구들이었거든요. 저한테 '죽이지 않냐'면서 힙합을 들려줬는데 진짜 죽이더라고요. 그때부터 힙합에 관심이 생겼어요. 아, 농구의 매력도 알게 됐어요. 좋아하는 게 생기니 자연히 영어가 늘었죠."
하지만 유학 생할은 그리 길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5학년까지 딱 2년간 짧고 굵게 했다.
면도가 한국행을 결정한 이유는 누나의 경험 때문이다. 면도의 누나는 캐나다에서 대학교를 졸업해 국내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그러나 우여곡절도 있었다. 중학교 때 잠시 한국으로 들어왔다가 캐나다로 돌아간 것. 캐나다 교육과정과 국내 교육 시스템이 너무 달라 혼란을 겪었다. 수학이 너무 어려웠고 영어는 너무 쉬웠다고. 이 모습을 본 면도의 부모님은 중학교 진학을 앞둔 면도에게 "어디에서 학교를 다니고 싶느냐"고 물었고, 면도는 한국을 택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유학 생활을 한 면도에게 조기유학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유학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아서 고민해봤는데, 저처럼 어린 나이에 짧고 굵게 가는 걸 추천해요. 어릴 때는 친구랑 놀기 위해 말을 해야 하니까 자연히 늘어요. 친구들도 어리니까 말을 잘 못해도 이해해주죠. 하지만 나이가 든 채로 유학을 가면 이야기가 달라요. 말이 안 통하니 계속 한국 친구랑 놀고, 외국 친구들도 말 못하는 아이와는 안 놀아주죠. 제 주변에도 유학 가서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온 친구들이 있어요."
면도는 평소에 생각해본 질문엔 재빠르게 답했지만 고민한 적이 없는 질문엔 충분히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 허투루 말하는 법이 없다는 뜻이다. 언제나 면도의 의사를 먼저 묻고 스스로 결정하게 만든 부모님의 영향이 커 보였다.
"언제나 제 뜻을 따라주셨어요. 랩을 한다고 했을 때도 처음엔 반대가 심했지만 결국 제 의견을 존중해주셨어요. 두 분 다 공부로 성공하셔서 공부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학업을 이어갔으면 하고 바라셨겠죠. 어머니는 요즘에도 "어렸을 때 소극적이던 네가 어떻게 무대에 서느냐"고 놀라워하세요. 저 정말 조용했거든요. 사실 무대에 서는 건 지금도 긴장돼요."
면도의 부모님 역시 엄친딸, 엄친아다. 어머니는 약사를 하다가 제약회사에서 근무했고, 현재는 의학 관련 컨설턴트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는 치과의사다.
"중학교 2학년 때 랩을 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어머니는 랩은 취미로 하라고 하셨죠. 대신 취미라도 프로처럼 열심히 하면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신다고 했죠. 그래서 <쇼미더머니3>에 나갔고, 슈퍼비와 만나서 랩에 빠지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대학교 입학도 1년 미뤘어요."
부모님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면도에게서 부모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느껴졌다. '아빠 카드'를 썼던 면도는 지난해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했다. 이제 부모님께 해주고 싶은 것도 생겼다. 올해는 아버지에게 차를 사드리는 게 소원이란다. 그에게 닮고 싶은 부모님의 모습을 묻자 생각에 잠겼다.
"어머니의 결단력이오. 필요한 거만 하고 아니면 딱 포기하시거든요. 저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하다가 모두 놓치는 편이죠. 아버지는 주어진 상황에 맞춰 묵묵히 할 일을 하시는 스타일이에요. 전 한 번에 한 가지만 하지 못해요. 지금도 다섯 곡을 동시에 작업하고 있어요. 이럴 때 아버지의 '선택과 집중'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면도는 래퍼로서 하고 싶은 일이 많다. 듣는 사람이 "이건 면도 음악이네"라고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자기만의 음악 스타일을 만들고 싶고, 언젠가는 보컬의 역량도 펼치고 싶다. 최종적으론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음악을 만드는 뮤지션이 되고 싶다"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꿈이 가득한 청년 면도. 그에겐 아직도 숨겨진 매력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