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욕설 논란' 이후 이태임이 복귀작으로 선택한 작품은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였다. 밉상 불륜녀 역할을 마다하지 않은 건 그녀다운 정면 돌파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선택은 신의 한 수가 됐다. 때려주고 싶을 만큼 얄미운 캐릭터를 제법 잘 소화해내면서 그녀를 향한 질타와 논란도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이로써 이태임의 슬럼프는 끝났다.
2년 만이에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그 일(이태임은 2015년 불거졌던 예원과의 욕설 논란을 '그 일'이라고 표현했다.)이 있은 후 지금까지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을 보냈어요. 사람들이 볼 땐 '그까짓 게 뭐 그렇게 힘든 일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 시간이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어요. 마인드컨트롤이 필요했죠.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존감을 지키려고 노력했어요.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거의 매일 극장에서 영화를 봤고, 연기 연습을 하면서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어요. 내 안에 독기를 갈고닦았다고 할까요.
그러다가 <품위있는 그녀>를 만났군요? 그동안 같은 소속사의 다른 배우에게 온 대본을 몰래 보고 감독님을 직접 찾아간 적이 많았어요. 그때마다 번번이 거절당했다는 게 문제지만…. 그러다가 <품위있는 그녀> 출연 제의를 받았고, 대본을 보았는데 저도 모르게 빨려드는 거예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1회부터 4회까지 정독했고, 5회 대본을 찾는 나 자신을 보면서 '이건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2의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놓치고 싶지 않았죠. <결혼해주세요> 이후 흥행작이 없어 시청률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데, 7년 만에 그 갈증이 모두 해소된 기분이에요. 아무도 저를 캐스팅하지 않을 때, 저를 믿어주신 김우철 감독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작품 이야기를 하니까 어린아이처럼 신나하네요. 어떤 면에서 그렇게 끌리던가요? 불륜녀지만 코믹한 면모가 마음에 들었어요. 무엇보다 상대 배우가 정상훈 씨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죠. 그동안 보여지지 않았던 정상훈 씨라서 색다른 불륜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감히 평가하자면 정상훈 씨는 어느 대배우 못지않은 연기력과 애티튜드를 갖춘 배우예요. 옆에서 보고 있으면 '아, 저렇게도 연기할 수 있구나' '현장 분위기를 이렇게 화기애애하게 만들 수도 있구나' 싶어서 한 방 맞은 기분이라니까요. 이번 작품을 계기로 상대 배우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어요.
불륜녀에 밉상 캐릭터라서 '또 욕먹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없었나요? 대본이 워낙 탄탄하고 재미있었기 때문에 그런 걸 걱정할 틈이 없었어요. 오히려 키스신이 걱정되고 고민이 많았죠. 어떻게 하면 좀 더 불륜녀다운 키스를 할 수 있을까를요.(웃음)
다이어트 후 변한 외모를 지적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왜 얼굴이 그 모양이냐"부터 "감정이입이 안 된다"까지 다양해요. 성형 논란도 있었죠. 친구들한테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어요. "내가 욕먹는 거엔 해탈의 경지에 있는 사람이야"라고 말하죠. 네티즌의 악성 댓글,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는 말, 이젠 신경 안 쓰여요. 비난에 대처하는 내공이 쌓였달까요.(웃음) 오히려 '욕을 먹으면 먹을수록 내 연기는 진화하겠지' 하는 이상한(?) 믿음 같은 것도 있고요.
살을 빼야겠다고 생각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오랜만에 하는 드라마니까 뭔가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동안 볼살 때문에 TV에 제 얼굴이 부하게 나오는 것도 싫었고, 오랜만에 복귀하는 건데 예뻐 보이고 싶어서 6개월 동안 10kg을 감량했죠.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워(?) 놀랐어요. 사람들은 "어디 아픈 것 아니냐"며 걱정했지만 저는 제 모습이 좋았어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이렇게 열심히 할 수도 있구나 싶었거든요. 결과적으론 불면증 같은 부작용이 따르는 무리한 다이어트였고, 제가 봐도 이상할 정도로 제 특유의 마스크가 없어지는 결과를 초래했지만 다이어트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지금은 다시 7kg 정도 쪄서 원상 복귀 중이에요. 살을 빼는 것도 어렵지만 살을 찌우는 것도 어렵네요.(웃음)
사람들의 외모에 대한 지적은 여자로서 견디기 힘들 것 같아요. 여배우니까 어쩔 수 없는, 당연한, 숙명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특히 저는 몸매나 외모가 부각되면서 관심을 받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외모에 대한 평가의 잣대가 더욱 까다롭다는 것도 알고요.
긍정적인 모습이 보기 좋아요. 이번 작품이 태도의 변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겠죠? 자신감을 얻었어요. 지난 2년 동안 위축돼 있었고 자존감도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였죠. 뭘 해도 재미없고, 의미 없는 기분이었거든요. <품위있는 그녀>가 여자로서, 배우로서 제 자존감을 높여줬어요. 주위 사람들도 이런 제 모습을 좋아해주세요. 표정이 밝아져 그런지 예전에 비해 예뻐진 것 같다는 말도 많이 듣고요. 어두운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밝은 표정이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결국 지난 시간이 약이 된 셈이군요? 스스로도 단단해졌음을 느껴요. 전에는 사람들의 말에 이리저리 휩쓸리고 상처받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제 나름대로 중심을 잡으려고 하죠. 결과적으론 2년 전 그 일이, 그리고 그로 인해 혼자 있었던 시간이 저를 강하게 만들었어요. 앞으론 저답게 살고 싶어요. '안 되면 될 때까지!'가 가장 저 다운 말이죠.
2년 전 인터뷰에서 "연예인이 득보다 실이 많은 직업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어요. 그 생각엔 변함이 없나요? 제가 그런 말을 했었나요? 사실 그때 멘탈이 약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시기의 일들이 잘 기억나지 않아요. 제가 무슨 행동을 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없죠. 우리나라에서 여배우로 살기가 어렵다는 생각은 여전해요. 남자 배우들의 영역이 넓고 반면에 여배우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죠. 톱 여배우들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제 시작인 저는 오죽하겠어요.
힘든 일이 있었고 여배우가 일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연기하는 이유는 뭔가요? 재미있으니까요. 연예인이라서 얻는 부와 명예보다 따르는 책임감이 더 무거워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카메라 앞에 섰을 때 살아 있음을 느껴요. 뻔한 이야기지만 나이 들수록 연기 생각뿐이에요. 어렸을 땐 연애, 돈, 외모를 생각하기 바빴다면 지금은 '어떻게 하면 더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죠. 어리고 예쁜 여배우는 많으니까 이젠 연기력으로 승부를 봐야 하잖아요.
그렇게 사랑하는 연기지만 스트레스로 다가올 때도 있을 것 같아요.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이 보여요. '내가 왜 저렇게밖에 연기를 못 했을까' 싶은 마음에 쥐구멍으로 숨고 싶어요. 최근엔 한 아역 배우가 연기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저 나이에 어떻게 저런 감정을 표현할 수 있나' 싶어서 자극이 됐죠. 이번 작품에서 만난 김선아·김희선 선배님이 가진 오라와 포스가 질투 날 정도로 부럽고 갖고 싶을 때가 많아요. 좌중을 압도하는 그런 거요.
앞으로 어떤 연기를 해보고 싶나요? 영화 보는 걸 좋아해서 영화 출연에 대한 꿈을 키워왔고, <황제를 위하여> <응징자> <특수본>에 출연했죠. 로맨스 영화에서 슬픈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언제 그런 역할을 하게 될지 모르니 혼자 차 안에서 감정 잡는 연습을 하곤 한답니다. 배우로서 제 미래가 걱정되면서도 궁금하고, 기대도 돼요.
한창 일과 미래를 걱정할 나이죠. 배우로서 자리 잡은 것 같으면서도 뒤돌아보면 이룬 게 하나도 없고, 이 바닥을 잘 아는 것 같은데도 내공은 얕고, 후배들은 치고 올라오는데 선배들에 비하면 너무 애송이인 것 같아요. 가야 할 길이 먼데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 잘 모르겠는…. 이럴 때 주위에 친절하고 똑똑한 멘토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태임아, 여기에선 이렇게 걸어야 한다" "이리로 가면 가시밭길이야" 하고 가르쳐줄 수 있는 그런 멘토요.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나요? 연기력이 빛나는 배우로 남고 싶어요. 할머니가 되어서도 못 이룰 수 있는 거대한 꿈이라는 걸 알지만 노력하면 못 이룰 것도 없지 않나요? 죽기 전에 '이태임 수고했다' '이태임 멋있다'는 말을 꼭 듣고 싶어요. 제가 작품을 고를 수 있는 순간을 상상하곤 하는데, 그런 삶이 정말 멋있는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인정받았다는 뜻이잖아요.
그렇다면 배우가 아닌 사람으로선 어떻게 보이고 싶어요? 친근한 이태임이고 싶어요. 실제의 저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말을 잘 걸고, 잘 웃고, 털털하기도 한 친근한 성격인데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이미지로 각인되었나 봐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보라는 권유도 있는데, 자신 없어서 주저하고 있어요. 그동안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제가 아닌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어렵거든요.
이제 복귀에도 성공했으니 연애도 해야죠? 단언컨대, 지금은 연애할 시간이 없어요. 한 작품이 잘됐다고 마음 놓고 있을 순 없잖아요.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남자나 만나며 시간을 허비하기 싫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연애는 어렸을 때 지겹도록 많이 해봐서 궁금한 것도 없어요. 결혼요? 연애도 관심 없는데 결혼은 아주 먼 이야기죠. 당분간은 연기에만, 작품에만 집중하고 싶어요. 좋은 작품으로 다시 찾아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다 해도 좋아요. 믿고 기다려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무엇보다 기회를 주신 김우철 감독님께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앞으로 더 성숙하고 단단한 이태임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2년의 공백을 알차고 단단하게 채워왔다. 그녀의 인생 2막이 활짝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