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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th ANNIVERSARY SPECIAL

뜨거운 서른 김수현

1988년에 태어난 김수현은 내성적인 학생으로 성장하다 우연한 기회에 배우가 됐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나라 대표 한류 스타다.

On August 14, 2017



“마흔쯤 되니까 고(故)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의 의미가 이해되더라고요”라는 말을 왕왕 듣는다. 서른에는 과거를 돌아보기 어렵지만 마흔이 되고 나니 서른 이전의 기억들이 떠오르며,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는 의미다. 그래도 대중은 ‘서른 즈음에’ 덕분에 서른에 대한 유의미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1988년생인 배우 김수현은 올해로 서른이다. 일원초등학교, 중동중고등학교를 나온 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한 김수현은 록 밴드 ‘세븐돌핀스’의 리드 보컬 김충훈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끼를 물려받아 배우의 길을 걷는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연기를 하기 전 그는 숫기가 없는 조용한 학생이었다. 김수현의 내성적인 성격을 걱정한 어머니의 권유로 고등학교 진학 무렵 연극을 하기 시작했다. 연극은 김수현을 달라지게 했다. 학교에 대본을 가져와 발성 연습을 하는 등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했다. 2003년 고등학교 1학년 때 연극 <한여름 밤의 꿈>에서 ‘퍽’ 역을 맡아 처음 무대에 섰으며 대학 시절에는 뮤지컬 <그리스>와 연극 <햄릿>을 공연하면서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김수현은 데뷔 초기 인터뷰에서 “꿈이 아니라 사회생활 부적격자가 되지 않으려고 치료 수단으로 연기한 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2007년 시트콤 <김치 치즈 스마일>로 정식 데뷔한 그는 2010년 현 소속사인 키이스트와 전속 계약을 체결했고, 이듬해 배용준과 박진영이 합작으로 기획하고 제작한 KBS2 <드림하이>에 ‘송삼동’으로 출연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이 이때 발휘된 것일까? 드라마에서 그가 부른 ‘Dreaming’이 호평을 받았고 Mnet <엠카운트다운>과 공연 <드림 콘서트>에서 스페셜 무대를 꾸미기도 했다.

김수현을 대세 연기자로 거듭나게 한 작품은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이었다. 이 드라마는 시청률 40%를 넘겼으며 김수현에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최우수연기상, MBC 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과 인기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누리게 했다.

<해를 품은 달>이 그가 한류 스타로 도약하게 된 계기라고 한다면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는 그 자리를 굳건히 하게 만든 작품이다. 중국 시진핑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이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속 도민준이 시진핑과 똑같다”고 말할 정도로 중국에서 <별에서 온 그대>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런 김수현이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이후 4년 만에 영화 <리얼>로 돌아왔다.

모든 영화가 호불호가 갈리게 마련이지만 영화 <리얼>은 ‘불호’에 가깝다. 지난 6월 26일 열린 시사회 이후 쏟아진 혹평은 출연 배우들이나 이사랑 감독, 제작사, 배급사에게 뼈아플 수 있지만 그 또한 발전하기 위한 거름이라고 좋게 생각할 수도 있다. <리얼>에서 주인공 ‘장태영’으로 분해 1인 2역을 소화한 김수현은 그런 혹평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선 굵은 연기를 펼쳤지만 작품 자체에 대한 수많은 혹평으로 인해 성공적인 복귀작이란 평가를 받을 수는 없을 전망이다.

“시사회 이후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정신이 나갈 정도로 혹평을 이겨내기가 힘들었죠. 그런데 재촬영을 한다고 해도 지금보다 더 잘할 자신이 없어요. 캐릭터에 대한 욕심이 컸고,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연기였기 때문에 오히려 용감하게 덤빌 수 있었죠. 모든 걸 안 지금은 그렇게 대담하게 연기할 자신이 없어요.”

김수현은 입버릇처럼 “<리얼>이 20대 대표작으로 남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이유가 궁금했다.

“제가 연기한 캐릭터가 대부분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데 <해를 품은 달>이 끝난 후 인터뷰에서 ‘아쉬움이 너무 많이 남았다’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아쉬움이 너무 많이 남아 ‘벽에 부딪힌 것 같다’는 의미로 한 얘기였죠. 매우 사랑한 캐릭터였지만 연기적인 면에서 100% 만족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리얼>이 20대 대표작으로 남길 바란다는 말은, 제가 그동안 배우며 습득한 것을 모조리 모아 불태운 것 같기 때문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 것 같았습니다. 흥행에 대해서는 많이 부담스럽죠. 그래도 제가 욕심낸 대본이고 캐릭터이기에 그 부분은 제가 안고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리얼>은 그동안 김수현이 쌓아온 이미지를 180도 바꿀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전라 노출, 설리(본명 최진리)와의 베드신 등은 영화 개봉 전부터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김수현은 설리뿐만 아니라 이성민 앞에서도 셔츠를 과감하게 벗어버리고 바지와 팬티까지 내린다. 김수현은 “설리와의 베드신보다 이성민 선배님 앞에서의 노출이 더 힘들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대선배 앞에서 옷을 벗는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

“지인들이 특별히 그 장면을 걱정했다기보다는 ‘너 19금도 해?’ 이런 반응이었어요. ‘도전을 해보게 됐다’고 답했는데, 세세하게 따졌을 때는 무척 어렵고 낯설고 긴장되는 작업인 것도 사실이지만 굉장히 즐거운 작업이었죠. 베드신이 부담스러웠던 이유는 하나예요. 몸매가 그대로 노출된다는 거였죠. 식단 관리가 필수였어요. 촬영을 시작했는데 저와 설리 씨 둘 다 배에 힘을 너무 많이 줘서 정작 대사가 안 나오더라고요. 숨을 참고 대사를 하다 NG를 많이 냈고 또 힘을 배에 주다 보니 모기 소리가 나오기도 했죠.”

설리와의 호흡이 궁금했다. SNS에서 자신만의 취향을 드러내며 연일 화제가 되는 그녀의 행보에 김수현은 ‘몰랐다’는 눈치다.

“설리 씨는 워낙 에너지가 넘치기 때문에 배우들뿐 아니라 스태프들 사이에서도 시너지 효과를 내는 데 큰 역할을 했어요. 촬영할 땐 모르다가 촬영이 다 끝나고 SNS를 지켜봤는데 그녀의 행보에 깜짝 놀랐죠. 그야말로 너무 핫하지 않나요? 캐스팅 단계부터 열정적으로 달려들었는데 덕분에 제가 자극을 받아 고맙기도 했죠. 자기가 궁금한 게 있거나 막히는 게 있으면 담아두지 않는 스타일이라 대화가 잘됐어요. 촬영 전까지 전혀 모르는 사이였는데 외모도 예쁘지만 목소리가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서른 즈음에 만난 <리얼>을 통해 얻은 게 무엇일지 궁금했다.

“우선 연기하는 것 자체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그 기대감에 비례하는 부담감은 평생 있을 것 같습니다. <리얼>을 통해 배운 게 있다면 가면극의 매력을 알게 된 것 같아요. 가면을 쓰고 연기했을 때 더욱 과감해질 수 있고 에너지가 커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김수현은 <리얼>의 크랭크 업 후 홀로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일본 북해도를 다녀왔다는 그는 “기차를 원 없이 탔다”며 “북해도가 생각보다 컸다. 삿포로처럼 유명한 곳이 아니면 조용했다. 기차를 타고 넋 놓고 창밖 풍경을 보면서 <리얼>을 보내줬다”라고 말했다.

“저는 캐릭터를 설계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외로움을 많이 타는 편이에요.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런 감정이 곱하기 5로 더 크게 다가왔었죠. 어쩌면 외로움이나 육체적 고통까지도 기대하고 영화에 들어갔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작품을 다 마쳤을 때 저 스스로에게 큰 위로를 보냈고, 그 방법 중 하나가 여행이었어요. 그곳에서 저를 들여다볼 수 있었고 <리얼>을 떠나 보내줄 수 있었죠.”

30대를 맞은 김수현이 그리는 <리얼> 그 후는 어떤 그림일까?

“아직 구체적으로 계획을 짜두진 않았지만 이제부터는 30대의 연기를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타이밍이 맞는다면 내년 봄 입대를 하기 전에 작품 한 편을 더 하는 상상을 하고 있습니다. 30대가 된 소감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기대는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좀 더 선이 굵어진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생기고요.”

<은밀하게 위대하게>로 인터뷰할 당시 김수현은 “겁을 잔뜩 먹고 안으로 계속 가라앉게 된다”라고 말했다.

“조심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인해, 나라는 사람이 비밀이 돼가면서, 많이 위축되고 작아지는 것 같다”는 의미였다. 4년이 지난 지금 김수현은 그때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서른이 된 지 이제 6개월 차입니다. 눈으로 보이는 큰 변화는 분명 아무것도 없는데, 앞에 숫자 하나가 바뀐 정도인데, 움츠러드는 ‘나’가 많이 사라졌어요. 이전에는 ‘배우 김수현’과 비교하며 ‘난 필요 없나?’ ‘인간 김수현이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아닌가?’라는 생각에 망가지고 부서지고 조각나는 기분이 늘 함께했어요. 그러다가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닌데… 아, <리얼>이 계기일 수도 있겠네요. 시기적으로 <리얼>이 끝났고 해가 바뀌면서 배우 김수현과 인간 김수현 사이의 간극이 많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어렴풋이나마 가까워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망가지고 부서지고 조각나는 기분이 들었던 20대 때와는 확실히 달라진 느낌이다.

“올해 들어 좀 더 저 자신을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불행이라는 게 가까이에서 볼 때는 너무 아프고 너무나 큰데, 멀리서 보면 다르잖아요. 나만의 문제가 아닌 게 있더라고요. 서른 살이라는 걸 아주 잘 자각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나이에 크게 연연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극복하는 과정이 시작된 느낌이 서른이라는 타이밍에 오더라’라는 이야기를 나중에 동생들에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느 연예인들이 그렇듯 김수현도 서른을 꽉 채워 군 복무를 예정하고 있다. 보통 남자들은 군 입대를 앞두고 휴학을 하거나 여행을 다녀오는 등 휴식을 취하지만 김수현은 달랐다.

그는 “타이밍이 맞는다면 입대 전에 작품를 하나 더 하고 싶다”라면서 “아마 늦어도 내년 봄 이전에 입대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타이밍이 맞지 않는다면 그냥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려고요.(웃음) 만약에 맞는다면, <리얼>이 남자한테 남자다운 면을 어필한 작품이잖아요. 이번에는 여자한테 남자다운 면모를 보일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습니다.”

전성기에 입대하는 아쉬움이 있지는 않을까?

“<별에서 온 그대> 이후 전성기는 지나갔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말하면 속상해할 팬분들도 있겠지만 사실인걸요. 지나간 건 지나간 대로 보내주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또 다른 전성기가 오겠죠. 제가 표현하는 색깔에 좀 더 여유가 묻어나는 시점이 제 전성기가 아닐까 싶어요. 여유가 생기면 마음이 망가지는 일도 없을 테니까 목표로 하는 것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저도 제가 만들 또 다른 미래가 기대되고 궁금합니다.”

김수현의 목표는 간결했고, 확고했다. 신뢰받을 수 있는 배우, 믿고 보는 배우가 되는 것.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를 어떻게 단련시킬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이렇듯 김수현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잘 아는 배우였다.

“연기하는 입장에서 1번은 무조건 저입니다. 제가 편해야 연기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연기를 밖으로 재생시킴으로써 스스로 만족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러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유연하고 매끄러워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영리해지기 위해 스스로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죠.”

쏟아지는 박수갈채 속에서 행복해하던 김수현은 채찍질을 맞으며 단단해지고 있다. 김수현의 서른은 이렇듯 뜨겁다.

CREDIT INFO
취재
권혁기(<더팩트> 기자)
사진
셔터스톡, 서울문화사 DB, 영화 <써니> 스틸 컷, 코브픽쳐스, J엔터테인먼트
2017년 08월호
2017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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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기(<더팩트> 기자)
사진
셔터스톡, 서울문화사 DB, 영화 <써니> 스틸 컷, 코브픽쳐스, 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