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화는 걸 그룹 ‘시크릿’ 멤버 출신이다. 2년 전 계약 만료 시점에서 다른 멤버들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 “배우가 되겠다”고 선언하고 홀로 탈퇴했지만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오디션에서 낙방하기를 여러 차례. 기회가 주어진 건 2년 만인 올해 초다. 우여곡절 끝에 <자체발광 오피스>에 캐스팅됐고, 지금은 곧 방송될 <학교 2017>의 촬영을 앞두고 있다.
<학교 2017>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 불과 며칠 만에 만난 한선화는 <자체발광 오피스>를 마친 후 잠깐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녀는 톡톡 튀는 매력 속에 알 수 없는 묘한 분위기가 공존했다. 야리야리한 외모와는 다르게 털털했고 친근했다. 누구에게나 따뜻한 말을 먼저 건네는 ‘착한 사람’.
무엇보다 카메라 앞에서는 눈빛부터 달라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근성, 착실함, 세심함까지. 한선화는 영민한 신인 배우였다.
요즘 어떻게 지내요?
얼마 전 <자체발광 오피스> 촬영을 마쳤어요. 곧 <학교 2017> 촬영을 시작해야 하니까 동네 카페에서 대본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게 요즘 제 일상이랍니다. 혼자 커피 마시고, 대본 연구하고, 음악 듣고…. ‘스쿨 폴리스’라 불리는 학교 전담 경찰관 역할을 맡았는데, 소소한 액션도 있고 제복도 입어야 하니까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자체발광 오피스>는 어땠나요?
이동휘 선배님과 재미있게 촬영했던 기억이 오래 남아요.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전반적으론 만족스러워요. 촬영하면서 너무 행복했어요. 연출하신 감독님이 예전에 출연했던 <장미빛 연인들> B팀 감독님이셨는데, 이번 작품이 입봉작이라 더 기뻤죠. 평소 뵙기 어려운 선배님들과 작업해서 좋았고, 분위기도 화기애애해서 더 좋았어요. 촬영이 끝나고 감독님께 ‘저를 캐스팅한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까 나중에 문자로 ‘그냥 너는 잘할 것 아니까 뽑았다’라고 하셨는데, 그동안 마음고생을 보상 받은 것 같아 좋았어요. 이 기운이 다음 작품까지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러고 보니 작품을 연달아 하게 됐네요?
이렇게 바로 캐스팅될 줄 몰랐어요. 좋은 기회를 주신 분들께 너무 감사해요. ‘열심히’ ‘잘’ 해볼 거예요! ‘시크릿’ 탈퇴 후 지난 2년간 이렇다 할 활동이 없었기 때문에 당분간은 바쁘게 활동하고 싶어 욕심을 부려보려고요.
공백기가 꽤 길었어요.
빨리 활동하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슬럼프 기간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 자신에 대해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어요. 그동안 제 위주의 삶을 살았는데, 다른 사람들의 인생도 한번 엿보곤 했죠. 또 언제 이런 시간이 올지 모르니 이 순간을 즐기자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충실히 보냈어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이 무사히 잘 지나가서 다행이에요. 그 시간들이 다 <자체발광 오피스> 연기에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연기는 재미있어요?
그럼요! 제가 이것저것 도전하는 걸 되게 좋아해요. 연기를 하면서 이런 캐릭터, 저런 캐릭터 다 해볼 수 있으니까 신나요. 물론 그만큼 어렵기도 하지만 어려운 만큼 또 재미도 있으니까 견딜 수 있죠. 대본 연구할 때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할 때가 가장 신나고 행복해요. 이것저것 많이 해볼 거예요. 영화도 해보고 연극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일일드라마, 미니시리즈, 주말드라마 가리지 않고 할 거예요. ‘다작 배우’가 꿈이거든요. 그게 요즘 트렌드이기도 하고요.(웃음)
가수로 활동할 때보다 더 신나 보여요.
그땐 너무 어려서 즐기면서 일하는 법을 몰랐던 것 같아요. 제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쳇바퀴 돌 듯 무대에 올랐죠. 저한테 이런 모습도 있고 저런 모습도 있다는 걸 보여드릴 수 있는 무대가 한정적이었어요. 지금은 그때와 환경도 달라졌고 경험도 많이 쌓였기 때문에 한결 여유로워졌어요. 무엇보다 저의 진지한 모습, 엉뚱한 모습, 발랄한 모습을 모두 보여드릴 수 있어서 좋아요. 데뷔 초 스무 살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어요. 그만큼 에너지가 넘친다는 거겠죠?
‘시크릿’ 탈퇴는 의외였어요. 그런 선택을 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설명하기가 참 애매한데… 그냥 하고 싶은 일이 연기였어요. 특별한 계기는 없어요. 사람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 어떤 선택을 하지는 않잖아요.
그 시기에 저를 둘러싸고 있던 환경, 배경 등이 배우를 선택하게끔 만들었죠. 돌이켜보면 운명 같아요.
운명이라…?
제가 가수였다가 연기를 하게 된 것도 뭔가 이끌림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운명적인 선택이었죠. 물론 운도 좋았고요. 지금 이 회사를 만난 것도, 이적 시기도, 어느 것 하나 거칠 것 없이 잘 들어맞았어요. 직업 특성상 특별해 보이는 것뿐이지 사실 따지고 보면 직장인들이 직장을 바꾼 것과 비슷한 거예요. 사람 사는 건 다 비슷비슷하니까요. 저도 물 흐르는 대로 사는 평범한 사람이거든요.
잘한 선택일까요?
아직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선택에 의문을 가질 수는 없죠.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인걸요. 한 가지 분명한 건 후회하지 않을 자신은 있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스스로 응원하면서 꿋꿋하게 해낼 거거든요.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연기하는 저를 한선화가 아니라 드라마 속 캐릭터로만 평가받았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르는 사람들에게 평가받는 기분은 어떤가요?
예전의 제 모습을 보시고 ‘배우병에 걸렸다’는 댓글도 있고, ‘이제 와서 배우인 척하느냐’는 댓글도 있었어요. 전혀 신경 안 쓰인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연연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처음보단 무뎌진 것 같아요. 저를 어떻게 보느냐는 개인 취향이고 각자의 판단이니까 그것까지는 뭐라고 할 수 없죠. 좋게 봐주시면 감사한 거고, 나쁘게 보셔도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사실 이제는 그런 평가가 일상이 되어버렸어요. 말 한마디에 상처받기도 하고, 또 무뎌지고, 그냥 감수하고…. 주어진 일에 몰입하다 보면 또 금세 잊히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선입견은 제가 감당하고 넘어야 할 산이라는 걸 잘 알아요. 그걸 깨려면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요.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면 안 좋은 평가도 좋아지지 않을까요?
씩씩해 보여서 좋아요.
알고 보면 한없이 여린 여자랍니다.(웃음) 겉으로는 발랄하고 활발해 보여도 내성적이고 소심한 면이 있어요. 나름대로 진중한 면도 있고요. 어떨 때는 끝도 없이 진지해지죠. 생각이 많고 걱정이 앞서는 스타일이에요. ‘이때 이렇게 했어야 했나?’ ‘앞으론 어떻게 해야 하지?’ 싶은 생각이 저를 괴롭힐 때가 많아요. 피곤한 성격이죠.
연예인 하기엔 힘든 성격이네요.
쿨하게 받아들이고 넘어갈 수 있는 것도 ‘내 편은 없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힘들어했죠. 연예인이라는 직업 때문에 소심한 성격을 드러낼 수도 없고요. 저도 이런 제 성격이 힘들지만 이제는 받아들이려고 해요. 한없이 다운되는 성격이 연기할 때는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예를 들면 그냥 지나가도 되는데 불안한 마음에 대본을 한 번이라도 더 보게 되고, 그냥 자면 되는데 자책감이 들어 일어나서 또 대본 보고, 계속 캐릭터를 생각하다 보니 일상 속에서 아이디어가 번뜩 떠오를 때도 있어요.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파고드는 성격이 연기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있는 그대로의 저를 사랑해요.
한선화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뭔가요?
저요! 제가 속해 있는 환경이나 상황, 사람 때문에 힘든 것도 있지만 제 자신을 자꾸 힘들게 하는 저 때문에 가장 힘들어요. 답은 안 나는데 스스로 자책하고, 또 해결책은 없고, 그게 전부 내 탓 같고…. 악순환이 계속되는 거죠. 그런 생각이 들 때 가장 고통스러운데 그냥 저를 내버려둔 상태로 시간을 보내면 극복되곤 하더라고요.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냥 가만히 있는 거죠. 이 나이면 위기나 난관을 스스로 헤쳐 나갈 줄도 알아야 하는데…. 아직은 좀 철이 없어요.(웃음)
아무래도 가정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겠죠?
제가 큰딸이에요.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는데 어려서부터 늘 동생들을 챙겨야 했어요. 겉으론 편해 보여도 속으로는 챙겨야 할 게 많았거든요. 여동생, 남동생, 엄마, 아빠, 그리고 저 자신까지요.(웃음) 생각해보면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혼자서 끙끙 앓았던 날이 많았어요.
가족에겐 어떤 딸, 언니, 누나인가요?
안쓰러운 딸이에요. 일이 너무 힘드니까 마냥 좋아하기만 하시지는 않아요. 물론 혼자서도 잘 해내는 모습을 보고 뿌듯해하시지만 늘 걱정을 하시죠. 동생들과는 서로 관심 없는 사이?(웃음) 스무살 때 홀로 상경해 그 후 동생들과 공유한 기억이 별로 없어요. 늘 바쁜 언니, 누나였죠. 제가 연예인이라고 친구들한테 자랑하는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그냥 서로에게 무덤덤해요.
남동생이 아이돌 가수 ‘빅톤’의 멤버 한승우 씨죠?
동생이 처음 아이돌 가수가 되겠다고 했을 때, 워낙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누나로서 걱정이 많았어요. 내가 겪은 것을 동생도 겪는다고 생각하니 한숨만 나오더라고요. 하지만 지금 잘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돼요. 요즘엔 저보다 더 바쁘다니까요.(웃음)
뭐 좋아해요?
서점 가는 거 좋아해요. 서점에 가면 마음이 편해져요. 모두 똑같은 일을 하고 있잖아요. 외롭지도 않고, 가만히 있어도 눈치 안 보이고. 친한 친구한테도 고민을 털어놓지 않는 편이라 책에서 위안을 많이 얻어요. 이병률 작가님, 이석원 작가님, 노희경 작가님이 쓴 산문집을 좋아해요. 그분들만의 감성이 있거든요. 약간 늙었다고 해야 하나? 홍시처럼 푹 익은 감성이죠. 절대 가볍지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도 않은. 정곡을 찌르는 스타일의 글이 왠지 제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서 좋아요.
영화 감성은 어때요?
집에서 혼자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데 공포 영화는 힘들어요.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는 소장해두고 마음에 안정을 찾고 싶을 때마다 보고 있고요. <감시자들>도 재미있어서 자주 보는 작품 중 하나예요. 김민희·이민기 선배님이 출연한 <연애의 온도>는 현실적인 남녀 관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라 좋아해요. 최근엔 <로스트 인 파리>를 봤는데, 독특한 설정과 전개가 재미있었어요. 시간 나면 꼭 한 번 보세요.
문화생활을 그렇게 많이 즐기는 줄은 몰랐어요.
사실 저도 많이 변했어요. 가수일 때는 너무 바빠서 무슨 영화가 개봉했는지도 모르고 살았거든요. 요즘엔 연기를 위해서라도 챙겨 보려고 해요. 캐릭터에 도움이 되는 소스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서 종종 미술관에도 간답니다.(웃음) 이런 제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의외’래요. 쉴 땐 술 마시며 놀 줄 알았나 봐요.(웃음)
여행은 좋아해요?
좋아는 하는데 자주 가는 편은 아니에요. 마음 같지가 않네요.(웃음) 최근에 혼자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어요. 그동안은 혼자서 어디를 가는 걸 무서워했는데, 친구들과 여행할 때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여유롭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몸소 느끼고 왔어요. 서른 되기 전에 혼자 유럽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죠.
친구들에겐 어떤 친구예요?
가수 생활, 배우 생활을 하면서 친했던 친구들과도 멀어졌어요. 각자 생활이 달라지고 사는 세계가 달라지니까 어쩔 수 없더라고요. 저는 제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친구들이 볼 땐 제가 특별한 존재였던 거죠. 그래도 친구라는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돼요.
친하게 지내는 연예인은 없어요?
그동안 또래보다 선배들과 작업한 시간이 많았어요. 그래서인지 특별히 친하게 지내는 연예인은 없어요. 함께 작품을 했던 분들과 꾸준히 연락하고 지내는 정도? 선배님들한테는 예쁨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되게 감사해요. 친구들은 공감하지 못하는 고민을 털어놓기도 해요. 드라마 <연애 말고 결혼> 촬영 당시, 그러니까 한창 고민 많은 스물세 살에 김해숙 선배님과 단둘이 차 안에서 몇 시간 동안 연기했던 적이 있어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어려워하고 고민이 많던 때인데 선배님이 “누구나 그런 순간을 겪는다”라고 조언해주셨어요. 그 말씀에 어찌나 힘이 나던지요. 아직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어요.
남자친구에겐 어떤 여자친구인가요?
그러게요. 저는 어떤 여자친구일까요? 거짓말하거나 눈치를 주는 스타일은 아닌데…. 순간순간 감정에 솔직한 것 같기는 해요. 표현도 잘하고, 질투도 잘하고.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면 늘 제가 너무 부족한 사람같이 느껴져요. 함께하는 순간에는 사랑을 나누고, 싸우고, 지지고 볶는데, 모든 게 종료되고 난 후에는 모든 게 내 탓 같죠. 저는 사랑을 하면 안 되나 봐요.(웃음) 연애가 연기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최근 몇 년 동안 남자친구가 없었네요. 당분간은 연애와 거리를 두려고 해요.
언젠가는 연애도, 결혼도 하겠죠.
일하는 게 재미있으니 연애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해봤어요. 중요한 건 연예인은 싫다는 거예요. 감정 소모가 많은 저와는 전혀 다른 일을 하는 분이면 좋겠어요. 대신 책이나 영화에 대한 감성은 비슷해야 해요. 수다 코드도 맞아야 하고요. 연하는 싫어요. 제가 아직 어리니까 저를 다독이며 이끌어줄 수 있는 오빠가 좋아요.
한선화의 서른은 어떤 모습일까요?
어렸을 땐 빨리 서른이 되고 싶었어요. 서른이 되면 뭔가 좀 안정적이고 더 똑똑해질 줄 알았죠. 근데 2년 후면 서른이네요. 특별히 달라지진 않을 거 같아요. 바라는 게 있다면 지금보다 여유로운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모든 게 아름다워 보이는 그런 여유요. 그러려면 지금 바쁘게 보내야겠죠? 무엇보다 저 자신을 깨보고 싶어요. 저도 제가 궁금하거든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