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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삼성가

이건희 동영상과 이재용·홍라희 모자 불화설, ‘이부진 역할론’ 대두까지, 사면초가에 빠진 삼성가 사람들.

On April 0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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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루로 그룹의 심장부였던 미래전략실이 해체되고 이재용 부회장이 특검 수사로 구속되자, 삼성이 큰 충격에 휩싸였다. 이 과정에서 이재용 부회장과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의 불화설이 터지면서 그룹 내 후계 경영권을 둘러싼 각종 소문들까지 나돌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수년째 병상에 누워 있는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동영상 파문을 CJ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삼성은 그야말로 뒤숭숭한 분위기다.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불화설이나 경영권 다툼 등은 사실 무근이란 입장을 밝혔지만, 경영권 재편설과 함께 과거 삼성과 CJ 간의 상속 분쟁 등 오랜 갈등이 다시 불거질 조짐이 겹치며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이른바 ‘이건희 동영상’은 지난해 처음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누군가 몰래 촬영한 이 영상에는 이 회장이 다수의 여성과 성매매한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조사부는 영상 촬영을 주도한 건 다름 아닌 CJ그룹 부장 선 모 씨로, 공모자인 지인 이 씨와 선 씨의 친동생 등을 각각 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카메라 등 촬영)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했다.

이에 검찰은 지난 3월 13일 CJ헬로비전과 대한통운 등 계열사 4곳을 압수 수색하고 동영상 촬영자가 삼성으로부터 2억원 이상을 받은 정황을 포착했다. 선 씨는 공범과 함께 이 회장의 성매매 현장을 몰래 찍은 뒤, 이를 미끼로 돈을 뜯어내려 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삼성그룹은 이들에게 5억원 안팎의 거액을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 같은 사실을 근거로 동영상 촬영에 CJ그룹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정황을 주시하고 있다. 범행에 쓰인 자금과 들인 시간을 고려하면, 개인의 범죄로만 보기에는 석연찮은 부분이 많다는 판단이다.

특히 동영상 촬영 시기가 이건희 회장과 친형인 이맹희 CJ 명예회장 사이에 상속 분쟁이 일어난 시점과 일치하며, 수년간 집요하게 범행을 시도한 점과 선 씨가 CJ 측에도 동영상을 미끼로 금품을 요구하는 등 협박을 했음에도 최근까지 회사에 근무한 점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무엇보다도 CJ 이재현 회장의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이 회장의 최측근 인사가 선 모 전 CJ그룹 부장과 이메일을 지속적으로 주고받은 정황을 검찰이 포착, 수사가 이어지면서 그룹 차원의 개입이 크게 의심되는 상황이다.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동영상 문제로 삼성과 CJ의 오랜 갈등으로 인한 악연이 재조명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CJ가 상속 분쟁 방어용 차원에서 이건희 회장의 동영상을 확보해놓았으나 관계가 개선돼 필요 없어지자 동영상 촬영자들이 동영상을 미끼로 삼성과 CJ에게서 돈을 챙기려 한 것 아니냐는 말도 흘러나오고 있다. CJ는 그룹 차원의 조직적인 개입이 아닌 개인적 차원의 일탈 행위라고 일축하고 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동영상은 두 그룹이 대한통운 인수로 갈등을 빚었던 2011년부터 ‘이맹희-이건희’ 형제 간 상속 재산을 두고 소송을 벌인 2013년 6월 사이에 5차례에 걸쳐 촬영됐다.

과거 이건희 회장은 당시 옆집에 살았던 조카 이재현 회장 집을 CCTV로 감시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에 일부에선 이건희 회장 동영상 파문으로 삼성과 CJ 간의 해묵은 갈등이 다시 고개를 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이건희 동영상이 재조명되는 까닭은 비단 CJ와의 갈등 때문만은 아니다.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새로운 후계자로서 수순을 밟던 이재용 부회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깊게 연루된 혐의로 구속 기소되는 등 삼성의 후계 구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홍라희 전 관장은 이재용 부회장 구속 후 동생인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 “가슴이 찢어진다”는 아픈 심경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지며, 이는 최근 불거진 ‘홍라희·이재용 모자 불화설’을 부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난 3월 8일 홍라희 전 관장이 삼성미술관 리움과 호암미술관 관장직에서 전격 사퇴하며 다시 한번 불화설에 불을 지폈다.

삼성 측은 홍 관장의 사퇴가 일신상의 이유라고 밝혔지만 후임이 미정일 정도로 전격적이어서 사퇴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이번 사퇴가 이 부회장의 구속 수감과 삼성그룹 해체에 따른 경영 우려에 대한 정신적 부담 때문이라고 알려졌지만, 이를 두고 홍 전 관장이 이재용 없는 삼성의 경영 전면으로 나서거나 이부진 사장에게 힘을 실어줘 후계 구도 재편에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말들이 무성했다. 일각에선 이재용 측이 홍 전 관장을 견제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관장직을 사퇴시켰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지난 3월 16일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된 지 한달만에 홍라희 전 관장과 이부진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등 가족이 찾아가 면회를 하자, 이른바 ‘모자 불화설’이 크게 퍼지기도 했다. 일반적인 가족 관계에선 한 달 만의 면회가 의아하다는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홍라희·이재용 모자 불화설’은 “최순실 씨가 홍 전 관장이 이재용 부회장보다 이부진 사장을 추켜세우는 발언을 했다”는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의 주장이 주목받으면서 불거졌다. 막상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자, 삼성전자의 주식은 곤두박질쳤으며, 이부진 사장의 호텔신라 주가는 연일 급등세를 보였다. 여기에 과거 이건희 회장과 홍라희 전 관장의 총애를 받았던 이부진 사장이 특검 조사로 인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공백을 대신하며 이 부회장 체제의 그룹 경영 구도가 이 사장 체제로 재편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마저 쏟아졌다.

이부진이 이재용의 공백을 메울 적임자라는 미국 블룸버그 통신의 ‘이부진 역할론’ 기사가 보도되며 삼성 그룹 경영 재편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블룸버그 통신의 보도 내용은 3년째 병상에 있는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삼성그룹을 이끌던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공백이 현실화될 경우 이부진 사장이 그룹 경영 중심에 나설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장은 삼성가 3세 중에서 이건희 회장과 외모뿐만이 아닌 성격, 경영 스타일, 승부사적 기질까지 가장 닮아 ‘리틀 이건희’로 불렸다. 실제로 2011년 2월 호텔신라 사장에 취임한 후 강력한 사업 추진력이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반면 이 부회장의 경영 공백이 생기더라도 이 사장이 그룹을 이끌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과거 2008년 삼성특검으로 이건희 회장이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도 사장단협의회를 가동해 계열사별 최고경영자 중심의 독자경영으로 비상경영을 공조했던 것으로 봐 전문경영인 중심의 비상경영 체제가 당분간 유지될 것이란 관측이다.

또한 이 사장은 호텔신라 경영 외엔 전자, 금융 등의 사업 경험이 전무한 데다 삼성전자 등 주력 계열사 지분이 없고, 삼성물산과 삼성SDS 지분 보유도 미진한 상태다. 당장은 이 사장 중심의 경영엔 한계가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 사장 역시 오빠인 이 부회장과의 경쟁 구도가 불편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홍 전 관장 또한 삼성 경영 실권을 쥘 것이란 보도에 극구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이 사장 중심의 삼성그룹 후계 경쟁이 재점화될 가능성에 대해선 선뜻 단정 짓지 못하고 있다.

홍 전 관장은 삼성가의 안주인으로서 삼성의 최대 위기를 다잡기 위해 경영 내조에만 전념할 가능성도 높다. 이건희 회장 등 과거 삼성의 권력 승계 과정을 보면 현재는 그룹의 후계가 누가 될지 확신하기 어렵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장남인 이맹희 회장 대신 이건희 회장을 후계자로 선택했듯이 말이다. 이맹희 회장은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제일제당, 신세계, 제일모직 등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의 부사장까지 지냈고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이병철 창업주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자 잠시 삼성그룹의 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러다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며 이병철 회장의 눈 밖에 나 후계자 구도에서 밀려났다. 이건희 회장과 홍라희 전 관장의 지분 승계가 끝나지 않은 지금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 향방이 결정될 때까지, 이건희 동영상 파문을 비롯한 모자 불화설 및 남매 후계 공방 등 삼성의 경영권 다툼의 불씨는 여전하다. 여기에 삼성 등 재벌 후계 승계에 대한 국민의 불편한 시선과 함께 차기 정권과의 관계도 무시할 수 없어 후계 구도를 둘러싼 삼성의 고심은 더 깊어질 전망이다.

CREDIT INFO
기획
하은정 기자
취재
서동철(<일요신문> 기자)
일러스트
배선아
2017년 04월호
2017년 04월호
기획
하은정 기자
취재
서동철(<일요신문> 기자)
일러스트
배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