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불어라 미풍아>의 탈북녀 ‘미풍’이가 아니다. 온갖 풍파를 이겨내야 했던 짠 내 나는 ‘미풍’이는 더더욱 없다. 촬영장에서 만난 임지연은 등장부터 시끌벅적 요란한 여느 여배우와는 달랐다. 차분하고 조용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을 걸면 그제야 수줍은 듯 미소를 보이고 “예쁘다”는 칭찬에 “쑥스럽다”며 금세 자리를 피하는, 평소의 임지연은 자기를 표현하는데 익숙해보이지 않았다.
임지연은 카메라 앞에 섰을 때 비로소 여배우가 됐다. 특별한 디렉션 없이도 멋진 포즈를 취했다. 카메라 앞에서 완벽한 피사체가 돼준 그녀는 스스로 여배우라는 걸 증명했다.
카메라 앞에서 집중력이 대단해요.
어렸을 땐 찍히는 것보다 찍는 걸 더 좋아했어요. 그러다가 구도나 분위기를 사진 한 장에 담아내는 게 어려워 찍히는 쪽을 선택했죠. 포즈를 취하고 표정을 연구하는 게 재미있어서 친구들에게 매번 “사진 좀 찍어달라”고 했어요.
사진을 배워볼 생각은 없었어요?
해봤죠. 포토그래퍼는 멋있는 직업인 것 같아요. 사진에 관심은 많은데 재능이 없다는 걸 알기에 감히 도전하지 못했어요. 무엇보다 연기가 가장 재미있기 때문에 다른 건 생각을 해보지 않았죠.
조용한 성격은 의외였어요.
낯가림이 심해요. 어렸을 땐 더 심했죠. 연기자라는 게 자신을 표현해야 하는 직업인 데다,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나다 보니 그나마 외향적으로 바뀌긴 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처음 보는 사람이 있으면 어색해요. 그래서인지 도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그래도 친구들과 있을 땐 수다스러워요. 알고 보면 털털하고 활발한 성격이에요.
어떤 사람들 앞에서 편해지나요?
성향이 맞아야 해요. 가식적인 사람은 싫어요. 대화가 통하고 코드가 맞는 사람과는 몇 시간이고 수다 떨 수 있어요.
남자와 여자, 어느 쪽이 더 편한가요?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하는데, 저는 여자들이 더 편해요. 그중에서도 저보다 나이 많은 언니들과 가깝게 지내죠. 6살 많은 친언니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불어라 미풍아>에서 제 어머니 역할로 나온 이일화 선배님, 황보라 언니와도 많이 친해졌어요. 유난히 여배우가 많은 드라마였는데, 전 오히려 그게 좋았어요. 남자도 연상이 좋아요. 동생보다는 오빠나 형님이 편하죠. 그러고 보니 그동안 만난 사람들 모두 연상이었네요.(웃음)
<불어라 미풍아>에서 탈북녀 역할을 연기하는 건 어땠나요?
북한 사투리를 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어요. 힘들었던 건 50부작을 이끌고 가야 하는데 체력적인 한계가 있었죠. 감정 신도 많아서 에너지 소모가 컸어요. 열정은 가득한데 몸이 안 따라주니까 많이 힘들더라고요.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 중 어느 것 하나 쉬운 작품이 없었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작품이 있다면요?
영화 <간신>요. ‘연산’에게 복수의 마음을 품은 캐릭터였는데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야 했죠. 어두운 역사를 담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심리적으로 힘들었고, 노출 장면에서는 고민이 많았어요. 결과적으론 그 작품을 통해 많이 성숙했죠. 내적으로 많이 단단해졌다는 걸 느꼈거든요. 그전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하얀 도화지 상태였다면 <간신> 이후로 연기의 맛을 좀 더 알게 됐죠.
다음 작품에선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밝고 행복한 여자 캐릭터를 하고 싶어요. 로맨틱 코미디도 좋고요. 반대로 악역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제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순한 것 같은데, 또 어떤 모습에선 센 이미지도 보인대요. 어떤 캐릭터든 안 해본 것에 도전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요.
연예 정보 프로그램의 MC를 맡은 것도 도전의 연장선인가요?
처음에는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부담감이 많았어요. MC를 맡거나 사회를 보는 건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요. 2년 정도 하다 보니 깡이 세졌네요.(웃음) 생방송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졌고 순발력도 좋아졌어요. 지금은 매주 일요일마다 출근하는 기분이에요.
원래 꿈이 연예인이었나요?
장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중학교 때부터 막연히 ‘연기가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공연과 뮤지컬을 좋아하는 엄마를 따라다니며 영향을 받았죠. 아빠는 연기자의 길을 반대하셨어요. 집안에 예체능 쪽 사람이 한 명도 없어 거부감이 있으셨나 봐요. 예고에 진학하겠다고 했을 때 많이 혼났죠.(웃음) 지금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지지해주는 분이 아빠지만요.
배우가 되고 보니 어떤가요?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배우요? 장단점이 있죠. 캐릭터를 통해 다양한 삶을 살아볼 수 있다는 건 장점이고, 유명해지면서 생기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건 단점인 것 같고. 일반인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잖아요. 그런데 장점이 단점을 희석해줘요. 힘들지만 즐겁고, 지치지만 보람된 일이죠.
가족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내일 떠나요! 드라마 하면서 고갈된 체력도 보충하고 그동안 소홀했던 가족과 추억도 쌓을 겸 태국 여행을 계획했어요. 엄마, 아빠, 언니, 조카, 그리고 저. 이렇게 온 가족이 총출동합니다. 중요한 건 여행비용을 제가 다 낸다는 거예요.(웃음) 가족들에게 제가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부모님에게 살가운 딸인가 봐요.
연애할 땐 애교 만점인데 부모님에게는 그렇지 못해요. 서로에 대한 애정 표현이 서툴죠. 스케줄 마치고 집에 가면 괜히 툴툴 거리고 말 한마디도 따뜻하게 못하는 무뚝뚝한 딸이에요.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표현하려고 해요.
곧 서른이에요. 어떤 서른 살을 맞고 싶나요?
서른이 되는 걸 무서워하지 않는 서른 살요! 20대라서, 나이가 어려서 가능했던 것들이 30대에 접어들면 용서되지 않을 수 있잖아요. 서른 살의 여배우에게는 더더욱 그렇죠. 스스로에게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부담이 있어요. 그런데 그 부담감을 두려워하지 않는 서른을 맞고 싶어요.
완벽한 서른을 맞이하기 위해 올 한 해를 알차게 보내야겠네요.
일단 잘 쉴 거예요. 그동안 못 만났던 주변 사람들도 챙길 거고요. 그리고 좋은 작품을 만나 즐겁게 연기하는 게 올해 목표예요. 물론 연애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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