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은 ‘패셔너블하고 에너제틱한 도시’라는 이미지가 있다. 필자 역시 처음 베를린에 왔을 때 ‘패셔너블한 것’만 찾아다녔고 그런 것만 보고 누리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 도시에서 몇 번의 계절을 흘려보내면서 독일의 여성, 패션, 뷰티, 문화의 ‘진짜’를 보게 됐다.
이곳 여성들은 화장기 없는 맨얼굴로 다닌다.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완벽한 민낯에 가깝다. 유튜브나 SNS를 통해 유행하는 메이크업을 따라 하고, 화사한 옷과 치마로 멋을 부리는 한국의 젊은 여성들과는 다르다. 오히려 화장을 진하게 하는 것을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나 터키 이민자들의 전유물로 여긴다. 화장기 하나 없는 맨얼굴로 당당히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건 어쩌면 양성평등 지수가 높다는 방증이 아닐까. 실제로 여성 인권이 높은 국가일수록, 여자들이 뷰티나 패션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예를 들면 북유럽 국가들과 독일이 이에 해당한다. 베를린에서는 유전적으로 훌쩍 크고 마른 체형에 수수한 얼굴로 백팩과 점퍼를 대충 걸치고 다니는 여성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베를린 여성들이 자신을 가꾸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이들은 한국 여성들과는 조금 다른 포인트에 예민하다. 왁싱과 네일이 바로 그것이다. 왁싱에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공을 들이는데, 눈썹 잔털 관리부터 겨드랑이와 몸, 그리고 최근 한국인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한 브라질리언 왁싱 또한 이곳에서는 필수다. 네일 역시 매우 정성을 들이는 부분인데, 컬러나 아트를 넣는 것보다 각질이나 큐티클 케어, 손톱 관리에 매우 민감하다. 자연스럽고, 청결하고, 단정함이 주는 아름다움이 바로 독일 여자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인데, 필자는 바로 이 지점이 ‘K-뷰티’라고 불리는 한국 뷰티 트렌드와 다른 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여성들은 메이크업으로 얼굴의 단점을 보완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만든다면, 베를린 여성들은 감추지 않고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독일을 대표하는 뷰티 브랜드와도 일맥상통한다. 독일의 유명 드러그스토어 브랜드로는 유세린이나 피지오겔, 세바메드가 대표적인데, 이들 브랜드의 공통된 방향성은 바로 피부 본연의, 원래의 피부와 동일한, 피부에 자극이 없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대표적 멀티 뷰티숍은, ‘데엠(DM)’ 과 ‘로스만(ROSSMAN)’ 이다. 약국 브랜드와 뷰티 브랜드가 한자리에 모인 멀티숍인데 베를린 여성은 물론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메이크업 브랜드들을 구경하는 것도 흥미롭다. 다양한 인종의 외국인이 붐비는 베를린답게 선택할 수 있는 종류와 색채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곳에 들른다면 꼭 사야 하는 ‘꿀템’들이 있는데 당근 오일, 아이오나 치약, 가르니에 클렌징 워터, 플래티넘21 샴푸 등이 그것이다.
베를리너들도 물론 에스테틱을 받는다. 그러나 한국처럼 종류가 다양하거나 정교하진 않다. 이들은 뷰티 관리에 대해 한국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충분히 햇빛을 쐬고, 스트레스를 줄이고, 디톡스를 위해 비타민이 많은 과일과 채소를 섭취하고, 채식을 하는 등 자연 친화적인 식사를 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아름다움을 위한 당연한 방법이라고 여긴다. 가끔은 이런 아날로그식 사고가 고지식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클래식은 영원하지 않은가. 베를리너의 뷰티 트렌드는 클래식하다.
베를린 뷰티의 핵심은 ‘리얼’이다. 화장기 없는 맨얼굴로 거리를 활보하고, 격식 있는 자리에서도 화장만큼은 수수하다. 베를린 여성들은 자연스럽고, 청결하고, 단정함이 주는 아름다움이 진짜 아름다움이라 믿는다.
글쓴이 최미미 씨는…
광고 회사의 기획 작가로 일하다 문득 평론가의 길을 걷고 싶어 모든 것을 접고 지난해부터 베를린에서 유학 중이다. 취미는 베를린의 갤러리 탐방과 흥미로운 상점들을 발견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