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눈빛, 목소리, 손짓이 모두 아름답다
1999년 SBS 드라마 <카이스트>로 데뷔한 지성은 당시 ‘곽태근’이라는 본명으로 활동했다. 잘생긴 외모와 탄탄한 연기력으로 언론과 평단, 시청자의 주목을 받고, 이후 <올인> <애정의 조건>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뉴하트> <대풍수> <비밀> 등의 작품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명실상부 믿고 보는 배우가 됐다. 2015년 방송된 <킬미, 힐미>에서는 7가지 인격을 지닌 ‘차도현’을 연기해 광활한 연기 스펙트럼을 입증했고, 지난해 방송된 <딴따라>에서는 가수 출신 엔터테인먼트사 대표 ‘신석호’ 역을 맡아 만개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쉼 없이 달려온 지성이 또 한 번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이번엔 SBS 드라마 <피고인>이다. 아내와 딸을 죽였다는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남자 ‘박정우’로 시청자와 만나고 있는 것. 드라마는 ‘박정우’의 오열, 분노, 두려움, 혼란 등 휘몰아치는 감정으로 채워졌다. 지성은 탈주하는 장면으로 강렬하게 첫 등장했고 기억을 잃어 절규하는 장면도 압권이었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감정 연기는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명불허전”이라는 평가와 “역시 지성!”이라는 칭찬이 넘쳐난다.
온몸으로 연기하는 지성 덕분에 시청률은 고공 행진 중이다. 14.5%로 출발한 시청률이 8회 만에 20%를 훌쩍 뛰어넘었다. 60분 동안 쉴 틈 없이 휘몰아치는 지성의 연기가 시청자를 압도한 셈이다. 잠시 눈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촘촘하게 짜인 스토리도 그의 연기를 도울 뿐이다.
첫 방송 직후 지성은 소속사를 통해 “아픈 현실에 무겁고 어두운 소재의 드라마여서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많은 분이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다. 모든 제작진과 배우들이 고생한 만큼 감동이 두 배가 되는 것 같다. 기분 좋은 출발로 더욱 힘내서 촬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많은 분이 ‘정우’를 통해 희망을 얻고 끝까지 함께해주셨으면 좋겠다”라고 감사의 인사와 소감을 전했다.
방송 전 기자들과 만난 지성은 가족을 잃은 남자, 진실을 밝히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아빠를 연기하며 평소에도 눈물을 달고 살았을 정도로 ‘박정우’의 감정에 푹 빠져 있다고 밝혔다.
“저도 아내와 딸이 있기 때문에 드라마의 설정과 ‘박정우’의 감정에 몰입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더 끔찍했고 상상하기 싫었습니다. 가족을 잃은 아빠의 처절함을 진정성 있게 표현하기 위해 내 몸을 괴롭히려고 했어요. 스스로 마음을 힘들게 했고 그러다 보니 살이 6kg이나 빠지더라고요. 한동안 눈물을 달고 살았죠.”
드라마 <태양을 삼켜라> <로열패밀리> <비밀> <킬미, 힐미> 등 대부분의 출연작에서 그는 밀도 높은 감정 연기를 소화했다. 변화와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는 직업이라지만, 연이은 감정 연기는 쉽지 않을 터. 지성은 <피고인>을 통해 또 한 번 도전을 시작했다.
“장르물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어요. <피고인>이 살인, 누명 등 불편한 소재여서 고민됐지만 작품의 내용 자체가 가슴에 와 닿았고 ‘내가 해보면 어떨까’ 싶어 도전하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감독님, 작가님 등 훌륭한 스태프가 함께하는 작품이라 믿음이 있었고요. 누명을 쓴 사형수의 이야기를 통해 불안한 시국 속에서 희망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애초에 <피고인>을 흔히 볼 수 있는 법정 수사극 혹은 영웅 투쟁극 정도로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더러는 <피고인>의 성공을 두고 전작 <낭만닥터 김사부>의 후광 효과라고 말한다.
“전작이 높은 시청률로 끝난 건 좋은 거예요.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것도 분명하죠. 그런데 지금까지 연기를 하면서 느낀 건 전작의 성공이 후속작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거예요. 특히 <피고인>은 재미 위주의 이야기가 아니다 보니 전작의 후광을 기대할 게 없죠. 우리에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고 우리만의 이야기에 집중하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요? 소소하고 섬세하게 준비한 드라마를 보여드릴 수 있다는 것에 저도 기대를 하고 있어요.”
언젠가 그는 자신이 꾸릴 가정, 앞으로 보여줄 연기에 대한 기대가 높다고 말했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에서 만난 아내 이보영과 두 번째 삶에 대한 만족감도 크다고 했다. <킬미, 힐미> 촬영장을 찾아 응원하던 아내의 든든한 지원은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킬미, 힐미>를 찍을 당시 팬분들을 촬영장에 초대한 적이 있어요. 5백 명 넘는 팬 앞에서 ‘안요나’를 연기하며 핑크색 교복을 입고 뛰어다녔죠. 하필 그날 아내가 몰래 촬영장에 왔어요. 궁금했나 봐요. 사람들은 다 웃고 즐거워하는데 아내는 마음이 아팠대요. ‘우리 가장이 이렇게 힘들게 돈을 벌고 있구나’ 싶었다면서요. 그 후 대우가 달라졌어요. 도시락도 싸줘요. 이번엔 제가 집에서 아이를 봐야 하기 때문에 대본 리딩에 자주 참여할 수 없었는데, 상대 배우 유리 씨를 집으로 초대해 연기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며 소통했어요.”
‘소녀시대’ 멤버 유리는 극 중 ‘박정우’의 결백을 밝히는 데 힘을 보태는 국선 변호사 ‘서은혜’ 역을 맡아 지성과 호흡을 맞춘다. 유리가 느끼는 선배 지성은 동아줄 같은 존재다.
“바쁜 와중에도 따로 시간을 내서 연기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해주고, 제 캐릭터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주셨죠. 얼마 전에는 집에 초대해 대본 리딩을 도와주셨어요. 전작에서 국선 변호사 캐릭터를 연기했던 (이)보영 언니도 큰 도움을 줬고요. 두 분이 너무 이상적이어서 보기가 좋았어요.”(유리)
<피고인>의 한 관계자도 지성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연기 열정이 드라마 촬영 현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는 전언. 이 관계자는 “오직 상상만으로 표현해야 하는 연기임에도 지성은 정말 ‘박정우’가 된 듯 리얼한 연기로 시청자들을 감정이입하게 만든다. 이 작품을 위해 얼마나 자신을 채찍질했을지, 그의 노고에 매번 감탄하고 있다. 지성은 한계를 뛰어넘는 배우인 것 같다”라고 칭찬했다.
혼란과 아픔, 극한의 분노 등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극세사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지성 덕분에 안방극장은 힐링 중이다.
- 정기구독
- 공지사항
- 편집팀 기사문의 | 광고 제휴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