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생각나는 곳이 있다. 바로 ‘센토(錢湯)’다. 우리나라 동네 목욕탕쯤으로 생각하면 되는데 보통 10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교토스러운’ 공간이다. 진정한 교토인의 삶을 느끼려면 센토를 찾으면 된다.
교토에 처음 와서 집을 구하면서 현지 주민에게 조언을 구했다. 집보다는 지하철역과 센토, 노포(老鋪)들이 있는 곳으로 집을 정하라는 의견이 많았다. 덧붙여 시내보다는 물이 좋은 후시미(伏見)나 우지(宇治) 쪽을 추천했다. 후시미는 일본에서 가장 물이 좋기로 유명해 양조장이 있고 이곳 물로 만든 사케가 으뜸으로 꼽히는 곳이다. 간수가 좋아 명물이 된 두부와 물맛이 달다 하여 붙여진 이름의 고코노미야 신사(御香宮神社)도 있다.
후시미로 이사 온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처음 간 곳이 동네 목욕탕 센토였다. 족히 100년은 넘어 보이는 비주얼이 압도적이었으며 무엇보다 지역 특색을 살린 노렌(暖簾, 일본의 가게나 건물 출입구에 있는 발)이 인상적이었다. 교토 센토의 노렌은 남, 여 두 장으로 나뉘어 있고 길이가 다소 긴 스타일로 필자의 취향을 저격한다.
센토에선 ‘표 파는 곳’ 따위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주인 할아버지가 남탕과 여탕을 나누는 커튼 사이에서 돈을 받는데 여차하면 남탕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아찔하다. 센토에 들어서면 먼저 간결한 분위기의 탈의실에 놀라고 벽화를 연상케 하는 바닥 타일에 또 한 번 놀란다. 금각사와 기요미즈데라의 타일 벽화가 있는 초주야(長者湯), 교토 타워와 도지가 있는 아사히유(朝日湯), 일본 삼경 중 하나인 아마노하시다테가 있는 하나노유(花の湯), 교토를 둘러싼 히에이 산과 헤이안 진구의 타일 벽화가 있는 야나기유(柳湯)는 목욕탕을 넘어 예술품을 품고 있다.
푸근하고 정겨운 매력의 센토와 달리 압도적 규모를 자랑하는 온천도 많다. 텐자노유(天山之湯)는 당일치기 온천 시설로 좋다. 해수에 가까운 고농도 수질인 지하수 덕분에 탕에 들어가 잠시 있다 보면 피부가 매끈매끈해진다.
고베 아시야 바닷가에 위치한 천연 암석 온천 ‘스이슌(水春)’에서는 아시야 바닷바람의 향기를 느끼며 노천욕을 즐길 수 있다. 눈 오는 추운 날씨면 금상첨화다. 고농도로 함유된 염분이 피부에 붙어 땀의 증발을 방지하고 보온 효과를 높여 뜨거운 물이 차가워지는 것을 방지하며 열을 지켜주는 열탕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더운 여름 에어컨을 켜고 얇은 이불을 덮고 자는, 그런 노곤하며 청량한 느낌이랄까. 묘하게 잠이 온다.
녹차로 유명한 우지에 위치한 겐지노유(源氏の湯)도 빼놓을 수 없다. 제일교포가 주인이라 한국의 정취가 곳곳에서 느껴진다. 식당에서 한국 음식도 파는데, 잡채, 김밥, 삼계탕까지 두루 소개하며 메뉴로 선보인다. 큰 홀에서 종종 노래자랑 대회나 한국에서 공수한 미용용품과 식품을 파는 이벤트가 열리기도 한다. 가족적인 분위기이지만 주의할 점이 있다. 여사장님과 직원들이 온천의 물 온도를 체크하겠다며 시도 때도 없이 남탕에 들이닥친다. 그들이 부채질로 열을 식히기 위해 여럿이 무리를 이루어 남탕에 나타나도 당황하지 말자. 하던 목욕을 계속하면 된다.
온천 후 생맥주 한 잔을 들이켜며 “캬~ 시원하다” 했더니 아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묻는다. “아빠는 뜨거운 물에 들어가 시원하다 하고, 엄마는 차가운 맥주 마시고 시원하다고 하면 뭐가 진짜 시원한 거야?” 속 시원한 답변은 다음 목욕 때 들려주기로 했다.
글쓴이 김보민 아나운서는…
2014년 일본 교토 상가 FC로 이적한 남편 김남일 선수를 따라 일본으로 간 KBS 아나운서. 최근 중국 장쑤 쑤닝 코치를 맡게 된 남편을 중국으로 보내고 아들과 함께 교토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