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음식. 두말할 필요가 있을까? 작년 11월부터 한국판도 나오기 시작한 ‘미식계의 바이블’ <미슐랭 가이드>도 프랑스 타이어 회사에서 출간한다. 알랑 뒤카스, 피에르 가니에르, 폴 보퀴즈 같은 전설적인 셰프들을 비롯해, 르 코르동 블루(Le Cordon Bleu), 에콜 페랑디(Ecole Ferrandi) 등 전 세계 최고의 요리학교도 프랑스에 있다. 누가 뭐래도 프랑스가 ‘미식의 나라’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프랑스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역사적으로 프랑스 사람들은 요리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다. 68혁명과 함께 촉발된 여성 해방 운동과 함께 ‘밥하는 여자’는 구시대의 유물이 돼버렸던 것. 1970년대 들어서 ‘피카(Picard)’라는 냉동식품 업체가 주부들의 구세주가 됐을 만큼 프랑스인들은 주방의 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해왔다. 냉동식품은 불량식품이라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과는 다르게 프랑스에서는 간단한 요리부터 고급 요리, 디저트까지 모든 것을 냉동식품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그랬던 요리가 2000년대를 지나면서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
‘웰빙’ ‘환경’ ‘공정 무역’ ‘채식’ 등에 대해 사람들의 인식이 높아진 것도 이유지만, 먹을 것을 준비하는 행위 자체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 직접 준비한 음식을 나누는 원초적인 기쁨을 재발견하고 있다는 점이 더 큰 이유다. 이처럼 만드는 즐거움이 강조되면서 요리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 즐기는 여가 활동이 되었다. 또 산업적인 가공을 거치지 않은 신선한 재료를 직접 사서(심지어 길러서), 자신이 직접 다듬고 조리해 먹겠다는 생활 철학도 담겨 있다.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환하게 불을 밝힌 아틀리에에서 열심히 요리 수업을 듣는 프랑스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듯 프랑스 방송에서도 요리 프로그램의 비중이 늘었다. <톱 셰프> <톱 파티셰> <마스터 셰프> 등등 아마추어 요리사들의 리얼리티 쇼가 프라임 타임을 차지하고 있다. 단순히 맛 좋은 음식을 보고 먹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에게 ‘당신도 만들 수 있다’고 권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거의 완벽한 저녁(Un Diner Presque Parfait)>이라는 프로그램은 같은 지방에 사는 참가자 5명이 번갈아가며 서로를 초대해 최고의 저녁 식사를 대접한 뒤 서로를 평가해 1위를 가르는 방송이다. 이 방송은 단지 요리 자체만이 아니라 테이블 장식과 전체적인 저녁 식사 분위기 등도 평가한다. 방송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경우도 일반적인 일이다.
그런 프랑스 독자들을 제대로 파악해 프랑스 출판업계 사상 최고의 성적을 낸 요리책이 있다. 바로 2015년 말 서점가를 강타해 아직도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장 프랑수아 마예 셰프가 쓴 <심플리심((SIMPLISSIME), 세상에서 가장 쉬운 프랑스 요리책>이다. 출간 후 1년도 안 돼 판매량 25만 권을 달성했다. 이 책의 요리들은 재료 가짓수가 최대 6개 미만으로 조리법이 무척 간단하게 설명돼 있다. 실패할 확률이 낮고 쉽게 요리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요리의 가장 기본적인 조합, 기초는 고스란히 녹아 있다. 레시피를 기초로 자신만의 응용작을 만들기도 쉽다. 먹는 즐거움, 요리하는 즐거움, 보는 즐거움, 나누는 즐거움이 프랑스 여성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키고 있다.
글쓴이 송민주 씨는…
통·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2년 전부터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원(EHESS)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다. <Portraits de 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