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일종의 ‘테마 게임’이다. 혼인 서약을 했다고 해서 단숨에 내 반쪽이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서로를 진정한 반려자로 맞이하기까지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과정은 치열한 전투 게임이 될 수도 있고, 로맨틱한 러브 게임이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건, 배우자끼리도 페어플레이를 해야 한다는 거다.
김동성·오유진 부부의 지난 12년은 격투 게임만큼이나 살벌했다.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했고 권태로움을 이기지 못해 이혼 도장을 찍기도 했다. 게다가 작년에는 최순실 게이트 관련인으로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사랑하는 만큼 싸웠고, 아끼는 만큼 미워했고, 차가웠던 만큼 뜨거웠던 부부. 올겨울 들어 가장 혹독한 한파가 몰아치던 날 오후,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외모부터 말투까지 꼭 닮은 부부를 만났다.
“날씨가 추워서 더 꼭 붙어 다녔네요.(웃음) 아내와 함께 걸으니 오랜만에 데이트하는 기분이었어요. 가끔 이렇게 데이트를 해야겠어요. 요즘 핫한 데이트 장소는 어디인가요?”(김동성)
김동성 특유의 웃음소리가 길 건너까지 퍼진다. 작고 마른 체구의 아내 오유진 씨가 덩달아 웃는다. 웃는 모습까지 닮았다.
“12년 전 우연히 지인 모임 자리에서 만났는데 공교롭게도(?) 사는 동네가 같았고 자연스럽게 자주 만났게 됐죠. 솔직히 첫인상은 별로였어요. 까칠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근데 알면 알수록 진국인 거예요. 운동을 오래 해서 그런지 끈기도 있고 책임감도 강했어요. 이 남자라면 내 평생을 믿고 맡길 수 있겠다 싶었어요. 오빠는 제가 한 말은 절대 흘려듣는 법이 없는 남자예요. ‘박보검을 한 번 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더니, 어느 날 박보검 씨가 진행하는 무대의 티켓을 선물로 주더라고요. 감동이었죠.”(오유진)
조용히 듣고 있던 김동성이 말을 보탠다. 서울대학교 음대생이었던 아내에게 ‘결혼’이라는 족쇄를 채운 것 같아 미안하단다.
“아내는 서울대 음대에서 바순을 전공했어요. 어느 날은 데이트 장소에 악기를 가지고 온 거예요. 즉흥 연주를 해주었고 그 모습에 반해버렸죠. 아내의 연주를 들으며 와인을 마시는 럭셔리 라이프를 상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웬걸요. 결혼 후 한 번도 연주를 들은 적이 없어요.(웃음) 23살, 만난 지 1년 만에 결혼했고 바로 미국으로 떠났기 때문에 학업을 마칠 수 없었죠. 아내가 꿈을 이루지 못한 게 제 탓인 것 같기도 하고. 미안하고 고마워요.”(김동성)
꽃다운 나이 스물셋. 무엇이 그리 급해 결혼을 서둘렀을까?
“도피처였던 것 같아요. 오빠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빨리 가정을 꾸리고 싶어 했고, 저는 무서운 친정아버지에게서 도망치고 싶었어요. 자상한 남편 그늘 아래서 가정을 꾸리고 예쁘게 살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어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사회생활도 해보고 연애도 좀 더 해보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결혼할래요. 제 딸이 스물셋에 결혼하겠다고 하면 두 발 벗고 말릴 거예요. 물론 오빠와 결혼한 걸 후회하는 건 아니에요.(웃음)”(오유진)
“나는 그래도 일찍 결혼할 건데? 일찍 결혼한 것에 대한 후회는 1%도 없어요. 착하고 예쁜 아내를 만났고 덕분에 떡두꺼비 같은 아이들도 낳았고요. 지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요.”(김동성)
“일찍 결혼해서 좋은 건 철이 일찍 든다는 거예요. 지금 제 나이의 친구들을 보면 아직도 생각과 행동이 어리거든요. 무엇보다 남편이 철드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좋아요.(웃음)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남편이 45살이에요. 그때부턴 우리 세상인 거죠. 여행도 맘껏 다니고 자유롭게 살 거예요.”(오유진)
싸늘한 바람이 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훈훈한 온기가 감돈다. 알콩달콩 사이 좋은 부부지만 좋은 날만 있었던 건 아니다. 재작년 봄, 세간을 놀라게 했던 부부의 이혼 소식. 물론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항간에는 ‘외도설’이 돌기도 했다.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 그런지 결혼 후 늘 티격태격했어요. 별것 아닌 일에도 괜한 자존심을 부렸죠. 열정적으로 싸웠어요. 아내가 ‘이혼하자’고 하더라고요. 순간적으로 욱하는 감정에 ‘그러자’고 했어요. 이후 일사천리로 이혼 소송이 진행됐는데, 이혼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아내와 화해했죠.”(김동성)
“여자만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어요. 내가 ‘이혼하자’고 하면 ‘잘못했다’고 사과할 줄 알았는데 동의하는 오빠 모습에 더 상처를 받았어요. 돌이켜보면 그때 우리는 권태기였어요. 이혼 서류를 접수시키던 그날의 기억이 생생해요. 그동안 오빠한테 못 했던 일들만 생각나고 아이들 얼굴이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제 욕심으로 살았던 지난 10년을 반성했어요. 지금은 남편의 의견도, 아이들의 생각도 존중해주려고 해요.”(오유진)
“그 일이 있고 나서 서로 양보하는 법도 알게 됐어요. 좋은 경험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결코 독이 된 것 같지는 않아요. 권태기를 겪고 있는 분들에게 이혼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극복하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쌓일 수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어요. 우리처럼요!”(김동성)
지난해 부부는 새로운 곳으로 터전을 옮겼다. 30년 넘게 살았던 정든 고향을 떠나는 게 결코 쉽지만은 않았을 터. 온 가족이 함께 새 집으로 이사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혼 소송 사건이 있은 후 ‘김동성이 젊고 어린 여자랑 재혼했대’라는 말이 들려왔어요. 우리는 잘 살고 있는데 이혼한 줄 아는 사람이 너무 많은 거죠. 일일이 해명하는 것도 어렵고. 우리를 잘 모르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해보자는 생각으로 이사를 결심했어요.”(오유진)
“가장 좋은 건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많아졌다는 거예요. 원래 살던 곳은 주변에 친구가 많으니까 밤늦게라도 부르면 나가곤 했거든요. 지금은 친구들도 나오라는 말을 안 해요. 덕분에 예전엔 ‘엄마가 더 좋아’라고 하던 아이들도 이제는 ‘아빠랑 놀래!’ 한다니까요.”(김동성)
어느 날 갑자기 한 여자의 남편이 됐고, 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아빠가 된 남자에게 너무 많은 걸 바랐던 건 아니었을까? 오유진씨는 자신만큼 어렸던 남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자신을 반성했다.
“첫아이를 낳았을 때 오빠가 스물다섯 살이었는데, 생각해보면 그 나이는 정말 철없고 한창 놀고 싶을 나이거든요. 어린 나이에 가장이 돼서 힘들었을 오빠를 이제야 이해하게 됐어요.”(오유진)
아내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김동성이 피식 웃는다. 자기는 아직도 철부지라며 아내의 칭찬이 어색한 듯 몸을 꼰다. 잠시 후, 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듯 무릎을 탁 치더니 목소리를 높인다. ‘내 말 좀 들어보소!’ 하는 눈치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에 시집온 아내도 힘들었겠지만 저는 가장이라는 무게가 부담스러웠어요. 무엇보다 두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돈을 벌었죠. 요즘 아이들 학원비가 왜 그렇게 비싼 거예요? 프리랜서다 보니 수입이 일정치 않아요. 프리랜서라서 좋은 것 하나는 아이들과 여행도 자주 갈 수 있고, 가정에 좀 더 신경 쓸 수 있다는 거예요. 경기가 끝나면 가족 여행을 다니면서 추억을 쌓곤 했죠.”(김동성)
비선 실세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로부터 받았던 ‘특급 제안’에 대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김동성이 강릉시청 감독 제의를 거절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사건이다. 그런데 당시 아내 오유진 씨의 반응이 재미있다.
“작년쯤이었을 거예요. ‘이런 제안이 있었는데 거절했어’라고 하더군요. 솔직히 오빠의 말이 믿기지 않았어요. ‘어떻게 그런 제안을 받아?’라며 콧방귀도 안 뀌었죠.(웃음) 그런데 얼마 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오빠 말이 진짜였다는 걸 알았죠. 며칠 전에도 오빠한테 그랬어요. ‘만약 그때 그 제안을 수락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고요.”(오유진)
“어려서부터 아내는 ‘사업 한번 해볼까’ 하면 절대 하지 말라고 했어요. 괜한 일에 연루될까 봐 걱정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도 조심해서 만나라고 조언하고 누군가의 도움에도 걱정부터 했죠.”(김동성)
“오빠의 유명세를 이용해 뭘 해보려는 사람이 많았어요. 술 사주면서 오빠를 꾀는 사람들을 여러 번 보다 보니 어렸을 땐 사람들도 못 만나게 했어요. ‘내가 너무 못 만나게 해서 잘될 일도 안 됐었나’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잘한 것 같아요. 남편도 언제부턴지 사람 보는 눈이 생기더라고요.”(오유진)
2월 9일, 같은 날 태어난 김동성 부부에겐 늦둥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인연이 묘하다”는 기자의 말에 “이런 게 바로 천생연분이죠!”라고 받아친다.
“작년까지는 아이를 한 명 더 낳아볼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큰아이, 둘째 아이에게 사랑을 듬뿍 주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포기했죠. 지금 우리 가족의 모습이 좋아요. 단단하고, 화목하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 가정이죠. 돌아가신 아버지와 행복했던 순간들이 문득문득 떠올라요.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 남편이 되고 싶어요.”(김동성)
김동성은 새로운 도전을 구상 중이다. 운동선수 출신이라는 장점을 살려 건강식 사업에 도전할 예정이다. 건강한 다이어트를 위한 샐러드 사업이다.
“건강하게 다이어트할 수 있는 방법을 늘 고민해왔어요. 저렴한 가격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샐러드를 선보이고 싶어 추진하고 있습니다. 사업을 반대하던 아내도 이제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죠. 올해는 사업가로 변신한 제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동안 해오던 강연도 열심히 할 거고요. 지켜봐주세요!”(김동성)
자리에서 일어난 김동성은 아내의 손을 잡아끈다. “오늘 저녁은 된장찌개로 해달라”며 귀여운 앙탈을 부린다. 나란히 걷는 부부의 뒷모습이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