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보다 보면 배우의 눈빛이 잊히지 않고 머릿속을 맴돌 때가 있다. 상대 배우와의 케미스트리가 보기 좋다면 더욱 그렇다.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역도요정 김복주>에서 스타트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불운의 수영 천재 ‘정준형’ 역을 맡은 남주혁의 연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동료 여배우 이성경과의 ‘깨방정 찰떡 로맨스’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건 연기에 집중하는 그의 태도였다. 카메라를 넘어 안방극장에까지 전해지는 그 열정이 좋았고, 그동안 미처 느끼지 못했던 ‘남주혁스러운’ 눈빛도 좋았다. <역도요정 김복주>가 남긴 여운이 유난히 짙은 이유다.
드라마가 종영된 다음 날 남주혁을 만났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와 기자 앞에 앉은 그는 인터뷰 내내 ‘청춘’을 이야기했다. 23살 나이만큼 풋풋하게, 그리고 어제보다 더 치열하게 살고 싶다는 그는 지금 청춘 한가운데에 있다.
청춘이 뭐라고 생각해요?
지금의 저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뜨거운 무언가가 꿈틀대는 지금의 제가 청춘이 아닐까요? 지금 이 시기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에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죠. 이 청춘을 더 알차게 보내기 위해선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역도요정 김복주>에서 ‘복주’(이성경 분)와의 로맨스가 청춘의 풋풋한 사랑을 오롯이 보여주어서 좋았고, 그런 사랑을 연기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준형’과 ‘복주’의 로맨스가 유난히 ‘꽁냥’거렸죠.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괜히 설레는 거예요.(웃음) 그동안은 연기하면서 설렌 적이 없었는데 ‘복주’와의 로맨스는 두근거렸죠. 그만큼 캐릭터에 푹 빠졌던 것 같아요. ‘이런 게 바로 청춘들의 사랑이지!’ 하면서 몰입해 그런지 드라마가 끝나는 게 싫었어요. 시청률은 낮았지만 애착이 많이 갔던 작품이에요.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마지막 방송을 보면서 잘 마시지도 못하는 맥주를 두 잔이나 마셨다니까요.
그중에서도 가장 설렌 장면은 뭐예요?
놀이동산 신이오! 저는 아직 해보지 못한 연인들의 주요 데이트 코스이기도 했고, 서로 좋아하는 마음을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애쓰는 두 남녀의 모습도 풋풋했어요. 그 외에도 너무 많아서 손꼽을 수가 없네요. 대본을 받아볼 때마다 ‘어떻게 이런 대본을 쓸 수 있지?’ 하며 놀랐어요. ‘나도 이런 풋풋한 사랑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니까요.
그런 ‘꽁냥거림’ 덕분에 여성 팬이 늘었어요.
그런가요?(웃음) 평소에는 잘 돌아다니지 않아서 체감하지 못했어요. 댓글을 보고 ‘그렇구나’ 하는 정도죠. 예뻐하고 좋아해주시니까 기분 좋아요. 다만 귀여운 이미지가 큰 것 같아 걱정이에요. 저는 ‘상남자’이고 싶거든요.(웃음)
실제 남주혁의 연애 스타일은 어때요?
나쁜 남자 스타일은 아니에요. 쑥스러움이 많아 감정 표현을 잘하지 못하지만, 한번 사랑에 빠지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올인하는 편이죠. 제가 연기자로 활동하는 데 힘이 돼주는 여자라면 언제든 사랑에 빠질 준비가 돼 있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그런 인연을 기다리고 있죠.
그런 의미에서 이성경 씨는 어떤 여자, 어떤 배우인가요?
여자 사람 누나?(웃음) 누나랑은 소속사도 같고 그동안 화보를 통해 여러 번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촬영하면서도 거리낌이 없었어요. 상의도 없이 기습적으로 연기했던 몇몇 장면은 미안했죠. 바닷가 데이트 장면에서 대본에는 없는 장난을 쳤거든요. 감독님과 짜고 누나를 물에 빠뜨렸죠. 개인적으로는 ‘복주’가 제 이상형이에요. 성경 누나 말고요.(웃음)
카메오로 출연한 동갑내기 친구 지수 씨와의 ‘케미’도 좋았어요.
함께 모델로 활동했고, 동갑인 데다 관심사도 비슷해 대화가 잘 통하죠. 연기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곤 해요. 영화를 함께 보는 유일한 남자가 지수랍니다. 우리 둘의 이야기를 담은 브로맨스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주인공 대 주인공으로요.(웃음)
첫 주연작인데, 신인상을 받았죠?
아주 잘 보이는 곳에 모셨어요.(웃음) 꼭 받고 싶던 상이었거든요. 앞으로 더 치열하게 연기하라는 뜻인 것 같고, 지치지 않고 연기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준 상이죠.
연기에 대한 호평이 많았어요.
솔직히 말하면 ‘남주혁도 이런 연기가 가능하구나’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동안 ‘모델 출신 연기자’ 혹은 ‘평범한 배우’라는 평가가 많았기 때문에 저도 감정 연기가 가능하다는 걸 입증하고 싶었죠. 그래서 매일 고민했고, 연구했고, 연습했어요. 15회의 친엄마를 만나는 장면에서 모든 걸 쏟아낸 것 같아요(남주혁은 헤어졌던 엄마(윤유선 분)와 재회하는 장면에서 오열 연기를 펼쳤다). 어느 정도는 가능성을 보여준 거 같아서 만족스러워요. 결과적으론 혹평들이 저에게 아주 좋은 자극제가 된 셈이죠.
승부욕이 강한 스타일이군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해서 그런지 지는 걸 싫어해요. 저와 실력이 비슷하다거나 저보나 잘하는 친구가 있으면 꼭 이겨야 직성이 풀렸어요.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누군가를 뛰어넘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일단 나부터 잘하자’ 싶은 마음이 더 커요.
농구 선수 출신이죠?
초등학교 3학년 때 운동을 시작해서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 선수로 활동했어요. 치열했죠.(웃음) 운동과 연기는 다른 점이 없는 것 같아요. 수많은 슛 연습 끝에 골로 이어지는 느낌과 한 장면을 위해 수많은 고민을 하는 것이 같죠. 개인적으로 UFC 선수 코너 맥그리거의 마인드를 좋아해요. 무명 격투기 선수일 때부터 “나는 머지않아 UFC 챔피언이 될 거야”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3년 후 진짜 챔피언이 됐어요. ‘무슨 자신감이야?’라고 비웃었던 사람들도 결국 그의 팬이 됐죠. 자기가 뱉은 그 말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겠어요. 그 마인드가 멋있어서 그의 동영상을 다 찾아 봤죠.(웃음) 저도 스스로 목표를 정해두고 그걸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배우가 될 거예요.
목표를 이루었나요?
데뷔 3년 만에 주인공을 맡은 것도 목표를 이룬 셈이죠. 사실 22살에 연기를 시작하면서 10년 후를 계획했어요. 30대에는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배우가 되자는 목표를 세웠고, 그 안에서 세부적인 목표를 가지고 하나씩 이뤄나가고 있죠. 생각보다 빨리 목표를 이룬 것 같아서 당황스러워요.(웃음) 이제 또 다른 목표를 세워보려고요.
주인공 해보니까 어때요?
조연일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던 부분에 대한 고민이 많이 생겨요. 주인공을 뒷받침해주는 역할이 아니라 스스로 작품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부담감도 많고요. 선배들이 말하는 주연 배우로서의 책임감이 뭔지도 알게 됐어요. 그래도 주인공이 더 좋아요.(웃음)
주연 배우로서 책임감이 뭐라고 생각해요?
작가님과 피디님이 만든 캐릭터를 사랑스럽게 보여주어야 하는 거? 그 캐릭터로 인해 시청자가 잠깐이나마 행복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주인공이 가져야 할 책임감이 아닐까요? 이번 작품에 캐스팅됐을 때부터 ‘캐릭터를 반짝반짝 빛나게 해야겠다’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만들 자신이 있었어요.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었을 텐데요.
자신 있다는 말이 부담스럽지 않다는 말은 결코 아니에요. 저는 늘, 모든 작품이 부담스러웠어요. ‘어떻게 해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에서 시작하죠. 그런 부담이 없으면 잘해낼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고민하는 거고, 그러다 보면 좋은 연기가 나오는 거고, 결과적으론 인상 깊은 장면이 탄생하는 거죠. 이번 작품을 통해 모든 작품이 배우의 고민에서 나온다는걸 배웠어요.
누군가와 함께 고민하는 편인가요?
평소에는 혼자 고민해요.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고민하다가 촬영 현장에서 리허설을 할 때 결정되죠. 몇 가지 버전을 들고 가는 편이에요. 그래서 살이 많이 빠졌어요. 연기도 해야 하고, 수영 선수 역할이었으니까 수영도 해야 하고, 고민도 해야 하고.(웃음) <삼시세끼>에 출연했을 때가 제 인생 최고 몸무게였어요. 근육도 탄탄했고, 어깨 깡패였죠. 그때는 괜히 남자가 된 기분이었다니까요.(웃음)
<삼시세끼>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요?
려서부터 운동을 해서 그런지 형님들을 모시는 게 더 편해요. 차승원·유해진 선배님과 함께한 그 시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어요. 지금 제 나이에 할 수 있는 연기는 뭐든지 하라고 조언해주셨고, 무엇보다 주량이 늘었어요.(웃음) 차승원 선배님이 만들어주신 닭곰탕은 아직도 생각날 정도로 맛있었어요. 제 폭풍 리액션은 모두 진실이었습니다.(웃음)
예능 프로그램에 걸맞은 적절한 리액션이었죠.(웃음)
사실 저는 예능 울렁증이 있어요. 누가 웃기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웃겨야겠다는 강박관념 때문인지 연기할 때보다 심장이 빨리 뛰어요. <삼시세끼>는 선배님들과 제작진이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주셔서 다행이었는데, 제가 주도해야 하는 토크쇼는 자신 없어요.
어촌 편이었죠?
유난히 물과 인연이 많은 것 같아요. 생일이 2월 22일, 물병자리라서 그런가 봐요.(웃음) 부산 출신이고 이번 드라마에서는 수영선수 역할이었고요. 공교롭게도 지금 이야기 중인 작품도 물에 얽힌 캐릭터네요.
그러고 보니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원체 생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편이 아니라 생각도 못하고 있었네요. 아마 미역국 끓여 먹고 쉬겠죠? 요즘엔 혼자 떠나는 여행에 재미가 생겼어요. 얼마 전 혼자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는데 혼자 밥 먹고, 혼자 걷고, 혼자 음악을 듣는 게 좋더라고요. 친구들과 가면 떠드느라 듣지 못하는 바다 소리도 실컷 들을 수 있잖아요. 당분간은 온전히 저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남주혁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의 뜨거운 열정을 품고 살겠노라고. 청춘의 한가운데에 있는 그가 반짝반짝 빛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