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는 ‘내 자식 밥 먹는 소리’와 ‘현금 지급기에서 돈 나오는 소리’라고 했다. 여기에 하나 더 ‘선물 포장지 뜯는 소리’를 추가한다. 교토에 와서 좋았던 것 중 하나는 선물 주고받기가 생활화된 이곳 사람들의 태도였다. 기브 앤 테이크가 정확하단 것에 대한 부담감은 어느 정도 있지만,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는 건 생각만으로도 좋지 않은가. 포장마저 섬세해서 조심스레 선물을 뜯어 볼 때면 그 설렘조차 늘 새롭다. 수많은 나라를 여행해본 사람들은 “이상하게 일본에만 오면 선물 사재기를 하게 된다”고 말한다. 뭔가에 홀린 듯 하나둘 담다 보면 짐은 늘어가고, 선물이란 명목으로 사 간 기념품들은 결국 내 것이 되고 만다는 ‘웃픈’ 에피소드도 들린다.
이번에는 교토에서 받은 선물 베스트 목록을 전격 공개하려 한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2년간 교토에서 살며 주고받은 선물을 소개하면 보편적인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과자다. 그런데 과자라고 얕보면 안 된다. 일본은 지역마다 특색 있는 과자를 만들어 그 종류가 수만 가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 교토의 오미야게(おみやげ, 선물용 지역 특산물) 랭킹 상위에 자리한 가메야요시에이 오이케 센베는 설탕과 간장을 적절히 맞춰 ‘단짠’의 최고라고 할 수 있다. 남편이 팬에게 받은 선물이었는데, 그 맛에 반해 주소를 물어물어 찾아가서 다시 사 먹을 정도였다. 우울할 때 먹으면 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과자다. 한 가지 단점이라면 양은 적고 가격은 비싸다는 것이다.
동전지갑과 저금통도 단골 선물 리스트다. 일본의 동전은 1엔, 5엔, 10엔, 100엔, 500엔, 이렇게 5종류인데 사이즈도 각기 다른 데다 무게도 달라 보관하기가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일본에서는 소비세 8%가 붙다 보니 잔돈이 늘 생기는데 그때마다 주머니에서 짤랑거리는 소리가 난다. 심지어 일부 자판기나 주차장에서는 소액의 동전은 사용 되지 않기도 해서 동전 보관은 늘 골칫거리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유난히 동전지갑을 많이 판다. 나는 택시 기사들이 사용하는 뽑아 쓰는 동전함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찾아냈다. 명함 크기에 두께가 얇고 동전을 뺐다 넣었다 하는 코인 홀더 말이다. 매일 사용해도 기특하고, 일본인마저 탐내는 이것은 만인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자 잇 코인 백이다. 자매품으로 입구에 어떤 동전을 넣어도 금액대로 알아서 나뉘어 차곡차곡 쌓아주는 동전 저금통도 있다.
교토의 향기를 선물 받은 기억은 아직도 기분 좋게 남아 있다. 교토에는 절과 신사만도 천 개가 넘는다. 조상신을 집에 모시거나 길가나 골목 곳곳에 수호신을 모셔둔다. 향을 피우고 그 연기를 몸에 고루 배게 하면 액운이 빠져나가고 행운이 온다고 해서 한참 향내를 맡는 사람들로 붐빈다. 어느 날 자주 가는 온천에서 차원이 다른 향내를 맡았다. 그 향을 맡은 후 교토의 향기에 매료됐다. 일본 다다미방 특유의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두는 간편한 인센스부터 다도 할 때 켜는 향이나 특별한 날 주머니에 어울리는 향을 넣어 선물하는 향낭은 모양도 여러 가지라 보는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향기를 맡으면 그곳에 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마법 같은 향초도 있다.
일본에만 있는 ‘하시(はし, 젓가락)’, 멀티 아이템인 만능 천 ‘데누구이(手ぬぐい)’ 등도 우연히 받은 선물인데, 교토 여행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최적의 선물 아이템으로 추천한다.
최근 지인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시내로 나갔다. 젓가락 하나를 두고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 남편이 결정해준다. “심플 이즈 더 베스트!”란다. 남편의 센스를 믿어보기로 했다. 다행히 받는 이의 취향을 저격한 것 같다.
글쓴이 김보민
2014년 일본 교토 상가 FC로 이적한 남편 김남일 선수를 따라 일본으로 간 KBS 아나운서. 최근 중국 장쑤 쑤닝 코치를 맡게 된 남편을 중국으로 보내고 아들과 함께 교토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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