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는 도시가 워낙 크고 넓어 승용차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 자전거나 버스, 지하철도 심심찮게 보이지만 미국인의 자동차 사랑은 상상 이상이다. 1908년 10월 1일, 포드사에서 처음으로 ‘대중을 위한 자동차’를 모토로 한 ‘모델-T’가 생산된 후 백 년이 넘는 동안 미국인은 자동차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동부와 서부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가 생긴 후에는 ‘다이너’라는, 미국식 휴게소가 등장했다. 최근에는 도심 곳곳에서도 볼 수 있는 이 다이너는 기름지지만 푸근한, 조금 짜지만 시럽을 부어 잔뜩 입에 넣어 먹는 각종 미국식 아침 메뉴를 내놓는 레스토랑으로 이미지가 일맥상통한다. 요즘 사람들이 시크하게 먹는 브런치가 사실은 자동차로 장거리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 작은 동네 음식점들이 내놓던 것이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까.
5천 마일이 넘는 거리를 하루 종일 달려 좁은 모텔방에 몸을 누이고, 일찍 일어나 목표를 향해 또다시 하루종일 달리기 위해 미명의 하늘 아래 일어나 미적미적 아무데나 열린 식당으로 들어간다. 열량이 차고 넘치는 저렴한 아침밥을 먹고 길을 나서는 그들의 여정이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옛날 고속도로를 따라 여전히 듬성듬성 남아 있다. 필자가 처음 만난 다이너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캔터스’라는 곳이다.
함께 사는 친구들이 그래픽 디자이너라 밤 10시가 넘어서야 저녁을 먹기 일쑤인데 밤늦게까지 영업을 하는 레스토랑은 오직 이곳 캔터스뿐. “시시한 바에서 비싼 음식을 먹느니 그냥 간단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다이너에서 먹자”는 게 우리의 공통된 생각이다.
캔터스에 들어서면 1960년대 잡지 속 인테리어 섹션에 실린 듯한 친숙하다 못해 촌티가 흐르는 내부 장식에 정신이 아찔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은 옛날 분위기에 천장에는 쏟아질 듯 보이는 낙엽 무늬가 스테인드 글라스로 설치되어 있다. 평균 연령 60세쯤 되는 웨이트리스와 웨이터가 손님을 맞이한다. 이제는 잘 쓰지 않는 허니, 달링 등으로 손님을 부르는 그들이 외려 정겹다. 팬케이크, 해시, 아보카도가 들어간 샌드위치나 햄버거. 그나마 유대인식 조랭이떡국이라 볼 수 있는 ‘마짜볼 수프’가 그중 건강하게 보일 뿐이다.
사실 로스앤젤레스에서 갈 수 있는 다이너 프랜차이즈 식당은 많다. 놈스, 아이홉, 데니스 등이 대표적이다. 그럭저럭 괜찮은 고기를 썰고 싶을 때는 놈스, 한밤에 갑자기 달달한 팬케이크가 당기면 아이홉, 그도 저도 아니고 그냥 제일 가까운 곳을 원한다면 데니스가 적당하다. 다이너에 가면 늦은 밤 영화 대본을 쓰다가 주린 배를 쥐고 뛰쳐나온 각본가부터 감독들, 선셋 로드를 따라 있는 공연장에 공연을 하러 온 뮤지션과 코미디언들을 볼 수 있다. 1980년대에 커다랗게 부풀린 머리와 예쁘장한 얼굴로 무대를 누빈 ‘건즈 앤 로지즈’도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을 이곳에서 해결했다고 한다.
운이 좋으면 비둘기를 허공에서 만들어내거나 한밤중 눈이 내리게 하기도 하는 마술사의 공연을 볼 수도 있다. 필자도 주린 배를 채울 요량으로 대충 차에 몸을 구겨 넣고는 다이너로 향한다. 코를 훌쩍이며 오늘은 닭고기수프와 ‘마짜볼’을 주문한다. 일행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역사와 추억과 낭만이 깃든 로스앤젤레스의 다이너 레스토랑. 쓰다 보니 입에 침이 고인다. 룸메이트는 벌써 옷깃을 여미기 시작했다.
참! 다이너의 음식들은 짜고, 달고, 매우 기름지다. 처음 다이너를 경험해보는 사람이라면 익숙하지 않은 맛에 놀랄 수 있으니 참고하자.
글쓴이 척홍 씨는…
미국에서 나고 한국에서 자란 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로, 또한 예술 작가로 일하고 있다. 음식을 좋아해 취미는 요리하기. 또한 이것저것 특이한 물품을 모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