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신입 직원이 들어왔다. 손꼽히는 특목고 출신 이력이 있는데, 기대한 대학을 가지 못했다고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기숙사에서 겪은 힘들었던 교우 관계로 마음이 복잡했고 결국 사소해 보이는 에피소드가 쌓이면서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등학교 시절의 불편한 친구 관계는 입시에 몰입해야 하는 학생의 멘탈을 무너뜨리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실컷 놀면서도 성적이 잘 나오는 아이들의 경우 집중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스마트폰이든 게임이든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강한 집중력을 보이는데, 이들의 강한 멘탈이 결국 학습 결과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대개 본격적인 사춘기를 겪는 중학교 시절이 되면 초등학생 때와는 다른 교우 관계가 찾아온다. 특히 사춘기에 접어들어 부모보다 친구가 더 좋아지는 나이가 되면, 아이들은 자신의 친구들에 대해 일일이 부모에게 알리지 않으니 부모로서도 아이의 교우 관계를 세세히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오히려 묻고 따지다가는 사춘기의 반항심을 자극해 아이와의 불편함만 키우게 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초등학생 시절에는 대개 부모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그 범위에서 친구들을 만났던 아이들이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한 사람의 독립된 인격으로 다양한 아이를 만나 관계를 맺게 된다. 아직 자신의 정체성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겪게 되는 낯선 교우 관계는 부족하고 미숙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 시기 아이들의 어설픈 감정적인 관계는 모두가 겪는 혼선이니 교우 관계가 성적의 절대적인 변수는 아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입시로 인해 날카로워진 아이들은 교우 관계에 있어서도 첨예한 경쟁과 대립으로 편치 않은 관계를 마음에서부터 드러낸다. 중학교 시절처럼 오히려 어설픈 감정을 솔직하게 보이고, 치고받고 몸싸움을 하고, 내 편에 넣어줄지 말지 감정싸움으로 시간을 소비하지는 않지만, 보이지 않는 감정싸움이 더 치열해 아이들을 지치게 한다.
이러한 아이들의 교우 관계를 어떻게 도와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게 해줄 수 있을까? 내 아이를 힘들게 하는 아이를 무조건 공격하며 보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서서히 입을 닫고 자신에게 몰입하는 시기의 아이는 미주알고주알 말을 꺼내지도 않는다.
고작 내가 찾은 방법은 간접적인 관심이었다. 직접적으로 묻지는 못했지만 어떤 아이들과 학교 팀 과제를 수행하는지, 어떤 대회를 함께 나가는지, 간혹 아이의 대화 속에서 불편하게 튀어나오는 아이들의 이름이 누구인지, 어느 아이로 인해 편안함을 느끼거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관심을 갖고 인식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교육 전문가들의 조언을 살펴보기도 했다. 책에서, 강연에서 쏟아진 전문가들의 의견은 대개 비슷했다. “아이가 친구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스스로 이야기하기를 기다려라.” “이야기를 시작하면 경청해라.” “감정을 존중해 ‘그랬구나!’라고 응수해줘라.” “공감해줘라.” 이 많은 조언을 볼 때마다 의미는 알겠는데, 막상 그런 상황이 닥치면 잘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모두 다르다. 나는 결국 내 아이에 대한 나만의 기본적인 감정 룰을 정했다. 평소에 입을 잘 열지 않는 내성적인 큰아이에게는 먼저 캐묻지 않았다. 어쩌다 친구 이야기가 나와도 결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확대해석하지 않고 그냥 담담히 듣는다. 친구가 나쁘다고 섣불리 조언하면 오히려 입을 닫았지만, 말없이 듣고 있으면 아이는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 상황을 정리해갔다. 그러나 평소 감정적 변화가 있을 때면 자신의 이야기를 무조건 들으라는 듯이 요란하게 늘어놓는 둘째에게는 무조건 응원부터 했다. 일단 잘했다고 추켜세운다. 친구가 심했다고 맞장구도 친다. 아이는 맞장구라는 격려를 받고 나서야 객관적인 결론을 찾아갔다.
아직 여물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생활과 학습에서 친구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중등 시절 이후에도 아이에게 직접 교우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들을 수 있으려면 아이의 특징에 따른 엄마만의 룰을 찾아야 할 것이다.
글쓴이 유정임
MBC FM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작가 출신으로 현재 부산·경남 뉴스1 대표로 근무 중. 두 아들을 카이스트와 서울대에 진학시킨 워킹맘으로 <상위 1프로 워킹맘>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