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
영화 <부산행>이 처음 개봉했을 때, 이렇게까지 크게 흥행하리라고 예상한 이가 몇이나 될까? <부산행>은 애니메이션을 주로 작업해온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영화고, 그간 한국에서 선보인 바가 거의 없는 ‘장르 영화’ 아닌가. 공교롭게도 <부산행>의 언론 시사회가 진행된 첫날, 기자는 한 유명한 영화평론가를 만났다. 그는 “다름 아닌 연상호 감독의 작품이니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며 확신에 차 말했다. 그의 말대로 영화는 관객과 평론가의 기대에 부응했고, 2016년 개봉한 영화로는 처음으로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대 국내영화 흥행 순위 12위에 올랐다. 미디어는 새로운 스타 감독의 탄생을 떠들썩하게 축하했다.
태풍의 한가운데는 오히려 고요한 법이다. 연상호 감독의 스튜디오 ‘다다쇼’를 찾았을 때 들뜬 분위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스튜디오 직원들은 한창 애니메이션 작업에 열중한 분위기였고 스튜디오의 수장인 연 감독은 좁은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는 토끼 캐릭터 ‘바니’가 그려진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배우 정유미가 그와 아내에게 선물한 커플 룩이라고 했다. 여전히 바쁘냐는 질문으로 첫 인사를 대신했다.
“한창 정신없던 시기는 넘겼지만 아직 바쁩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중이에요. <염력>이라는 블랙코미디 영화의 시나리오를 고치고 있어요. 완성한 지 꽤 시일이 지났지만 다시 들여다보니 부족한 부분이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아직도 여기저기서 연락이 와서, 집중이 잘 안 돼요. 시나리오를 고치려고 앉았다가도 결국 손을 놓게 되더군요.”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연상호 감독의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 그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보다시피 이런 상황이랍니다.”
<부산행>은 해석의 여지가 많은 영화다. 마술적인 방법으로 소생시킨 시체들인 ‘좀비’의 상징성,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다양한 인간 군상, 그중에서도 선과 악으로 가를 수 없는 애매모호한 지점에 있는 등장인물들의 참혹한 결말부터 마지막에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면모까지.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수많은 주석을 붙일 수 있는 콘텐츠다. 단순히 한 번 보고 끝내는 게 아니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수 있는 영화’인 셈. 연상호 감독 역시 관객들의 다양한 해석을 반겼다.
“감독이 영화가 말하려는 바에 대해 너무 자세한 설명을 하는 건 좋지 않다고 봅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제 의도보다 훨씬 더 멋진 해석을 해주시는 분도 많고요. 극 중 임산부 역으로 나오는 정유미 씨나 공유 씨의 딸로 나오는 김수안 양이 끝까지 살아남는 모습을 보고 인터넷 각지에서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사실 의도한 건 전혀 아닙니다.(웃음) 수안 양은 원래 소년 캐릭터였습니다. (정)유미 씨가 연기한 인물도 원래 그렇게 다부진 임산부 느낌은 아니었어요. 배우 특유의 이미지가 덧입혀지면서 재창조된 인물입니다. 물론 제 마음에는 쏙 듭니다. 관객분들도 좋아해주셔서 기쁘고요.”
<부산행>은 해외에서 먼저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칸 영화제 비경쟁 심야 상영 부문에 초청되어 현지 관객과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으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감독과 배우가 참여하지 않은 시사회에서조차 현지 관객들은 기립박수와 환성을 보냈다고. 이러한 기대감은 한국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졌고 천만 관객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칸 영화제 전후로는 정신이 없었어요. 그 와중에도 영화에 대한 평론가분들의 피드백은 꼼꼼히 읽어보았죠. 모든 내용에 감사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씨네21> 김혜리 기자님의 글이었어요. ‘어떤 조건의 관객들로부터도 웃음과 비명을 끌어내는 흥행성을 가진 영화지만 <부산행>을 보면서 유독 눈물을 참지 못할 관객들은 한국에 있다’는 문장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비교적 저예산의 애니메이션만 감독해온 연상호 감독은 첫 실사영화 <부산행>을 진행하며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물론 시작하기 직전까지 계속 고민한 것은 사실이다. 아내가 건넨 “당신 마음대로 해”라는 한마디에 마음을 굳힌 이후로는 앞만 보고 달려왔다.
“출연 배우를 캐스팅하는 과정에서 직접 미팅에 참여했어요. 가장 먼저 승낙한 배우는 공유 씨예요. 30대의 유능하고 세련되면서도 아이 아빠의 느낌까지 낼 수 있는 배우가 달리 없다고 생각했어요. 마동석 선배도 흔쾌히 오케이하셨고요. 지금 와서 말이지만 그분이 맡은 배역을 달리 누가 소화할 수 있겠어요?(웃음) 모든 배역에 그 캐릭터와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가 캐스팅돼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좀비’는 그간 한국 영화에서 다뤄진 적이 거의 없다. 비현실적인 소재로 ‘리얼’한 영화 를 만들기 위해 연상호 감독은 ‘좀비’의 시각적인 형상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외국 영화의 좀비를 보면 절로 얼굴이 찌푸려질 만큼 끔찍한 형상이죠. 하지만 <부산행>의 좀비는 그에 비해 덜 자극적이에요. 처음에는 엇비슷한 이미지로 가려고 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분장을 심하게 하니까 어색하더라고요. 외국의 슈퍼 히어로물에 나오는 전신 타이츠를 우리나라 사람이 입으면 특유의 느낌이 잘 살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자연스럽게!’를 외친 끝에 지금의 ‘좀비’가 완성됐습니다.”
희귀한 소재를 선뜻 차용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역시 애니메이션으로 다져온 내공이 있기 때문 아니었을까? 연상호 감독은 1997년 첫 작품을 연출한 이후 꾸준히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다 2011년 첫 장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으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이 작품은 한국 장편 애니매이션 사상 처음으로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애니메이션’이라는 단어로 흔히 떠올릴 수 있는 ‘꿈과 희망’ 혹은 ‘해피 엔딩’과는 거리가 멀다.
<돼지의 왕>에서는 학교 폭력, <창>에서는 군대 폭력, <사이비>에서는 종교 문제를 다뤘다. 다분히 사회 비판적이다. 희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음울한 전개와 파격적인 결말은 연상호 감독의 트레이드마크다.
“‘왜 꿈과 희망 대신 냉혹한 현실만 보여주느냐?’라고 물어보시는데 저는 그저 어린 시절 즐겨봤던 애니메이션들의 연장선에서 작품을 만든다는 느낌으로 작업을 진행해왔어요. 어렸을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좋아했거든요. 일본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부터, ‘아키라’, 그리고 디즈니의 작품까지 가리지 않고 봤어요. ‘혹시 어렸을 때 힘든 과거가 있었나요?’라는 질문도 많이 받는데, 큰 부침 없이 자랐습니다.(웃음)”
연상호 감독은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늘 그림을 그렸다.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지만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대학 전공으로 미술을 택했다. 그런 그에게는 언제나 믿고 지지해주는 부모가 있었다.
“돌아보면 부모님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시며 도와주셨어요. 미술로 대학을 간다고 했을 때도 응원해주셨고 ‘감독이 되겠다’며 철없이 설칠 때도 당시로서는 비싼 카메라를 사주셨어요. 물론 처음에 조금 혼나긴 했지만요.(웃음)”
대학에 가면 마음껏 애니메이션을 찍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컴퓨터의 용량과 성능이 조악해 일반 학생이 작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애니메이션을 찍기 어렵다면 사람을 찍어야겠다 싶어 영화 촬영을 시작했어요. 우울하고 지루한 작품이었죠. 주인공 역할을 맡은 친구가 어찌나 감독 말을 안 듣던지, 고작 20분짜리 단편을 일 년 동안 찍었다니까요. 요즘도 만나면 그 시절 이야기로 다투곤 하죠.(웃음)”
비싼 카메라를 썩힐 수 없어 스톱모션으로 인형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도 연 감독은 나름의 노력을 다하다가 군대로 향했다. 제대 이후 그는 신세계를 만났다고 했다.
“제가 군대에 있는 동안 IT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더라고요.(웃음) 컴퓨터의 속도도 빨라지고 성능도 좋아져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는 친구들은 벌써부터 자신의 작품을 컴퓨터로 제작하고 있더라고요. 그때부터는 원 없이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한참 이야기하던 연상호 감독이 기지개를 펴며 하품을 했다. 요즘엔 네다섯 시간도 겨우 잔다고 했다. 시나리오 때문이 아니라 11개월 된 딸 덕분이다.
“바쁘지만 할 수 있는 한 육아를 분담하려고 해요.(웃음) 밥을 잘 안 먹어서 걱정이에요. 이유식을 주로 먹어야 하는데 자꾸 분유만 먹어요. 기자님, 아기에게 밥 먹여본 적 있으세요? 숟가락으로 아기 입에 밥을 넣어주면 아기가 자기 손에 뱉어요. 그리고 그 손으로 머리를 만지고 얼굴을 만져요. 밥 한 숟갈을 잘못 먹이면 아기 머리까지 감겨줘야 해요.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죠.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캡을 씌워줘야 하거든요. 발버둥치는 아기를 꼭 잡고 머리를 감기다 보면 어느새 2시간이 훌쩍 가요.”
육아 비법을 줄줄 읊는 모습이 제법 아기 아빠답다. 부인은 행복하시겠다고 말하니 고개를 저으며 웃는다.
“제가 열심히 해봤자 아내만큼 육아에 힘쓸 수는 없죠. 저희 부부는 캠퍼스 커플로 만났어요. 아내도 미술을 전공했고 제 창작의 역사를 꿰고 있기 때문에 가장 믿을 수 있는 조언을 해줘요.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반드시 의견을 교환하고요. <부산행>을 본 아내가 ‘이 영화 잘될 거다’라고 했을 때 마음이 비로소 안정되더군요.”
영화감독은 ‘창조하는’ 직업이다. ‘퍼내는 작업’이기에 채우는 작업 또한 필요하다. 그에게 무엇으로 스스로를 채우느냐고 물었다.
“다양한 콘텐츠를 즐깁니다. 일단 텔레비전을 좋아합니다. 영화 작업으로 바빠지기 전까지는 드라마도 열심히 챙겨 봤죠. 가장 인상 깊게 본 드라마는 김희애 씨와 유아인 씨의 <밀회>, 손예진 씨의 열연이 돋보인 <연애시대>, 그리고 이덕화 선생님과 한지혜 씨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던 <메이퀸> 정도? 소위 말하는 웰 메이드 드라마나 막장 드라마 모두 좋아합니다.”
애니메이션 감독답게 만화도 즐겨 본다. 책상 바로 옆 책장에 일본 만화 <사채꾼 우시지마>가 꽂혀 있었다.
“이 만화 본 적 있나요? 1권을 읽기 시작한 후 몰아서 보고 있어요. 저는 현실을 냉혹하게 다룬 작품을 좋아해요. 정신이 피폐해지는 그 느낌을 즐기는지도 몰라요. 원래는 만화책을 사서 보는데 이제는 만화방에 가서 다양한 작품을 읽어보려고요. <부산행> 촬영을 쉬는 날에는 해운대 근처 만화방에 갔어요. 그럼 거기서 온갖 영화 스태프들을 다 만나곤 했죠. 서로 ‘쉰다더니 여기서 만화 보고 있었어?’ 하면서 같이 모여 앉아 만화도 보고 라면도 먹었어요.(웃음)”
연상호 감독은 다시 달릴 채비를 하고 있다. 대학생의 우울한 연애담을 다룬 <졸업반>과 블랙코미디물인 <염력> 등 새로운 작품 준비도 한창이다.
“딸이 다섯 살이 되면 제 첫 장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을 보여줄 거예요. 삶의 냉혹함과 비정함을 너무 빨리 알려주는 게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어린아이라도 충분히 작품에 담긴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런데 요즘은 우리 딸이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조금은 밝고 희망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소년은 이제 마흔을 앞둔 남자이자 어엿한 아버지, 그리고 지금 가장 핫한 영화감독으로 성장했다. 여태껏 잘 달려왔다. 홈런도 한 방 크게 날렸다. 하지만 연상호 감독에게 지금 ‘전성기’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가 앞으로 들려줄 이야기가 훨씬 더 기대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