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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OF THE TRUE YOO JI-TAE

지금부터 시작한다. 유지태의 진짜 이야기.

On October 21, 2016

 


<바이 준> <동감> <봄날은 간다> <올드보이> <심야의 FM> <스타의 연인> <힐러>까지, 유지태가 지금까지 출연한 33편의 영화와 5편의 드라마에는 이렇다 할 공통점이 없다. 악역과 선역 사이에서 널을 뛰었고 멜로든 공포든 스릴러든, 장르도 가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작품을 고르는 데 특별한 기준을 두지 않는 줄 알았다. 그의 38번째 작품인 드라마 <굿와이프>를 보기 전까지는.

이번 드라마에서 그는 야욕과 사랑에 집착하는 이태준을 연기했는데, 그가 입은 캐릭터는 전작에서 만났던 캐릭터들의 합집합이었다. 아내를 그윽이, 그리고 강하게 바라보는 눈빛은 <봄날은 간다>에서 이영애를 보던 눈빛과 닮았고, 야욕에 눈이 멀어 배신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에서는 <올드보이> 속 비열한 악역의 모습이 보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는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총천연색 캐릭터인 이태준에 매료돼 이번 작품을 선택했다.

“마음 가는 작품이 제 기준입니다. 작품만 보고 연기하고 싶어요. 영화 <동감>으로 제가 ‘멜로남’ 이미지로 굳어지는 게 싫었어요. 배우로서 얻을 수 있는 재미의 폭도 줄어드는 것 같았고요. 연기 폭이 좁아서 현장에서 머뭇거리고 적응하지 못하는 배우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다만 예전과 달리 무모하게 저를 캐릭터에 맞추지는 않으려고 해요. 저와 맞는 톤의 연기 안에서, 제 세계관 안에서 인물을 연기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래서 선택한 게 <굿와이프>입니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우리는 그의 또 다른 모습을 봤고 그가 걸어갈 길에 대해 더 큰 기대가 생겼다. 6.2%라는 시청률과 쏟아지는 반응, 언론의 호평이 그것을 방증했다. 유지태는 잘 마무리했다는 기쁨보다 끝이라는 아쉬움이 더 크다고 했다.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아 한참이나 촬영장에 머물렀다는 그의 얼굴엔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한 편의 드라마가 아니라 영화를 끝낸 기분이에요. 어제 새벽까지 배우, 스태프들과 현장에 남아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한 장면 한 장면이 머리를 스치더라고요. 힘들었던 순간도 있지만 매우 만족스러운 작품입니다.”

유지태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보였다. 그는 이번 드라마로 얻은 ‘쓰랑꾼(쓰레기와 사랑꾼의 합성어)’이라는 별명에 대한 속내를 유쾌하게 털어놨다.
“선한 얼굴에 섬뜩함이 공존하는 캐릭터였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스러웠어요. 주어진 상황에서 알 수 있는 감정들을 가지고 놀려고 했어요. 무엇보다 섬세하게 연출해준 감독님께 감사해요. 사랑꾼으로 보이면 쓰레기로, 또 쓰레기 쪽으로 치우치면 사랑꾼답게 표현해주셨죠. 근데, 이거 좋아해야 하는 건가요?(웃음)”

‘쓰레기’와 ‘사랑꾼’의 면모를 넘나들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연기할 수 있었던 건 스스로 그 이유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연기하다 보면 때로는 논리에 맞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 주어지기도 하죠. 그럴 땐 작가님이 써준 대사를 작가의 의도대로 소화해내려고 해요. 이번 작품에서도 이해되지 않는 몇몇 장면이 있었지만 대본에 충실하려고 했어요. 맥락 없는 자신감일 수 있지만 아마 이태준을 저처럼 연기하는 배우는 없을 거예요.”

그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연기에 대한 애정이 밑바탕이 된 자신감이다. 그가 그동안 매체나 장르, 캐릭터를 안 가리고 연기한 이유, 영화 연출에도 욕심을 부린 이유는 단 하나다. 연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저는 운동도 연기 때문에 해요. 체력이 좋아야 좋은 연기가 나오거든요. 무용을 전공한 것도 연기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였어요. 사람들은 ‘원톱’이니 ‘투톱’이니 말을 만들어 끊임없이 경쟁을 유도하지만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오롯이 연기만 생각하고 싶어요.”
유지태는 협업의 중요성을 잘 아는 배우다. 드라마를 만드는 데 있어 감독 혼자만 고민해서도 안 되고, 작가 혼자 이끌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주연배우 혼자 튀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전 스태프가 하나가 되어야만 비로소 ‘웰 메이드’ 작품이 탄생한다.

“<굿와이프>가 미국 드라마 원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라 더 고민스러웠어요. 한국 드라마가 지닌 정형성을 기반으로 리메이크된다면 원작 속 인물의 캐릭터가 희석되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웠죠. 그래서 스토리가 흔들렸다는 이야기도 나왔어요. 초반의 시행착오를 통해 정체성을 찾으려고 했어요. 이후엔 시청자 반응도 긍정적으로 바뀌었고요.”


유지태가 중심을 잡는 데는 상대 배우 전도연의 역할이 컸다. 그녀가 데뷔 26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톱 배우’라고 불리는 이유를 몸소 느꼈다고 했다. 전도연이 남편의 외도를 알아차린 주인공을 연기하면서 “이게 진짜 감정일까?”라고 물었던 그 순간에는 지난 20년 동안 현장에서 배우고 느끼며 쌓아온 ‘자존감’이 무참히 무너졌다고 했다.

“데뷔한 지 20년이 다 됐지만 전도연씨와는 첫 연기였어요. 영화 <무뢰한>을 보고 예술성 측면에서 최고의 여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함께 작업하면서 그 존경심이 더 커졌죠. 첫 촬영 때 따귀를 맞는 장면을 찍었어요. 그때 전도연씨가 스스로에게 “이게 진짜 감정일까”라는 물음을 던지더라고요. 그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연기 경력이 그 정도 되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마련인데 여전히 ‘진짜’를 갈구하는 모습이 자극이 됐죠.”

전도연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됐다. 상대 배우의 감정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연기하지 않는 순간에도 연기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천생 배우’가 무엇인지 다시금 깨달았다고 했다. 전도연과 연기하는 순간, 그녀의 상대 배우가 전에 없던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를 확인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체구는 작지만 뿜어내는 에너지는 어마어마하죠. ‘왜 진즉 함께 연기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컸어요. 윤계상씨도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고, 어느 정도의 진지한 감정으로 접근했는지 모든 장면에서 드러나는 배우예요. <굿와이프>를 통해 만난 두 배우는 제게 큰 인상을 남겼죠.”

<굿와이프>는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굿와이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 작품이다. 유지태에게도 마찬가지다. ‘아내’ ‘남편’ ‘가정’이라는 말에 대한 책임감보다 ‘친구’ 같은 감정으로 사랑하는 게 좋다고 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그의 가정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가족을 대하는 그의 신념은 확고했다.

“전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가 만들어낸 잣대를 아내에게 강요하지 않아요. 구속하지 않으려고 하죠. 순간순간의 감정을 사랑으로 발전시키려고 해요.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하면 불행하지 않나요?”
그러면서도 기준은 있었다. ‘배우로서의 명예’와 ‘가장으로서 가족’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기자의 짓궂은 질문에 주저 없이 대답했다. “가족이오!”

“부부 싸움은 잘 안 해요. 가족은 소중하니까요.(웃음) 예전에는 연기할 때 작품에 올인하는 게 잘하는 건 줄 알고 무리하게 체중을 늘리고 줄이면서 건강을 해쳤어요. 지금은 몸은 물론 정신도 건강하게 챙기는 걸로 바뀌었어요. 작품은 작품이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일 뿐이니까요. 변화의 계기요? 아무래도 가족이죠. 가족이 생기니 현명해져야겠다는 바람도 같이 생겼어요.”
아들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영락없는 아들 바보다.

“아들이 창의적인 직업을 선택하면 좋겠어요. 사회가 만들어놓은 직업군이나 엘리트 코스를 밟지는 않았으면 해요. 다양함을 꿈꿀 수 있는 세상인데 체제에 머리 조아리는 건 원치 않아요. 아이를 방송에 노출하지 않는 것도 아들 인생을 미리 만들고 싶지 않아서죠. 아들이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생기고 주도적으로 뭔가 펼치고자 할 때 도움을 주고 싶어요. 아이가 이제 말하기 시작했어요. 너무 예쁜데 작품 활동과 시나리오 작업 때문에 아기를 자주 보지 못해 미안해요.”

배우라는 틀에서 조금 벗어나면 예술인 유지태가 보인다. 2003년 <자전거 소년>, 2005년 <사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 2008년 <나도 모르게>, 2009년 <초대> 등 4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한 데 이어 첫 장편 연출작 <마이 라띠마>(2013년)로는 제15회 도빌아시아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지금도 그는 차기 연출작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규칙적으로 살려고 노력해요. 그래야 삶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 같아요. 요즘에는 시나리오를 쓰고 있기 때문에 배우로서의 일과 연출 작업에 효율적으로 시간을 배분하죠. 틈틈이 책도 읽고요. 최근 탈북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앙까이>의 시나리오를 탈고했는데, 탈북자에 대해 공부하는 데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제 연기에도, 연출에도 충분히 묻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감독님’이라는 호칭이 어색한 듯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인 뒤 잠시 숨을 고른 그가 ‘영화는 내 인생의 리스크’라고 표현했다. 이유가 궁금했다.
“영화를 사랑해서 감독에 도전했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공백기가 생겼고요. 배우에게 공백기는 리스크가 될 수 있지만 감독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이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현장이든, 영화 현장이든, 연출 현장이든, 그곳이 어디든 간에 죽을 때까지 배우로, 감독으로 현장에 서고 싶은 게 소원이에요. 배우로서 연기하는 것도 행복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일도 제겐 그 못지않게 소중합니다. 연기는 제게 인생이에요. 죽을 때까지 할 거예요.”

유지태는 조만간 데뷔 20주년을 맞는다. 일도, 사랑도, 가정도, 이룬 게 많아 보이는데도 그는 10년 후를 그리고 있었다.
“감독 겸 배우 유지태로 불렸으면 좋겠어요. 참, 10년 뒤면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겠네요. 그럼 감독 겸 배우 겸 학부모 유지태로 불러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주어진 역할을 다 잘해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유지태는 올 하반기에 영화 <스플릿>을 통해 관객과 만난다. 이번에는 코믹한 캐릭터다. 우리는 그저 영화를 만끽할 준비만 하면 된다.

 

CREDIT INFO
취재
이예지 기자
사진
서울문화사 DB
2016년 10월호
2016년 10월호
취재
이예지 기자
사진
서울문화사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