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책한잔
김종현
염리동 골목길에 생뚱맞게 위치한 작은 책방 ‘퇴근길 책한잔’. 책방 대표 김종현 씨는 스스로를 ‘자발적 거지’라 칭했다. 대기업에서 일하며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우린 모두 노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사표를 냈고 ‘거지’의 삶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모아둔 쌈짓돈 5백만원을 털어 책방을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맘에 드는 공간을 보러 다녔다. 목 좋은 곳에 위치할 필요는 없었고 다만 창이 크고 햇살이 잘 들어오길 바랐다. 권리금 없이 월세 60만원만 내면 되는 작은 공간을 발견한 뒤 어설픈 목공 실력으로 뚝딱뚝딱 책방을 꾸몄다.
책방은 김 대표의 표현을 빌자면 ‘제멋대로’ 운영한다. 취향에 맞는 책만 팔고 술도 병맥주로만 판매한다. 책방에서는 여러 가지 모임이 열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논의하는 ‘자발적 거지 모임’, 매주 금요일 저녁 열리는 ‘영화 상영회’ 등이 그것이다.
그렇게 한번 책방에 발을 들인 손님들은 계속 온다.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장비를 무상으로 기증한 손님도 있고 김대표가 휴식을 위해 몇일간 책방을 닫는다고 공지하면 ‘무료로 대신 책방을 봐주겠다’는 지원자도 넘쳐난다.
“월세 외에 돈 나갈 게 없어서 계속 흑자가 나고 있어요. 언론 매체들이 입소문을 듣고 찾아와 인터뷰도 많이 했고요. 이것이 모두 ‘제멋대로 경영 스타일’ 덕분이에요.(웃음)”
소녀방앗간
김민영·전제언
건강식을 표방하는 밥집은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소녀방앗간’은 유독 눈에 띈다. 경북 청송에서 직접 조달한 천연 식재료로 차려낸 밥상의 첫맛은 심심하다. 조미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수동의 맘 카페에 “아이와 함께 가서 먹어도 안심할 수 있는 밥집”으로 알려지면서 손님들이 갑자기 늘어났다. ‘할머니들이 직접 뜯는 산나물을 직거래한 대학생들이 운영하는 밥집’이라고 입소문이 퍼지며 언론 매체들의 인터뷰 요청도 쇄도했다. 지금은 성수점 이외에도 전국에 6개의 지점을 운영 중이다.
시작은 ‘생생농업유통’이라는 농산물 유통회사였다. 청송에서 할머니들과 농사를 짓던 대학생들이 좋은 식재료를 제값 받고 팔자는 의미에서 만든 작은 회사다. 그러다 소비자에게 직접 식재료로 만든 요리를 소개하자는 차원에서 밥집을 만들게 됐다.. 직원들은 손님들에게 “오늘 메뉴는 취나물과 다래순을 섞은 것인데, 다래순은 5월에 할머니들이 뜯어 가져온 거예요”라는 식으로 그날의 식단을 일일이 설명한다.
“가게를 꾸밀 때 돈을 아끼려고 발품을 팔아 싼 자재를 구매하고 몸으로 때우는 일은 다 저희가 했어요. 전문적인 공사를 할 때는 인부들을 불렀지만 일당을 많이 못 드렸는데 기특하다며 기쁘게 일해 주셨어요. 하지만 식재료는 제 돈 주고 샀어요. 땀 흘려 수확한 좋은 농산물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았으면 해서 시작한 밥집이니까요.”
얼마 전에는 농사짓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서울의 소녀방앗간으로 모셨다. “내가 뜯은 산나물이 이렇게 어엿한 음식이 됐단 말이야?” 하며 다들 신기해하셨다고. 밥집을 연 이래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하는 김민영·전제언 씨의 웃음이 소녀처럼 화사했다.
헬카페
권요섭·임성은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핫한 해시태그는 바로 ‘#헬카페’다. 이태원 보광동 후미진 곳에 자리한 이 작은 카페에 사람들이 줄 서서 커피를 사간다는 풍문도 계속 들려왔다. 급기야 <수요미식회>에 ‘마성의 카페’로 등장하기까지.
헬카페의 문을 열자 고소한 커피 향이 확 풍겨온다. 무뚝뚝한 얼굴로 기자를 맞는 바리스타 권요섭 씨. 어떤 메뉴가 제일 맛있냐는 질문에 “평소 즐겨 드시는 커피를 말씀해주시면 그걸 맛있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라고 답한다. 고수의 내공이 느껴지는 현답이다.
주인인 권요섭·임성은 바리스타는 친구 사이다. 각자가 직원으로 일하던 카페를 그만둔 후 조금은 즉흥적으로 창업을 하기로 맘먹고 연 곳이 헬카페다. 가게를 준비할 때 워낙 자본이 없어 가장 중요한 커피머신을 제외하고는 모두 ‘저렴한 것’만 찾아 헤맸다고 한다. 가게 공사도 모두 두 사람이 직접 해서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았다.
“헬카페의 운영 방침은 단순합니다. ‘제대로 된 커피를 내자.’ 그 이외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마케팅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요. 카페 이름도 별 심오한 뜻 없어요. 아침에 지하철의 출근 인파에 낑겨 가다가 ‘여기가 지옥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붙인 이름이죠.”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카페다. 하지만 헬카페는 영업을 시작하자마자 이익을 냈다.
“어떻게 성공적으로 카페를 운영할 수 있는지 묻는 분이 많아요. 인테리어에 제발 비싼 돈 들이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음악도 좀 신경 써서 틀고요. 그 공간의 분위기를 만드는 건 주인이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건 정성이 담긴 커피를 내놓는 거예요.”
도노도노제이
김주원
패션에 관심이 많다면 최정윤, 신애라, 유명 스타일리스트 등 셀리브리티들이 들고 다니는 ‘도노도노제이’의 가방을 알아볼 것이다. 청담동 일대를 거닐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스마일’ 마크가 인상적인 유머러스한 디자인의 가방 말이다. 이곳의 대표 김주원씨는 자신의 가방이 고객에게 ‘선물’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패션을 전문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늘 동경했어요. 나이 마흔이 되니까, ‘지금이 아니면 꿈꿔왔던 걸 할 기회는 영영 없을 거야’라는 깨달음이 왔지요.”
몇십 년간 응축된 열망의 위력은 대단했다. 무작정 가죽을 사서 차에 싣고 가방 공장을 찾아다녔다. 소량 주문이라 퇴짜 맞은 적도 여러 번, 그럴수록 오기가 불타올랐다.
어렵게 만든 50개의 가방을 들고 김 대표는 조그맣게 가게를 열었다. 비닐봉지를 형상화한 실용적인 디자인과 내구성을 갖춘 가방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마케팅에 돈을 쓰느니 예쁘고 튼튼한 가방을 만드는 데 더 투자하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연예인분들이 저희 가방을 하나 둘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유명 백화점에서 입점 제의를 받았을 때는 어안이 벙벙했어요. 곧 중국에서도 판매를 시작할 것 같아요.”
최근 김 대표는 이태원에 카페와 숍을 합친 공간을 오픈했다. 단순히 가방만 파는 게 아니라 ‘도노도노제이’만의 스타일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미고 싶었단다. 꿈을 현실로 이뤄가는 지금, 잠도 못 잘 정도로 바쁘지만 그녀는 행복하다.
“얼마 전 대학에서 강의를 했는데 학생들이 ‘돈이 없어 브랜드를 만들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라면 가진 돈을 털어 가방 하나라도 만들어 벼룩시장에라도 들고 나가겠다’고 말했죠. 움직이지 않으면 바뀌는 건 없어요. 지금 간절하게 꿈꾸는 뭔가가 있다면 일단 한 걸음 내딛어 보셨으면 좋겠어요.”
분바이셀리나
전희제
전희제 대표는 평소 향수를 비롯해 캔들, 디퓨저까지 관심이 많았다. ‘내 손으로 만들어 건강하게 향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에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했다. 직접 만든 향초를 지인들에게 선물했는데 예상보다 반응이 뜨거웠다.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전 대표는 자신만의 향초 브랜드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전 대표는 저축해둔 2백만원을 초기 비용으로 삼았다. 평소 좋아하던 민트와 실버를 메인 컬러로 정해 패키지를 따로 만들었다. 초기 비용의 절반을 할애했지만 ‘고급스럽다’는 고객들의 평가에 돈 들이기를 잘했다 싶었다고.
저울, 비커, 온도계 등 제품의 재료에는 80만원을 썼다. 진작 배워둔 포토샵으로 라벨지를 직접 디자인하는 등 초기 비용을 줄이려고 노력했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자격증도 땄다. 6개월 정도 준비 기간을 거친 뒤 전희제 대표는 자신의 이름을 건 향초를 선보였다.
아직은 소량 판매로만 진행되지만 초기 비용을 최대한 줄인 데다, 일단 한 번 산 고객들의 재구매가 이어지며 6개월 만에 사업은 흑자로 전환됐다. 수익이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매달 점점 늘고 있어 희망적이다.
“제 최종 목표는 저만의 고유한 향을 개발하는 거예요. 그래서 직장을 다니는 틈틈이 조향사 자격증도 준비 중이에요. 힘들지는 않아요. 향초를 만들면서 오히려 마음이 안정되거든요.”
에드’비
윤선화·아름다라·강정모· 현우
여기 4명의 붙임머리 전문점 원장은 부천에서 함께 자란 동네 친구다. 모두 미용업계에 종사하며 커리어를 쌓아가던 터라 만나면 늘 할 이야기가 많았다. 기술을 공유하고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함께 고민하며 몇 년이 흐르자 저절로 ‘함께 창업하자’고 마음을 모으게 됐다.
이들은 성급하게 움직이는 대신 2년이라는 준비 기간을 뒀다. 정기적으로 만나 의견을 공유하고 함께 창업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을 가진 것. 준비를 마치고 각각 1천만원씩 모은 종잣돈 4천만원으로 부천에 작은 가게를 내기로 했다. 발품을 팔아 함께 저렴한 보증금의 가게를 찾았고 인테리어도 직접 손봤다.
실력 좋고 서비스 마인드가 투철한 이들이 함께 가게를 연다는 소식에 멀리서도 손님들이 몰려왔다. 가게를 오픈하자마자 적게나마 수익이 생겼다. 이후로도 손님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덕분에 첫 가게를 연 지 일 년여 만에 강남에 2호점을 오픈할 수 있었다.
“함께 가게를 연다고 했을 때 ‘친구와 동업하면 사람도 돈도 다 잃는다’고 다들 말렸는데, 이제는 모두 저희의 선택을 인정해주세요. 비결이 뭐냐고요? ‘정’이 아닌,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가게를 운영하는 거죠. 저희 가게에서는 원장이나 일반 직원이나 똑같이 규칙을 지켜야 해요. 지키지 않았을 경우의 페널티도 똑같고요.”
‘국내 최고의 붙임머리 전문점을 만들자’는 초심을 매일 되새긴다는 이들 4명의 웃음이 싱그러웠다.
뽀에이티
김지숙
김지숙 대표가 가죽공예에 빠져든 건 정말 우연한 계기였다. 출근길에 눈에 띈 가죽 시장을 방문한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을 송치 가죽을 발견했다.
김 대표는 그 가죽을 무작정 사 들고 와 벽에 걸어놓고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직장을 그만두고 가죽 공방으로 향했다. 가죽 공방 ‘뽀에이티’는 그렇게 시작됐다.
발품을 열심히 팔아 저렴한 가격에 강남 역세권에 첫 가게를 마련했다. 평수가 작고 2층에 위치해 월세가 예상보다 훨씬 저렴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모아둔 종잣돈으로 공방에 필요한 물품을 하나씩 사들였다. 자금이 넉넉지 않아 도구는 저렴한 것을 사용했지만, 가죽을 사는 비용만큼은 아끼지 않았다.
김 대표는 주문을 많이 받지 않았다. 다만 주문한 사람과는 충분히 커뮤니케이션하며 그 내용을 제품으로 구현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한 노력이 입소문으로 이어졌다.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알음알음으로 주문이 들어왔다. 가죽공예를 가르치는 클래스도 꾸준히 운영했다. 낯선 이들과 한 공간에서 함께 작업하며 서로의 삶을 나누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가죽공예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요즘 슬럼프에 빠졌어요. 지금까지 작업을 가려가며 했어도 현상 유지를 했으니, 본격적으로 바쁘게 일하면 더 잘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그런데 좀 힘에 부쳐요. 영감이 필요해요. 그래서 강아지 한 마리를 입양했죠. 천진난만하고 사랑스러운 생명체를 돌보며 영감을 얻으려고요.(웃음)”
최근 강아지를 돌보며 ‘애견’을 위한 가죽 제품 컬렉션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김 대표. 가죽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아직 진행 중이다.
밀크
차겨울
삼청동의 작은 빵집 ‘밀크’에 도착했다. 빵집 주인 차겨울 대표는 아직 도착하기 전이었다. “기다리면서 이것 좀 드셔보세요”라며 제빵사가 갓 구운 주사위 모양의 식빵을 내어왔다. 담백하고 고소한 빵 속에 크림치즈가 푸짐하게 들었다.
훈훈한 비주얼의 차 대표가 가게로 들어섰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빵 반죽을 체크하고 손님을 응대하는 모습이 야무졌다. 서울예술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안정된 상황에서 연기하고 싶어서’ 사업을 시작했다.
인스턴트 음식이나 짠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 차 대표는, 물 없이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담백한 식빵을 만들어 팔고 싶었다. 제빵사인 아내와 함께 메뉴 개발에 힘을 쏟았다. 기준은 단 하나, ‘내 식구들에게도 먹일 수 있는 건강한 빵’이었다.
처음에는 반응이 미지근했지만 점차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달걀과 설탕, 방부제를 넣지 않아 먹을 때는 좀 심심해도 돌아서면 자꾸 생각나는 맛이라 했다. 당시로서는 볼 수 없었던 주사위 모양의 ‘큐브식빵’이란 점도 여자 손님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초기 자본 5천만원을 들여 시작한 빵집은 일 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장사가 가장 잘되는 겨울에는 눈 내리는 날에도 수십, 수백 명이 줄 서서 빵을 사 간다.
“빵은 정석대로 꾀부리지 않고 만들지만, 메뉴 개발은 민첩하게 해야 해요. 매일 가판대 앞에 서 있으면 손님들이 신메뉴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바로 알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해서 완성된 게 지금의 메뉴들이에요.”
더운 날씨에 오븐 앞에서 빵을 구우면서도 차겨울 대표는 한순간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