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허지웅
심드렁한 듯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조언을 툭 건네는 이 남자, 매력적이다.
‘아재’란 단어를 안 좋아한다면서요?
아직 젊으니까요. 나이 때문에 ‘아재’로 규정되는 것도 별로고요. 전 제가 어른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왜 어른이 아니라고 생각하나요?
제가 생각하는 어른의 기준은 ‘다음 사람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는 것을 겁내지 않는 사람’이에요. 저는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기준이죠.
노력하면 그런 어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바꿔 말하자면 ‘누군가의 과거로 기억되는 것을 겁내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어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담대함이 과연 노력으로 가능할까요? 타고나야 된다고 봐요.
인생에서 ‘진짜 어른’을 만난 적이 있나요?
때로는 괴팍하고, 때로는 답답하지만 후배들만큼은 책임지는 분이 계셨죠. 누구보다도 책임감이 강한 ‘어른 남자’요. 제 첫 직장인 <필름2.0>의 이지훈 편집장이에요. 지금은 고인이 되셨어요.
요즘 어떻게 지내요?
2주 전에 머리 염색했고요,(웃음) 칼럼을 연재하고 있고, 영화 채널에 출연 중이고, 곧 다른 TV 프로그램에도 출연할 예정입니다. 단행본도 준비하고 있는데 진도가 잘 안 나가네요. 역시 ‘마감’이라는 시스템이 있어야 글이 써진단 말이지요.
글 쓰다가 막히면 어떻게 하나요?
그냥 써놓은 글을 처음부터 쭉 봐요. 분위기 환기한답시고 드라마를 본다거나 하면 안 돼요. 버티는 게 최고의 방법이죠. 글 다 쓰면 프린트한 다음 소리 내어 읽어요. 제 글에는 오타가 있거나 맞춤법은 틀려도 비문이 거의 없대요. 그게 다 소리 내서 쭉 읽어보고 이상하면 고치는 습관 덕분이에요.
옛날에 쓴 글을 보면 민망하지 않나요?
20대 초반에 쓴 글은 민망해서 아예 삭제해버렸어요. 사회 비평 칼럼 같은 글은 당시와 현재의 입장이 바뀐 상태에서 보면 부끄럽더라고요. 저는 제 글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글 쓰는 사람이라면 일종의 자부심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을 거예요.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뭐하러 글을 쓰겠어요.
운동을 열심히 하던데요.
마른 몸이 싫어 운동을 시작했어요. 열심히 하는데도 근육이 잘 안 붙어요. 트레이너는 밥을 8끼 먹으라고 권장하는데 도저히 그렇게는 못 하겠더라고요. 요즘엔 자전거를 타요. 거치적거리는 게 싫어 러닝셔츠만 입고 얼굴을 가리는데도 다들 알아보더라고요.
드라마도 좋아하죠?
최근 미국의 판타지 장르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재미있게 봤어요. 미드 <굿와이프>도 좋아해요. 법정 드라마라 자칫 단조로워지기 쉬운데도 매회 흥미롭더라고요.
국내 드라마는 안 보나요?
요즘은 딱히 챙겨 보지는 않네요. <그것이 알고 싶다>는 늘 챙겨 봐요.
최근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여자가 있나요?
단연코 혜리! 아직도 혜리씨가 최저 시급을 외치는 아르바이트 사이트 CF가 떠오르네요. 단군 이래 가장 아름다운 광고였고, 그 파급력 또한 ‘혜리라서 가능했다’고 주장해봅니다.(웃음)
가장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남자는요?
일단 떠오르는 건 영국 배우 제레미 아이언스. 나이 들수록 멋진 배우죠. 남녀 관계에서 가장 터부시하는 두 가지는 첫째는 나이 많은 사람과 어린 사람의 연애일 것이고, 두 번째는 친족 간의 사랑일 거예요. 제레미 아이언스는 두 역할을 모두 맡았어요. 아들의 연인과 사랑을 나누는 영화 <데미지> 그리고 영화 <로리타>를 통해서요. 그였기에 가능했죠. 한국 배우 중에서는 차승원씨죠. 그런 섹시함은 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것이에요.
다시 태어난다면 누구로 태어나고 싶어요?
사람은 한 번 죽으면 끝이에요.(웃음) 모두 저마다 고민을 안고사는데 굳이 남의 인생으로 태어날 이유가 있나요? 요즘 따라 행복 불감증에 걸린 것 같고, 나이가 들수록 이것저것 포기하는 게 많아지는 것 같아요.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네요.
포기할 수 없는 인생의 요소는 뭐예요?
술. 기분 따라 주량이 다르지만 최근 주량은 연태고량주 1병 반이에요. 그리고 글.
돈도 포기할 수 없지 않나요?
대학생 시절 맹세한 게 있어요. 인생의 유일한 맹세이기도 하죠. 돈 부탁은 절대 안 하고 살아야겠다는 겁니다. 스물한 살 때 등록금이 없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알아보다가 최후의 수단으로 아버지한테 용기 내서 부탁했는데 거절당했거든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소주를 마시고 전화했는데 말이죠. 제 인생의 가장 끔찍한 장면이에요.
그럼에도 잘 성장했네요.
독하게 스스로를 책임지려 했어요. 대학생 시절, 미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가 방한했을 때 처음으로 글 쓰고 돈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해요. 당시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몇 개나 하고 독서실 야간 총무로 일하던 터라 ‘이거 나쁘지 않다’ 싶었어요. 이후 <필름2.0> 공채에 지원했고요. 저는 글 안 썼으면 비뚤어졌을 거예요. 글을 통해 비로소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됐거든요. 앞으로도 뭘 하든 저를 ‘글 쓰는 허지웅’으로 소개할 거예요.
배우 오대환
최근 다섯 편의 드라마에 악역으로 출연한 오대환. 실제로 보면 미소가 선한 아재다.
아재로서 자신의 매력 포인트는?
귀여움?(웃음) 강하게 생겼어도 그 안에 귀여운 구석이 있어요.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꼰대 같은 느낌을 주지 않는 건 웃을 때 살짝 보이는 덧니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아줌마 팬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죠?
어린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다고 말하고 싶네요.(웃음) 이런 게 아재 코드인가요? 좋아해주시니까 감사할 따름이죠.
요즘 어떻게 지내요?
드라마 <38사기동대> 촬영을 마치고 몸만들기에 열중하고 있어요. 10kg 감량이 목표인데 지금까지 7kg을 뺐죠. 아침에 일어나 운동하고, 저녁에 일 마치고 들어가는 길에 헬스장에 들러요. 먹고 싶은 걸 못 먹는 게 제일 힘들지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생긴 등 근육을 보고 다시금 의지가 타오르기 시작했죠. 제 등 근육, 지금 화나 있어요.(웃음)
운동을 왜 그렇게 열심히 해요?
다음 작품을 위해서요. 감독님이 날렵한 이미지를 원하셨기 때문에 더 열심히 운동하고 있어요. 팬분들도 아재 같은 푸근한 모습보다 살짝 마른 체형일 때 더 좋아해주시는 것 같기도 하고요.
다이어트하느라 스트레스 받지 않나요?
그럴 때는 <백종원의 3대 천왕>을 봐요. 먹방 프로그램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하는 거죠. 또 아이들에게 간식거리를 사다 주면서 힐링하고 있어요. 사실 제가 네 아이를 둔 유부남이거든요. 아이들이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답니다.
그래도 스트레스가 안 풀리면요?
촬영장에 가면 스트레스가 풀려요. 최근 다섯 작품에 연달아 출연했는데, 모두 악역이었죠. <돌아와요 아저씨>에서는 얼굴에 흉터를 만들어가면서 악랄한 연기를 했어요. 일상에서는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는데 촬영장에서 욕하고 소리 지르면 스트레스가 좀 풀려요. 아무래도 천생 배우인가 봐요.
요즘 바빠서 친구 만날 시간도 없죠?
오랜 시간 함께해온 소속사 동료 배우 김민석씨와 제일 친해요. 조만간 같은 작품에도 출연합니다. 제가 화를 내거나 짜증 내도 이해해주는 친구예요. 요즘도 그 친구와 만나 수다를 떨어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기분은 좋죠?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이 인기가 감사해요.
부모님도 좋아하시죠?
시골에 계셔서 TV를 잘 보지 않는 분들이신데도 제가 나오는 드라마는 꼭 챙겨보세요. 악역으로 나오는데도 뭐가 그렇게 좋으신지 모르겠어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다음엔 착한 캐릭터를 하고 싶어요.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멋있는 배우는 누구예요?
단연코 정우성! 영화 <더 킹>을 촬영하면서 처음 봤는데 숨만 쉬어도 화보가 되는 배우더라고요. 바닥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모습조차 멋있어요. 무게감이 느껴진다고 할까?
인생에서 만난 가장 멋진 여자는요?
제 아내도 물론 멋지지만 제가 꼽는 가장 멋진 여성은 어머니예요. 힘든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자리를 지킨 분이죠.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요?
뭘 하든 꾸준히 하고 싶어요.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가 있었고 앞으로도 그런 날은 있을 거예요. 하지만 연기를 선택한 만큼 죽을 때까지 하려고요.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더 좋은 날이 오겠죠.
방송인 김일중
반듯한 모습으로 어머님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는 김일중을 만났다.
‘아재파탈’이란 단어를 듣자마자 웃으시더라고요.
원래 몰랐던 단어인데도 무슨 뜻인지 감이 와서요.(웃음) 치명적인 매력이라니 저랑 잘 매치가 안 되네요.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치명적인 매력의 ‘아재’답게 슈트가 잘 어울려요.
겉으로 보기만 그래요. 지금 배에 힘주고 있어요. 방송국 입사하고 살이 많이 쪄서 다이어트한 이후로는 별다른 관리를 안 해도 살이 잘 안 찌더라고요.
나잇살을 극복한 비결은 뭐죠?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어요. 친한 형하고 같이 시작했는데 그 형은 퇴근만 하면 맨날 연습하러 가시더라고요. 뒤처질 수 없어 열심히 했더니 조금씩 실력이 늘고 있네요.
프리랜서 생활은 어때요?
즐기면서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어 좋아요. 방송국에 있을 때도 즐겁게 일하긴 했지만요. 결정하기까지 쉽진 않았어요. 조용히 오래 고민하다 과감하게 도전한 거죠. 아직 보여드릴 모습이 많아요.
바빠지면서 가족 얼굴도 잘 못 보죠?
또 그렇게까지 바쁜 건 아닙니다.(웃음) 평일에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은 줄어들었죠. 그래서 주말에라도 시간이 조금 나면 가족과 보내려고 노력해요.
아빠를 닮아 아들들이 인물이 좋겠어요.
엄마 닮아서 얼굴은 작아요.(웃음) 큰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에요. 학원은 아직 많이 안 보내려고요. 방과 후 수업이 생각보다 잘돼 있어서요.
아들도 방송인 시킬 생각 없어요?
아우,걔들은 아빠랑 엄마(윤재희 YTN 아나운서)가 아나운서라는 것도 잘 몰라요. 그냥 텔레비전 보다가 “아빠 나온다” 하고 마는 정도죠. 장래 희망 물어보면 공룡이 되고 싶대요.(웃음) 아들 중 한 명은 하정우씨 같은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본인이 깊게 고민하고 선택해 자신의 길을 가는 그런 배우요.
가장으로서 힘든 점은 없나요?
가장으로서 무언가를 희생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스스로 가장 원하는 쪽으로 움직여요. 그다음에는 아내의 조언을 구하고요. 아빠와 남편 역할이 모두 쉬운 것은 아니지만, 얻는 게 훨씬 많아요.
좋은 남편 같아요.
제 이야기만 듣고 판단하시면 곤란합니다.(웃음) 아내 이야기도 들어보셔야 해요. 바쁜 일과 중 아이들을 다 재워놓고 아내와 같이 호프집에서 치킨과 맥주를 시켜 먹을 때가 제일 행복해요.
일도 가정도 잘 지키고 있네요.
노력하고 있어요. 프리랜서가 되기로 결정할 때도 고민이 많았어요. 가장으로서 무책임한 것 아닐까 해서요. (김)원희 누나가 “프리랜서는 쉬는 시간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초조해하지 말고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일도 잘되는 법이다”라고 말해줬어요. 그래서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언제부터 사람들 앞에 서고 싶었어요?
청춘 시트콤에 출연하는 대학생들을 동경해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죠. 조 과제를 할 때마다 발표를 도맡아했고 이야기하는 걸 원체 좋아했어요. 자연스럽게 아나운서의 길로 온 거예요.
본인이 지닌 방송인으로서의 장점은 뭔가요?
게스트들을 잘 아우르면서 장점을 잘 끄집어내는 것 같아요.
현재 가장 큰 목표는 뭐예요?
솔직하게 말할게요. 지상파 입성! 궁극적인 목표는 이름 석 자로도 울림을 줄 수 있는 방송인이 되는 거예요. 5천만 명의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그런 방송인이오.
지금은 몇 명 정도 설득한 것 같아요?
일단 어머님들을 설득해나가고 있어요.(웃음) 모두 <백년손님> 덕분이죠.
전 국민을 설득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많이 보고, 듣고, 소화해 내 노하우로 만들어야죠. 그런 의미에서 김구라씨를 존경합니다. 김구라씨는 예능 프로그램인 <라디오 스타>에도, 시사 프로그램인 <썰전>에도 모두 어울리잖아요.
방송인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요?
즐길 준비가 안 돼 있으면 덤비지 마라! 화려해 보이니 동경할 수 있지만 적성이 안 맞으면 괴롭고 힘든 직업이에요. 즐길 준비가 됐다면? 망설이지 마세요!
셰프 김소봉
산적 같은 외모지만 요리하는 손놀림은 민첩하다. 귀여운 미소까지 갖췄다.
‘아재파탈’ 콘셉트에 흔쾌히 응해줘서 감사해요.
저, 아재 개그 좋아해요.(웃음)
실물은 ‘아재’라기엔 귀여워요.
입술이 핑크빛으로 돌아와서 그래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입술이 시커맸거든요. 어제는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병원에 다녀왔어요.
외모와는 달리 잔병치레가 잦네요.(웃음)
20대랑 확실히 달라요.(웃음) 이것저것 벌여놓은 일이 많아서요. 누굴 탓할 수도 없지요.
그렇게 바쁜데 봉사 활동까지 한다면서요?
사정이 안 좋은 아동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해주고 있어요. <우먼센스> 독자 분들도 월드비전 사이트에 들어가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도와주실 수 있을 거예요.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저보다 뛰어난 셰프가 많은데 운이 좋아 TV에 나오게 됐잖아요. 마음의 부담을 덜어내려고 봉사 활동을 시작했어요.(웃음) 얼마나 고마워요, 인지도가 있으니까 봉사 활동 단체에서도 불러주시니…. 기왕 하는 봉사 제대로 하고 싶어 두 팔을 걷어붙였죠.
밥은 먹고 다녀요?
‘칼로리 바란스’랑 ‘아메리카노’로 새벽 3시까지 버틴 적도 있어요. 그런데 왜 살은 안 빠지는 거지?(웃음)
왜 그렇게 열심히 사나요?
열심히 사는 건 미덕이 아니라 기본이에요. 하지만 저도 지금 반성하고 있어요. 몸 관리는 잘해야 하는 게 맞는데…. 일본 유학을 끝내고 막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팔이 부러진 적이 있어요. 그간 모아둔 돈을 병원비로 날렸죠. 그때 깨달았어요. ‘건강을 관리하는 게 진짜 프로구나’라고요.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하시겠어요.
TV에 나온다고 말씀드린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다 찾아서 보시더라고요. 저는 방송하는 것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매주 녹화할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 녹화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죠.
유명 셰프에 대한 주변의 시선은 어떤가요?
학교에서 가르치는 학생들이 소위 ‘스타 셰프’가 된 비결이 뭐냐고 물어봐요.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열심히 하면 운이 오기도 하고 안 오기도 한다. 그 운을 극복하는 게 노력과 실력이다”라고 말해줘요. 제가 무슨 스타 셰프예요? 요리사일 뿐이죠.
언제부터 요리를 하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나는 공부로는 빛을 못 보겠다’고 판단했어요. 일단 손재주가 있으니 그걸 살려야겠더라고요. 전교를 돌면서 친구들에게 물어보니까 약 4백80명 중에 요리사를 꿈꾸는 친구는 단 한 명인 거예요. 어린 마음에 엉터리 계산을 시작했죠. ‘전국 고등학교에서 요리사를 꿈꾸는 친구들을 모았을 때, 내가 절반은 이길 수 있을까?’ 할 수 있을 것 같았죠(웃음).
어린 나이에도 현실적이었네요.
공부를 못하고 노력도 안 하는데 변호사나 의사가 되고 싶다는 말만 하는 친구들이 이해되지 않았어요. 꿈꾸는 건 자유지만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하죠.
꿈꾸던 것을 차근차근 이루는 중이죠?
저는 35세 때까지는 돈 생각 없이 일만 하려고 했고, 40세가 되면 기념으로 텔레비전에나 한 번 나왔으면 했어요. 50대에는 후배들한테 실질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위치였으면 좋겠다 싶었고요. 그런데 서른두 살에 다 이뤘어요. 결코 좋은 게 아니니 교만해지면 안 되죠.
살면서 만난 가장 멋진 남자는 누구예요?
일본에서 만난 셰프인데요. 까치머리를 한 큰 키에 마른 몸매의 남자였어요. 본인 사이즈보다 훨씬 큰 셰프 유니폼에 바닥에 질질 끌리는 카고 바지를 입었었죠. 그런데 그 사람이 만드는 요리는 다 맛있었어요. 옷은 히피처럼 입으면서도 음식은 언제나 정갈했고요. 그래서 동경했어요. 그를 보고 저도 주방의 청결에 더욱 신경 쓰게 됐어요. 수염 있는 요리사가 내놓는 음식은 더 깨끗해야 해요. 안 그러면 수염 기를 자격이 없는 겁니다.(웃음)
앞으로 어떤 요리를 만들고 싶어요?
최근 ‘핫하다’는 레스토랑에서는 다 푸아그라와 송로버섯을 사용해요. 요리 종류에 관계없이요. 사실 고민했어요. 매출을 올리려면 이런 재료를 써야 하나 싶었죠. 그런데 값비싼 재료를 쓰면 더 이상 일본 가정식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마음을 다잡았죠. 앞으로도 대단한 요리를 만들고 싶은 욕심은 없어요. 즐겁게 요리하고, 내가 만든 요리가 생각나서 먹으러 오는 분들이 있으면 그걸로 족해요.
개그맨 박휘순
“제 개그의 매력에 빠지면 못 헤어나요”라고 박휘순이 말했다. 거만하게 들릴 법도 한데 그저 수긍하는 웃음만 나왔다.
‘아재파탈’로 섭외 들어왔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이젠 정말 빼도 박도 못 하는 아저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올해 마흔 살이 됐어요.
몸이 예전 같지 않아요. 얼마 전에 몸살 걸려 누워 있는데 ‘이러다 혼자 고독사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매 순간을 여행하러 온 기분으로 즐기려고 해요.
개그계에서도 이젠 선배 축에 들어요.
마흔이란 나이가 될 때까지 공개 코미디 무대에 설 수 있을지 몰랐어요. 제가 신입 개그맨이던 당시 <개그콘서트>에서 가장 나이 많은 박준형 선배도 30대 중반이었거든요. 감사한 일이죠. 최근 <개그콘서트>에 복귀했는데 한참 어린 후배들과 호흡을 맞추는 게 즐거워요. 초등학생들이 알아보고 인사하는 것도 고맙고요. 아직도 관객 앞에 서기 전엔 긴장하지만 무대에 서면 행복해요.
언제부터 개그맨을 꿈꿨나요?
열한 살 때부터 사람들 앞에 서고 싶었어요. 대학 전공도 연극영화과를 선택했지만 다 떨어졌고요. 편입해서 원하던 학과에 들어갔어요. 졸업하고 4년 동안 백수로 지내다가 스물아홉이 돼서야 TV에 나왔죠.
백수 생활하는 동안 불안하지는 않았나요?
부모님에게 죄송했죠. 매일 늦게 일어나 점심을 먹고, 오락실에 가서 3천원어치 오락을 했어요. 인라인스케이트도 타고요. 돌아보면 많이 초조해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요즘 취업난으로 고민하는 분들의 마음은 누구보다 잘 이해하죠.
그런 경험이 개그에 도움이 됐나요?
물론이죠. 제 개그를 좋아하는 분들이 하는 말씀이 “디테일이 살아 있다”는 거예요. 노량진에 사는 고시생 캐릭터인 ‘노량진 박’을 연기했을 때도 ‘고시원 공용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있기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상황’을 코믹하게 연출했지요. 그런 디테일은 실제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거거든요.
최근 새로운 도전 중이죠?
EBS 라디오 <니하오 차이나>를 5개월째 진행하면서 중국어 삼매경에 빠졌답니다. 조혜련 선배님의 동생이신 조혜숙 강사님에게 중국어를 1개월 정도 배웠거든요. 그러던 중 중국어 라디오를 진행하자는 제안을 받았죠. 청취자들과 하루 한 문장씩 같이 공부하고 있어요. 생각보다 다양한 연령대 분들이 라디오를 즐겨 들으시더라고요.
연애 중인가요?
(잠시 침묵) 지금은 아닙니다.
외롭겠어요.
동료 개그맨들과 만나 수다 떠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어요. 부모님 뵈러 본가에 갔다가도 잔소리가 나올 타이밍이 되면 도망치죠. 많은 걸 바라지 않습니다. 함께 유쾌하게 지낼 수 있는 여성분이면 됩니다. 그거면 되는데…. 어렵네요, 사랑.
시간 남을 땐 뭐 하나요?
글을 끄적거려요. 고등학교 때 생각 없이 후루룩 쓴 글로 전교 대표가 된 적이 있어요. 그 이후로는 선생님들이 글쓰기 대회에 자꾸 저를 내보내시더라고요. 문학 동아리도 했고 염세주의에 빠져 <데미안>을 평론한 적도 있죠.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는 제의를 받은 적도 있는데 거절했어요. 편한 마음으로 글 쓸 수 없을 것 같아서요.
최근 가장 이루고 싶은 목표는 뭐예요?
‘좋은 아빠’가 되는 거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아빠는 아무리 힘들어도 가정을 지킬 줄 아는 아빠예요. 그리고 좋은 선배로 남는 거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최대한 오래 무대에 서는 거예요. 그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서두르지 않지만 끝까지 가는 건 자신 있어요.
대중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나요?
음… 그냥 끝까지 ‘코미디언’으로 남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