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요인 분석
1. 의드의 성공엔 이유가 있다
의학 드라마(이하 ‘의드’)는 안방극장의 흥행 보증수표라 불린다. ‘의드’라는 장르를 대중적으로 정착시킨 1994년 작 <종합병원>부터 대부분의 의드가 높은 시청률과 그 이상의 화제성을 얻었다.
SBS <닥터스> 역시 방영 2주 만에 수도권 시청률 20%를 넘어서며 흥행 불패 신화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닥터스>의 성공이 단순히 의드라는 간판 때문만은 아니다. 같은 의드인 동시간대 경쟁작 <뷰티풀 마인드>와 맞붙어 압승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가장 큰 비결은 <닥터스>가 의드의 모든 흥행 트렌드를 종합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먼저 <닥터스>에는 의드의 상징인 휴머니즘이 있다. 히포크라테스의 화신과도 같은 휴머니스트 의사 이재룡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종합병원> 이후 휴머니즘은 이 장르의 기본적 세계관으로 자리 잡았다. <골든 타임>의 이성민, <굿 닥터>의 주원 등 인기 높은 의드 주인공은 다 휴머니스트다. <닥터스>의 가슴 따뜻한 의사 김래원 역시 이 계보를 잇고 있다.
두 번째 흥행 트렌드는 성장기이다. 의드의 주인공은 크게 완성형과 성장형으로 나뉜다. 완벽한 실력과 인성을 갖춘 인물과 뛰어난 잠재력을 지녔으나 미숙한 면이 있는 인물이다. 둘은 멘토와 멘티 관계가 되기도 한다. <뉴하트>의 조재현·지성, <외과의사 봉달희>의 이범수·이요원, <골든 타임>의 이성민·이선균 등이 대표적이다. <닥터스>에선 의사가 되기 이전부터 고등학교에서 사제지간으로 교감했던 김래원·박신혜의 관계가 여기에 해당한다.
세 번째는 제일 중요한 불멸의 공식, 러브 라인이다. 의드는 곧 ‘병원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라고 불릴 정도로 로맨스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 <해바라기>의 안재욱·김희선, <의가형제>의 장동건·이영애, <용팔이>의 주원·김태희 등 의드엔 톱스타 커플이 즐비하다.
흥행에는 실패했으나 <블러드>의 안재현·구혜선처럼 현실에서 결혼으로 이어진 커플도 있다. <닥터스>의 김래원·박신혜도 의드 역사상 베스트 커플로 손색이 없다. 이렇듯 <닥터스>는 휴머니즘부터 멜로까지, 의드의 역대 흥행 트렌드를 다 모아놨으니 성공하지 않는 게 더 이상했을 것이다.
2. 멜로+메디컬=흥행 대박
사실 <닥터스>는 1·2회만 보면 아예 정통 멜로물에 가깝다. 의드의 세계로 본격 진입한 3회 이후에도 로맨스와 메디컬 스토리가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닥터스>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어지는 멜로드라마다.
<닥터스>의 김래원과 박신혜는 과거에 가슴 아픈 이별을 겪고 난 후 13년 만에 다시 만나 사랑을 확인하는 재회 커플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어지는 멜로드라마인 셈.
“버터를 한 트럭 드신 것 같은” 느끼함과 그만큼 치명적인 ‘심쿵 유발’ 능력을 지닌 김래원이 개인적인 상처로 인해 ‘연애 세포가 말라버린’ 박신혜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과정을 ‘달달함 반, 애절함 반’의 비율로 잘 그려낸다.
3. 사제 로맨스 판타지
<닥터스>의 성공에는 사제 로맨스 판타지도 크게 작용했다. 멜로 장르에서 사제지간 로맨스는 꽤 타율 높은 흥행력을 발휘한다. 금기에 가까운 관계이면서도 한쪽이 대개 첫사랑인 경우가 많아 순수함을 간직한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1999년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감우성·채림 주연의 <사랑해 당신을>과 “난 선생이고 넌 학생이야”라는 명대사를 남긴 김하늘·김재원 주연의 2002년 드라마 <로망스>가 가장 유명한 사례다. <닥터스>의 김래원·박신혜 커플의 경우, 변주된 사제 로맨스의 트렌드를 따르고 있다.
고등학교 사제지간에서 직급은 다르지만 동료 의사로 재회한 이들의 로맨스는 그만큼 입체적인 매력을 지닌다. 과거의 그들이 순수하고 열정적인 청년 선생과 이제 막 첫사랑을 시작하는 소녀의 풋풋한 로맨스를 보여줬다면,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난 현재의 그들은 서로 신뢰하고 치유하는 성숙한 사랑으로 보는 이들을 설레게 한다.
흥행 보증 작가 대열에 합류한 하명희 작가
하명희 작가는 몇 년 전부터 드라마계에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예능 출신’ 또는 ‘비드라마 출신’ 작가의 대표 주자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과 <진실게임> 같은 코미디 버라이어티를 거치며 드라마 작가로 전환한 ‘홍자매’, 시트콤 작가로 출발한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박혜련과 <나인>의 송재정, 시트콤과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을 거친 <별에서 온 그대>의 박지은 작가 등이 여기에 속한다.
박지은 작가처럼 <사랑과 전쟁> 출신이었던 하명희 작가는 이때의 경험을 드라마 데뷔작에 녹여냈다. 결혼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다뤄 화제가 된 JTBC 드라마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가 그것. 지상파 진출작인 SBS <따뜻한 말 한마디>도 <사랑과 전쟁>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각각 가정을 두고 사랑에 빠진 지진희, 한혜진과 그 주변 인물들을 통해 죄책감, 상처, 불안 등 불륜의 심리적 파장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지난해 발표한 SBS <상류사회>는 재벌가 여주인공의 진정한 사랑 찾기를 그리며 소재의 확장을 보여주고 흥행에도 성공을 거뒀다.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하명희 작가는 통속적 소재를 주로 사용하는 대신 섬세한 심리묘사와 감각적인 대사로 그 상투성을 극복해왔다. <닥터스>는 그러한 노력의 최종 진화형이라 하겠다.
어른 남자 홍지홍
인간미
‘지홍’(김래원 분)은 ‘혜정’(박신혜 분)에게 ‘좋은 사람’으로 먼저 다가왔다. 유독 문제아가 많은 자신의 반 학생들을 뒤에서 세심히 배려하고, 하숙집 주인인 ‘말순’(김영애 분)을 ‘할매’라 부르며 가족처럼 지내는 모습은 연령을 초월해 모두와 소탈하게 지내는 격의 없고 따뜻한 성품을 잘 보여준다.
세상에 대한 설움과 분노로 가득했던 혜정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도 이처럼 지홍이 남자, 교사이기 이전에 좋은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다.
“그때 알았다. 좋은 기억과 좋은 만남이 동시에 찾아오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는 걸”이라는 혜정의 내레이션이나 “따뜻한 사람 좋아하시잖아요. 저도 그런 유형이 되어보려고요”라는 ‘서우’(이성경 분)의 고백은 지홍의 진정한 매력을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진짜 좋은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이끌어내는 힘이 있다. 지홍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능력
혜정이 지홍을 ‘좋은 사람’에서 조금 다른 시선으로 지켜보게 된 건 그의 특별한 능력을 확인한 순간부터였다. 길에서 쓰러진 임신부를 응급조치하던 순간, 죽음의 문턱에서 생명을 불어넣는 신기의 능력을 목격한 이후 혜정은 지홍에게 처음으로 고백한다.
“이제 좀 다르게 살고 싶다”고. 혜정이 지홍에게 다시 반하는 순간들도 그가 천재적 의술을 발휘할 때다. 의드 남주인공은 뭐니 뭐니 해도 뛰어난 의사여야 매력이 배가된다. 전작 <펀치>에서도 천재적 두뇌에 카리스마 넘치는 검사를 완벽하게 연기한 김래원은 의사 역할 또한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역시 전문직에 잘 어울리는 배우다.
섹시미
마지막으로 지홍 캐릭터의 매력을 완성하는 건 역시 ‘어른 남자’의 섹시함이다. 13년 만의 재회에서 대뜸 혜정의 결혼 여부와 애인 유무를 확인한 것처럼 돌직구로 마음을 표현하며 직진해올 때는 남성미가 물씬하고, “네가 진짜로 배워야 할 것은 보호받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라며 그녀의 곁을 지킬 때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편안함과 든든함이 느껴진다.
이러한 매력이 잘 드러난 회 차가 첫 포옹에서 첫 키스로 역사적인 스킨십 진전이 이뤄진 6회다. 괴한이 벌인 소동극에서 혜정이 무사함을 확인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 다가간 ‘휴머니티의 포옹’과 빗속에서 이뤄진 ‘남자 대 여자’로서의 첫 키스는 ‘어른 남자’ 홍지홍이 지닌 입체적인 매력을 잘 보여준다.
2016년 여심 저격남 리스트
2016년은 멜로드라마의 해다. 상반기에는 <태양의 후예> <또 오해영> 열풍이 불었고, 하반기에는 <닥터스>가 시청률 고공 행진 중이다. ‘멜로킹’ 경쟁도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아직까지는 중국 여심까지 들썩이게 만든 <태양의 후예> 송중기가 유력하지만, <또 오해영> 에릭의 도전도 거세다.
송중기가 카리스마 넘치는 군인과 청순한 꽃미모의 상반된 매력으로 ‘유시진 대위 신드롬’을 일으켰다면, 에릭은 <불새> <케세라세라> <연애의 발견>을 거치며 조금씩 발전시켜온 멜로 연기를 <또 오해영>에서 폭발시켰다. 그리고 강력한 경쟁자 김래원이 가세한다.
그를 톱스타로 등극시킨 <옥탑방 고양이>나 김태희와 함께한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 수애와 연기한 <천일의 약속> 등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원래 ‘멜로 장인’이었다.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와 부드러운 대사 처리 능력은 <닥터스>에서 절정에 이른다. 지금의 그는 <옥탑방 고양이> 시절의 풋풋한 김래원이 돌아와도 넉넉히 이길 것 같다.
완전체 여주 유혜정
불량 소녀 성공기
혜정 캐릭터의 매력은 먼저 독특한 개인사에서 발견된다. <닥터스>의 원제가 <여깡패 혜정>인 데서도 알 수 있듯 혜정은 깡패 출신이다. 교사들로부터 ‘쓰레기’라 불리며 강제 전학당하고, 전학 간 학교에서는 이전 학교에서 어울렸던 일진들이 찾아와 난장판을 만든다.
하지만 혜정의 일탈에는 아버지와의 불화로 인한 엄마의 죽음, 새엄마의 학대 같은 고통스러운 기억이 숨어 있다. 그런 혜정을 변화시킨 것은 담임교사 지홍과의 운명적 만남과 할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이었다. 드라마는 13년을 건너뛰고 의사로 성공한 혜정을 비추면서도 그녀가 ‘일주일에 10시간’만 잘 정도로 엄청난 노력파임을 강조한다.
말하자면 이 ‘불량 소녀 성공기’는 혜정이 좀 더 많은 시청자에게 사랑받는 요인이다. 10대 청소년들과 그들의 부모 세대에게는 하나의 동기 부여로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걸크러시
그동안 국내 로맨스 드라마에서 최고의 인기 여주인공은 ‘캔디렐라’였다. 캔디와 신데렐라의 합성어인 이 단어는 아무리 밝고 씩씩한 매력을 지녀도 결국 수동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여주인공의 한계를 보여주곤 했다. 다행히 최근 들어 여성이 다른 여성을 동경하는 현상인 ‘걸크러시’가 유행하면서 드라마 여주인공도 같은 여성들이 몰입할 수 있는 당당하고 주체적인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유혜정은 이러한 ‘걸크러시’ 유행의 끝판왕처럼 등장한 캐릭터다. 첫 회부터 응급실에서 진상 부리는 조폭을 6대 1로 제압하며 등장한 혜정은 미모, IQ 150을 상회하는 두뇌, 전문적 능력, 완력과 체력을 모두 갖춘 ‘완전체’ 여주인공이다.
고등학생 시절 문제학생들에게 괴롭힘당하던 ‘순희’(문지인 분)를 구해주고 그런 순희가 혜정에게 ‘걸크러시’ 당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장면과도 같다.
마성의 여자
드라마에서 혜정에게 반한 사람은 지홍과 순희만이 아니다. 라이벌인 서우만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인물이 혜정을 좋아한다. 특히 혜정에게 이성적 감정을 표한 남자들만 모아도, 남자들의 무한 사랑을 받는 여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린 일본 만화 <캔디 캔디>의 ‘여성 할렘’에 뒤지지 않을 정도.
고교 시절 그녀를 보자마자 들이댄 ‘수철’(지수 분), 국일병원에서 처음부터 티격태격하다 호감을 갖게 된 ‘정윤도’(윤균상 분), 윤도의 삼촌인 ‘정파란’(이선호 분), 신경외과 레지던트 1년 차 ‘최강수’(김민석 분), 심지어는 환자로 입원한 조폭 보스까지 반하게 만드는 마성의 여자가 유혜정이다.
정작 혜정은 어린 시절 제일 필요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픔이 있다. 이 때문에 굳게 닫힌 마음이 차가운 태도로 이어져 윤도의 말처럼 남자들의 ‘승부욕’을 자극하는지도 모르겠다.
박신혜, ‘캔디 전문 배우’에서 진화하다
박신혜는 원래 ‘캔디 전문 배우’로 불렸다. <미남이시네요>의 ‘고미남’, <상속자들>의 ‘차은상’을 통해 한류 스타급 ‘캔디’로 발돋움했다. 전작 <피노키오>의 신입 기자 ‘최인하’도 캔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신혜가 ‘사랑받는 캔디’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해맑고 순수한 이미지의 동안 외모와 남자 배우와의 케미스트리에 있다.
<닥터스>에서 박신혜는 이러한 ‘캔디’ 이미지를 완벽하게 벗는다. 다이어트로 좀 더 샤프해진 외모 덕도 컸지만 상대 배우와의 호흡이 한층 성숙해진 덕도 있다. 박신혜는 이번 작품에서 아홉 살 연상의 김래원과 사제 관계부터 동료 관계까지 폭넓은 ‘케미’를 선보이며 배우로 한 단계 더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