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궁금할 때가 있다. ‘사람들은 여행 가서 무얼 먹을까?’ 보통 사람과 달리 특별한 음식을 먹을 것만 같은, 예컨대 <식객>의 허영만 화백 같은 사람은 더욱 궁금하다. 그래서 허영만 화백의 일본 아오모리 여행길에 동행했다. 벌써 8년째, 일본 구석구석을 다닌 것이 줄잡아 40번 이상이라니 더욱 기대가 되었다. 과연 허영만 화백은 여행길에서 어떤 음식을 먹을까?
kg당 1백만원, 오마 참치의 맛
인천에서 직항 비행기로 2시간 30분. 홋카이도와 마주 보고 있는 일본 혼슈의 최북단, 아오모리 공항에 닿았다. 마침 점심시간을 막 지나 시장할 무렵이었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30분쯤 달려 ‘아오모리 시민의 부엌’이라는 아오모리 어시장&채소센터에 도착했다. 시장에는 보기만 해도 신선하고 먹음직스러운 회와 해산물이 즐비한데, 사람들은 저마다 밥을 들고 다니면서 원하는 재료를 골라 얹고 있었다. 먼저 쿠폰을 여러 장 구입한 뒤 재료에 따라 정해진 수만큼 쿠폰을 내고 밥 위에 골라 담는 방식이었다.
그러고는 빈 테이블에 앉아 맛있게 먹으면 끝. 재래시장 살리기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는 ‘놋케 돈부리’는 저렴한 가격에 신선한 회와 해산물을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해안도시 여수가 고향이라 해산물에 까다로운 허영만 화백도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물론 시장의 정책에 따라 맥주 한잔을 마시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긴 했지만. 점심의 놋케 돈부리가 전초전이었다면, 저녁 메뉴인 ‘오마 참치’는 본게임이라 할 만했다.
아오모리 최북단에 자리 잡은 작은 어촌 마을인 오마(大間)에서 잡은 참치의 별명은 ‘검은 다이아몬드’다. 전 세계 참치의 70% 이상을 소비할 정도로 참치 사랑이 지극한 일본인이 최고로 치는 것이 바로 오마 참치다. 해마다 참치 시즌이 오면 최고의 오마 참치를 차지하려는 요리사들의 경쟁이 치열해, 한 마리를 수억원에 낙찰받기도 한다고.
킬로그램(kg)당 1백만원에 해당하는 가격이다. ‘바다의 로또’가 따로 없는 셈이다. 오마 출신 요리사는 보물을 만지듯 아주 조심스레 참치회를 떴다. 덩달아 조심스레 한 점 집어 입에 넣으니, 확실히 지금까지 먹던 참치와는 다른 고소한 맛이다. 근해에서 잡힌 오마 참치는 냉동을 하지 않아 지방이 끈적이지 않기 때문이란다. 확실히 오도로(뱃살)의 지방도 고소했지만, 아카미(등살)의 살짝 감도는 피 맛도 환상적이었다. ‘사시미 좀 먹는다’는 사람들이 왜 오도로보다 아카미를 더 으뜸으로 치는지 알 수 있을 듯했다.
남녀 혼탕의 소바 정식
아오모리는 음식만큼이나 온천도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후로후시(不老不死) 온천’은 아오모리를 넘어 도호쿠(東北) 지방을 대표하는 온천이다. 철분이 많아 마치 황토물처럼 뿌연 온천수에 몸을 담그면 불로불사까지는 아니어도 몇 년쯤 쌓인 피로가 풀리는 것 같다. 이런 온천이 바닷가 갯바위에서 솟아난다는 것 또한 매력적이다.
눈앞에서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저 멀리 붉게 물드는 석양을 보는 경험은 특별하다. ‘애플랜드 미나미다 온천’은 아오모리를 대표하는 사과를 테마로 한 온천이다. 일본 최대의 사과 생산량을 자랑하는 아오모리는 미국 선교사가 일본 최초로 서양 품종의 사과를 도입한 곳이다.
특산품 판매장에는 어느 곳이나 사과로 만든 파이, 과자, 잼, 음료수, 카레, 식초 등이 빼곡하다. 맛도 맛이지만 수십 종에 이르는 품종이 눈길을 끈다. 애플랜드 미나미다 온천은 온천탕에 아오모리 사과들이 둥둥 떠다닌다. 사과즙이 온천수에 섞여 더욱 매끈한 피부를 만들어 준단다. 그런데 아오모리에서 단연 한국인 관광객의 관심을 끄는 온천은 따로 있다.
거대한 혼욕탕으로 유명한 스카유 온천이 그곳이다. ‘혼욕이라고? 드디어 어린 시절의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인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요즘의 일본인들은 혼욕을 꺼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욕탕은 남탕에 가까우며 가끔 들어오는 여성들도 노인 일색이다. ‘일본 혼욕탕에서 동네 할머니들 눈 호강시켜주고 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그렇다고 실망하지 말자. 이곳에는 혼욕탕보다 더 즐거운 소바 정식이 있으니까. 메밀 100%의 소바도 좋지만, 곱게 간 마를 부어 먹는 보리밥 또한 꿀맛이다. 해발 925m 산골 음식답게 소박하면서도 맛깔나다.
여행의 참맛은 사람이다
마지막날 묵은 아오모리의 첩첩산중에 홀로 자리 잡은 ‘램프노야도 아오니 온천’은 특별했다. 우리가 당연하다 여기던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곳에는 전깃불이 없다. 대신 ‘램프의 여관’이란 이름처럼 1백80여 개의 램프가 여관 곳곳을 밝힌다. 봄까지 쌓여 있다는 주변 눈 속에는 촛불이 가로등을 대신하고 있었다.
오래된 석유난로가 따뜻한 방 안에는 TV도 냉장고도 화장실도 없었다.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도 없다. 아니, 이곳에선 휴대폰을 충전할 필요가 없었다. 무선 인터넷은 물론이고 휴대폰의 송수신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이곳에는 자연과 휴식이 있었다. 산골 마을의 이른 저녁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하늘에는 별이, 여관에는 램프가 불을 밝힌다. 희미한 램프 불빛이 사방을 따뜻하게 비추는 노천온천에 몸을 담그면 도시의 바쁜 삶은 뿌연 수증기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산골의 여관답게 음식 또한 소박했다.
산골의 단골 메뉴인 버섯과 고사리, 오늘의 특별 메뉴인 산천어 소금구이와 아카시아꽃 절임 등에 대해 여관 주인이 느긋한 목소리로 조근조근 설명해주었다. 이 모든 음식은 다시 램프의 마법 아래 더없이 특별한 요리가 된다. 일본 전통 화로인 이로리 주변에 둘러앉으니 더욱 고즈넉한 분위기다. 마침 이날은 정확히 50년 전 허영만 화백이 만화를 그리겠다고 서울로 올라온 날이라고 했다. 서울에서 운 좋게 들어간 만화가 박문윤 화백의 화실이 6개월 만에 문을 닫자 혼자 남은 허 화백은 비 오는 날 행당동 바위산에 올라갔단다.
그곳에서 강변을 달리는 자동차를 보면서 ‘지금 19세, 과연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생각뿐이었다고. 램프 아래로 느릿느릿 산골의 시간이 흐르고 접시와 술잔이 비워졌다.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분위기 또한 깊어져갔다. 가만, 그러고 보니 아오모리에서 가졌던 모든 식사 시간 중에 허 화백의 표정이 가장 즐겁다. 그 귀하다는 오마 참치를 먹을 때보다도 더. 허영만 화백과 함께한 아오모리 여행은 음식에서 시작해 사람으로 끝을 맺었다. 역시 여행의 참맛은 사람이었다.
TRAVEL INFO
Air
인천에서 아오모리까지 일주일에 세 번 직항이 있다. 소요 시간은 2시간 30분.
Sightseeing
와랏세 거대한 종이 등불 인형인 네부타 전시관. www.nebuta.or.jp/warasse
샤오칸 <인간 실격>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 생가. http://dazai.or.jp
히로사키 공원 에도 시대에 세운 히로사키 성 www.hirosakipark.jp
Restaurant
아오모리 어시장&채소센터 놋케 돈부리를 판매하는 아오모리의 부엌. www.aomori-ichiba.com/nokkedon
이나게야 오마 참치 전문점. http://inageya.blog74.fc2.com
기쿠후지 히로사키 향토 요리 전문점. www.kikufuji.co.jp
Hotel
후로후시 온천 아오모리 대표 온천. www.furofushi.com
미나미다 온천 호텔 애플랜드 사과 테마 온천. www.apple-land.co.jp
아오니 온천 ‘램프의 여관’으로 유명. www.yo.rim.or.jp/~ao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