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까지의 청소 방식으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던 청소 결과가 바로 지금의 지저분하고 너절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세상에는 청소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청소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사람은 큰 스트레스 없이 주변을 항상 깨끗이 하며, 정리정돈을 생활화한다. 주부는, 그 유전자가 없어도 있는 척(?)을 하며 살아야하니 여간 피곤하지가 않다. 청소 유전자가 아예 없거나 청소에 젬병인 주부라면 청소 스트레스애서 탈피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기 마련이다. 새로 나오는 청소 기구는 사고 본다든지(청소 도구만으로 넘쳐난다), 돈을 쓰고서라도 도우미를 부르던지(생활비 압박에 시달린다), 아니면 아예 포기한 채 먼지투성이의 삶을 살아간다든지(‘손님 초대 공포 현상’이 유발된다).
3월이다. 묶은 때를 벗겨 내고 봄 분위기를 낼 때다. 그런데 어떻게? 청소 유전자가 없는 주부에게는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바로 이럴 때 ‘버리기’ 라는 단어를 떠올려야 한다. 버리기는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핵폭탄급 정리기술이다.
정리 첫 단계: 버릴 품목 정하기
집안을 둘러보자. 가구며 전자제품, 주방기기 등 살림살이가 한 가득이다. ‘필요한가?’ 하고 물으면 어쩐지 다 필요한 것들 같다. 하지만 막상 그 자리에서 사라진데도 아쉽지 않은 물건들도 꽤 있다. 먼지 뽀얗게 쌓인 장식품, 전원 안 들어오는 전자기기, 몇 년 째 장롱 속에만 있는 침구류 등등.
주부는 그릇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언젠가는 꼭 쓸 것만 같아서 쟁여둔 접시, 유리그릇, 컵 등이 주방 한 켠을 그득히 차지하고 있다. 냄비는 또 얼마나 많은지. 프라이팬의 개수도 만만치 않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언젠가 쓸 때가 있겠지’라며 비축해둔 주방용품들은 ‘무용지물’이다.
아이들 때문에 책에 집착하는 주부도 많다. 책을 사고, 소장하고, 방 하나를 혹은 거실 대부분의 벽을 책장으로 꾸미곤 흐뭇해한다. 특히 전집에 목숨 건다. 하지만 경험해 봐서 알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는 만화 류 를 제외하면 전집을 잘 읽으려 들지 않는다. 전집류를 왜 읽지 않을까? 전집은 ‘재미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훈은 자신이 읽은 책의 대부분을 버린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 정도의 작가라면 쏟아져 들어오는 신간만 해도 상당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서가에는 사전, 법전 등 글을 쓰는데 필요한 ‘공구’만 정갈하게 꽂혀 있다. 그 모습은 사방 벽을 책으로 꽉 채운 그 어떤 유명 소설가의 서재 모습보다 위력적이다.
정리정돈의 가장 큰 복병은 옷이다. 늘 입을 옷은 없는데, 옷장엔 옷들이 차고 넘친다. 세상에 둘도 없는 멋진 옷이라고 여겼으나 결국 시간이 지나 후즐근해져버린 옷들과, 비싸게 샀으나 어울리지 않아 단 한 번도 입지 않았던 옷들과, 변해버린 체형에 더 이상 맞지 않는, 하지만 언젠가 살이 빠지면 입으리라 모셔놓았던 옷들이다. 지난 네 계절 동안 입지 않은 옷들이, 그 네 계절 동안 열심히 입은 옷보다 네 배쯤 많을 것이다.
정리 기술 중에 80:20 법칙이 있다. 자주 사용하고 손 가까이 두고 쓰는 물건은 전체 소유하고 있는 물건의 20퍼센트 남짓하다는 것. 결국 나머지 80퍼센트는 거의 쓰지 않거나 아예 없어도 될 것들이라는 얘기다.
실행단계: 버리기
버려야 한다. 가차없이 쓰레기통으로 직행 시킨다. 지난 일 년 단 한 번도 찾았던 적 없다면 버리자. 몇 년 쯤 지난 후에 어쩌다 필요해지기라도 하면? 그때 가서 다시 사는 한이 있더라고 버려야 한다.
옷, 신발, 가방을 버릴 때에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이걸 얼마 주고 샀는데…’와 ‘놔두면 언젠가 한 번 쯤은 찾게 될텐데’ 다. 그럴 일 없다는 것은 오랜 시행착오로 알게 된다. 분리수거 날짜도 고려하고, 되팔 수 있는 것도 생각하며(대부분 되팔았을 때 껌 값이라는 것도 잊지 말자), 식구들의 반발과 핀잔도 염두에 둬야겠지만, 중요한 건 일단은 ‘버리고 본다’는 것이다.
옷을 버릴 때 가장 갈등이 심하다. 책이나 그릇과 달리, 구입 단가가 비싼 데다 과거 자신의 몸을 감싸던 기억이 뒤통수를 잡아당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린다. 산처럼 쌓인 듯 보여도 가진 옷의 10분의 2도 채 안 된다. 가방, 구두는 옷보다 더 버리기 어렵다. 그럴 땐 최근 3년간 단 한 번도 들거나 신은 적 없는 것들만 추려도 된다. 고물상에 가져가면 옷과 가방은 한 저울에 놓고 무게를 재서 고물 값을 쳐준다. 옷과 가방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책과 옷을 버리는 동안 절실히 깨닫게 되는 점이 있다. 정리를 위해 산 수납도구 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쓰레기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것. 정리하겠다고 수납도구부터 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
우리가 차지하고 사는 공간 면적을 우선 떠올리고, 거기에 들여놓을 수 있는 물건이 한정되어 있다고 머릿속에 그림을 그린다. 옛 선비들이 초가삼간에 책 몇 권, 그릇 몇 개, 옷 몇 벌, 책상 하나 놓고 살았던 모습을 떠올려도 좋다. 이렇게 하면 더 뭔가를 사는 행위가 점점 더 신중해 질 것이다. 버리기에 익숙해질수록 물건에 관한 애착도 준다. 그리고 깨달은 결론.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