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는 과거와 별반 다를 바 없다. 다만 대화 방식과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솔직하고 털털했다. 말하기를 꺼리는 성격탓에 뻔한 대화를 이어가기도 했던 과거와 달리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다. 평생을 함께할 든든한 버팀목이 생긴 탓에 한층 단단해졌기 때문은 아닐까. ‘기 세고 깐깐한 여배우가 많다’는 풍문 속 주인공이었던 그녀는 “과거 나는 예민하고 뾰족했던 것 같다”고 순순히 인정하면서도 “그 예민함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었다”고 털어놨다.
“사람이 나이가 들고 성숙해지면서 많은 부분이 바뀌잖아요. 예전에는 연기가 어렵고 힘들었어요. 어린 나이에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으니 스트레스도 쌓이고 힘겨웠던 것 같아요. 감독님들에게 연기 지적을 받으면 속상하기도 했죠. 외적인 부분이 아니라 연기를 ‘진짜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고 또 보여주고 싶은 것이 생기니까 자기중심적으로 변하더라고요. 예민하고 뾰족하기도 했고요. 밤샘 촬영 후 한두 시간 자고 다시 촬영해야 할 때가 있었어요. 맡은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해서 최소한으로라도 자게 해달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하는 게 연기자로서 나를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숨을 고른 김하늘은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나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 꼭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죠. 촬영 환경도 바뀌고 시간이 흐르면서 연기에 대한 자신감, 사람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 것도 있고요. 나와 내 연기를 지키면서 주변도 돌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좀 성숙해졌다고 할 수 있겠죠. ”
내성적이었던 김하늘은 여전히 먼저 다가가는 걸 힘들어한다. 연기 생활을 하며 많이 변했다고는 하는데 “누군가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건 여전히 힘겨운 일”이라고 털어놨다. “어릴 땐 자신감이 없었어요. ‘내가 다가갔는데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죠. 비단 이성 관계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그랬어요. 잘 웃지도 못했고요. 하지만 먼저 다가가지는 못해도 내 사람이다 싶을 땐 또 달라져요. 친해지면 많이 표현하는 편이에요. 물론 그래도 성향은 안 바뀌는 것 같아요. 태도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그럴 수밖에 없더라고요. 자세를 바꾸지 않으면 오해가 많아지니까요. 예전에는 오해를 받아도 ‘그냥 나는 연기만 잘해야지!’ ‘이것만 지키기에도 벅차!’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내가 좀 더 노력하면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지금도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세가 바뀐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스스로 위안하고 있죠.”
오는 3월, 한 살 연하의 사업가와 결혼하는 김하늘은 예비 남편과 관련한 물음에는 조심스러워했다. 하지만 스스로도 여유로워진 건 인정했다. 그녀는 “부모님도 계시고 매니저도 있지만 온전히 의지하진 못한 것 같아요. 카메라 앞에서는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고 책임감이 커지죠. 그런데 편하고 든든하게 느끼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그런 존재가 생기니 나도 모르게 달라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성격이라 예비 신랑이 먼저 다가왔겠다”라고 물으니 “몰라용~”이라며 애교 넘치게, 또 재치 있게 웃어넘긴다. 어떤 프러포즈를 받았는지 묻자 이번에도 특유의 코맹맹이 애교로 넘어갔다. 그런 모습이 왠지 사랑스러워 보였다.
지난 1996년 한 의류 브랜드의 모델로 데뷔했으니 연예계에 발을 들인 지 꼬박 20년이다. 김하늘은 놀란 토끼 눈으로 “내년이 돼야 연기 20년 차라고 할 수 있어요. 아직 아니에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배우에게 세월은 친해질 수 없는 존재임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벌써 그렇게 됐다니 신기하네요. 예전에는 다른 길을 찾아볼까도 생각해봤지만 지금은 제 일을 사랑해요. 어느 때부터 연기하는 순간이 즐겁고 행복하더라고요. 일이 익숙해졌다는 게 아니라 사랑하게 된 거죠. 그래서 일하는 자세도 많이 바뀐 것 같아요.(웃음)”
최근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로 관객을 찾은 그녀는 영화 <여교사>로도 올해 관객을 만난다. <여교사>는 남자 고등학교의 두 여교사 사이에서 일어나는 파격적 이야기를 담은 작품. 그동안 <동갑내기 과외하기> <7급 공무원> 등을 통해 '로코퀸'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녀가 <여교사>를 선택했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의외다'였다. 기자의 솔직한 생각을 말하니 김하늘은 몸을 앞으로 숙이고 귀를 쫑긋 세웠다.
“왜요? 전 대본 보고 바로 ‘좋다. 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감독님과 제작 PD님을 만났는데 제가 승낙한 것이 의외라고 하시더라고요. ‘내가 잘못 선택한 건가? 손해 보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죠.(웃음) 제 캐릭터에 완전히 매료됐어요. 표현해보고 싶었던 인물이어서 그런지 흥미로웠고 재미있게 촬영했어요. 전 ‘새로운 걸 해야지!’라는 마음가짐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제가 고른 작품도 다 제가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 선택한 거예요. 이전 작품에 ‘로코’가 많았던 건 그 당시 제 나이대의 여배우가 하기 좋은 장르였기 때문이었죠.”
김하늘의 작품 선택 기준은 또 있다. 바로 상대 배우다. 그녀는 상대 배우와 연기 호흡을 맞추기 전 혼자 상상을 하는 스타일이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그림을 많이 그려봐요. 남녀 주인공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많이 한 편이라 배우가 캐릭터와 극에 얼마나 어울리는지가 중요하다는 걸 알아요. ‘이 인물의 키는 어느 정도일까?’부터 ‘어떤 스타일의 옷을 입을까’ ‘카페 신이 나오면 그 카페의 이미지는 어떨까?’ 등등 상상을 많이 하죠. 제 캐릭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많이 생각하고요. 캐스팅 후보군에 오른 분들을 보고 ‘내가 생각한 이미지와 다른 느낌인데….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라고 생각되면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어도 막상 선택하기는 어렵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흥행 성적을 떠나 <나를 잊지 말아요>에서 정우성 선배와의 호흡은 최고였다고 생각해요. 그 어떤 배우보다 정우성 선배의 눈빛은 멜로 영화에 최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이어진 김하늘의 고백에 한 번 더 놀랐다. 영화 속에서나 보았던 ‘여배우들의 신경전’에 대해 털어놨기 때문이다. “<나를 잊지 말아요> VIP 시사회가 끝난 뒤 뒤풀이 때 정우성 선배님의 다음 영화 팀들(<아수라> <더 킹>)이 다 왔는데 부러웠어요. 남자 배우들 사이에서 소외된 듯한 느낌이 들었죠. 나도 여배우들과 같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사실 예전에는 ‘여자 배우들이 함께 연기한다고?’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배우들끼리의 신경전을 감당할 수 있을까?’ 같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함께 하고 싶어요. 연기적으로나 배우로서 여유가 생겨서 그런 걸까요? 남자 배우들 못지않게 여배우들도 같이 연기하는 현장에서 힘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시나리오가 나와주면 좋을 것 같은데….”
공백기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나를 잊지 말아요>는 드라마 <신사의 품격> 이후 4년 만의 작품. 반가운 컴백이다. “본의 아니게 공백기가 길어졌어요. 배우도 체력이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죠. 어릴 때는 깡으로 버티며 연기했는데 나이 들고 나서는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더라고요. 쉬는 동안 체력 관리를 하려고 노력했죠. 이제 많이 쉬고 관리했으니 올해는 작품으로 자주 찾아뵐 것 같아요.(웃음)”
김하늘은 당분간 결혼 준비로 바쁘다. 소소한 것이라도 진심이 담긴 프러포즈라면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던 그녀는 자신이 자라온 가정과 같은 화목한 가정을 기대했다. '아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될 김하늘이 밝게 웃어 보였다. 소녀처럼 천진난만한 모습에서 그녀가 꾸릴 밝고 건강한 가정의 모습이 엿보였다. “아빠는 여행을 좋아했어요. 텐트 같은 짐을 들고 엄마, 나, 남동생을 데리고 여행을 다녔죠. 어릴 땐 싫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추억인 것 같아요. 덕분에 소소한 추억의 소중함을 너무 잘 알게 됐죠. 제 남편이 될 사람도 절 귀찮게 해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