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을 인터뷰하러 가는 길에 라디오를 켜니 마침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오 무렵부터 103.5MHz에서 들을 수 있는 <노사연-이성미쇼>(이하 <노이쇼>)다. 노사연의 중저음 목소리와 이성미의 애교 섞인 콧소리가 묘하게 잘 어울린다. 두 사람이 <노이쇼>를 진행하기 시작한 건 지난 2012년. 꼬박 3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거의 매일 한자리를 지켜온 셈이다. 라디오 생방송을 마친 두 사람이 나란히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척 보기에도 대(大)짜와 소(小)짜. 두 사람에 대한 첫인상을 말하자면 노사연은 ‘여장부’, 이성미는 ‘새침데기’였다. 하지만 인터뷰 후에 깨달은 결론은 노사연은 세심한 여자, 이성미는 시원시원한 ‘왕언니’ 타입이라는 것.
라디오를 들어보면 두 분의 호흡이 기가 막힙니다!
노사연_알고 지낸 지는 수십 년이 됐는데, 2012년에 이성미씨와 더블 DJ로 제의를 받았을 땐 사실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성미씨가 캐나다 생활을 마치고 7년 만에 돌아왔을 때는 신앙심이 넘쳐나서 거룩해졌었거든요.(웃음) 그땐 ‘나랑 너무 다른 게 아닐까?’ 싶어 부담스럽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함께 방송을 할 수 있다는 게 제게 축복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이제는 뭐, 거의 부부지.(웃음)
이성미_심지어 아파트도 나란히 앞뒤 동에 살아요.(웃음) 언니의 첫인상은 참 따뜻하고 포근한 사람이었고 세월이 흘러도 마찬가지더라고요. 나이 들수록 나를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고 또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큰 행복이라는 걸 느껴요.
노사연_나이 오십이 넘어가면서 ‘삶이 외롭구나’ 하는 걸 많이 느꼈어요. 서로 눈 마주치고 이야기를 나누기가 힘들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고요. 그런데 이성미씨와 함께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그런 부분이 많이 사라졌어요. 제가 작은 실수를 하면 이성미씨가 그걸 바로잡아주고, 이성미씨의 부족한 점은 또 제가 채워주기도 하고요. 우리는 꼭 ‘솜사탕’ 같은 사이예요. 올곧은 이성미씨가 중심축을 딱 잡고 있으면 제가 거기에 살을 붙이는 식이죠.
우리에겐 두 분 목소리가 무척 친근한데, 자신들의 방송을 직접 들으면 느낌이 어때요?
노사연_남편이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껄껄 웃는 거예요. 자세히 들어보니 내 목소리더라고요.(웃음) ‘어머, 내가 저렇게 웃었나?’ 싶기도 하면서 무척 신기했어요.
이성미_저는 가족과 함께 듣는 게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어요. 라디오는 짜인 대로만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으니까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많이 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가족과 함께 라디오를 들을 땐 무척 긴장해요.
노사연_라디오는 소리만으로 웃음과 감동을 전달해야 하는 매체잖아요. 그만큼 DJ의 목소리가 중요해요. 라디오에선 절대로 거짓말을 못 해요. 청취자들이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귀신처럼 다 알아맞히거든요. 자연스레 라디오에서는 제 진심을 말하게 되고 청취자들도 자신의 고민거리를 털어놓으면서 가족 같은 애착이 생기는 거예요.
송은이-김숙 DJ가 닮고 싶은 선배 듀오로 노사연-이성미 DJ를 꼽았어요.
노사연_보기보다 안목이 있네요.(웃음) 롤 모델을 누구로 잡느냐가 중요한데 일단 우릴 닮으면 DJ로 3년 이상은 보장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얼마 전에 방송을 들어봤는데 두 사람의 호흡도 기가 막히더라고요. 하지만 걔네들이 아무리 해도 우리한테 안 되는 게 하나 있어요. 결혼 안 해본 거, 애 안 낳아본 거. 그거 참 어려운 건데 걔네는 안 해봤으니까 우리 못 따라올 거예요.(웃음)
이성미_김치로 따지자면 우리는 묵은지죠. 남편이랑 애랑 지지고 볶고 살면서 ‘아 이게 인생이구나’ 하는 사는 맛을 우려냈다고 보면 돼요. 비바람도 많이 맞은 거고요.
두 분 인생에서 비바람을 맞은 건 언제였나요?
이성미_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요. 건강할 땐 내가 받지 못한 사랑을 아이들과 사람들에게 나눠 줘야겠다고만 생각하며 살았어요. 그런데 아프고 보니 ‘아, 내가 정작 내 자신은 사랑하지 못했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죠. 그때부터 나를 보듬는 연습을 했고 자연스럽게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집착이나 욕심도 버릴 수 있게 됐어요. 그리고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아껴 쓰는 마음을 갖게 됐어요. 신기하게도 그러니까 오히려 자유로움을 얻게 되더라고요.
노사연_저는 마흔아홉쯤이 가장 힘들었어요. 제가 쉰 살이 된다고 생각하니 정말이지 딱 죽어버리고 싶었거든요. 그때는 방송 일을 하는 것도 정말 힘들었어요. TV 쇼 프로그램에 나가 신나게 웃고 떠들긴 하는데 집에 가서 생각해보면 화가 났어요. 방송에선 제가 이무송씨를 일방적으로 좋아해서 결혼까지 했다는 식으로 캐릭터가 그려지는데 솔직히 그렇게 결혼해서 30년 가까이 함께 산다는 게 말이 되나요? ‘어떻게 사랑하는 마음까지 가짜로 만들 수 있지? 대체 진짜가 있긴 한가?’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어요. 극심한 우울증이었죠. 그런데 쉰다섯 넘어가면서 라디오 진행도 하고 신앙생활도 하면서 활력을 되찾았죠.
이성미_음, 그러고 보면 제게도 마흔아홉이 특별했어요. 7년간의 캐나다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게 마흔아홉이었거든요. 그나마 아홉수를 덜 겪은 게 한국에 막 돌아와 적응하느라고 바빴거든요. 마흔아홉이 슬픈 건, 40대가 여자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시기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20~30대는 너무 설익었고 40대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안정적이잖아요. 인생의 맛이 뭔지도 아는 나이고요. 그때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마음껏 ‘엄마’ 소리를 듣고 산 것이 큰 축복이었다고 생각해요. 캐나다에 그때 가지 않았더라면 영영 못 갔을 것 같아요.
노사연_꽃에 비유하자면 40대는 가장 활짝 핀 시기예요. 젊고 예쁜 20대도 물론 좋죠. 솔직히 말하면 너무 오래돼서 내 20대가 어땠는지 잘 기억이 안 나네요.(웃음) 지금과 비교하자면 그땐 어떻게든 건강을 해치려고 했다면 지금은 어떻게든 지키려고 한다는 게 가장 큰 차이죠.(웃음)
두 분이 생각하는 <노이쇼>의 매력은 뭔가요?
이성미_‘숨통’이라고 생각해요. 숨통 좀 틔우고 살 수 있게 딱 애교스러운 수준에서 수다를 떨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수다가 루머로 발전하고 그 허무맹랑한 루머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잖아요. 결국 주부들이 스트레스가 쌓이는 이유도 다 상처 때문인데, 그런 의미에서 저희 방송은 스트레스 해소의 장이 될 수 있어요. 결과적으로는 사람을 살리는 방송이라고 생각해요.
노사연_저는 ‘쿵짝’이라고 할래요. 저희 프로그램의 인기 코너 중에 퀴즈를 맞히는 코너가 있는데 제가 많이 틀려요. 그럴 때 이성미씨가 여유 있게 받아쳐 오히려 상황을 재미있게 이끌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청취자들이 답답함을 못 이기고 SNS로 답을 적어 보내주시기도 해요. 그런 걸 보면 우리 프로그램은 DJ끼리의 쿵짝, DJ와 청취자 간의 쿵짝이 잘 맞는 프로그램인 것 같아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청취자가 있나요?
이성미_인천에 사는 김 모씨요! 1분 동안 노사연씨가 문제를 내고 청취자분이 정답을 맞히는 게임이었는데 거짓말 안 하고 단 한 문제도 못 맞히고 끝났어요. 이 코너 이름이 ‘맞히고 내주고’인데 웬만한 분들은 아무리 못 맞혀도 한 문제라도 맞히거든요.(웃음)
노사연_아, 그분? 정말 해도 너무해서 ‘뭐라도 얘기 좀 해보세요’ 하며 안달복달했어요. 공개방송 때 한 번 꼭 뵙고 싶었는데 안 오셔서 아쉬웠어요.(웃음) 그분의 기록은 아직까지도 전무후무합니다.
뭐랄까, 친한 큰언니들이 조언을 해주는 기분이에요.
이성미_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이고 지고 가는 것이 너무 많잖아요. 아이들도 키워야 하고 남편과 아웅다웅도 해야 하고요. 그럴 때 기댈 수 있는 곳, 깔깔 웃고 때로는 푸념도 할 수 있는 친구이고 싶어요.
노사연_사실 작년에 발표한 제 노래 ‘바램’의 원래 제목은 ‘사연의 마음’이었어요. ‘우린 늙어가는 게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라는 부분이 가장 와 닿아 펑펑 울었죠. 곡을 발표하기 전에 성미씨에게 들려줬는데 “언니, 이건 우리 또래 모두의 마음인 것 같아” 하면서 제목을 ‘바램’으로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바램’으로 곡을 발표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웠어요. 저 역시 50대의 정점에서 이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제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들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여자들도 힘들지만 중년의 가장들도 힘들겠지요.
노사연_이제는 서로 돌봐줄 나이죠.(웃음) 신혼 초엔 세력 싸움을 하곤 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남편이 참 저를 살뜰히 챙겨줬더라고요. 앞으로는 ‘내가 좀 더 잘해줘야지’ 하고 마음먹었을 땐 몸이 안 따라주는 거예요. 갑자기 난청이 오는 바람에 보청기를 껴야 할 정도로 청력이 나빠졌거든요. 뭐든 때와 시기가 있는 법인데 귀가 잘 들릴 때 남편 말을 잘 들어줄걸 그랬나 봐요.(웃음)
이성미_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여유가 생겼죠. 네가 잘했네, 내가 잘했네 하고 싸우기도 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래봐야 서로에게 남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옆에 있는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하기로 했어요.(웃음)
신년 계획은요?
이성미_<노이쇼> 청취율 1등? 최화정 DJ는 1등 공약으로 ‘비키니를 입겠다’고 걸었다가 스튜디오 부스 안에서 비키니를 입고 방송하던데. 저희는 내일모레가 환갑이라 비키니는 무리랍니다.(웃음) 신년엔 더 넉넉한 어른이 되고 싶어요. 누구 하나 넘어지면 일으켜줄 수 있는 어른요.
노사연_우리가 만약 라디오를 그만둔다면 아마도 그 이유는 둘이 ‘가열차게’ 싸웠거나 누구 하나 아파야 하는데 이젠 기력이 딸려 싸우기는 힘들 것 같아요.(요즘) 너나 나나 운동을 좀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요? 신년에도 건강이 최곱니다!
이성미_맞아요. 얼마 전에 쇼핑을 갔는데 세 시간 돌고 집에 돌아와서 네 시간 반을 꼬박 자고 일어났어요. 기력이 딸리긴 딸리나 보다 싶어 집 근처 헬스클럽엘 갔는데 오랜만에 가보니 그 자리가 빵집으로 바뀌어 있더라고요.(웃음) 언니, 우리 건강관리 열심히 해서 라디오 더 신나게 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