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에 ‘타이푼’이라는 혼성 그룹으로 가요계에 입문했으니 솔비가 연예인이 된 지도 올해로 10년 차다. 방송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엉뚱함과 발랄함 그 자체였다. 가감 없이 이야기하는 특유의 돌직구 화법 탓에 ‘백치미가 있다’는 이미지가 늘 따라다녔다. 그녀의 이런 솔직함이 얼마 전 방송에서도 통했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바보 어벤저스’ 특집에 등장해 자신의 톡톡 튀는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낸 것이다. ‘뇌가 순수한 여자’라는 캐릭터로 나왔지만 거기서 솔비는 남다른 ‘찍기 실력’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 방송이 나간 이후 사람들이 가끔 저를 ‘점쟁이’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간혹 ‘우리 엄마 이름이 뭐게요?’ ‘저 올해 안에 연애할 수 있을까요?’ 등을 묻는 분들도 있어요.(웃음) 사실 그땐 객관식 문제를 잘 찍었던 거잖아요. 제가 그렇게 잘 찍을 줄 저도 몰랐어요. 김구라씨를 상대로 이기고 나니 믿기지가 않더라고요. 우스운 이야기지만 요즘도 가끔 그때 제가 찍는 장면을 돌려보곤 해요. 그리고 ‘내가 저걸 어떻게 맞췄지?’ 하고 혼자 신기해하죠.(웃음)”
배시시 웃는 모습에선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도 느껴졌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녀에게 ‘아트테이너’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6년 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이제는 그림 한 점에 2천만원을 호가하는 주목받는 신진 작가 대열에 합류하는가 하면, 지난가을엔 직접 작사, 작곡, 프로듀싱까지 하는 밴드 그룹을 결성해 음악적으로도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왔다. 우리가 기억하는 솔비가 정말 맞나 싶을 정도로 놀라운 변신이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곳은 서울 삼성동에 자리한 한 건물의 지하 공간. 음악과 미술이라는 두 가지 장르를 모두 아우르는 그녀의 작업실이다. 성수동에서 이곳으로 작업실을 옮긴 지 두 달. 작업실에는 아직 채 정리하지 못한 캔버스들이 이리저리 세워져 있었다.
“스케줄이 없을 땐 거의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요. 일단 집과도 거리가 가깝고, 바로 앞에 공원이 있어서 좋아요.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산책할 수 있으니까요. ”
작업실 벽면 곳곳에는 사람 키보다 훨씬 큰 그녀의 작품이 걸려 있었다. 여느 화가들의 작업실과 비교했을 때 굳이 다른 점을 꼽아보자면 마이크와 스피커 그리고 첼로 한 대가 작업실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 화가의 작업 공간 같기도 하고, 뮤지션의 연습실 같기도 한 묘한 조합이었다. 작업실을 둘러보는 기자에게 “작품 한번 보실래요?” 하고 묻더니 갑자기 실내의 모든 조명을 껐다. 환할 때는 보이지 않던 캔버스 속 그림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반 물감과 함께 야광 물감을 사용해 그림을 그렸어요. 그래서 환할 때와 어두울 때 보이는 작품의 모습이 매우 다르죠. 언젠가 저도 새벽에 자다가 깨서 물을 마시러 나갔다가 제 작품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어요.(웃음)”
마크 로스코, 잭슨 폴록, 마리 로랑생, 이브 클라인…. 좋아하는 작가가 있는지 묻자 거장의 이름을 줄줄이 읊는 대목에선 솔직히 놀랐다.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현대미술.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닌 ‘뇌순녀’ 솔비가 도전장을 내민 이유가 궁금했다.
“가수로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도 좋았죠.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게 그냥 흘러가버린다는 생각이 들면서 말할 수 없는 허무함과 공허감이 느껴지더라고요. 대중의 취향에 맞춰야 한다는 부담감도 컸던 것 같아요. 정작 ‘진짜 나’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슬럼프였던 거죠. 그러던 중에 그림 그리는 일에 빠지게 됐어요. 내 생각을 내 방식으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었죠. 물론 그러면서도 대중의 공감을 얻는 그림을 그린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굳이 나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가장 좋았어요. 그림 그리는 일에 온통 정신을 쏟고 난 후에 온전한 나의 작품이 남는다는 것도 좋았고요.”
뭔가 튀는 행동을 하면 ‘왜 저래?’ 하면서 따가운 눈총을 받고 그렇다고 남들과 똑같이 행동하면 결국 도태되고 마는 연예인의 삶. 화려해 보이지만 그 뒤에 감춰진 슬픔이기도 하다. 적당히 튀면서 또 적당히 자중하며 둘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일상. 그 안에서 정작 자기 자신을 잃어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말하는 그녀의 표정에서 왠지 모를 처연함이 느껴졌다.
“아홉수라고 하잖아요? 제게도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스물여덟, 스물아홉, 서른 살까지 3년여 기간 동안이 힘들었어요. 지금에야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당시에 믿던 사람에게 배신도 당했고 심지어 집에 도둑까지 들었거든요.(웃음) 의외로 제 성격이 많은 사람들과 폭넓게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그보다는 혼자 집에서 사색하기를 좋아하는 편이죠. 그땐 질풍노도의 시기에 버금가는 ‘자아 대혼란기’를 맞이했던 것 같아요.(웃음)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정말 나와 잘 맞는 걸까? 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죠.”
무작정 쉬고 싶었다. 하지만 두려웠다. 끊임없이 나오지 않으면 곧장 잊히는 방송가의 냉정한 섭리 때문이었다. 활발히 활동하던 연예인이 한동안 나오지 않으면 ‘한물갔다’는 식으로 평가하는 세간의 말들도 부담스러웠다. 그러던 중 그림 그리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그림은 잠시나마 무거운 짐을 훌훌 털어낼 수 있는 일종의 탈출구였다. 2012년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난 9월에는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세 번째 개인전과 함께 밴드 그룹 비비스의 쇼케이스를 진행했다. 당시 그녀가 자신이 만든 음악에 맞춰 스스로 짠 안무로 춤을 추며 캔버스 위에 흔적을 남겨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현대미술의 새로운 장르를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른바 ‘온에어’ 미술 장르다.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자신의 작품 ‘공상’은 그렇게 대중 앞에 처음 공개됐다.
“그림을 그릴 때면 가만히 앉아서 나 자신을 바라보는 기분이 들어요. 마치 자서전을 쓰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림에 대한 영감을 어디에서 얻는지 사람들이 종종 물어보는데 그 답은 나 자신에게 있는 것 같아요. 작품을 구상할 때면 지금 내 감정은 어떤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돼요. 일종의 자아 성찰이죠. 사람들은 가수 솔비가 이제 아예 화가로 전업하는 게 아니냐고 묻기도 해요. 하지만 제 작업 방식 자체는 다른 사람들과 달라요. 음악에 맞춰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제 작업 방식이기 때문에 제게 음악과 미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죠. 지난 개인전을 계기로 자신감도 많이 생겼어요. 나만의 리듬, 나만의 악기, 나만의 색깔로 아티스트 권지안의 작품을 만들게 된 거니까요.”
가수 솔비, 아니 아티스트 권지안의 작품은 경매 시장에서도 각광을 받았다.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그녀의 작품이 2천만원에 거래되며 미술 시장에서도 인정받는 작가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나답게>라는 제목의 책을 냈고 저 스스로도 나 자신을 찾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고 말하지만 사실 아직까지 무엇이 진짜 나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제는 이런 나였지만 오늘은 또 다른 나고, 그래서 더 기대되는 나예요. 결국 ‘나’다운 건 딱히 정해진 답이 없고 계속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데뷔 초 솔비의 모습은 어떤 일에도 겁이 없는 청춘이었다. 그저 느끼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즉흥적인 삶을 살았다면 지금의 권지안은 그때와는 다르다. 어느 누구와도 공감할 수 있을 정도의 여백을 남겨놓는 법을 알고, 자신의 가능성을 열어둘 줄 아는 섬세함도 갖췄다.
“데뷔 초와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을 꼽자면 그때보단 한 번 더 생각한다는 거죠. 한편으론 예전보다 겁이 많아졌다는 생각도 들어요. 달라지지 않은 점은 아직도 환상을 믿는다는 거예요. 여전히 철없고 애 같은 구석이 좀 있어요.(웃음) 주변에선 이제 슬슬 결혼도 생각해야 할 나이가 아니냐고 묻는데 아직까진 다른 사람들 이야기인 것만 같아요. 주변 인생 선배들 말씀을 들어보면 스물다섯 이전에 결혼하는 게 아니라면 아예 서른다섯 이후에 결혼하는 것이 낫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무래도 제 나이 때 여자들은 하고 싶은 것도, 또 할 수 있는 것도 많은 나이잖아요. 어쩌면 남편이나 아이를 위해 아직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요.”
으레 사람들은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려고 하게 마련이지만, 서른둘의 권지안은 솔직했다. 애써 자신을 감추려고 하지도, 포장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스스로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다른 누군가에게 제 앞길을 맡길 수 있다면 고민거리 없이 편하긴 하겠지만, 또 그것만큼 재미없는 삶도 없을 것 같아요. 완전히 만들어진 기성품을 가지는 것보다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의 소중함을 저는 알아요. 물론 실패할 가능성은 크죠. 그런데 저는 실패의 두려움에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예전보다 강해졌어요. 제가 그린 그림에 대해 ‘이건 별로야, 다른 방식으로 그렸으면 더 좋겠어’라는 말을 하시는 분도 분명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런 말에 흔들리면 작가의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가지기는 어려워요. 제가 느낀 대로, 생각한 대로 작업하는 게 진짜 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권지안을 찾고 나니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도 생겼다. 그녀는 미술품의 판매 수익 전액을 기부금으로 내놓는가 하면 자선 전시회, 벽화 그리기 봉사활동 등 각종 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도 일일 산타로 변신해 보육원 봉사활동을 한 소셜테이너다.
“그림을 그리면서 저 자신을 치유한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우리는 모두 무거운 삶을 버티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요. 마음이 고통스러울 때 미약하지만 제가 건넨 한마디가 ‘버티는 삶’을 위한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를 향한 편견, 선입견 같은 건 지나고 보면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니더라고요. 진짜 해답은 나 자신한테 있어요. 그걸 찾기 위해 스스로 버텨낼 수 있을 만큼 단단해지면 되는 거고요.”
그녀는 주먹을 쥐고 일어나는 방법을 안다. 꽉 움켜쥔 주먹을 펴는 것이 때로는 더 중요하다는 것도 안다.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것.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것. 그녀가 깨달은 인생의 목표가 어쩌면 우리 모두가 꿈꾸고 있는 목표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