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모이는 안락한 보금자리
승무원인 김현숙씨는 촬영 전날 LA에서 귀국한 참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파리로 다시 출국한다고 했다. 직업상 잦은 해외 출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그녀에게 집은 자신의 부재에도 사랑하는 남편과 딸에게 포근한 보금자리이길 원했다.
“아무래도 제가 집에 없는 날이 많다 보니 딸 시은(13세)이가 아빠와 단둘이 있는 시간 또한 많잖아요. 특히 아이가 사춘기라 예민할 수도 있기 때문에 집 곳곳에 딸을 위한 배려를 담으려고 했어요. 침실과 공부방을 분리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물건들로 침실을 꾸며줬죠. 그리고 저희 집 거실엔 TV가 없어요. TV를 잘 안 보기도 하고 TV 때문에 가족 간의 대화가 단절되기도 해 아예 치웠죠. 그 덕인지 제가 없는 날에도 시은이가 아빠를 거실로 불러 일과를 얘기하더라고요.”
한희관·김현숙 부부에게 이번 이사는 오롯이 딸 시은이를 위한 선택이었다. 올해 초등 6학년인 아이에게 혼자만의 공간은 물론 침실과 공부방을 분리해 효율적인 삶의 분할을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 전에 살던 집은 아이의 침실과 공부방을 구분할 수 없었고, 주방 공간이 좁아 아이 친구들을 불러 놀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렇게 분당에서 분당으로 이사를 감행하며 세 번째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20년 된 오래된 아파트다 보니 벽부터 다시 손을 봐야 했어요. 골조를 튼튼히 한 다음 김현숙씨의 바람대로 안락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인테리어 자재에 신경을 많이 썼죠. 아무래도 순수한 화이트보다는 파스텔 톤이 도는 은은한 무지 벽지가 안락함을 주고 일반 바닥 마루보다 헤링본 시공이 고급스럽더라고요.” 두 번째 집에 이어 세 번째 리모델링도 담당한 디자인폴 박미진 실장은 사는 사람이 편안함을 느끼는 보금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여자를 위한 주방, 취향을 완성하다
김현숙씨는 19년간 스튜어디스로 일하며 세계 곳곳에서 어깨너머로 익힌 감각을 집에 담았다. 특히 여자의 로망이자 김현숙씨가 가장 신경 쓴 주방은 그녀만의 취향과 감각이 가장 잘 드러난다.
“미국 동부 지역이나 프랑스의 가정집같이 아늑한 분위기를 꿈꿨어요. 데코 타일이 깔린 바닥과 싱크대 상부장을 없앤 심플하면서 멋스러운 풍경까지 모두 실용성에 기반을 둔 안락한 디자인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김현숙씨는 처음 스튜어디스 일을 시작할 때부터 살림살이에 관심이 많았다. 해외 출장 가서 동료들이 옷이나 가방을 쇼핑할 때 골동품 시장이나 플리마켓에서 이색적인 그릇과 인테리어 소품을 사곤 했다.
그렇게 모은 예쁜 살림들이 그녀의 주방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전체적으로 강한 색감은 사용하지 않았어요. 블랙&화이트의 차가운 컬러에도 안락함이 느껴지는 건 원목 가구와 톤 다운된 그레이 컬러의 주방 가구의 조합 덕분이죠. 세련돼 보이면서 동시에 편안하고 감성적인 집주인의 분위기를 담았습니다.” 박미진 실장은 김현숙씨와 세 번의 작업을 한 경험에 빗대어보자면 이번 집이 주인의 취향을 가장 잘 담은 것 같다고 말한다.
가족의 삶을 분할해 여유로워진 아파트
세 식구가 사는 방 3~4개의 126㎡(38평) 아파트는 흔히 안방, 아이 방, 서재, 드레스룸으로 꾸미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한희관·김현숙 부부는 세 번째 이사의 이유가 시은이에게 있었기 때문에 안방과 공용 컴퓨터실을 제외한 두 방을 아이에게 내어주었다. “시은이에게 침실과 공부방을 만들어주자는 건 저나 남편이나 고개를 끄덕이는 부분이었어요. 외동딸이고 사춘기가 시작될 나이이기 때문에 여러 모로 신경 써주고 싶었던 거죠. 혹시나 아이가 분리된다는 느낌에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자기만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애정을 갖고 방을 꾸미더라고요.” 김현숙씨는 아이의 그런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감동스럽다.
가족의 삶은 아이를 중심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따라서 아이가 어릴 때는 안방 한편에 아이 침대를 두고, 뛰어놀기 시작하면 놀이방을 내어주는 식으로 공간을 정하고 구획한다. 그런 시절을 지나 시은이에게 따로 방을 내어주고 보니 언제 이렇게 컸나 싶기도 하다.
“방마다 용도를 명확하게 하되 아이와 부모가 단절되지 않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공부방이라고 해도 가족이 어울려 같이 공부하는 풍경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죠. 특히 이 가족은 만나면 수다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살갑기 때문에 모이는 공간을 주고 싶었어요. 공부방에서 함께 공부하고, 다이닝룸에선 함께 차를 마시고, 거실 바닥에 앉아 함께 웃고 떠드는 모습이 제가 그린 이 가족의 풍경이에요.”
박미진 실장은 방의 용도를 명확히 구분하고 구획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집이라는 곳은 가족이 함께 소통하는 공간인 만큼 혼자여도, 함께여도 어색하지 않도록 여유롭게 구성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인테리어 못지않게 가족이 함께하는 힘은 집을 더욱 안락하고 따뜻하게 만들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