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사거리에 자리한 갤러리 ‘313 아트프로젝트’는 국내에 소개된 적 없는, 현대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즐비한 빌딩 사이에 자리한 갤러리 쇼윈도에 컬러풀한 색감이 돋보이는 격자무늬 작품이 설치됐다. 창문을 넘어 들어오는 햇빛에 반짝이는 메인 작품이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내부에 들어서자 평평한 흰 전시장 벽에 설치된 색색의 정사각형 부조물이 가득하다. 작품에 쓰인 커다란 거울은 전시장 바닥부터 천장, 작품, 갤러리에 들어선 관람객의 모습까지. 내부의 모든 존재를 비추고 있다. 작품들 사이로 인자한 웃음을 띤 백발의 노장이 걸어왔다. 어린 시절 떠올리던 전형적인 프랑스 화가의 모습이다. 그가 바로 현대미술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독보적인 설치미술의 거장, 다니엘 뷔렌이다.
생존하는 프랑스 작가 중 국제적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인물로 프랑스 파리 교외의 블로뉴 빌랑쿠르에서 태어나 파리 국립미술전문고등학교에서 전문적인 회화 공부를 시작한 그는 파리의 전통적인 미술 교육 방식에 회의를 느끼고 수업을 거부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자신만의 작품세계에 몰두한다. 떡잎부터 남달랐던 뷔렌은 학창 시절부터 추상적인 형상과 라인이 도드라지는 그림을 그렸다. 이후 추상화 작가인 모세, 파르망티에, 토로니와 함께 자신들 성의 첫 자를 따서 명명한 ‘B.M.P.T’라는 예술 그룹을 결성하여 회화의 정형화된 개념을 비판하는 반모더니즘 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미술관을 가리켜 “부르주아의 손에 들려 있는 위험한 무기”라고 비판하며 미술관으로부터의 탈피를 주장했다. 근대미술이 추구해온 순수 미술에 반기를 든 유일무이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다니엘 뷔렌의 지난 50년 작업이 현대미술 그 자체를 대변하는 족적으로 여겨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개념 미술가로 정형화된 회화의 개념을 비판한 작품 활동을 해왔다. 특정한 장소에 작품을 설치하여 그 공간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는 이른바 ‘인 시튜(in Situ, 특정 장소에)’ 즉 작품이 자리한 공간의 주변 환경까지 작품 자체로 수용하는 작업 방식이다. 뻔한 예술이 아닌,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다. 그의 탈미술관적 작업은 1969년에 시작되었다.
그의 작업에서는 일상적으로 우리가 접하는 익숙한 장소가 설치미술 작품으로 탈바꿈되어 작품과 장소의 구별이 없어진다. 그의 작품이 설치된 공간에서 작품을 감상 중인 관람객마저 작품의 일부로 포함된다. 그의 작품 세계는 자신이 창조한 ‘인 시튜’라는 개념에 철저히 입각해 있다.
자신만의 작업 방식인 ‘인 시튜(in-situ)’를 가장 잘 반영한 작품.
“인 시튜의 어원은 라틴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제가 직접 만들고 50년 동안 사용해온 단어로 상황에 맞는, 장소에 맞는 작업을 하는 개념을 통틀어 지칭하는 단어죠. 제 모든 작품에 통용되는 개념이기도 하고요.”
동일한 뜻의 다른 단어가 존재하지만 단순히 설치된 작품이 아니라 주변 환경을 포함한 그의 작업을 표현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특정 장소에 설치된 작품을 일컫는 포괄적인 단어였기 때문이다. 현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요소를 작품 속으로 끌어와 하나의 작품으로 융합시키기 위해 아틀리에가 아닌 전시가 진행될 현장에서 직접 작업한다.
313 아트프로젝트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다니엘 뷔렌의 작업.
“건축 구조와 잘 어울리는 작업을 하고자 했어요. 갤러리 윈도에 전시된 작업은 인 시튜의 개념이 잘 반영된 작업이죠. 갤러리 내부 구조가 수직·수평의 큐브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이번 작업에는 주로 사각형과 육면체의 형태를 사용했어요. 제 작업에 등장하는 요소들은 사각형, 삼각형, 원형 그리고 입체적인 형태로는 정육면체와 원기둥 정도로 제한하고 있죠. 하지만 장소와 연계되는 작업이기 때문에 전시될 공간의 구조나 생김새가 복잡하다면 달라질 수 있답니다.”
그의 작업 대부분은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도형으로 이뤄진다. 313 아트프로젝트 내부에 자리한 작품의 주재료는 컬러 아크릴과 거울, 그리고 빛 등이 있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사각형 투명 아크릴과 거울이 반복된 얇은 설치물. 작가에게 조명이 비춰 생긴 작품의 컬러풀한 그림자에 대해 물었다.
“작품을 배치할 때 가장 신경 쓰는 게 조명이에요. 컬러풀한 색감의 투명 아크릴을 사용한 이유도 조명에 의한 색 그림자를 연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조명에 의해 또 다른 작품이 생겨 벽에 역할이 생긴겁니다. 공간과 작품이 하나가 되는 거죠.”
조명을 활용한 작업으로 선명한 색감이 눈에 띈다.
다니엘 뷔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줄무늬. 그에게는 ‘줄무늬 작가’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다. 전시마다 시그너처 재료로 쓰이는 8.7cm의 줄무늬는 단순한 시각적 소재가 아닌 하나의 기호로 사용된다. 자신을 대변하는 시각적 요소이자 관람객과 소통하는 또 다른 언어인 셈이다.
작가와 줄무늬의 인연은 196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작품에 필요한 원단을 찾기 위해 들렀던 파리 생피에르 시장에서 그는 8.7cm의 줄무늬가 그려진 차양의 한 조각을 우연히 발견한다. 이를 계기로 1965년부터 이 줄무늬를 주 모티브 삼아 숱한 작품 활동을 해왔다. 반듯한 도형으로 이뤄진 그의 작업은 단 1cm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4.35cm의 줄무늬가 이어진 거울에 반사되며 비로소 8.7cm의 줄무늬가 완성되는 등 치밀한 재단을 거치는 식이다. 놀라운 점은 모든 작품의 재단이 룰러(자)가 아닌 8.7cm의 줄무늬로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매번 작품 제작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어디에 어떻게 배치하고 어떻게 놓을지 고민하는 일련의 과정이 가장 흥미로워요. 공간과 소통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끊임없이 재배치하는 과정을 거치죠.”
‘현장’이란 시공간을 표현하는 복합 용어로 다니엘 뷔렌에게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모든 작업을 전시가 진행될 현장에서 직접 제작하고 설치하는 그는 전시가 끝나면 곧바로 작품을 해체해버리기 때문에 벽에 붙은 그림처럼 단면적인 게 아니라 관람객이 작품의 모든 부분을 충분히 볼 수 있도록 한다.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에 35m의 긴 작품을 전시했는데, 당시 작품 제작에만 한 달이 걸렸어요. 숱한 어려움을 맞닥뜨린 시간이었죠. 하지만 그런 과정은 결과에 비하면 중요치 않다고 생각해요. 구태여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할 필요도 없죠. 왜냐하면 결과물에 그 모든 게 담겨 있으니까요. 제 작품을 다각도로 살펴보면 어떻게 제작되었는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작품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는지 어떻게 고정되었는지 한눈에 볼 수 있거든요.”
결과물이 모든 걸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만들어둔 작품을 설치하는 게 아니라 그 공간에 맞는 작품을 현장에서 제작하기 때문에 결과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그의 고뇌와 노고를 느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전시 제목, 작가 이름, 메인 주제, 작품 방식, 전시 장소, 도시와 나라, 제작 연도 등이 나열된 형태의 전시 제목을 사용하는데, 전시 타이틀만 봐도 그 전시의 전반적인 정보를 짐작할 수 있다.
313 프로젝트 2층 공간을 메운 그의 작품들.
“예술 작품은 관람객이 없는 상태에서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관람객이 보는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예술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거죠.”
확고한 그의 어투에서 예술에 대한 신념이 느껴진다. 누군가가 작품을 봐주는 과정을 거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예술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뚜렷한 그의 작품론은 이번 전시에서도 빛을 발한다.
“이전에 사용하던 재료들이지만 어디에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작품이 달라져요. 이번 전시에는 투명성, 투과성, 반사성 등을 활용해 ‘오트릴리프’라는 개념을 적용했어요. 오트릴리프란 조각의 용어로 양각이나 부조를 뜻하죠. 앞서 말한 각기 다른 재료의 3가지 특성을 잘 살려 부조 형태를 제작했습니다.”
다니엘 뷔렌이 보여주는 이번 전시 공간에서는 거울의 역할이 두각을 나타낸다. 거울은 우리가 미처 볼 수 없는 공간의 요소를 비춰 작품으로 끌어들임과 동시에 전시 공간을 무한한 영역으로 확장시킨다. 이처럼 주변 환경을 고스란히 비추는 재료의 특성 자체가 ‘인 시튜’를 표현하기에 적합하다.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시 주제부터 작품 제작 및 배치, 그리고 재료의 특성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다.
“설치를 할 때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배치되기 때문에 작품마다 정해진 룰이 있어요. 예를 들면 벽 정중앙이되 바닥에 닿도록 배치해야 한다는 식으로요. 이러한 룰에 맞춘 채 컬렉터의 집에 걸린다면 그 자체로 또 다른 인 시튜 작업이 되죠. 어디에 붙든 작품의 규칙만 지킨다면 그 공간의 일부가 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룰을 무시하고 막 걸어둔다면 직접 찾아가서 뜯어내버릴 거예요.(웃음)”
인터뷰가 끝난 뒤 에디터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다니엘 뷔렌.
그 외의 대표적인 해외 전시로는 2002년 파리 퐁피두센터 개인전, 2005년 구겐하임 미술관 회고전이 있고 총 10여 차례 이상 베니스 비엔날레와 카셀 도큐멘타 등에 참가했으며, 1986년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 전시를 통해 비엔날레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상’의 개념에 대해 반대한다는 그의 말에 따르면 ‘상’이란, 당시 권위 있는 권력자들의 특권이었다. 1968년 파리 혁명이 일어나면서 상류층의 권위를 위한 허상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거세졌고 그 결과 ‘상’ 문화는 폐지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1986년 다니엘 뷔렌이 프랑스관 전시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비엔날레 주최 측에 의해 이 제도가 다시 부활했다.
“수상에 대해 좋다는 말만 할 수 없는 이유는 국제적인 행사들의 불공정함 때문이에요. 비엔날레에 출품하는 인물들은 이미 나라별로 한 번 선정한 인물들로 유명한 작가들인 경우가 많죠. 이 시스템 자체가 불공정한 거예요. 젊은 신진작가들이 참여하기에는 장벽이 너무 높으니까요.”
상을 수상하긴 했지만 그는 여전히 상 문화의 불공정성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언제나 자신만의 뚜렷한 예술관이 있고 옳고 그름이 분명한 다니엘 뷔렌. 그처럼 옳지 않은 일을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소신을 지닌 예술가는 몇이나 될까? 그는 전통 회화가 지닌 장르적 한계를 허물고 미술관이라는 틀에서 벗어나는 진취적인 예술 행보로 현대미술계에 숱한 변화를 가져온 인물이다. 지긋한 나이에도 예술에 대한 열정 하나로 세계 곳곳의 공간에 찬란한 유희를 더하는 노장 아티스트. 앞으로 그가 만들어갈 현대미술은 또 어떤 모습일지 자못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