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금슬 좋기로 소문난 가수 커플 조규찬·해이의 평창동 자택에서 미니 콘서트가 열렸다. 집들이와 콘서트를 결합한, 이른바 ‘집콘’이다. 부부는 이날 집콘을 위해 지인들에게 직접 초대장을 만들어 보냈고 평소 부부가 애창하는 곡들로 공연을 준비했다. 이들에게 음악은 곧 일상이지만 그럼에도 이날은 조금 특별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융성위원회가 주최하는 ‘문화가 있는 날’ 캠페인의 일환으로 준비된 자리였기 때문이다. 부부가 마련한 이 미니 콘서트는 ‘네이버 TV캐스트’를 통해서 생중계됐다.
기자가 취재를 위해 평창동 자택을 찾았을 때 부부는 리허설 준비로 분주했다. 현관 앞에는 부부의 아들 11살배기 은우군이 직접 그린 초대장이 붙어 있었다. 서툰 솜씨지만 정성이 느껴졌다. 부부가 꼬박 한 달 동안 준비했다는 집들이에는 반가운 얼굴들이 초대됐다. 부부의 결혼식 사회를 맡은 가수 김광진과 조규찬의 공연 때마다 의상을 손수 준비하는 디자이너 장광효, 해이의 대학 선배인 아나운서 정세진 등이 자리를 빛냈다.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자 하나둘씩 손님이 모이기 시작했고 부부는 시종일관 밝은 얼굴로 그들을 맞이하며 안부를 건넸다.
해이의 데뷔곡 ‘쥬뗌므’를 첫 곡으로 부부의 공연이 시작됐다. 조규찬이 아내 해이를 처음 봤을 때, 그녀는 무대 위에서 이 곡을 부르고 있었다고 했다. 해이는 노래를 부르는 내내 사랑스러운 눈길로 남편을 바라봤고 조규찬 역시 기타를 연주하며 아내의 노래를 더욱 감미롭게 만들었다.
조규찬 아내를 처음 본 날이 기억나요. 경상도 지역에서 열린 공연 겸 방송 현장이었죠. 제가 다음 순서로 무대에 올라야 해서 바로 옆에서 그 모습을 봤거든요. 무릎 약간 아래까지 내려오는 진한 남색 치마에 블라우스를 입은 모범생 스타일이었어요. 긴 머리를 왼쪽, 오른쪽으로 찰랑거리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그때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런 우연이 몇 번 겹치면서 ‘아, 이 사람은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숙명이라고나 할까요?(웃음) ‘쥬뗌므’는 저와 아내를 엮어준 음악이에요.
공연 중간중간 음악에 대한 해설과 부부의 감상이 이어졌다. 오랜만에 대중 앞에 선 해이는 살짝 긴장한 모습이었지만 수년간 라디오 DJ로 활동해온 조규찬이 적극적으로 리드해 생방송의 묘미를 살렸다. 이날 약 1시간에 걸쳐 진행된 미니 콘서트에서 부부는 영화 <원스>의 대표곡 ‘Falling Slowly’, 영화 <클로저>의 배경음악 ’Blosser’s daughter’ 등 대중에게 친숙한 곡들도 선보였다. ‘집콘’이 끝나고 손님이 모두 돌아간 시간, 인터뷰를 위해 부부와 마주 앉았다.
집들이 콘서트라니! 긴장되진 않았나요?
해이 라이브 공연을 많이 해봐서 공연 자체는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그런데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다 보니 많은 장비가 필요하잖아요. 마이크며 라이트가 들어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죠.(웃음) 집에서 편안하게 노래하고 연주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거창할 줄 몰랐거든요.
조규찬 덥진 않으셨어요? 조명도 조명이지만 집 안이 예술적인 열기로 가득 찬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처음엔 다들 약간 긴장한 모습이었는데 공연이 진행되면서 연주하는 저나 청중이나 모두 편안해졌던 것 같아요.(웃음)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더 보람되고 기뻤어요. 아내와 함께 합을 맞춰보고 아들과 초대장도 그리고요. 솔직히 가족끼리도 각자 일을 하면서 바쁘게 살다 보면 공감대를 이루기 어렵잖아요. 이번에 ‘집콘’이라는 하나의 지향점을 두고 가족이 함께하니까 더 똘똘 뭉치게 되더라고요. 이참에 온 가족이 대청소를 했거든요.(웃음) 가족의 행복을 위해 ‘집콘’을 정기적으로 열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번에 들려준 곡들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곡은요?
해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샹송 ‘깡 마디(Quelqu’un m’a dit)’요. 영화 <500일의 썸머>의 OST 곡으로, 우리말로 표현하면 ‘누군가 내게 말했어요’라는 제목이에요. 거기에 한 소절을 남편이 불렀으면 좋겠다 싶었거든요. 연애할 땐 불어를 정말 잘하는 줄 알았는데 이번에 발음을 들어보니 연습을 많이 해야겠더라고요. 지적을 좀 했죠.(웃음)
조규찬 이 노래가 좋은 이유는 생경한 언어로 들리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 안에 무슨 이야기가 있을지 굉장히 궁금하잖아요. 개인적으로 낚시를 참 좋아하는데, 낚시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물고기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더 스릴이 있죠. 무엇보다 이 곡은 가사가 참 좋아요. ‘인생은 한 송이 장미와도 같다고 말한다. 그렇게 흘러가는 거다. 그렇게 믿어왔는데 어느 날 누군가 내게 말했다. 당신이 아직도 나를 사랑한다고.’ 이런 뜻이에요. 제가 부른 한 소절은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라는 뜻이에요. 제가 그래도 뜻은 알고 부릅니다.(웃음)
부부가 함께 작업하면 어때요?
조규찬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 수록된 ‘앤드 아이 니드 유 모스트(And I need you most)’라는 곡을 제가 작곡과 편곡을 하고 아내가 작사와 가창을 담당했어요. 마치 영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의 한 장면 같은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할까요?(웃음) 새삼 아내의 작사 감각과 가창 센스에 존경심을 느끼게 된 기회였죠.
해이 오랜만에 녹음한 거였는데 무척 설레고 재밌었어요. 감사하게도 드라마가 굉장히 잘됐잖아요. 뿌듯했죠. 남편과 함께 작업할 땐 200% 남편을 믿는 편이에요. 음악에 있어서만큼은 남편 말대로 하면 안 되는 게 없더라고요. 부부 싸움요? 음악 외적인 부분은 다른 부부와 똑같죠, 뭐.(웃음)
평소에도 집에 노랫 소리가 끊이지 않을 것 같아요.
해이 집에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은 그냥 일상이에요. 아이가 피아노에 앉아 멜로디를 치면 남편이 옆에서 반주를 해주는 식이죠. 음악은 주로 차에서 많이 들어요. 아이가 좋아하는 음악 CD를 남편이 만들어 와요. 그게 몇십 장 정도 되는데, 차 안에서 가족이 함께 음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곤 해요. 신기한 게 저희 아이는 또래 아이들과 달리 아이돌 가수의 음악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어요. 베리 매닐로우(Barry Manilow), 비틀즈(The Beatles)의 음악을 좋아하거든요. 아무래도 어릴 적부터 가요에 많이 노출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아, 최근에 싸이(PSY) 노래는 학교에서 배웠다면서 흥얼거리더라고요.(웃음)
조규찬 아들이 피아노를 칠 때 옆에서 코드를 맞춰 화음을 만들어주는 것이 저의 작은 즐거움이에요. 그러면 꽤 괜찮은 즉흥연주가 되고 아들도 굉장히 으쓱해해요. 분위기가 중요한 것 같아요. 미국 유학 시절에 아들에게 자장가를 불러주곤 했어요. 해이랑 둘이서 악기 연주 없이 침대에 누운 채로 ‘섬웨어 오버 더 레인보(Somewhere Over the rainbow)’를 불렀죠. 가족이 함께 즐기는 문화가 됐다고 생각해요.
해이 미국에 있을 땐 집에서 연주하고 노래 부르는 일이 많았어요. 가족 중심의 문화다 보니 주말이면 집으로 이웃을 초대해 함께 식사하고 기타 치고 피아노 치면서 노래하곤 했죠. 덕분에 3년간의 유학 생활이 무척 즐거웠어요.
한국에선 가족끼리 노래방에 가지 않나요?
해이 결혼 전엔 친구들과 재미 삼아 가본 적은 있어요. 거기 가면 친구들이 하도 제 노래를 불러보라고 해서 부끄러웠죠. 결혼하고 나서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웃음)
조규찬 둘 다 가수다 보니 노래방은 좀 지양하는 편이에요. 노래방의 음향 시스템이 온전한 가창을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거든요. 아내가 기타 연습을 할 때 옆에서 함께 기타 연주를 해줘요. 아내가 원하면 코러스나 듀엣도 해주고요. 노래방보다 훨씬 좋아요.(웃음)
오늘 초대된 손님과의 인연이 궁금해요.
조규찬 디자이너 장광효 선생님은 몇 년 전부터 제 옷을 만들어주세요. 아내 분이 성악가셔서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많으세요. 패션 위크 기간이라 바쁜 와중에도 초대에 응해주셔서 굉장히 감사하죠. 김광진 선배님은 저와 인연이 무척 오래됐어요. 아내가 가수로 데뷔할 때 얼떨결에 코러스를 해주시기도 했고, 저희 부부의 결혼식 때 사회를 봐주셨죠.
해이 정세진 아나운서는 대학 선배님이세요. 제가 데뷔하고 어리바리할 때 선배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한번은 KBS 스튜디오에 조수미씨가 오셔서 근처를 기웃거리고 있었거든요? 만나 뵙고 싶던 분이라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었죠.(웃음) 그런데 정세진 선배님이 제 손을 잡아끌어 인사를 시켜주셔서 무척 감동받았어요.
부부에겐 11살 짜리 아들 은우 군이 있다. 은우군이 집들이 콘서트의 초대장을 직접 그렸다.
은우에게도 예술적인 소질이 있나요?
해이 특출한 건 아닌 것 같아요.(웃음) 그냥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해요. 보통 저 나이 때는 별로 안 좋아하잖아요. 유치원 때부터 피아노를 가르쳤는데 미국인 선생님이 아이와 피아노 앞에 앉아 놀고만 있는 거예요. 처음엔 ‘연습은 안 시켜주고 저게 뭐하는 거지?’ 싶었죠. 한국에선 한 달이면 뽑을 진도를 미국에선 일 년이 걸리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그렇게 했기 때문에 아이가 피아노 치는 일에 질리지 않은 것 같아요. 최근에는 학교에서 특기로 악기를 하나씩 배우라고 해서 첼로를 선택했어요. 그런데 남편 생각엔 첼로보다는 기타가 좋을 것 같대요. 첼로는 너무 크고 무거워 가지고 다니면서 연주할 수 없으니까요.
조규찬 저나 아내나 고등학생이 돼서야 음악적인 재능이 나왔어요. 공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꼴찌가 아닌 이상 터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제 인생을 돌아봤을 때 음악적 감수성이나 창의력은 모두 어린 시절에 쌓은 추억 때문인 것 같아요. 그게 제 음악의 원동력이기도 하고요.
해이 남편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앉아서 공부만 하기보다는 박물관에 가거나 광화문광장 분수대에서 수영복 입고 아빠랑 함께 뛰어다니게 해요. 주말에는 서점에 들러 산책도 하고요. 마지막 주 수요일엔 ‘문화가 있는 날’이라고 해서 박물관 입장료가 무료더라고요? 은우 세대는 문화적 혜택을 많이 누릴 수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 미국에 있을 때 샴페인이라는 작은 도시에 살았거든요. 거기선 미술 전시회에 한 번 가려면 시카고까지 두 시간씩 운전해 가야 했는데 한국에선 그럴 필요가 없잖아요. 바로 집 근처 미술관에서도 데미안 허스트나 고흐의 작품을 쉽게 만날 수 있으니까요.
조규찬 아이가 즐거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지켜봐주고 그에 관련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곁에서 지원해주는 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부모가 그려놓은 이상적인 자녀의 모습에 아이를 맞추려는 욕심을 버릴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도 아이는 충분히 스스로 피어나는 꽃과 같은 법이니까요.
해이 은우는 그림 그리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가만히 앉아서 몇 시간씩 그리고 있거든요. 얼마 전에 아이가 먼저 미술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미술 학원에 보내기 시작했어요. 저희 부부와 생각이 비슷한 선생님이시거든요. 아이들에게 ‘이렇게 그리세요’ 하고 가르치지 않아요. 그냥 주제 하나만 주고 ‘마음대로 그려보세요’ 하는 식이죠. 이번에 은우가 초대장을 직접 만들었어요. 너무 독특한 걸 그려 오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는데 멋진 초대장을 완성해 기특했어요.
엄마, 아빠의 어린 시절과 비교해보면 어때요?
해이 저는 부모님 말씀을 굉장히 잘 듣는 아이였어요. 친구들과 돌아다니면서 사고를 친 적도 없고 얌전한 아이였죠.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건 별로 안 좋은 것 같아요. 다른 아이들은 학창 시절에 사랑의 감정도 느껴보고 반항도 하면서 크잖아요. 그런데 저는 ‘늦바람’이 왔다고나 할까요? 20대 초·중반에 가수로 데뷔한 이후에야 사춘기의 열병을 앓았던 것 같아요.
조규찬 아버지와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라요. 학교에서 돌아온 저를 위해 직접 동요를 만들어 선물하셨죠. ‘산으로 강으로’라는 곡이었는데 아버지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제가 노래를 불렀어요. 그렇게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어머니는 부엌에서 굵은 멸치와 다시마를 우려낸 국물로 칼국수를 끓여주셨죠. 그때 거실에서 느꼈던 봄날의 온기와 음악의 따스함, 칼국수의 시원함이 여전히 기억나요. 조금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 ‘연어가 자신의 고향을 그리워하듯’ 어른이 된 저도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기운을 얻어요.
보통 엄마들은 육아를 하면서 하던 일을 그만두는데, 해이씨는 오히려 반대인 것 같아요. OST 작업, 뮤지컬, 대학원 진학까지. 더 왕성하게 활동하잖아요.
해이 솔직히 육아에만 집중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남편이 ‘그러다 나중에 후회할 거야’라고 조언하더라고요. 그땐 ‘내 마음을 몰라준다’며 서운해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남편 말을 듣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 일을 했기 때문에 지금도 일할 기회가 이어지고, 새로운 목표도 세울 수 있는 거잖아요. 밖에서 받은 에너지가 아이를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조규찬 해이가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인생만 살기를 바라지 않았어요. 꿈과 성취를 놓지 않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길 바랐죠. 또 아내의 열정과 재능을 그냥 묵혀두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해이 ‘엄마가 되니 일을 못하겠다’고들 하잖아요. 저는 오히려 반대예요.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일을 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엄마가 되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어요. 연기를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는 제가 결혼 후 뮤지컬에 도전했어요. 남편을 사랑하면서,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감정을 통해 연기를 할 수 있었어요. 자연스레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목표도 생겼고요. 시간을 쪼개가며 공부를 하니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더라고요. 요즘은 ‘은우야, 엄마도 은우랑 똑같은 학생이야. 엄마 열심히 공부할게’ 하면서 같이 책을 보기도 해요. 그럴 때면 ‘아, 이런 게 행복이구나’ 싶어요.
부부를 이어주는 건 서로를 향한 존경심이다. “혼자가 아닌 ‘함께’라서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다”는 부부의 말처럼 조규찬·해이 부부는 오늘도 함께라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