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법조문보다 무서운 혼전계약서(뉴욕 통신원_안수연)
널리 알려진 바대로 미국에는 간통죄가 없다. 1950년대까지는 미국의 거의 모든 주가 간통을 처벌하는 규정을 두었지만 현재는 대다수의 주에서 간통을 비범죄화했고 간통에 대해 처벌 규정을 둔 일부 주에서도 중혼죄에 해당하지 않으면 기소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단, 일리노이 주를 비롯한 일부 주에서는 부부 사이의 애정을 방해했다는 점을 근거로 상대방을 고소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버지니아를 비롯한 20여 개 주에서는 아직도 간통이 범죄이지만 버지니아의 경우 처벌이 매우 경미하여 2백50달러 정도의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성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중시하는 미국 사회에서 이런 일은 공적인 영역에서 배제되는 철저히 사적 영역에 속한다. 일례로 미국을 넘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클린턴 전 대통령의 ‘르윈스키 사건’을 보면 미국인들이 간통 혹은 불륜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으나 직접적인 성행위가 없었다는 이유로 그저 스캔들로 끝났고 심지어 클린턴 부인인 힐러리조차 “우리의 사적 문제다. 당신들이 관심을 갖고 화내야 할 공적 부분이 아니다”라며 대중의 관심에 일갈했다.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클린턴이 어떤 부분을 감수해야 했는지는 그가 대통령이었다 할지라도 사적인 영역에 속하기에 그들 부부만의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불륜에 대해 아주 쿨한 태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앞서 언급했듯 성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중요시하고 성적으로 개방된 나라이지만 불륜과 간통에 대한 대처 방법은 훨씬 신속하고 확실하다.
그래서 이혼율이 무려 50%가 넘는 것일지도 모른다. 부부 사이의 불륜, 연인 사이의 바람피우기는 드라마의 소재로 흔히 등장할 만큼 사회에 만연한 ‘현상’이지만 이로 인한 이별과 결별에 있어서도 어느 나라보다 확실한 것이 바로 미국인 것이다. 미국의 간통 혹은 불륜에 대한 고소에 관해 재미있는 점은, 형사처분보다 민사적 손해가 많다는 사실이다. 간통을 이유로 이혼당하는 사람에게 가정법원 판사는 혹독하다 싶은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가령, 바람피운 남자가 재산이 많다면 여자에게 상당히 많은 부분이 위자료로 돌아가도록 판결을 내리고 배우자 보조금과 자녀 양육비를 많이 물린다. 또한 간통을 이유로 이혼을 제기하는 경우, 6개월 또는 1년씩 기다려야 하는 규칙도 적용되지 않는다. 미국의 많은 운동선수와 유명인이 간통 때문에 이혼을 당하고 또 그들 재산의 많은 부분을 아내에게 넘겨준 뒤 거의 빈털터리로 이혼남이 되는 것을 보면 미국에서 간통법은 사실상 여전히 건재함을 알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스티브 윈, 마이클 조던, 타이거 우즈 등의 이혼이 제법 유명한 이혼 사건에 속한다. 또 하나 미국만의 특별한 제약이 바로 혼전계약서이다. 법적 간통죄가 없기 때문에 결혼 전 혼전계약서를 꼼꼼하게 만드는 것이다. 말 그대로 결혼하기 전에 당사자, 즉 신랑과 신부가 될 두 사람이 계약을 맺는 혼전계약서는 미국 내에서는 법적으로 상당한 효력이 인정된다. 일반인은 혼전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흔치 않지만 돈 많은 기업가나 연예인들은 종종 혼전계약서를 만들고 이 같은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 예도 적지 않다. 가장 거창했던 혼전계약서로는 케이티 홈즈와 톰 크루즈의 경우를 들 수 있다. 혼전계약서에는 예외 없이 재산을 분할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주로 이혼할 때 필요하지만, 혼인 후 둘 중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뜬다면 이때도 재산을 분할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상속자의 몫이 상당 부분 혼전계약서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다.
중국│법원보다 무서운 배우자의 사적 응징(상하이 통신원_서혜정)
얼마 전 중국인 친구와 길을 걷다가 한 70대 노인이 다섯 살도 채 안 돼 보이는 아이에게 “아빠 다녀올게”라고 말하는 모습을 봤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는 이제 겨우 이십대 중반을 넘겼을 법한 앳된 얼굴이었다. 깜짝 놀라 “저러다 본처에게 들키면 어쩌려고 하는 거야?” 하고 묻는 나를 보고 중국인 친구는 코웃음을 쳤다. 넓디넓은 중국에서 사업차 출장을 오가며 저렇게 두 집 살림을 차리는 건 ‘돈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지 법적으로 문제 될 일은 전혀 아니라는 얘기였다. 이따금 중국 언론에는 지역을 옮겨가며 몇십 년 동안 두 집, 혹은 세 집 살림을 하다 들킨 남자들의 이야기가 실리곤 한다. 중국의 건물 지하 주차장엔 CCTV와 함께 지하 주차장을 관리하는 관리인이 따로 있다.
손전등을 들고 지하 주차장을 돌며 수시로 차 안을 살피는데, 차 안에서 바람을 피우는 불륜족이 많아서라는 게 그 이유다. 중국은 형법상 간통을 처벌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혼죄’는 있다. 스쳐가는 바람은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거다. 예외가 있다면 현역 군인의 아내와 불륜을 저질렀을 때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구류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중국은 간통을 부부간의 문제로 보고 있어 부부가 한쪽 배우자의 불륜 문제로 이혼을 해도 위자료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오직 감정만이 남을 뿐이다. 2011년 중국과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덩 여인 사건’은 한국 영사들이 관련된 국제적인 스캔들로 화제가 됐지만, 정작 덩 여인은 남편이 이혼을 원하지 않아 불편할 정도의 법적 제재는 받지 않았다. 이렇듯 재산상, 형사상의 규정이 없다 보니 ‘바람’에 대한 사적인 응징은 상당히 비극적이다. 재작년 중국에서 인기를 끈 한 방송 프로그램은 카메라를 대동하고 바람난 남편이나 아내를 미행해 간통 현장을 잡아주는 것이었다. 바람난 배우자를 응징할 방법을 찾던 이들이 공개적으로 배우자를 망신당하게 할 수 있는 기회라 여겨서인지 출연 의뢰자가 줄을 섰다는 후문이다. 집 안 집기를 부수는 것은 물론이고 서로 주먹다짐하는 모습까지 리얼로 방송돼 혹시 조작한 것이 아닌지 의심을 받으며 한동안 화제를 모았다.
남편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아내의 무시무시한 사적 응징이 언론에 대서특필된 적도 있다. 중국 허난성의 32세 남성이 바람을 피우다가 아내에게 발각됐는데, 화가 난 아내가 흉기로 남편의 생식기를 잘라버린 사건이었다. 사고 직후 남편은 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봉합 수술을 받았으나 뒤이어 병실에 잠입한 아내에 의해 또다시 생식기를 잘리는 끔찍한 일을 당했다. 현장에 나타난 경찰이 남편에게 솜뭉치를 건네면서 “어쩌겠느냐”며 혀를 끌끌 차는 모습도 충격적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 같은 사례가 거의 매달 뉴스에 오르내린다는 것이다. 어쩌면 법원보다 무서운 건 ‘화난 배우자’가 아닐까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유럽│형벌보다 무서운 위자료(스위스 통신원_김진경)
“귓속말을 해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뺨에 뺨을 갖다 대는데도? 속입술로 키스를 하는데도?” 이 광기 어린 대사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비극 <겨울 이야기>의 주인공 레온티즈 왕의 말이다. 레온티즈 왕은 아내 헤르미오네 왕비가 자신의 오랜 친구인 보헤미아의 왕 폴릭세네스와 불륜을 저질렀다고 의심했다. 질투에 눈이 먼 레온티즈 왕은 친구와 아내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한다. 나중에서야 왕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죽었다고 생각한 아내와 친구도 살아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실제 간통은 일어나지 않았고 왕의 의심일 뿐이었다는 내용이지만, 이처럼 간통은 서구에서도 문학의 인기 있는 주제였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서구에서도 오랫동안 간통죄가 존재했다.
여성 차별적인 면은 오히려 서구의 간통죄가 더 심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결혼한 여성이 간통을 저지르면 아이의 순결성이 의심되는(아이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중요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을 들어 간통죄로 고소된 여성에게 남성보다 더 가혹한 판결을 내렸다. 함께 간통을 저질러도 피의자가 남성이냐 여성이냐에 따라 다른 처벌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1707년 영국의 대법관 존 홀트는 “다른 남성의 아내와 성관계를 갖는 것은 그 남성의 재산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성을 인권의 주체가 아닌 재산의 일부로 본 것이다. 간통죄를 저질렀을 때의 처벌도 가혹했다. 지금은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로 간주되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조차 17세기에는 간통과 중혼이 사형까지 선고될 수 있는 중범죄였다. 하지만 실제로 처형된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영국의 경우 간통죄로 사형이 집행된 마지막 케이스는 1654년 수잔 바운티(Susan Bounty)라는 여성인 것으로 전해진다. 바운티는 교수형을 받고 사망했다. 물론 지금은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형법상 간통죄가 사라졌다. 이탈리아는 1969년, 룩셈부르크는 1974년, 프랑스는 1975년, 스페인은 1978년, 벨기에는 1987년, 스위스는 1989년, 오스트리아는 1997년에 간통죄를 폐지했다. 동유럽에 위치한 대부분의 공산주의 국가엔 애초에 간통죄가 없었다. 루마니아에 예외적으로 간통죄가 있었지만 2006년 관련법을 폐지했다. 형법상 간통죄가 사라졌다고 해서 혼외 성관계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뜻은 아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간통을 중대 이혼 사유로 간주하고 이혼 시 재산 분할에서 간통을 저지른 쪽은 절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이다. 스위스 출신의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의 작품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 그럴듯한 질문이 등장한다. “우리의 영혼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잠자리를 함께하는 일을 되풀이하는 상황에서, 언젠가 꿈속에 그리던 남자나 여자와 마주치게 되는 것을 운명이라고 믿는다면 용서받을 수 없을까?” 개인적으로 대답하자면 용서받을 수 있다. 위자료만 적절히 내놓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