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6일, 대한민국이 소리 없이 들썩였다. 간통죄가 62년 만에 폐지됐기 때문이다. 이로써 2008년 11월 이후 간통죄로 형사처분을 받았던 이들은 법적으로 구제를 받게 되며 간통죄로 재판을 받고 있는 6백여 명도 공소기각 또는 무죄·면소판결을 받게 된다. 그동안 배우자의 불륜이 의심된다며 경찰을 대동해 출동하던 일도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형사처분의 근거 조항이 사라졌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개인의 불륜 행위에 개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외도남녀’는 반기는 분위기다. 특히 남자 쪽이 더 그렇다. 지난해 6월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혼 남성 10명 중 4명이 “외도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콘돔 제조회사의 주가는 판결 직후 치솟았고, 흥신소와 이혼 전문 변호사 역시 난데없는 ‘특수’를 맞아 기대감에 들떴다.
- 구제받는 ‘간통자들’
간통 혐의 기소 5천4백66명 (2008년 11월~2015년 1월)
유죄 확정 2천9백73명
재판 중 약 6백 명
자료_대검찰청, 소 취하·무죄 확정자 제외
간통죄 폐지 그 이후
간통죄는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리고 그 후 한 달이 지난 지금 ‘불륜업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1 무엇이 문제였을까?
지난해 간통죄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단 9명. 간통죄로 배우자를 고소한 사건은 1천 건 가까이 되지만 절반은 집행유예를 받았을 만큼 간통죄는 큰 의미가 없었다. 배우자를 간통 혐의로 고소했다 결국 형사 합의를 보는 사례도 많다. 남편의 간통 사실을 알게 돼 불같이 화를 내며 남편과 내연녀를 간통죄로 고발했던 A씨. 하지만 결국 그녀는 무릎 꿇고 싹싹 비는 남편을 보고 참고 넘어가기로 했다. 아이들 걱정에 남편과 이혼할 생각이 없는 데다 그를 감옥에 보내봐야 결국은 집안 망신일 거라는 지인의 조언 때문이었다.
처벌로 인한 득보다 사생활 침해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더 크다는 점도 문제였다. 세계적으로도 성적 자기결정권을 광범위하게 인정하는 추세이며, 간통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문제이기에 사회에 미치는 해악이 크지 않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간통죄로 실형을 사는 사람을 주위에서 봤다고 해서 불륜에 대한 경각심이 커진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간통 현장을 잡아야만 증거로 인정되는 것도 간통 수사의 한계점으로 지적돼왔다.
또 바람을 피운 상대(상간자)를 일괄적으로 처벌하는 것도 문제였다. 예를 들어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불륜을 저지른 남편과 내연녀를 모두 간통죄로 고소할 수 있었다. 내연녀가 미혼이든 기혼이든 상관없이 형법으로 처벌받아야 했던 것이다. ‘정조의무’가 없는 미혼도 처벌하는 것은 국가권력의 남용이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물론 외도를 저지른 상대를 처벌하는 건 피해자 입장에선 통쾌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법원은 상간자에 대해선 형법보다는 도덕적·사회적 비난과 민사상 책임 추궁으로 다스리는 게 맞는다고 봤다.
마지막으로 어디까지를 간통으로 볼 것인지도 모호했다. 배우자가 사전·사후에 용인하면 간통죄가 성립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것을 용서로 볼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간통을 저지른 배우자가 “당시에는 그냥 넘어가놓고 왜 고소를 하느냐”고 문제를 제기한다면 법적 다툼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때그때 다른’ 기준으로 간통을 처벌하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
2 ‘유부 남녀’ 신풍속도
이번 판결로 평소 일탈을 꿈꿨던 배우자가 있는 남녀들의 반응도 심상치 않은 추세다. 간통죄 폐지가 결정된 날은 때마침 ‘불금(불타는 금요일)’이었고 그날 강남의 유흥가가 유난히 붐볐다는 후문이다. 몇몇 나이트클럽에서는 아예 기혼자들을 위한 이벤트성 파티를 계획하고 있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강남에서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40대 남성은 “내가 아는 유부남들은 죄다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불륜족이 특별히 늘어날 것 같진 않다. 어차피 할 사람은 다 하던 것뿐”이라고 귀띔했다. 유흥업소 종사자들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간통죄로 고소당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게 그 이유다. 서울가정문제상담소의 김미영 소장은 “과거에는 아내 외도에 대한 문의가 10건 중 1건을 차지했다면, 요즘은 거의 반반이 됐다. 외도가 성별에 관계없이 늘고 있는 상황이기에 법의 유무가 아닌 부부간의 신뢰와 책임에 대한 강조로 외도 문제를 바라봐야 할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한편, 외도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홈페이지가 차단됐던 불륜 중개 사이트가 다시 오픈됐다. ‘인생은 짧습니다. 연애하세요’가 이곳의 캐치프레이즈다. 지난 3월 10일을 기준으로 이 사이트에는 1백 명이 넘는 ‘기혼 남성’이 자유롭게 ‘상대녀’를 찾고 있었다. 이곳 외에도 새로 생긴 기혼자 만남 사이트는 하루 2천여 명의 가입자가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성인 남녀들이 주로 가입돼 있는 사이트 게시판에는 간통죄 폐지로 이해득실을 따지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성인용품도 반짝 특수를 누렸다. 한 성인용품 업계 관계자는 “간통죄 폐지 후 매출이 50% 가까이 뛰었다”고 귀띔했다. 주식 시장도 들썩였다. ‘간통죄 테마주’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콘돔 제조회사 U사의 경우 2월 26일 오전부터 간통죄 위헌 판결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가가 상승했다. 상승세는 다음 날까지 이어져 27일 오전 전날 대비 11%가 오른 3천4백75원에 거래됐다. 사후피임약을 판매하는 제약사의 주가도 크게 출렁였다. 그 밖에 아웃도어·방음재 회사와 여행사, 항공사 등이 수혜주로 묶이기도 했다.
3 불륜남&흥신소&변호사들의 표정 변화
가장 활짝 웃게 된 이들은 2008년 간통죄 합헌 판결 후 간통죄로 처벌을 받은 이들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위헌 판결로 자유의 몸이 된 5명을 포함해 2008년 10월 30일 이후 간통죄로 실형을 살았던 1백10명은 형사보상청구도 할 수 있다. 보상금은 구금된 해의 최저임금법에 따른 하루치 급여인 1일 4만원 안팎이다. 이들은 간통죄로 인한 ‘빨간 줄’ 역시 지울 수 있다. 위헌 결정으로 가장 먼저 재심을 청구한 사람은 40대 여성으로, 9차례 간통을 저질러 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대검찰청은 재심청구를 통해 무죄 선고를 받게 될 사람을 3천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흥신소 업계는 의외로 뚜렷한 표정 변화가 없다. 위헌 판결 직후, 경찰이 불륜 적발에서 손을 떼면서 흥신소가 특수를 누릴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한국탐정연맹본부 관계자는 “폐지는 예상했던 바다. 업계에 큰 변화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간혹 ‘반드시 감옥에 넣겠다’고 찾아오는 이들이 있어 애를 먹었다. 이제 간통죄 처벌이 어렵다는 점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 오히려 혼란을 줄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변호사들은 고액의 형사사건 수임료가 줄게 돼 다른 수익 창구를 모색 중이다. 간통죄가 있을 땐 고액의 형사 합의금 일부분을 수임료로 챙길 수 있었는데 이제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서초동의 한 이혼 전문 변호사는 “일부 신참 변호사들은 수임료 50만~1백만원을 받고 재심 청구에 매달리고 있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변호사들은 온라인 카페까지 개설해 수임료를 공개적으로 제시해두고 의뢰인을 모집하고 있다.
- 한국여성변호사협회 이명숙 회장 Q&A
Q 여성들의 피해가 증가할 거라는 전망이 있다.
간통죄가 있었을 당시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실질적으로 더 보호를 받은 게 없다. 간통할 확률이 높은 남편이 심리적으로 조금 더 부담을 느꼈을 수는 있지만, 그 외에는 여성을 얼마나 보호해줬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여성이 상대적으로 지위가 취약하고 이혼의 부정적 결과에 더 많이 노출돼 있기 때문에 남성에 비해 간통한 배우자를 고소하고 이혼을 선택하기가 어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뿐만 아니라 이혼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사회적 낙인이 더 크다. 간통죄 폐지가 곧바로 여성들의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Q 이제 형사 합의를 볼 수 없어 피해자가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적어진 것 아닌가.
간통죄로 형사고소를 한 뒤 위자료나 손해배상의 협상 카드로 활용하고 소를 취하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건마다 다르겠지만 불륜을 저지른 남성은 3천만~4천만원 정도, 내연녀는 1천만~2천만원 정도의 위자료를 내야 했다. 형사처분이 사라진 만큼 위자료나 손해배상액을 더 올리는 등 보완책이 시급하다. 현재는 교통사고를 비롯한 다른 손해배상 위자료보다도 액수가 적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라고 해서 통상적인 위자료 액수를 높게 책정하고 있다. 이번 판결에서도 헌법재판소가 ‘간통은 도덕의 문제’라고 판단한 만큼 앞으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나 위자료가 대폭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Q 남편의 외도를 알았을 때 똑똑한 대처법은?
참고 살거나 이혼하거나 둘 중 하나다. 이혼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손해배상청구를 해야 한다. 외도 사실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는 것은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간통죄에 대한 증거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현장 급습’이 주효했으나 손해배상청구를 위한 증거는 조금 더 폭이 넓다. 배우자의 통화 기록, 카드 내역서, 출입국 내역 등이 이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