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는 사회, 대한민국
신년 초부터 ‘어린이집 폭행 사건’이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네 살배기 아이의 머리를 아이가 멀찌감치 나가떨어질 정도로 세게 가격한 사건인데, 아이를 때린 이유는 단지 ‘급식을 먹고 김치를 남겼기 때문’이었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수원에서는 운전 시비 끝에 차에서 내려 서 있던 상대 운전자를 차로 돌진해 들이받는 일이 발생했다.
게다가 차에서 내려 바닥에 쓰러진 사람을 발로 찰 것처럼 위협하고 자동차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며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이 밖에도 층간소음으로 다툼을 벌이다 윗집에 사는 이웃을 살해한 사건,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상대 운전자를 캠핑용 손도끼로 위협하거나 유리병을 투척한 사건, 화가 나서 골목길을 지나가는 여자를 칼로 잔인하게 죽인 사건 등 한순간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타인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일종의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사회적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애꿎은 화풀이 아닌 제대로 화를 풀어야 할 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발표에 따르면 ‘분노조절장애’를 겪고 있는 환자 수가 2009년에는 3,720명이었는데 2013년에는 4,934명으로 증가해 4년 사이 32%나 늘었다고 한다. 지난해 경찰 조사에서도 전국의 폭력범 366,000명 중 152,000명(약 42%)이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해 저지른 ‘우발적’ 범죄자였던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 같은 분노조절장애는 특정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연령과 계층에 걸쳐 증가하고 있다.
사람이 가장 힘들어하는 감정은 바로 ‘화’다. 앞서 언급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일상 속에서 화가 얼마나 다루기 어려운 감정인지 경험한다. 사람들 간의 관계 속에서 화를 쏟아내거나 반대로 화를 너무 참아서 마음이 힘든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냥 가슴속에 쌓아둔 화는 어떤 일을 계기로 솟구쳐 올라 본인은 물론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만들기도 한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지 말고 ‘종로에서 뺨 맞고 종로에서 화를 푸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 지금껏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을, 당신이 화를 내는 이유와 성격 및 기질에 따른 ‘유형별 화풀이 방법’에 대해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들의 명쾌한 솔루션을 제안한다.
당신이 진짜 화내는 이유
인간은 수많은 감정을 갖고 살아간다. 그런데 유독 사람들은 ‘화’라는 감정을 잘 다루지 못한다. 엉뚱한 곳에 화를 내고 상처를 주는 말을 하거나 사람을 때리는 등 공격적인 화풀이를 하는가 하면, 반대로 타인에게 내야 할 분노를 자신에게 돌리거나 아예 대화를 하지 않는 식으로 수동적으로 표출하기도 한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으며 부정적인 방법으로 화를 표출하고 있다. 그렇다면 화는 도대체 언제 어떻게 내야 하는 건가? 화라는 감정을 ‘제대로’ 알아보자.
화를 참는다 vs 화를 낸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화는 참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위계질서를 중시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전통문화 속에서 며느리는 남편이나 시집 식구들에게 화나는 것이 있어도 분노를 표현해서 불화를 일으키기보다 그냥 참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세계적인 미국정신의학회에서도 ‘화병(hwa-byung)’을 우리말 그대로 등재해 한국 문화에서 발생하는 특유의 정신의학적 증후군(화를 참아 고혈압이나 심혈관 질환으로 이어지는 증후군)으로 정의했다.
“개인 수준에서 스트레스와 분노를 지나치게 표출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여러 면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직장 상사의 불합리한 처우에 곧바로 화를 보이면 직장 생활이 힘들어질 것이고, 부부 사이에서 분노를 표현하면 행복한 가정생활을 유지하는 데 큰 위협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 보니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억지로 화를 참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분당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보라 교수는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따라 지나치게 억압된 화는 우울증 같은 정신적 고통을 심화시키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반대로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소리를 지르거나, 폭력을 쓰거나, 욕설을 퍼붓는 식으로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화는 괴로움, 심리적 고통 같은 감정입니다. 분노를 느끼고 그것을 화로 표출하면 힘이 나는 것 같고 잠시 동안 고통을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죠. 하지만 분노는 표현할수록 더욱 커집니다. 처음에는 소리를 지르던 수준에서 점차 물건을 던지고 사람을 때리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이후로는 스스로 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대목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수인 교수는 화는 반복해서 표현할수록 분노를 조절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약화돼 작은 자극에도 쉽게 화를 낸다고 한다. 즉, 화를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인 것이다. 화는 단순하게 ‘나쁘다’ ‘좋다’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 미묘한 감정이다. 따라서 무작정 화를 내거나 참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화는 ‘풀려야’ 사라진다. 다시 말해 화라는 감정을 ‘잘 내야’ 마음속에서 없앨 수 있다.
화는 나쁘기만 한 것일까?
화는 어떤 감정일까? 화를 참는 사람들은 대부분 화를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식하고 있다. 화는 인간에게 상처나 아픔, 고통 등의 해롭고 나쁜 결과만 가져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땅히 화를 내야 할 순간에도 주저하는 것이다. 하지만 화는 원래 생존 본능과 직결된 감정이다.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다고 느낄 때 발생한다. 김수인 교수는 “누군가 부당한 방식으로 나를 모욕하고 공격하는데 분노를 느끼지 않고 거기에 대응하지 않는다면 아마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생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화는 생존과 직결되는 감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어떤 식으로든 자기에 대한 위협이 가해졌을 때 방어를 하기 위해 화를 내는 것이다. 상대의 실수가 고의적이라는 생각이 들면 분노는 커지고, 반대로 실수가 정말 말 그대로 실수라고 생각되면 분노가 줄어드는 것은 이 생존 본능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타인이 나를 배려하지 않는다고 느꼈을 때도 화가 난다. 약속 시간에 늦으면서 전화도 받지 않는 친구,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도 엘리베이터 문을 닫은 이웃에게 화가 나지 않겠는가? 즉, 화가 났다는 것은 누군가가 내 욕구에 대해 거절을 하거나 무시를 했다는 뜻인데, 그 이유를 면밀히 분석해서 분노를 통해 자신의 욕구를 이룰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화를 내는 것은 자기 욕구와 관련해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신호다. 다시 말해, 적당한 때에 적당한 방법으로 화를 ‘잘 낸다’면 자신의 생존 본능이자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우선 뇌의 흥분을 가라앉혀라
화는 때론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때론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므로 양면성을 가진 화를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분노가 느껴지는 시스템을 이해한다면 좀 더 화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화는 어떻게 일어날까? 분노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 부위는 전두엽. 이성적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곳인데 분노가 자주 반복되면 조절 기능이 약화돼 충동 조절을 하지 못하게 된다. 뇌는 전두엽, 측두엽, 후두엽 등 다양한 부위로 이뤄지는데 화를 많이 내면 기억과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부위의 뇌세포가 깨지고 뇌가 위축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화가 나면 뇌신경이 흥분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흘러나와요. 심장이 더 빨리 뛰고 두근거리며 호흡이 가빠지죠. 그러나 평소에 화를 자주 내거나 ‘분노 중독’에 빠진 사람은 신경계통이 남들과 다르게 변해요 사소한 자극에도 교감신경계가 강한 흥분 반응을 일으키는 거죠. 정상적으로 분노를 느끼고 이를 정당한 방법으로 표현하려면 모든 뇌의 영역이 잘 작동돼야 합니다.”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우종민 교수는 화가 났을 때 즉각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뇌의 흥분 상태를 가라앉히는 방법을 찾을 것을 권한다. 당장 화가 치밀어 오르더라도 분노 호르몬은 15초 정도면 사라지기 때문에 이를 견딘 뒤에 화를 낸다면 좀 더 건설적으로 화를 풀 수 있다는 것. 눈을 감고 아무 생각을 하지 않거나, 산책을 하거나, 자리에 앉아 낙서를 하는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화를 잠재운 뒤 분노를 표출하면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분노 행동보다 감정에 집중
“사람들은 분노를 느꼈을 때 화가 난 감정이 아니라 그 화가 언어적·육체적으로 표출된 상태를 주목하죠. ‘감정’ 그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해 나오는 ‘행동’을 화로 인식하기 때문에 화 자체가 폭력으로 이어진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즉, ‘분노라고 하는 행동’이 위험을 초래하는 것을 보고 그 행동 이전의 ‘분노라고 하는 감정’도 부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김보라 교수는 분노라고 하는 감정과 분노가 표출되는 행동은 엄연히 다르다고 말한다. 앞서 말했듯이 화가 났을 때 잠시 자신의 방법으로 화를 가라앉힌 후 ‘내가 지금 화를 내는 게 상식적인가?’ ‘엉뚱한 사람에게 화를 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식으로 분노의 감정을 다스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따라서 ‘분노 감정’과 ‘분노 행동’을 분리시켜서 보면 화라는 감정도 ‘제대로’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개인마다 분노 조절 방법이 다르다
“개인이 에너지를 얻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타인이나 행동, 사물 같은 외부 세계에서 에너지를 끌어오는 외향성과 자신의 생각이나 정서, 인상 같은 내부 세계에서 에너지를 끌어오는 내향성이 있습니다. 또한 의사 결정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는 사고형과 감정형으로 나뉩니다. 사고형은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결정하는 유형이고, 감정형은 개인적이고 가치지향적인 방식으로 결정하는 유형입니다.” 김수인 교수는 화라는 감정이 이런 내·외부적 요소와 의사 결정에서 영향을 받는 만큼 자신이 영향을 받는 기준에 따라 유용한 분노 조절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다음 장부터는 당신이 에너지를 얻는 방식과 의사 결정 기준에 따라 화를 통제하고 다스리는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