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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진모영 감독 76년간의 사랑

76년간의 사랑. 도무지 팩트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노부부의 순수한 사랑을 진모영 감독은 다큐로 그려냈다. 관객들은 너무나도 이상적인 노부부의 사랑에 울었고, 현실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에 또 한 번 울었다.

On February 12, 2015


우리나라에서 다큐멘터리 영화가 이렇게 흥행에 성공한 적이 또 있을까?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누적 관객 수 5백만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1월 18일 기준). 다큐멘터리 영화로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둔 2008년 개봉작 <워낭소리>도 3백만을 넘기지 못한 것에 비하면 놀라운 성과다. 영화는 개봉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sbs 스페셜] [인간극장] 등에 출연했던 강계열 할머니와 조병만 할아버지의 일상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다. 고운 빛깔의 커플 한복을 맞춰 입은 89세 할머니와 98세 할아버지는 매일을 신혼처럼 알콩달콩 살아간다. 76년간 변함없이 사랑하는 노부부의 모습에서 우리는 현실에서 찾기 힘든 사랑의 원형을 발견하게 된다. 작품을 연출한 진모영 감독은 TV 프로그램에 나온 노부부의 모습을 보고 이분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최소 1년은 기록할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두 분이 살아온 세월이 워낙 길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그것을 표현하기 힘들다고 생각했거든요. 특히 계절감을 살려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런 마음으로 촬영을 시작했는데,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거예요. 주변에선 돌아가실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시작한 것인지에 대해 물어보시더라고요. 그건 전혀 예측하지 못했죠. 할 수도 없고요. 촬영을 시작할 때만 해도 할아버지는 워낙 건강하셨어요. 돌아가시기 1년 전까지도 평생을 내복 한 벌 입어본 적 없던 분이었으니까요.

촬영 시작 전에 가족들과 미팅할 때 그런 말이 나오기는 했었죠. ‘만약 촬영 도중에 돌아가시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이오. ‘그 부분에 대한 기록까지도 할 거다, 다만 그 결과물은 온전히 가족들의 것이다’라고 대답했어요. 제 관심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아름다운 사랑이었지 할아버지의 죽음이 아니었어요. 영화를 찍는 데 그렇게 중요한 고려 사항이 아니었던 거죠. 다큐멘터리 특성상 서사 구조가 극적이지 않더라도 노부부의 모습을 담는 것 자체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결말을 모른 채 시작한 촬영은 주인공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끝이 난다. 감독은 할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울부짖는 가족들의 모습도, 홀로 남겨진 할머니의 외로움도 영화 속에 세밀히 담아내지 않는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할아버지를 위해 부르는 할머니의 노래만이 극장 안을 가득 메울 뿐이다.

“영화 속에선 주로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위해 노래를 불러줘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오는 노래는 사실 촬영을 시작한 첫날 들은 거예요. 그날 할머니께서 노래를 부르시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나요. 할아버지가 ‘노래 한번 해보시라’고 권하자 할머니는 ‘예전에 해줬잖우’ 하시면서 부끄러운 듯 노래를 시작하셨죠. ‘사랑해, 사랑해, 당신만을 사랑합니다’라는 노랫말이었어요.

딱히 곡목이나 가사가 있는 노래가 아니에요. 그냥 할머니의 자작곡이죠. 할머니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단 한 번도 노래를 불러본 적이 없다고 하셨어요. 제가 그 노래를 영화의 마지막에 사용한 이유는 관객에게 감정을 추스를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어요. 그렇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야기는 묘소 앞에서 공식적인 이별을 하면서 끝이 나는 거죠.”

그래서일까?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본 관객 중에는 눈물을 멈추지 못한 채 영화관을 나오는 사람이 유난히 많다. 영화를 보는 대부분의 사람이 할아버지의 죽음을 예상했지만, 영원할 것만 같았던 사랑을 잃고 혼자 남겨진 할머니의 슬픔을 관객도 함께 느끼는 것이다.

“관객들이 울 땐 ‘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 때예요. 애견가라면 할아버지가 아끼던 강아지가 죽었을 때 우는 거고, 아이를 잃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할머니가 자신보다 일찍 보낸 아이들을 위해 내복을 사서 불태우는 장면에서 우는 거고, 불효자는 큰아들이 할아버지께 용서를 구하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려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사람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장면에서 펑펑 우는 거고요. 영화 내내 운 사람들은 그만큼 공감의 폭이 넓었던 거예요.”

보통의 다큐멘터리 영화에선 내레이터가 등장해 상황을 설명해준다. 영상만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것을 관객에게 친절하게 알려주기 위해서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알려주기 위해 칠판에 백번 쓴다고 해서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될까요? 그보다는 진정한 사랑을 직접 체험하는 편이 나을 거고, 그게 어렵다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는 편이 더 효과적일 거예요. 저는 다큐멘터리에서 해설자가 튀어나와 상황을 읊어주는 것이 불편했어요. 그래서 일부러 이번 영화에 내레이션을 배제하고 드라마의 형태를 띠도록 연출했죠. 화면에서 보여주지 못하는 정보를 말로 친절하게 알려줄 수도 있었겠지만, 압축되고 생략된 정보를 관객들 스스로가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랐어요. 그 의도가 잘 전달된 것 같아 기뻐요.”

진 감독이 영화 촬영 제안을 위해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뵀을 때였다. 말하자면 첫 번째 미팅 자리였다. 나가 보니 그 자리엔 노부부의 큰딸이 떡하니 앉아 있었다. 서울에서 온 남자 감독이 부모님을 찍고 싶다고 하니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 자리에 나온 것이었다. 미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면접 자리였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처음부터 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가족들은 좀 걱정을 했죠. 다음 날 연락을 받았는데 ‘부모님이 하시고 싶다는 걸 우리가 막을 이유는 없다. 촬영하셔도 될 것 같다. 기왕 찍기로 한 것 잘 부탁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카메라에 익숙한 분들이세요. 이전에도 TV 방송에 몇 번 출연하신 경험이 있으셔서 오히려 ‘카메라 렌즈를 쳐다보지 말아달라’고 부탁드릴 정도였죠.”

 



총 촬영 기간은 1년 3개월. 순수 촬영 일수로만 따지면 120일 정도다. 아무리 베테랑 연기자라 해도 카메라 앞에서는 긴장하게 마련이기 때문에 진 감독은 한 번 찍을 때 2~3일 정도 머물며 기록을 남겼다. 촬영이 없을 때는 한 번씩 전화를 걸어 ‘그곳에 눈은 많이 왔는지’ ‘집안에 기념일은 없는지’ ‘자녀들은 언제 오는지’ ‘노인 대학에서 놀러 가는 건 언제인지’ 등을 세심하게 챙겼다.

“다른 감독들은 촬영을 하면 할수록 쉬워진다고 하던데 전 그 반대였어요. 다큐멘터리를 위해서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데, 사람이라는 게 원래 같이 살면 정이 드는 법이잖아요. ‘감독’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게 참 힘들었어요. 식사하시다가도 촬영팀이 오는 소리가 들리면 활짝 웃으며 반갑게 맞아주시고, 촬영하는 저희를 보며 ‘여기 앉아 같이 밥 먹자’고 권하기도 하셨죠.”

진 감독은 영화가 개봉하기 전, 할머니와 그 가족분들을 모셔놓고 미리 영화를 보여드렸다. 일종의 ‘미니 제작 보고회’다. 사실 영화 속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두고 자식들끼리 다투는 장면까지 그대로 나온다. 어찌 보면 가족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잘 부탁한다’는 이야기까지 하셨는데, 가족들이 싸우는 장면을 그대로 넣은 걸 보면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걱정됐어요. 어쩌면 불편할 수도 있는 장면이니까요. 하지만 감독으로서는 리얼리티 요소를 극대화할 수 있는 장면이었기에 무척 애착이 가는 장면이기도 했어요. 영화는 영원한 사랑을 보여주면서 또 우리가 사는 현실의 이야기를 담아내야 했으니까요. 다행스럽게도 가족들께서 한 장면만이 아니라 영화의 큰 줄기를 봐주신 것 같아요. 영화를 다 보시고는 ‘그 장면이 좀 그렇긴 한데, 신경 쓰지 않을게요. 대한민국 모든 집이 다 그런 것 아니겠어요? 고생하셨습니다. 부모님의 마음이 잘 담겨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영화의 주인공인 할머니는 이전까지 ‘영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네 번이나 보셨다고 했다. 덕분에 할머니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화관도 가봤다.

“우리 영화가 ‘DMZ 영화제’에서 처음 개봉했는데, 그곳에 할머니가 오셨어요. 그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긴장감 때문인지 감정 표현을 제대로 못 하셨던 것 같아요. 두 번째는 노인대학 친구분들과 함께 보러 오셨거든요. 그땐 너무 많이 우셔서 저희가 다 걱정할 정도였죠. 할머니는요, 딱 그거예요. 첫째로는 1년 넘게 함께했던 자식 같고, 손주 같은 저희의 영화가 잘됐다고 하니 기쁘신 거고요. 두 번째는 할아버지 생전 모습이 화면에 너무나 생생하게 나타나니 그게 너무 좋으신 거예요.”

영화가 흥행하자 할머니에 대한 언론의 관심도 컸다. 여기저기서 할머니께 인터뷰 의뢰가 들어왔고, 영화를 홍보하기 위한 각종 시사회 자리에 할머니가 오시는지를 묻는 곳도 많았다. 하지만 진 감독은 ‘할머니를 절대 영화 홍보에 이용하고 싶지 않다’며 한사코 이를 거절했다. 현재 할머니는 자식들의 집에서 잘 지내고 계시다고 했다.

“원래 영화의 주 타깃은 40~50대였어요. 부부 이야기이고 부모님 세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개봉하고 나니 20대 관객들의 반응까지 뜨거웠다고 해요. 그 이유가 뭐겠어요? 결국 모든 사람이 사랑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간절하게 사랑의 원형을 찾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각박한 세상이지만 많은 분들이 영화를 통해 위로를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할머니는 자식 같은 저희의 영화가 잘됐다고 하니 기쁘신 거고요.
할아버지 생전 모습이 화면에 너무나 생생하게 나타나니
그게 너무 좋으신 거예요

CREDIT INFO
취재
정희순
사진
박원민
장소협찬
북카페 리벤(070-4009-1914)
2015년 02월호
2015년 02월호
취재
정희순
사진
박원민
장소협찬
북카페 리벤(070-4009-1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