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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언니, 오빠들

90년대는 바야흐로 ‘대중음악의 르네상스 시대’로 통한다. 가슴 떨리게 벅찼던 그 시절. 화려한 군무에 헐렁한 힙합 바지까지 모든 것을 닮고 싶었던 영원한 우리의 언니, 오빠들과 재회했다.

On February 09, 2015




김건모


어떤 의미로든 김건모가 90년대 가장 성공적인 뮤지션 중 한 명이었다는 점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작은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로 꽃미남 외모가 아닌 그가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가 되기까지는 타고난 재능과 함께 끝없는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만의 독특한 음색은 그 어떤 가수와도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독보적인 무기였다. ‘서울의 달’ ‘잘못된 만남’ ‘핑계’ ‘첫인상’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등 앨범마다 히트곡이 존재했다. “김건모의 히트곡만 모아 불러도 단독 콘서트 2시간이 모자란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이 간다. 그의 노래가 이렇게 사랑받은 이유는 한국인의 정서와 감정을 가장 잘 전달하는 독보적인 목소리의 힘과 소울에 있다. 재기발랄하고 흥겨운 보컬에 스며든 한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리고 그가 기록한 한국 기네스 공인 2백80만 장이라는 최고 앨범 판매량은 많은 것을 설명한다.

 

 

  

엄정화


엄정화의 유혹은 대단했다. 까만 눈동자에 흑단발을 한 그녀가 무대 위에서 부채를 살랑이면 뭇 남성들의 마음에도 바람이 일렁였다. 첫 정규 앨범의 타이틀곡이었던 ‘눈동자’는 독특한 안무와 섹시한 이미지로 성공을 거뒀다. 그 밖에도 ‘배반의 장미’ ‘포이즌’ ‘몰라’ ‘페스티벌’ 등 다양한 장르 모두 어렵지 않게 클리어하며 엄정화는 당대 최고의 프로듀서들이 탐내는 히든카드가 됐다. 특히 박진영과 합작한 ‘초대’는 당시엔 보기 힘든 높은 수위의 섹슈얼한 뮤직비디오와 콘셉트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상반신 노출 마사지 장면 등 전체적으로 에로틱한 오라가 강했다. 성 상품화와 선정적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초대’ 역시 엄청난 히트를 하며 가요계에서 엄정화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해주었다. 데뷔 이후 꾸준히 발표한 앨범을 통해 당시 한국을 대표하는 섹시 스타로 자리 잡았고, 90년대 후반 가수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배우 활동 또한 병행하며 커리어를 탄탄히 쌓은 그녀는 두 분야 모두에서 성공한 연예계의 대표 사례이자 후배들의 롤 모델로 손꼽히고 있다.

 

 

 

룰라


학창 시절, 학교 수련회 장기자랑에서 엉덩이 한번 안 튕긴 사람이 있을까? “천사를 찾아봐~ 사바사바” 하고 훅을 던지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옆으로 돌아서서 엉덩이를 찰싹찰싹 치던 시절이 있었다. 룰라는 한국 대중음악사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팀이다. 그들이 데뷔한 1994년은 레게풍 뮤직이 붐을 타기 시작한 시기였다. 1집부터 ‘대박’이었다. 당시 라이벌이던 투투와 가요계 인기 순위를 엎치락뒤치락하며 <가요톱10> 5주 연속 1위로 골든컵을 수상했다. 어딜 가든 ‘날개 잃은 천사’가 흘러나왔고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룰라의 노래와 춤을 따라 했다. 바야흐로 가요계의 황금기에 그들은 엄청난 양의 히트곡을 양산하며 승승장구했다. 물론 그들에게도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수에겐 치명적인 표절 시비의 직격탄을 맞은 이상민의 자살 기도와 멤버 신정환의 탈퇴(군 입대), 그리고 채리나의 영입 이후 해체와 재결성을 반복하는 등 음악 외적으로도 화제가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2000년대에 들어서까지 제2의 전성기, 제3의 전성기를 맞이하며 끝까지 ‘룰라’ 네이밍의 힘을 보여줬다.

 

 

 

DJ DOC


‘악동’이란 수식을 이렇게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팀이 없었다. DJ DOC가 휘말린 사건 사고는 끊이지 않았고 경계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밉지 않은 악동이었다. 1994년 ‘수퍼맨의 비애’로 데뷔, 이후 ‘머피의 법칙’ ‘런 투유’ ‘미녀와 야수’ ‘여름 이야기’ 등 꾸준하게 히트곡을 선보이며 국민적인 그룹으로 거듭났다. 그중에서도 1997년 발표한 ‘DOC와 춤을’이란 노래는 친근한 가사와 멜로디가 특징으로 이른바 ‘관광버스 춤’이라고 알려진 쉬운 안무가 대히트를 쳤다. 그 시대와 사회의 정형적인 것을 비판하는 중의적인 내용을 담았는데, 이어 발표하는 곡에서도 거침없는 DJ DOC의 정신으로 그들만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활동하는 내내 그들의 메인 스피릿이라 할 수 있는 ‘힙합’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아울러 대중이 좋아하는 그들의 댄스튠의 합일점을 최적으로 맞춰나갔다. 잊을 만하면 사고를 치며 자신들의 이미지를 확고히 다졌던 그들이지만, 고유한 색깔과 음악성은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음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여름이 왔다는 신호는 여러 가지가 있다. 9시 뉴스에서 해변 위를 헬리캠이 빙빙 맴돌며 사람들로 꽉 찬 해수욕장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민소매 슬리브리스에 한껏 짧아진 길이의 핫팬츠 혹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들의 모습이 심심찮게 보인다거나. 그리고 한 가지 더. 쿨의 노래가 들린다는 것! 쿨은 그룹명처럼 히트 친 인기곡 대부분이 시원한 댄스곡인, 대한민국 대표 ‘여름 가요’ 그룹으로 꼽힌다. 이재훈의 스위트하면서 탄탄한 보컬과 홍일점 유리와 감초 래퍼 김성수의 3인조 멤버가 확립된 1996년 3집 <운명>부터 2003년 <결혼을 할 거라면>에 이르기까지, 혼성 그룹으로는 드물게 10년 가까이 큰 인기를 누렸다. 특히 재미있는 노래 가사와 친근한 이미지가 강하게 어필된 팀이었다. 또한 대체로 곡이 복잡하지 않아 일반인들도 부르기 쉬워 노래방 수록곡이 가장 많은 그룹으로 알려졌다. 노래방에서 ‘운명’ ‘해변의 여인’ ‘애상’을 한 번도 안 불러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부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김현정


‘롱다리 미녀 가수’ 김현정은 그야말로 90년대 가요계의 슈퍼우먼이었다. 시원시원한 서구형 이목구비와 몸매, 거기다 강렬한 보컬과 안정된 라이브 실력까지 보기 드물게 ‘모든 것’을 갖춘 여자 가수였다. 1집 타이틀곡 ‘그녀와의 이별’로 순식간에 가요계 정상 자리에 오른 그녀는 그 후 매년 한 장씩 음반을 내며 수십만 장의 매출 스코어를 기록했다. 내놓은 앨범은 줄줄이 히트를 쳤다. TV는 물론 길거리, 노점상, 나이트클럽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노래가 흘러나오지 않은 곳이 없었을 정도. 그녀의 ‘다 돌려놔’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머리 위로 원을 그리며 한 바퀴 돌게 만드는 대유행어가 됐다. ‘혼자 한 사랑’ ‘되돌아온 이별’ ‘자유선언’ ‘멍’ ‘너 정말’에 이르기까지 한 번의 실패도 없이 히트곡을 방출하며 동시대 가장 파워풀한 독보적인 솔로 여가수로 인정받았다. 그녀는 작사, 작곡, 프로듀싱뿐만 아니라 라디오 DJ와 모델, 연기자 등 활동 범위를 넓혀가며 만능 엔터테이너로서 자리를 굳혀나갔다.

 

 




R.ef

90년대 하면 빠질 수 없는 그룹이 바로 R.ef다. 보컬 이성욱의 잘생긴 외모는 소녀들이 ‘오빠부대’를 만들게 했고, 성대현과 박철우 또한 각자의 개성을 어필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레이브 장르를 기반으로 한 데뷔 앨범에서 3곡이 연달아 히트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고요 속의 외침’의 후속곡인 ‘이별공식’은 그해 여름 바닷가 혹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가장 많이 플레이된 곡 중 하나다. 이어지는 ‘상심’ 또한 인기가 대단했다. 하지만 이들의 전성기는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1997년과 그 이듬해 발매한 앨범에서 힙합 장르로 전향하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는 하락세로 이어졌고, 별 다른 반향 없이 조용히 팀의 해체를 맞이하게 됐다. 혜성처럼 등장해 짧은 만큼 유독 강하게 반짝였던 별이었다.

 

 

 

유승준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빼어난 외모에 예능감까지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슈퍼스타가 있었으니 90년대의 유승준이다. 그야말로 최고의 인기를 누린 히어로로 ‘가위’ ‘나나나’ ‘열정’ ‘찾길 바래’ 등 히트곡의 행진이 이어졌다. 무대 위에서뿐 아니라 <아름다운 청년 유승준> <출발 드림팀>과 같은 프로에 출연할 정도로 건실하고 바른 청년 이미지로 국민 모두에게 사랑을 받은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결말은 해피하지 못했다. 병역 기피 문제로 한순간에 추락한 별이 된 것이다. 괘씸죄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법무부의 영구입국금지 대상자 명단에 오른 그는 현재까지도 국내 활동이 어렵다. ‘원조 짐승돌‘ 유승준의 구원은 여전히 녹록지 않아 보인다.

 

 

  

영턱스 클럽


투투 출신의 임성은을 주축으로 송진아, 한현남, 지준구, 최승민이 합류해 ‘장난꾸러기’라는 뜻을 가진 영턱스클럽이 결성됐다. 이들은 1996년 1집 타이틀곡 ‘정’으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각 채널의 가요 프로그램 1위를 석권하게 된다. 이어지는 후속곡 ‘못난이 콤플렉스’와 ‘훔쳐보기’ ‘타인’이 줄줄이 히트를 치면서 2000년까지 발표한 5장의 앨범은 별 무리 없이 가요 순위 톱을 지켰다. 트로트 리듬이 가미된 친숙한 멜로디의 음악으로 10대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팬을 확보하며 승승장구했지만 팀 내 가장 인기가 많았던 메인 보컬 임성은의 탈퇴로 시작된 잦은 멤버 교체 등의 이유로 인기 가도는 점차 기울기 시작했다.

 

 

 

스페이스 A  

90년대 대중가요계는 특히 혼성 그룹이 강세를 보였다. 댄스와 퍼포먼스로 무대를 얼마나 열정적으로 장악하느냐가 그룹 간에 경쟁적으로 불붙기도 했다. 쿨과 룰라, 영턱스클럽 등 쟁쟁한 혼성 그룹의 경쟁 구도 사이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준 팀이 바로 1998년 데뷔한 스페이스A다. 당시 테크노 장르 물결에 힘입어 파격적이고 신선한 시도를 꾸준히 선보였다. 특히 여성 보컬들의 섹슈얼한 콘셉트와 시원시원한 무대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들의 대표 히트곡인 ‘주홍글씨’ ‘성숙’ ‘섹시한 남자’ ‘배신의 계절’ 등은 왕년에 노래방에서 한 가닥했던 이들에겐 빠뜨릴 수 없는 애창 메들리일 것이다.

 

 

 


90년대 추억의 가요 프로그램
KBS 1 TV <가요톱 10>

1981년 첫 방송되어 90년대까지 많은 인기를 얻은 가요 프로그램이다. 이 시기에는 요즘처럼 인터넷이나 케이블·위성 방송 등 지상파 외의 매체가 크게 발달되지 않은 때라 지상파 음악 순위 방송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위치에 있었다. 특히 공영방송 KBS에서 진행하는 음악 프로일 뿐만 아니라 음악 프로 최초로 순위제가 시작되었는데, 당시의 순위 집계 방식은 상당히 공정했고 구체적이었기 때문에 대중의 신뢰도가 무척 높았다. 그래서 <가요톱10>에서 매긴 순위는 곧 그 시기의 가요 동향을 파악하는 척도가 되었다.

90년대 초반 가요계는 발라드가 대세였다. 신승훈, 이현우와 같은 발라드 가수들이 순위 차트 1위를 독식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 현진영과 같은 댄스 가수들이 등장했다.

1995년 가요계 상황은 정반대로 돌아섰다. 룰라, 김건모, 박미경, DJ DOC 등 댄스 가수들의 곡들이 차트 정상을 차지하기 시작한 것. 또한 솔로 가수들의 활동이 강세를 보이던 가요계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혜성같이 등장하며 이후 그룹활동을 하는 여타 가수들 또한 인기 순위가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가요톱텐 순위


1995년 4월 넷째 주
1. 룰라-날개 잃은 천사
2. 신승훈-오랜 이별 뒤에
3. 녹색지대-사랑을 할 거야
4. 김원준-세상은 나에게
5. 최용준-갈채
6. 장혜진-내게로
7. 성진우-포기하지 마
8. 박지원-느낌만으로
9. 신효범-너의 곁에 있고 싶어
10. 서지원- 또 다른 시작

1996년 6월 둘째 주
1. 김건모-스피드
2. 신승훈-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
3. R.ef-찬란한 사랑
4. 윤종신-환생
5. 솔리드-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6. 이예린-늘 지금처럼
7. 녹색지대-끝없는 사랑
8. 김부용-풍요 속 빈곤
9. 패닉-왼손잡이
10. 최재훈- 잊을 수 없는 너

1997년 8월 넷째 주
1. 유승준-가위
2. 쿨-해변의 여인
3. DJ DOC-DOC와 춤을
4. HOT-행복
5. 임창정-Summer Dream
6. 젝스키스-폼생폼사
7. UP-바다
8. 사준-Memories
9. 영턱스클럽-타인
10. 김경호-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CREDIT INFO
취재
박지현
사진
서울문화사DB
일러스트
이혜헌
2015년 02월호
2015년 02월호
취재
박지현
사진
서울문화사DB
일러스트
이혜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