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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 아티스트 빠키

Miss Simple Vakki

작품이 휘황찬란하다. 때로는 선정적으로 보인다. 실제 성격은 배려심 넘치고 유쾌하다. 팜 파탈 같은 아티스트의 바람은 많은 사람이 자신으로부터 좋은 에너지를 받는 것, 그것 하나다.

On November 21, 2014


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는 많지만 빠키처럼 다방면에서 활발히 작업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녀는 디자인, 포토그래피, 인터랙션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래픽 디자인을 기반으로 한 설치, 공간, 영상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한다. 국내에서는 단편영화 를 연출했고 태국과 프랑스 파리에서는 패션쇼 영상감독을 했다. 최근에는 독일 쿤스트할레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란 주제의 전시 (2013~14)를 열기도 했다.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빠키(예명)의 작업실 앞. 그녀가 나왔다. 그녀는 화려한 색감과 유쾌한 그래픽 패턴으로 공간과 영상을 조형하는 위트 있는 작품을 만든다. 원색적이고 과감한 작품 세계를 펼치는 작가다 보니 매주 금요일 밤 파티를 즐기는 ‘파티녀’를 떠올렸으나 그녀는 흰색 블라우스에 블루 계열의 A라인 롱스커트를 입은 단아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미디어에 노출된 모습이랑 많이 다르신데요?” “여성지에 맞춰 코디해봤는데 이상한가요?”

그녀 뒤로 보이는 작업실 벽면의 요란한 장식, 웬만한 키덜트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장난감 가득한 선반, 작가 특유의 패턴이 담긴 소파와 쿠션을 보고 나니 마음이 놓였다. “제가 아직 아침밥을 먹지 못해서 그런데 우리 뭐 좀 시킬까요?” 낮 12시가 다 됐는데 아침밥? 확실히 독특한 아티스트였다. 제대로 찾은 듯했다. 피자 배달을 기다리는 동안 작업실에 진열된 작품을 구경했다. 어릴 때 많이 봤던 ‘매직아이’가 생각날 만큼 복잡한 패턴. 그러나 그 안에 규칙이 보이기 시작하고 묘하게 자꾸 빠져들게 된다.

“작품의 영감은 어디서 얻나요?” “1980년대 만화나 영화, 광고 같은 영상요. 지금 보면 색이 많고 촌스럽다 느끼지만 그 속에 재밌고 다듬어지지 않은 신선한 발상이 많았거든요.” 어렸을 때 미술 시간만 되면 멋지게 보이는 친구가 늘 부러웠다. “그림 그리기 상은 많이 탔는데 미술을 미래의 진로로 생각하진 않았어요. 계획적으로 사는 애가 아니었거든요.” 광고 포스터, 나무 퍼즐, 직접 디자인한 옷, 유명 패션 매거진

<나일론>과 <보그>, 기아자동차, 나이키와 컬래버레이션한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는데 위화감이 없었다. 각기 다 다른 영역인데도 이상하리만치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어떤 예술 활동을 하든지 내 고유의 색깔이 있어야 하죠. 다른 사람 또는 어떤 브랜드와 협업할 때도 ‘자기화’할 줄 알아야 추구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겁니다.” 딩동. “피자 배달 왔습니다.” 그녀는 예쁜 접시와 컵을 사람 수대로 세팅하느라 분주했다. “식기 전에 얼른 드세요.” 인터뷰는 먹고 시작하는 걸로.

거실 선반에는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모은 피규어와 크래프트, 장난감 등이 진열되어 있는데. 다른 작업실에 진열하느라 분산된 편이라고. 웬만한 키덜트는 그녀 앞에서 명함도 못 내밀 것 같다.


대기업 출신 아티스트

비주얼 아티스트란 말은 몇 번을 들어도 쉽게 이해되지 않네요. 저도 규정해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픽 디자인을 베이스로 영상, 설치, 공간 등 여러 매체를 이용해 시각적인 탐구를 하는 분야라고 보면 됩니다. 더 쉽게 얘기하자면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생각을 다양한 수단으로 표현하는 작업이에요. 저는 주로 저의 1인 스튜디오인 ‘빠빠빠 탐구소’에서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죠.

빠빠빠 뭐라고요? 빠빠빠 탐구소요. 아이들이 옹알이할 때 ‘빠빠빠’ 같은 소리를 내잖아요. 별말이 아닌 것 같아도 그 속에는 본능적인 욕구와 원초적인 감정이 담겨 있어요. 하지만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이런 언어를 잊고 제한적인 사고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현재 사회에서 관념화되거나 정형화된 것을 배제하고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원초적인 감정에 충실하자는 생각으로 만들게 됐어요.

그래서 직접 만든 프로젝트 앞에 ‘빠’가 많이 붙는 거군요. ‘빠’는 그냥 저를 대표하는 단어 같은 거죠. ‘빠빠빵 프로젝트’는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생각했던 프로젝트인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돈을 얼마나 벌어야 하나?’란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 살아보니 거창한 일을 해서 백만장자가 될 거 아니면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더라고요. 굳이 통장 잔고 몇 푼에 스트레스 받지 말고 ‘정 힘들면 빵을 구워서라도 팔면 되지 않을까’처럼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자는 취지의 프로젝트였습니다.

돈을 벌다 보면 욕심이 생기기 마련인데…. 어릴 때 어떤 아이였는지 궁금하네요. 독특했어요. 비디오를 보는 것을 무척 좋아했죠. 보고 나면 또 따라 해야 해서 화면 속 영웅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 저도 아파트 2층이라도 올라가서 뛰어내려야 직성이 풀렸어요. 왜 흔히들 ‘우리 애는 착한데 친구를 잘못 만나서’의 ‘그 친구’가 바로 접니다.(웃음) 그 나이 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총동원해서 혼자 인형도 만들고. 엄마가 미술학원 다니라고 돈 주면 그 돈으로 분장학원을 다닌 적도 있고. 얘기하다 보니 정말 천방지축이었네요.

‘디자인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었는지? 고등학생 때는 비디오와 함께 음악에 심취했죠. 당시 홍익대학교 앞에 ‘백스테이지’란 음악 카페가 있었는데 제가 좋아하는 얼터너티브 록이나 브릿팝, 일렉트로닉 음악과 영상을 원 없이 틀어주는 ‘천국’ 같은 곳이었죠. 집에 돌아오면 전축에서 나오는 음악을 녹음하고 MTV의 뮤직비디오를 녹화해 편집했었는데 아무래도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때 주변에서들 “디자인 공부를 하면 쉽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해 시각디자인학과에 입학하게 됐죠.

그 후에는요? 캠코더를 들고 다니며 촬영도 하고 용산 전자상가에서 편집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영상 작업을 익혀나갔지만 부족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다양한 채널과 미디어(표현 수단)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캐나다 토론토로 사진과 영상을 공부하러 간 적도 있었죠. 사정이 생겨 1년여 만에 접긴 했지만…. 한국에 돌아와서도 취업하는 것은 관심 없었고 또 다른 표현 수단을 배우고 싶어 광고 프로덕션에 들어갔어요. 무대를 설치하는 아트디렉팅을 배우고 싶었거든요. 흔히들 바닥부터 시작했다고 하는데 입사하고 얼마 동안 진짜 바닥만 신나게 닦았죠.(웃음)


그렇게 다 준비하고 나서는 의외로 대기업에서 일했어요. 프로덕션을 그만두고서 LG전자에서 UX(User Experience) 디자이너이자 연구원으로 일했죠. 주로 미디어 인터페이스 작업을 담당했는데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이 전자제품에 저장된 프로그램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하는 일이었어요. 당시는 제가 어떤 예술 활동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을 때였는데 새로운 미디어를 바탕으로 디자인하는 것이 또 다른 신세계였어요. 그래도 일과 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개인 전시회를 열었죠. 시간 활용을 잘하면서 제 나름대로 즐겁게 살았던 것 같아요.

온전히 ‘아티스트’만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면? 매일 똑같이, 하던 일만 하며 살다 인생의 최후를 맞이할까 봐 두려웠어요. 꾸준히 표현 수단을 배우며 시간이 흐르고 나니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명확해지더라고요. 제 경우는 퇴사를 결정한 게 꼭 뭐가 마음에 안 들었다기보다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뀌듯 자연스러운 결정이었어요.

특별히 심혈을 기울인 프로젝트를 소개한다면? ‘빠빠빠 비디오 댄스’는 현장성과 즉흥성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는 ‘현장 프로젝트’예요. 영상의 전체적인 콘셉트는 있지만 과도하게 연출하는 것은 피하고 현장에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해서 작업을 이어나가죠. 그룹 러브엑스스테레오와 함께 ‘Fly Over’란 곡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했어요. 세운상가 곳곳을 돌며 안 갖다 쓴 물건이 없을 만큼 요란하게 찍어 즐거웠던 게 기억에 남아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전시돼 아이들에게 호응이 좋은 작품도 있더라고요. 제가 기획한 ‘비주얼 마사지’의 한 작품이었죠. 평면적인 작업에 움직임, 즉 키네틱(kinetic) 요소를 주어 공간감과 입체감을 살리고 사람들과 인터랙션이 되는 과정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DDP에 전시된 ‘Big Wheel 나는 자동차’는 당기기, 돌리기, 밀기 등 5가지 방법의 동력장치를 설치해 관객들이 만들어낸 에너지가 기계적 장치로 전환되어 설치물의 요소요소를 움직이게 하는 구성으로 설계됐어요. 특별히 어린아이들을 위한 작품이 아니었는데 (아이들이) 좋아해서 신기했어요. 작품을 전시하고서 종종 보러 간 적이 있는데 아이들이 열심히 움직일수록 차는 더 잘 움직이는 모습이 꼭 지금 현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 강자와 약자를 대변하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가수 이승환씨와도 협업을 하셨더라고요. <19금 콘서트-Friday the 13th> 공연 포스터와 영상물을 제작했고 공연장 입구의 조형물 전시를 맡았죠. 이승환씨는 하고자 하는 비전이 뚜렷한 기획자세요. 물론 워낙 공연에 내공이 있는 분이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모든 것을 직접 기획하시는 것 같아 함께 작업할 때 ‘멋진 분이구나’ 느꼈어요. 이승환씨에게 들은 웃긴 에피소드인데, 작년 콘서트 때 한 관객이 공연 중간에 나가면서 너무 야해서 못 보겠다며 돈을 돌려달라고 했대요. 제가 너무 실험적이었나 봐요. 올해 할 때는 반응이 정말 좋은 편이었네요.


빵을 만들고 비디오를 제작하고 그것도 모자라 콘서트 기획도 하고. 못하는 게 뭐예요? 그렇지 않아요. 못하는 거 많습니다.(웃음) 사실 직업이 뭐냐고 물으니 ‘비주얼 아티스트’라고 대답할 뿐이지 스스로는 ‘내가 무엇이다’ 특별히 규정짓고 싶지 않아요.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지 어떤 수단으로 하는지가 중요하진 않죠. 각각의 작품은 모두 제 색깔이 묻어 있기 때문에 ‘제 것’인 거예요. 디자이너냐 감독이냐 혹은 기획자냐는 아무 상관 없어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던데요? 회사에 다닐 때부터 해외를 다니며 ‘VJ’(비디오 영상 클립을 제작해 실시간 믹싱 하는 일을 능숙히 다루는 것은 물론 해당 영상을 일반인들에게 소개하는 일을 하는 사람)를 했어요. 태국에서 열린 패션 위크에 참여한 적도 있고, 파리에서 개최했던 패션쇼에서 영상감독을 한 적도 있죠. 그때마다 몇몇 분이 눈여겨봤다며 초청을 했어요. 운이 좋았죠 뭐. 퇴직하고서는 플래툰 쿤스트할레로부터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일시적으로 작업실을 협찬받고 예술 활동을 펼칠 수 있는 ‘레지던시’를 제의받아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다 독일 쿤스트할레와 연이 닿아 베를린에서 전시를 한 적도 있네요. 절 좋아하는 별다른 이유는 잘 모르겠고 그냥 제 작품이 실험적이고 특이하다고들 하더라고요.

어떨 때 엔도르핀이 도나요? 일할 때 집중하는 그 순간도 좋고, ‘내가 조금씩 발전하고 있구나’ 느낄 때도 좋아요. 평소 하고 싶었던 기획이나 구상이 있잖아요. 매번 머릿속에 맴돌다가 한 1년쯤 지나서 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보면 ‘어? 이거 내가 옛날에 하고 싶었던 건데’란 생각이 들면서 ‘허투루 살고 있진 않구나’ 하며 만족감을 느끼죠.

사람들이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줬으면 좋겠는지? 일할 때 늘 좋은 에너지를 갖고 작업해요. 사람들이 작품을 보면서 저의 좋은 에너지를 함께 느끼고 즐거워하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또 그분들을 보면서 에너지를 받고 하면서 서로 좋은 감정을 교류할 수 있길 바라요.

옛 광고를 주제로 손수 만든 작품들. 사람들에게 1980년대 텔레비전 광고나 지면 광고는 얼핏 촌스럽게 보이지만 그녀에게는 작품의 영감을 제공하는 소중한 자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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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지금보다 더 나은 자아를 찾으려 노력 중이나 찾지 못한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힘든 일이 있었다 해도 바로 잊어버리는 편이지 일부러 떠올리거나 곱씹어보는 스타일도 아니다. 사람은 모두 큰 착각 속에 빠져 산다는 게 그녀의 생각. 개나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람의 모습과 사람들 스스로가 생각하는 사람의 ‘그것’은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좋은 기억은 좋은 추억으로 남기고, 나쁜 기억은 오히려 좋았다는 긍정적인 착각 속에 빠져 살자는 것이 그녀가 지향하는 삶이자 목표다.

그녀는 먼 미래를 위해 계획을 세우는 것을 꺼려한다. 미리 세운 이정표에 맞춰 살려고 아등바등하는 것도 싫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때 찾아오는 실망이 좌절감을 맛보게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만 갖고 있을 뿐 구체적인 것은 아예 신경 쓰지 않는다. 지금도 올 연말까지만 일정을 짜서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현재는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환영의 나무> <환영의 언덕>을 전시 중이다. 그녀의 작품은 화려한 색감과 다채로운 패턴 때문인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연말이 되기 전에 오픈을 목표로 또 다른 전시를 준비 중인데, 임의의 공간이나 시점에서 사건이 일어남에 따라 파생되는 모습이나 패턴화되는 것들이 각각의 개개인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표현하는 작업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각 구성원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에 의해 서로에게 상호작용한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낼 계획이다.

CREDIT INFO
취재
이충섭
사진
김승환
2014년 11월호
2014년 11월호
취재
이충섭
사진
김승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