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꽃보다 할배>(이하 <꽃할배>)의 짐꾼을 이서진(44세)에게 맡긴 건 나영석(39세) PD의 ‘신의 한 수’였다. 투덜거리면서도 할 일은 다 하고, 공손하게 할배들을 모시는 이서진의 모습은 할배들이 주는 감동 이상의 매력이 있었다. 게다가 틈틈이 등장하는 ‘톰과 제리’, 이서진과 나영석 PD의 케미스트리는 프로그램의 활력소로 작용하며 큰 웃음을 선사했다. 그런 두 사람이 유럽, 대만, 스페인에 이어 강원도 정선에서 다시 뭉쳤다. 호텔방에서 할배들을 위해 요리하는 이서진의 모습을 보여주며 예고했던 ‘요리왕 서지니’가 드디어 현실이 된 것.
10월 17일 첫 방송을 시작한 tvN <삼시세끼>는 편안한 도시 생활에 익숙한 이서진과 옥택연이 시골에서 좌충우돌하며 삼시 세끼를 해결하는 나영석표 요리 예능 프로그램이다. 두 남자는 가스레인지조차 없는 강원도 정선의 시골집에서 밥 한 끼를 때우려 식재료와 싸움을 벌인다. 하지만 옥택연과 이서진의 호흡보다 기대되는 것은 이서진과 나영석 PD의 알콩달콩 기 싸움. 서로에 대해 비난 일색이지만 그래서 더 애정이 느껴지는 두 사람을 만났다. 시작부터 공방이 오갔다. 선제공격은 형인 이서진의 몫.
“제가 이 프로그램을 한다는 걸 기사로 알게 됐어요. 통화를 하는데 나 PD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그동안 고생 많이 했으니 쉬어 가는 힐링 프로그램을 하자. 농촌의 정서를 알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라고 하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믿었죠. 여러 차례 여행하면서 나 PD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또 속일 줄 몰랐어요. 근데 저도 순진한 데가 있는 것 같아요. 정말 힐링 여행으로 생각했거든요. 별 생각 없이 시작했다가 지금 굉장히 후회하고 있어요.(웃음)”
이처럼 이서진은 <꽃할배> 때와 마찬가지로 감쪽같이 속은 채 프로그램에 합류하게 됐다. 나영석 PD는 이런 이서진의 반응이 마냥 즐거운 듯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서진은 나영석 PD 앞에서만은 ‘고양이 앞에 쥐’ 신세가 따로 없다. 툴툴거리면서도 못 이기는 척 나 PD가 시키는 것은 다 하는 것. <삼시세끼> 제작 발표회 현장에서도 이서진은 MC 박지윤의 요청에는 요지부동이다가 나영석 PD의 지시(?) 한마디에 옷까지 벗으며 무거운 가마솥을 번쩍 들어 올렸다. 촬영장에서 한 번도 가마솥을 들지 않았다던 그가 움직인 것.
“이서진씨는 자기가 가장 힘들어하고 싫어하는 상황일 때 가장 열심히 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줘요. <꽃할배> 어르신들 모실 때도 그랬고, 특히 요리할 때 모습이 그랬어요. 익숙지 않은 요리를 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맛있는 요리는 아니지만 어쨌든 정성을 다해 뭔가 만들어 소중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담아 대접하는 모습이 좋아 ‘서진이 형과 요리를 키워드로 프로그램을 하나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 기획하게 됐어요.” (나영석)
나 PD의 말에 이서진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잘 몰랐는데 저한테 노예근성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꽃할배> 하면서 쭉 느꼈어요. 이번에도 이것저것 요구하는데, 그걸 찍으려고 온 스태프가 굉장히 많은데 안 한다고 뿌리칠 수도 없고…. 그래서 또 시키는 대로 다 하고 말았죠. 아마 그래서 자꾸 끌려 다니면서 하는 것 같아요.(웃음)”
대나무처럼 소신 강한 이서진을 휘게 만드는 나영석 PD의 힘은 무엇일까? 이서진이 생각하는 나 PD의 매력을 물었다.
“보면 알겠지만 나영석 PD가 사실 무슨 매력이 있어요? 그건 눈으로 봐도 알 수 있지 않나요? 다만 <꽃할배>가 제가 생각한 이상으로 정말 잘되는 것을 보면서 능력 있는 친구라는 생각은 들었죠. 특히 촬영하다 보면 내가 욱해서 패악도 부리곤 하는데 그런 걸 알아서 좋게 만들어줘요. 또 세 번의 여행을 함께하고 술도 같이 자주 마시다 보니 믿음 같은 게 생긴 것 같아요.”
이처럼 두 사람은 연출자와 연기자를 떠나 막역한 형·동생으로서 깊은 우정을 나누고 있다. 공개적으로 늘어놓는 서로에 대한 불평불만이 전혀 불편하지 않고 그저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도 두 사람 사이의 끈끈한 정이 대중의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영석 PD는 이서진을 ‘좋아하는 형’이라고 표현했다.
“예능인으로서 이서진씨의 매력은 여러분이 보는 모습 그대로예요. 카메라 앞이나 뒤나, 현실에서나 방송에서나 똑같거든요. 그래서 ‘내가 보는 이 모습을 시청자분들께 보여드리고 싶다’는 욕심이 들어 계속 함께하는 것 같아요. 진정성이 있어요.”
이쯤 되니 ‘나영석의 페르소나=이서진’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이서진은 발끈하며 항변했다.
“페르소나는 보통 마틴 스콜세지 감독처럼 거장들한테나 쓰는 말 아닌가요? 이런 사람한테 갖다 붙일 수 있는 말이 아니에요. 기분이 썩 좋지 않네요.(웃음)”
그렇다면 이서진에게 나영석 PD란 어떤 존재인지 물었다. 이서진은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답을 내놨다. “무의미.”
나 PD 역시 지지 않았다. “저도 이서진씨가 페르소나는 아니에요. 저는 원래 이승기처럼 반듯한 이미지를 좋아해요. 지금은 잠시 외도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두 사람의 신경전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점점 더 끈끈해지는 두 사람이 만든 <삼시세끼>에 대한 기대감도 더욱 높아졌다. 현장 분위기는 어땠는지 이서진에게 물었다.
“이 프로그램이 <꽃할배>보다 훨씬 힘들어요. 그때는 외국의 좋은 경치를 보는 낙이라도 있었는데 시골에선 정말 낙이 없거든요. 장점은 음… 촬영장에 처음 도착하면 느껴지는 맑은 공기 정도? 그것도 잠시뿐이고 그 외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 PD한테 이 프로그램 잘 안 되면 같이 죽자고 했어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전 <꽃할배>도 3회쯤부터 재미없었어요. 재미를 못 느꼈죠. 보는 분들이 재미를 느꼈다면 다행이지만 개인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더 재미없다고 생각해요.”
이서진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삼시세끼>의 예고편은 기대 이상이었다. 미국 유학파 출신으로 차도남의 상징과도 같은 이서진이 낫으로 수수를 베고, 맷돌을 돌리는 모습이라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배우로서 예능 프로그램에 연이어 출연하며 웃긴 이미지로 비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는지 궁금했다.
“저는 <꽃할배>도, 이번 <삼시세끼>도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오히려 평소 모습을 보여주는 일종의 다큐멘터리로 느껴지죠. 그렇기 때문에 전 그냥 주어진 상황에서 왔다 갔다 할 뿐 특별히 뭘 하지 않아요. 일부러 웃기려 한 적도 없고요. 그게 원래 제 평소 모습이에요. 워낙 타고난 성격이 밝고 유쾌한 편인데 그런 것을 나영석 PD가 잘 캐치해 이끌어내는 것일 뿐이니 배우로서 큰 부담은 없어요.”
커피 원두를 맷돌에 갈고 있는 이서진의 엉뚱한 매력.
이서진이 나 PD에 대한 믿음 하나로 여기까지 왔듯 나영석 PD도 이서진에 대한 무한 신뢰를 보여주었다. <삼시세끼>에 옥택연이 출연하게 된 것도 이서진의 영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서진씨가 누구 칭찬은 잘 안 하는 편이에요. 오히려 이 사람 저 사람 욕을 더 많이 하지.(웃음) 그런데 어느 날 옥택연을 칭찬하더라고요. 열정이 대단해 놀랐다면서. 드라마 <참 좋은 시절>에서 옥택연이 사투리를 쓰는 캐릭터였는데 연기를 위해 부산에 가서 며칠씩 배우고 왔다는 거예요. 그 전까지 옥택연을 잘 몰랐는데 이서진씨에게 그런 얘기를 듣고 관심을 갖고 찾아봤더니 정말 보통 아이돌과는 다른 느낌이었어요. 스케줄이 없으면 혼자 막 돌아다니고, 옷을 너무 못 입어 스타일리스트가 잠깐이라도 눈을 떼면 아무도 못 알아보고요. 연예인 같지 않은 매력이 있어 캐스팅했는데 정말 열심히 해서 만족스러워요.”
나 PD의 조종(?)에 따라 머슴처럼 열심히 하는 옥택연의 모습에 ‘원조 노예’ 이서진은 한탄을 금치 못했다.
“사실 전 택연이가 걱정이에요. 노예 생활에 벌써 젖어들었어요. 떨어진 토마토에 한없이 즐거워하고, 사소한 일에 기뻐하고.(한숨) 말로는 싫다고 하는데 제가 봤을 땐 완벽하게 적응했어요. 안타까운 마음에 그렇게까지 하지 말라고 계속 말리고 있는데 이미 요리를 거의 입시생처럼 공부하고 있어요. 큰 걱정이에요.”
이처럼 이서진은 삼시 세끼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덜거릴 테고, 그러면서도 할배들에게 대접했던 김치찌개처럼 정성스러운 음식을 완성할 것이다. 그사이 재료를 찾아 이리저리 떠돌고 전전긍긍하는 모습 역시 큰 웃음을 유발할 전망. 또 그런 그를 상대로 깐족거리며 도발하는 나영석 PD와의 콤비 플레이는 <삼시세끼>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가 될 것이다. 스페인에서 예고편만으로 시청자들의 배꼽을 잡게 했던 ‘요리왕 서지니’의 결말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