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새로운 것을 계속 ‘던지다’ 보면 먼 훗날 멋진 일상으로 다가온답니다. ‘나 데리고 사는’ 여러 방법 중 가장 신나고 재밌는 일 같아요. 저는 요즘 요리 배우기에 빠져 있어요. 그 덕에 이렇게 요리로 마음을 표현할 수도 있고 나중에 또 다른 형태로 활용될 거라 믿어요.”
나 데리고 사는 법, 일상에서 꿈의 재료를 찾아라
매달 김미경 대표가 요리 고수의 노하우를 전수받던 ‘인생식당’이 오늘은 조금 다른 모습으로 문을 열었다. 지난 10월 13일 시작해 25일까지 삼성동 KT&G 상상마당에서 열리는 <김미경 톡앤쇼>의 무대 리허설 현장에서 김미경 대표가 게스트를 위해 자신의 손맛을 담은 도시락을 준비한 것. 그간 배운 요리 솜씨를 발휘하는 중간 점검의 시간이라고나 할까?
“오늘 무대의 게스트는 뮤지컬 배우 김지현씨입니다. 2년 전 tvN <김미경쇼>에서 만난 이후 인연을 쌓은 분이죠. 저와 성향이 비슷하고 늘 아이디어와 열정이 넘치는 분이라 자극을 받는 부분이 많아요. 이 무대를 위해 어제 일본에서 입국했는데 고맙기도 하고 반가워서 도시락으로 그 마음을 표현하려고 해요.
평소 김지현씨가 가볍게 먹을 수 있는 파스타를 좋아한다 하여 상큼한 토마토소스로 맛을 낸 파스타를 만들었고, 든든한 끼니가 되게 하려고 영양 만점 쇠고기 스테이크를 담은 채소 샐러드도 준비했어요. 지난달 채식 요리에서 배운 그대로 스테이크를 구워봤고요. 요리하면서 얼마나 설레고 좋던지…. 고마운 사람에게 도시락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건 오히려 만드는 사람이 행복한 일인 듯해요.”
리허설 전, 김미경 대표와 김지현씨는 마주 앉아 도시락을 나누면서 무대에서 할 얘기를 점검해보았다. 한국인 최초로 일본 최고 극단인 ‘사계’에 입단하며 한국 뮤지컬 배우의 위상을 높인 김지현씨에게도 숱한 고민이 있었고 그 고민을 관객과 소통하며 이야기를 나눌 계획이었다.
“오늘 토크 주제가 ‘나 데리고 사는 법’인 만큼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잘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나를 얼마나 잘 데리고 사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거예요. 오직 나만 데리고 사는, 나만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나를 데리고 사는 게 쉽지 않아요. 내가 나를 통제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지요. 저도 나를 잘 데리고 살려고 영어 공부를 시키잖아요.
처음엔 학원을 끊었는데 시간이 들쭉날쭉하니까 아예 영어 잘하는 직원을 뽑아 연봉까지 주고 있어요. 한데 저 요즘 그 직원 피해 다녀요. 괜히 저한테 영어로 말 걸까봐 두려워서 말이죠.(웃음) 그렇게 하기로 맘먹은 일인데도 치여 살기에 바쁘고…. 우린 왜 이렇게 나 데리고 사는 게 힘든 걸까요? 오늘 그 얘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김미경 대표가 전하는 ‘나 데리고 사는 법’을 들어보자.
Recipe
■ 토마토파스타
재료 스파게티 100g, 방울토마토 3개, 파프리카·새송이버섯·브로콜리 1개씩, 청양고추 1/2개, 양파 1/4개, 다진 마늘 1큰술, 포도씨 오일 적당량,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토마토소스(시판 토마토스파게티소스 1컵, 물 1/4컵, 고추장 1큰술)
만들기
1_끓는 물에 스파게티 면을 넣고 삶아 체에 밭친다.
2_방울토마토는 4등분하고 청양고추는 송송 썬다. 파프리카와 새송이버섯, 브로콜리, 양파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3_볼에 분량의 토마토소스 재료를 넣어 고루 섞는다.
4_달군 팬에 포도씨 오일을 두르고 다진 마늘, 송송 썬 청양고추를 넣고 약한 불에서 볶는다.
5_④에 ①의 스파게티 면을 넣고 볶다가 ②와 ③을 넣고 고루 섞으며 볶은 뒤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을 맞춘다.
■스테이크유자청샐러드
재료 샐러드용 채소(치커리, 상추, 파프리카, 양파, 양상추 등) 300g, 쇠고기(등심) 200g, 청주 1큰술,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올리브 오일 적당량, 유자청드레싱(발사믹 식초·유자청 1큰술씩, 올리브 오일 2큰술)
만들기
1_소금과 후춧가루, 청주로 밑간한 쇠고기를 달군 팬에 올려 겉면만 살짝 익힌 뒤 한입 크기로 썬다.
2_샐러드용 채소는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고 굵게 채 썬 뒤 올리브 오일과 소금을 넣어 버무린다.
3_볼에 유자청드레싱 재료를 넣고 한데 섞은 뒤 ①과 ②를 넣어 고루 무친다.
‘I AM’, 나라는 존재가 가장 중요하다
오늘 인생식당의 주재료는 ‘나’라는 사람이다. 과거부터 현재, 미래의 나를 그리고 상상하며 인생의 쓴맛, 단맛, 매운맛 등의 양념을 더해 맛보는 시간이다. 일본 뮤지컬 무대에서 한국인 최초로 당당히 주인공을 꿰차며 인기를 끌었던 뮤지컬 배우 김지현씨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쓴맛을 맛본 순간을 이야기한다.
김미경 안녕하세요. 김미경입니다. 오늘 주제가 뭔지 알아요? ‘나 데리고 사는 법’이에요. 그러니까 오늘만큼은 친구도 가족도 잠시 헤어지세요. 여럿이 사는 것 같지만 인생은 혼자예요. 나를 얼마나 잘 데리고 사는지가 가장 중요한 거예요. 남편, 자식 잘 데리고 사는 법보다 나 자신을 잘 데리고 사는 법이 더 중요해요. 오직 나만 데리고 사는, 나만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나 데리고 사는 게 힘들어요? 내 꿈을 데리고 살다가 슬럼프에 빠져 우울하고 자신감을 잃기도 하고, 지금 나 왜 이러고 사느냐고 한숨만 내쉬고 있나요? 나를 데리고 사는 현장이 어디예요? 바로 오늘 지금이잖아요. 그렇다면 당신에게 오늘은 일상이에요? 꿈이에요? 결혼 10년 차 이상 된 주부들에게 똑같이 물어보면 오늘은 ‘일상 중에서도 매우 지겨운 일상’이라고 답해요.
그런데 기억해보세요. 지금 살고 있는 일상은 10년 전만 해도 당신의 ‘로망’이었다는 거 아세요? 그렇게 뜯어말리면서 하지 말라는 결혼을 기어코 하더니 삶이 지겹다고 하네요. 그때만 해도 “좋은 남자 만나서 아름다운 아내가 되고 싶어요”라고 다 그렇게 말했잖아요. 또 아이 낳아서 예쁘게 키우고 싶었잖아요. 그런데 육아가 지금 그렇게 좋아요? 부부들 보면 서로 유모차 안 밀겠다고 미루잖아요.
기억하세요. 이건 나의 꿈이었다는 것을 말이죠. 로망이 성숙하면 이렇게 일상이 됩니다. 입사하고 싶었던 회사에 들어가 3년 꼬박 다니다 보면 일상이 되죠. ‘이놈의 지긋지긋한 회사 내가 곧 떠나버리겠다’ ‘내가 더 좋은 꿈을 찾으면 뒤도 안 돌아볼 거다’라며 힘들어하잖아요. 모든 일이 처음엔 로망이었는데 이게 성숙하면서 일상이 되고 일상을 꿈처럼 다루지 못해 결국 치여 살게 되는 것이에요.
그런데 내가 일상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상황이 달라집니다. 자신의 꿈을 갖고 인생을 만족스럽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똑같은 특징이 있어요. 바로 ‘골든타임’을 ‘던지고’ 있다는 거예요. ‘오늘은 오늘만 사는 게 아니야. 10년 후 그날까지 이틀을 더 사는 거야’라며 지금 일상에서 하고 싶은 걸 다 던지고 보는 거죠.
저만 봐도 그래요. 저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강사가 되겠다고 맘먹은 적이 없어요. 저는 음대 작곡과 나와서 피아노학원을 운영했어요. 일 년에 2백여 명의 원생을 가르칠 정도로 잘나갔다고요. 그러다 어느 날 무대에서 성공 사례 발표 같은 걸 하라는 거예요. 그게 제 첫 강의였어요. 당시엔 무섭기도 하고 무엇을 말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일단 해볼게요” 하며 피하지 않고 던졌던 거예요.
그날 강의를 나갔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된 거죠. 이것을 물리적 측면에서 ‘모든 사물은 동시에 두 개가 생긴다’라는 ‘연기적 법칙’이라고 해요. 하루가 탄생하면 낮과 밤이 있고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엄마와 아이가 만들어지듯, 동시에 두 가지가 생기는 거예요. 저는 요즘도 막 던지고 있어요. 물리, 수학, 영어, 요리, 일본어 등을 배우고 있는데 사실 이게 먼 훗날 무엇이 될지 몰라요.
하지만 이것들이 만나 화학 반응이 일어나면 뭐라도 탄생하지 않겠어요? 뭐든 막 던지다 보면 10년 후 무엇인가 탄생될 거예요. 아무것도 안 던지면 10년 후 아무것도 없죠. 오늘도 10년 전에 당신이 던진 무엇의 결과인 것입니다. 우연히 불행하거나 행복한 건 세상에 없어요. 인생은 한 통으로 쭉 연결된 거니까요. 뭐든 던져보는 것, 그것이 일상에서 꿈을 찾는 방법이며 꿈을 이루는 가장 쉽고 좋은 방법이에요.
사람들 중에는 “지금은 대충 살지만 몇 년 뒤 꿈을 찾으면 더 열심히 살 거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지금 일상을 잘 던져야 그 꿈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자, 그럼 오늘의 게스트를 모셔서 그분의 ‘나 데리고 사는 법’을 들어볼게요.
<김미경의 톡앤쇼> 여섯 번째 무대의 게스트인 뮤지컬 배우 김지현씨는 리허설 전 자신의 파우치를 열어 직접 김미경 대표를 꾸며주었다.
김지현 안녕하세요. 뮤지컬 배우 김지현입니다.
김미경 제가 김지현씨를 알게 된 건 tvN <김미경쇼>를 진행할 때였어요. 일본 유명 극단인 ‘사계’에 들어가 한국인 최초로 일본 뮤지컬 무대의 주인공으로 우뚝 선 유명한 분이거든요. 그때 꿈을 이룬 비결을 들었는데, 오늘은 자신을 데리고 얼마나 잘 사는지, 그 얘기를 들어보려고 모셨습니다. 뮤지컬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됐죠?
김지현 대학 때 시작했어요. 일본에 가기 전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라는 졸업 작품을 했는데 그 작품이 중국에 진출하면서 23세 때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죠.
김미경 사계라는 일본 극단에 들어가는 건 어렵나요?
김지현 제가 들어갔을 때가 극단 45주년 기념 오디션이었어요. 경쟁률이 ‘1800 : 1’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김미경 그런데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이 뽑혔네요? 대단하네요!
김지현 음…….
김미경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도 돼요.(웃음) 사실 김지현씨가 기독교 신자예요. 김지현씨를 인터뷰하는 게 힘들어요. 모든 질문에 다 하나님 뜻이라고 말하거든요. 우리 엄마, 동생이랑 똑같아요. 어떻게 어려움을 해쳐나갔냐고 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셨다고 해요. 인터뷰하고 나면 쓸 말이 없어요. 그래서 오늘만큼은 하나님의 뜻만 빼고 말해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 그 말을 하고 싶어서 입술이 실룩대는 것 같아요. 지금 하고 싶죠?
김지현 네. 많이 참았어요.(웃음) 이 모든 게 하나님이 역사하셔서입니다.
김미경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극단에 들어갔지만 힘든 일이 많았을 것 같아요.
김지현 언어 문제로 많이 고생했어요. 랭귀지 스쿨에도 다니고 했지만 표현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어요. 문화적 차이도 커서 제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오해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고요. 마음이 아팠어요.
김미경 ‘왕따’ 같은 건 없었어요?
김지현 아마도 있었던 것 같은데 당시 제가 일어를 잘하는 게 아니라서 몰랐을 거예요.
김미경 그건 다행이네. 그때 못 알아들어서…. 일본 뮤지컬은 한국과 많이 달라요?
김지현 그렇죠. 특히 극단 사계가 굉장히 특수했어요. 일본 전체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완벽주의자’처럼 굉장히 연습을 많이 하고 완벽한 틀에 맞춰 연기하고 작은 실수도 없었어요. 실수를 하면 바로 자아비판에 들어갑니다. 매일 아침 미팅을 하는데 각자 “무엇을 잘못했습니다. 안 그러겠습니다”라고 자아비판으로 시작해요. 처음엔 저도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그게 일본의 문화더라고요.
김미경 사계에서 얼마나 활동했어요?
김지현 10년 정도 했어요. 지금은 극단을 나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고요.
김미경 그 당시 일본에서 활약이 대단했죠. <라이온 킹> <캣츠> 등 굵직굵직한 무대에서 주인공만 하셨잖아요. 한데 왜 그만두셨어요?
김지현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 있는데 아무리 좋은 배역이나 노래일지라도 1~2년 동안 매일 똑같은 것을 반복하다 보면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요.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나오게 됐어요.
김미경 김지현씨는 보다시피 한국에서 활동할 때부터 훌륭한 발성법에 발레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로 유명했어요. 뮤지컬 배우로도 명성이 있지만 지금은 자신만의 꿈을 이루겠다 하여 찬송가를 가르치는 힐링 센터도 계획하고 있어요. 아이디어와 열정이 참 많은 분이에요. 그런데 요즘 고민이 있으시다고?
김지현 예전에 tvN <김미경쇼>에서 대표님도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바쁜데 굉장히 우울하다고…. 제가 지금 딱 그런 것 같아요. 다 제가 만든 일이지만 몸은 하나고 일은 많고… 그래서 몸이 안 따라줄 때가 많아요. 요즘 잠도 잘 못 자고 게을러서 그런 게 아닐까 깊은 생각에 빠지곤 해요.
김미경 바쁘면 우울해지는 건 맞아요. 저는 우울함의 밑바닥까지 가서 내 할 일을 찾은 적이 있어요. 제가 20여 년 전에 ‘보리텐’이란 음료의 CM송을 만들었어요. 그거 하나 만들고 바로 퇴사했어요.
왠지 아세요? 제가 한 달 동안 고생해서 작곡했는데, 당시 그 CM송을 부른 부활의 기타 귀신 김태원씨가 등장해 곡이 맘에 안 들었는지 좀 고쳐도 되냐고 하더니 결국 다 고쳐버린 거죠. 그것도 단 몇 분 만에…. 꿈이 학력보다 강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태원씨 앞에서 제 능력과 음대를 나온 학력은 비교가 안 되는 거죠.
그 과정에서 저는 극심한 우울감을 느꼈어요. 음악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피아노가 눈앞에 보이는 거예요.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피아노는 별론데, 근데 내가 또 상담을 그렇게 잘혀~(웃음) 그래서 피아노학원을 시작한 게 딱 들어맞았어요.
결국 보면요, 우울하다는 건 자신을 깊이 사랑해서 문제점을 깨닫는 순간이에요. 요즘 힘들고 예전처럼 열정이 치고 올라오지 않는 정체된 느낌이 든다면 내 안에서 질적인 도약을 위해 싸우고 있는 중인 거예요. 그럴 땐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이니 좀 쉬세요. 우울할 때 쉬면 무언가 보이거든요.
김지현 벌려놓은 일이 많은데 쉬면 오히려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요?
김미경 미래를 위한 더 큰 도약의 기회라고 생각해요. 너무 심하게 일한다 싶을 때 자신이 혹시 꿈의 머슴이 아닌지 생각해보세요. 작년에 저한테 너무 슬픈 일이 있었잖아요. 급하게 달리다가 잠깐 멈춰 쉬다 보니 제 안에 조그만 애가 울고 있는 거예요. 제가 그 조그만 애를 꼼짝도 못하게 꽁꽁 묶고 “너 도망가지 마! 너 내 꿈을 위해 일하기로 했잖아”라며 꿈의 머슴 노릇을 시키고 있더라니까요.
그래서 작년에 풀어줬어요. 하고 싶은 공부도 하고 여행도 가면서 놀라고 말이죠. 나를 꽁꽁 묶었던 끈을 놓으니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깨닫게 됐어요.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꿈을 즐기게 되더라고요. 너무 큰 규모의 짐을 짊어지고 있으면 계속 우울해요. 열심히 하는데도 우울하다면 생각해봐야 해요. 꿈의 주인인지 머슴인지는 너무나 중요해요. 지현씨도 꽁꽁 매인 줄에서 놓여나 약간 여유를 갖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김지현 꿈의 머슴이 되지 않도록 제 스스로를 달래며 살아야겠네요. 감사합니다.
김미경 대표는 그동안 일상에서 요리를 배운 덕에 손수 도시락을 싸서 마음을 표현하는 꿈을 이뤘다.
김미경 이제부터는 제 얘기를 해볼게요. 지금 제 아들이 뮤지션이 되고 싶다고 잘 다니던 예고를 자퇴하고 일본에 갔어요. 당시 엄마 입장에서는 엄청 화가 나고 맘에 안 들었어요. 내 아이가 ‘중졸’이라니! 참 비겁한 생각을 한 거예요. 아이를 위한다는 핑계 속에 결국 ‘중졸 아이의 엄마’라는 수식어가 창피했던 거죠.
근데 제가 아이의 생각을 존중하고 사랑하게 된 계기가 된 단어가 있어요. 바로 ‘I am(나는)’. 자, 생각해보세요. 아이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우리 아이 밥만 잘 먹고 똥도 잘 싸고 잠도 잘 자고!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고 말해요. 그런데 중3 아이가 여전히 잠만 퍼지게 자고 밥만 많이 먹고 있어 봐요. “야! 너 공부 안 하니? 이 성적에 잠이 와?” 하며 엄마들은 화부터 내죠. 아이의 ‘I am’만 사랑할 수 없는 거예요.
‘I am a top student(나는 전교 1등이다).’ 같이 뒷문장이 그럴싸해야 사랑하잖아요. 우리 아들도 아빠한테 혼나서 방에서 울고 있을 때 제가 들어가 등짝을 때리면서 “울더라도 밥 먹고 울어. 내 귀한 새끼”라고 하면 울면서도 혼자 그 시간을 잘 다지고 일어서요.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자신의 자존감은 뒷문장의 수식이 아닌 바로 ‘I am’에서 와요.
작년에 저 힘들었잖아요. 지금 거의 2년이 다 되니까 편하게 말할 수 있네요. 22년간 강의하면서 저는 ‘I am a teacher(나는 선생이다)’로 설명할 수 있잖아요. 여기에 유명해지면서 ‘very famous(매우 유명한)’라는 단어가 붙더라고요. 그런데 한순간에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안 좋은 기사가 나가니 바로 그 수식어가 떨어지데? 나중엔 결국 ‘I am’ 하나만 남더라고요.
이때 나를 사랑할 근거가 있어야 다시 회복하는 힘이 생겨요. 그때 제 ‘I am’을 지켜준 게 엄마세요. 소식을 접하곤 전화하셔서 “괜찮아, 미경아. TV에 안 나가면 어때~ 일하느라 살림도 안 했는데 살림이나 혀.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어. 넌 너 하나만으로 소중한 겨”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제가 그저 살아서 행복한 게 제일 중요하다고 말해주시니까 제가 ‘I am’이라는 단어에 기대어 다시 일어설 수 있었죠.
저희 엄마는 평생 양장점을 했어요. 50년 내내 일만 하다 보니 수술을 많이 해서 이제는 일어나 계시지도 못해요. 밥 먹을 때도 누워서 먹어야 해요. 이렇게 살면 뭐하냐며 죽었으면 좋겠다고 자주 그러셨죠. 전 엄마 옆에서 “홍순씨, 여전히 아름답고 멋지다”며 엄마의 ‘I am’을 북돋아줬어요.
어느 날 전화했더니 목소리가 밝으신 거예요. 하시는 말씀이 “엄마가 생각해보니까 병도 내 일부분이여. 내 몸에 들어왔으니 내 친구여. 그래서 통증한테 말해줬어. 넌 네 할 일 해, 난 내 할 일 할 테니”라는 거예요. ‘I am’만 굳건히 서 있으면 병이 들어와도 행복하게 살아요. 그게 그렇게 중요해요. 우리의 ‘I am’은 살면서 상처받는 날이 많습니다. 그 뒤에 붙는 수식어는 수시로 바뀌어요. 누구나 그래요. ‘I am’만 잘 지키고 삽시다.
자, 이제 이렇게 날 데리고 사십시오. 내 꿈은 오늘에 있습니다. 일상을 꿈으로 대할 줄 알아야 해요. 일상에서 늘 무언가를 던지다 보면 10년 후 예상치 못한 나를 만날 수 있어요. 또, 어떤 순간에도 ‘I am’을 내려놓지 않도록 서로 격려하면서 살아야 해요. 이게 ‘나 데리고 사는 법’인 것 같습니다. 힘들어도 부족해도 나를 잘 데리고 사시길 바랍니다.